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시절 품어준 일월산·개울가…'꿀벌의 친구' 등 그의 작품 무대이기도
- "좋은 동화는 씨앗이자 자연, 자연스럽게 읽기만 해도 천천히 사람 바꾸는 것"
배익천(61) 동화작가는 가방에서 낡은 공책을 한 권 꺼냈다.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서렸다. "집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만 했지 막상 찾을 엄두는 못 내고 있었죠.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제 고향 영양으로 문학기행을 오게 되니까 꼭 이걸 찾아야겠다 싶었습니다. 어젯밤에야 찾아냈죠." 그가 독자들 눈앞에 내놓은 것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쓴 일기장이었다.
"표지에는 제가 직접 커다랗게 '오늘의 반성'이라고 새겼습니다.'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라고도 써놨군요. 그때 쓴 동시가 있군요. 한 번 읽어볼까요. 제목 '나뭇잎'. 배익천. '봄철에 파릇파릇 얼굴 내밀어~'" 동시를 다 읽고 나자 독자들 사이에서 '진짜' 박수가 터졌다. 여러 종류의 행사장을 자주 다니다 보면, 관객이 치는 박수를 어느 정도는 감별할 수 있다. 이게 속에서 우러나온 '진짜 박수'인지 설렁설렁 치는 '설렁 박수'인지. '꼬마 배익천'의 동시는 담임선생님한테 '참 잘했어요. 별표 다섯개' 정도는 너끈히 받아냈을 만한 작품이었다.
■청기초등학교에서 깜짝 동시낭송회
배익천 동화작가가 모교인 경북 영양군 청기면 청기초등학교 교정에서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회상에 잠겼다. 조봉권 기자 | |
"아버님께서 교육자로 초등학교 교장까지 지내신 덕에 저는 영양군 안에 있는 6개 면 17개 초등학교를 안 가본 데가 없습니다. 이곳 청기초등학교는 6학년 때 전학 와서 여섯 달 동안 공부했죠. 제가 27회 졸업생입니다." 그는 운동장의 나무와 주위의 산들과 하늘을 쳐다보았다. "내가 살아 있는 한…." 그가 말을 이었다. "저는 이곳을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학교 마당의 저 큰 나무들도 그가 학교 다닐 때 있었다고 한다. "그땐 나무들이 아주 작았어요. 저 앞의 개울가, 저쪽에 있었던 묵집, 우리 가족이 살던 관사를 나설 때면 나를 오래 바라보시던 어머니. 그리고 우리를 품어준 일월산. 컴맹인 저는 얼마 전에야 이메일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디를 san1219로 정했어요. 경북에서 두 번째로 높은 일월산 높이가 1219m거든요. 근데 그 이름을 벌써 누군가 쓰고 있더군요. 그 메일주소의 주인은 영양 사람이 분명할 겁니다.(웃음) 그래도 일월산을 포기할 수 없어서 s자를 하나 더 붙여서 'ssan1219'로 했습니다. 진작에 메일을 만들 걸. 좀 아깝기는 합니다."
■씨앗이 되고 자연이 되어주는 동화
어린 시절 일기장을 꺼내든 배익천 작가. | |
그런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인상 깊었다. "그 모든 게 고향 영양이 제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꿀벌의 친구'나 '내가 만난 꼬깨미' 등 제가 쓴 많은 작품에 나오는 자연과 마을과 이야기는 영양에서 얻은 것이 참 많습니다." 내친 김에 부산을 대표하는 한국의 중진 동화작가인 그가 말하는 '좋은 동화'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만 더 들어보자.
영양에서는 하수도 덮개에도 '영양고추' 문양을 새겨놨다. | |
그가 말한 '좋은 동화는 씨앗이고 자연이다'라는 말이 깊었다. "억지로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읽기만 해도 천천히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 1학년 때든 5학년 때든 깔깔거리며 잘 읽었는데 그 아이가 자라는 동안 아이 마음 속에서 함께 자라면서 그 아이의 삶에 천천히 영향을 주는 것, 그것이 좋은 동화입니다. 당장 많이 팔려서 작가에게 부귀영화를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50년, 100년을 가면서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동화를 생각해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씨앗과 자연에 대한 생각을 그에게 전해준 것도 바로 고향 영양의 어린 시절이었다.
■그 햇살 그 공기 그 산들이 그립다
영양은 많이 변해 있었다. 10년 전 문학기행을 왔을 때와 비교하면 격세지감. 오일도 조지훈 시인, 이문열 소설가, 배익천 동화작가를 배출한 고장이 영양이다. 10년 전에는 없던 문학공원과 오일도 조지훈 시인에 대한 기념공간 등이 크게 늘었다. 때마침 우리 일행이 문학기행을 간날은 영양군이 주최하는 산나물축제의 마지막 날이었다. 깨끗한 산들로 둘러싸여 있는 공기 좋고 물 좋은 영양이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축제가 산나물축제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인산인해.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양손에 영양 산나물을 가득 들고도 '산나물 쇼핑'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영양의 명물인 고추를 홍보하는 시설을 둘러본 것도 좋은 경험이 됐다. 유난히 햇살이 좋고 공기가 맑은 영양에서 문학과 산나물과 고추에 취해 다닌 하루였다. 밤이 다 되어 부산에 도착하자 자동차는 왜 이리 많고 공기는 어찌 이리 탁할까. 금방 떠나왔던 영양이 금세 그리워졌다.
# 부산 아동문학인 20명 동행
- "배익천 선생님의 작품·문장의 맑은 기운 비밀 알게 된 기분"
영양 문학기행에 참가한 국제신문 신춘문예 출신 아동문학인들. 왼쪽부터 안덕자(동화) 석영희(동화) 최복자(동시) 허명남(동화) 최미혜(동화) 씨. | |
국제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아동문학인 다섯 명도 동참했다. 동시인 최복자, 동화작가 허명남 안덕자 석영희 최미혜 씨였다. 배익천 동화작가와 함께 한 영양 문학기행이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인들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 구실도 해 준 것이다. 이들은 "배익천 선생님 문학기행이라면 꼭 참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니까 더 반갑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자리가 서로 격려하며 더 좋은 작품을 쓰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덕담도 잊지 않았다.
허명남 동화작가는 "배익천 선생님의 작품과 문장에는 맑은 기운이 있다. 영양에 와 보니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맑을 수 있는지 그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동화가 아이들에게 자연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특히 가슴에 닿는다"고 말했다.
▶주최:롯데백화점·부산문화연구회
▶특별후원:국제신문
▶참가문의:http://문학기행.kr (051)441-0485
첫댓글 부산 선생님들 좋은 시간 갖으셨네요. 영양이 그런 곳이군요.
배익천 선생님 마이크 들고 해설하시는 모습이 좋아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