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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스크랩 [책부족] 불멸; 밀란 쿤데라 지음, 김병욱 옮김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27 11.05.02 13: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난해하다.  과거와 현재, 이 사람과 저 사람과의 관계가 돌고 돌며 만들어지는 인문학적 수사들, 상상이 현실이 되고 가상의 인물은 결국 현실의 인물과 저자가 되어가는 이 복잡함 속에 들어있는 소설의 기교와 지은이의 의도는 나에게 쉽게 이해를 주지 않는다.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생각들을 소설이라는 장르와 구성상의 기교를 통해 한상 가득 차려놓은 뒤, 대충이라도 느껴보고 저자 자신을 이해해달라는 듯, 그리고 혹여 할 수 있다면 같은 상상과 사고를 함께 고민해보자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인간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인간이 남기는 흔적들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인간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 그것은 그가 죽은 후에도 누군가에게 기억됨으로서 스스로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이 아닐까, 베티나는 괴테에 대한 사랑을 통해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했고, 괴테와의 인연을 책이라는 흔적을 남김으로서 스스로 또다른 불멸이 되었다.  나폴레옹이 괴테를 만난다는 것 역시 스스로 불멸의 존재가 서로 만나 생의 현실과 사후의 현실에서 더욱 큰 불멸의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 아니었을까. 


  존재와 존재가 만난다는 것, 그것은 관계를 통한 각인이자 자신의 존재가 시간이 지나며 소모되어버리는 것을 거부하는 본능이자 가장 보편적인 행위가 아닐까 생각한다.  형부를 사랑하지만 언니에게 가려져 타인과의 방황을 계속하던 로라, 결국 언니의 죽음으로 형부를 차지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상대에게 각인시키고 그 각인은 소설의 마지막까지 지속된다.  아베나리우스 교수,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인을 기괴한 취미를 통해 세상을 자신의 놀이터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만들어낸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각인을 통해 스스로를 인식하고 그 인식을 시간을 뛰어넘어 유지시킴으로 불멸의 존재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닐까.  괴테나 나폴레옹 역시 이미 불멸의 존재가 되었음을 스스로 깨달으며 존재감의 각인작업에 있어 여유가 생긴 것일 뿐이다.


  수많은 기교와 단편적인 인문학적 수사의 나열이 가득한 소설의 제목이 '불멸'이라는 것은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면도 있다.  '나'의 상상으로 시작한 주인공 폴은 결국 '나'가 되고, 자칫 희미한 흔적과도 같은 존재로 남을뻔 했던 로라가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존재감이 극대화되며, 아베나리우스 교수는 혼자만의 존재감놀이를 즐기면서도 주인공의 친구로서 역시 마지막까지 존재하는 모습에서 저자 역시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키면서 불멸의 존재가 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은 그가 소설에서 내던진 수많은 단편적 사고를 누군가가 이해하고 공감하고 함께 고민한다면 그 역시 사후에도 누군가의 기억에 살아있는 불멸의 존재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하긴 그는 이미 불멸의 존재가 되어있다.  괴테나 나폴레옹처럼..  그가 굳이 '불멸'이라는 소설 속에서 그의 전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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