나의 Ending Note 김선태문학실을 꾸미며
내가 책을 사랑하고 글을 쓰게 된 것은 어쩜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책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을는지 모른다. 초등학교(지금의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교과서 이외의 책이란 가지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이 읽을 수 있게 준비된 아동용 다른 책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살았으니 말이다.
내가 맨 처음으로 아동용 도서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책 한권은 아니 책의 한 부분은 [늑대소년]이라는 책의 2/3쯤만 남은 것이었다. 앞뒤로 다 떨어져 나가고 가운데 부분만 남아 있는 책을 학급에서 돌려 보는데 그것도 공부 좀 잘하고 말 빨이 선 순서대로 돌다보니 갈수록 더 얇아지고 말았다.
이즘에 농촌에서는 아버지들이 담배를 직접 심어서 말려 두었다가 종이로 말아서 피우던 시절이라서 차마 교과서는 못 찢고 웬 다른 책이 보이면 뜯어다가 쓰곤 했기 때문에 나중에는 겨우 절반 정도나 남은 책이 되고 말았었다.
그래서 중학교에 진학을 하여서부터 남다르게 암뜬 성격인 탓에 친구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책에 마음을 두고 책을 읽기에 몰두하였다. 더구나 책방주인아저씨가 어찌나 마음씨가 좋으신지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있으면 빵도 주시고 읽다만 책을 집에 가지고 가서 읽으라고 하시기도 하지만 내가 읽는 속도를 아시고는
“오늘밤에 읽으려면 이거 한 권 더 가지고 가야겠구나.”하시면서 읽던 책에 한 권을 더 얹어서 주시기까지 하셨었다. 그렇게 책읽기에 길든 나는 책읽기와 글쓰기에 자연스럽게 접근하게 되었고, 첫 벌령지에서부터 글을 쓴다고 끄적거리면서 여기저기 투고도 하곤 하였다. 당시에 금지도서가 되다시피 하였던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思想界>를 탐독할 정도이었고, 이 사상계를 읽는다는 것만 알아도 감시를 당하던 시절인데 겁도 없이 독자란에 투고까지 하였다. 그래도 조심스러워서 성명을 다 쓰지 못하고 이니셜로 쓰곤하였는데 4회나 게재가 되곤 하였다. 제주와 서울의 MBC에 아침 이야기를 읽어주는 [맹정순입니다] 프로그램에 5,6회 방송이 되기도 하는 등 글쓰기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다. 이렇게 글쓰기를 하다가 두 번째인 득량서교에서는 본격적으로 문학수업을 하자는 마음으로 문학작품(?) 이랄 것도 없는 글들을 끄적거리다가 몇 편의 동시와 동화가 발표되면서 김신철 선생님으로부터 전남아동문학회의 회원으로 입회를 권유받고 회원이 되어서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동문학이라는 영역에 둥지를 틀게 되었다.
전남아동문학회에 입회를 한 뒤에 2년 째에 전남아동문학상이라는 것을 받게 되고, 문학에 더 노력을 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1968년 1월1일 삼남교육신문의 한 면을 장식한 동화 [열한 살의 고백]은 동화를 쓰게 만들었고, 한국아동문학회ㅏ에 몸을 담으면서 1980년부터 사무차장으로 10여년 사무국장, 부회장을 4차례<12년>을 지내다가 2012~2014년까지 회장까지 역임을 하고 나서 한국아동문학회의 사무국 일에서 벗어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