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이란 통상 암군에게 빌붙어 아첨하면서 권세를 누리고 충신들을 모함하여
나라를 누란의 위기에 빠뜨린 신하를 말한다.
그런데 임사홍이나 김자점 등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간신으로 일컬어지는
유자광은 세조부터 중종까지 5대에 걸쳐 임금의 총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평생 높은 벼슬자리 하나 얻지 못했고 그럴듯한 권력조차 행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여타 간신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유자광은 명문가 출신이었지만 어머니가 노비였으므로 종모법에 따라
그의 신분은 천민이었다. 《홍길동전》에 빗대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형을 형이라 부를 수 없는 가혹한 천형을 안고 세상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온전히 자신의 능력만으로 운명에 굴레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조선시대에 상전의 허락 외에 자의적으로 면천할 수 있는 방법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거나 역모의 고변 등 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유자광은 그처럼 가능한 모든 수단을 통해 면천은 물론
부귀영화까지 거머쥐었다.
젊은 날 일찌감치 군대에 들어가 인생역전의 기회를 노리던 유자광은
이시애의 난이 일어나자 세조에게 발탁되면서 일거에 천역을 벗어던지고
당상관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는 출사 초기부터 신분제도의 훼손을 우려하던 양반 사대부들의
강력한 견제를 받았다. 예종이 즉위하자 승승장구하던 남이의 역모를 고발함으로써
1등공신이 되었지만 대간에서 딴죽을 거는 바람에 쓸 만한 관직 하나 얻지 못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유자광은 연산군 대에 이르러 무오사화를 통해 수많은 선비들을
희생시키면서 사림의 공적이 되었다. 중종반정에도 참여하여 1등공신이 되었지만
양대 사화의 원흉이라는 대간의 탄핵으로 낙마한 뒤 유배지에서 세상을 하직했다.
그의 사후에도 사림의 복수는 계속되어 유자광은 조선왕조 내내 평생 온갖 음해와
공작으로 올곧은 선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희대의 간신으로 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