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에 제시된 조셉 코수스 작품의 표현 특성을 설명하시오. 그리고 이 내용을 바탕으로 애드먼 펠드먼의 비평단계를 감상 수업에 적용할 때 나타날 수 잇는 한계점을 3가지 제시한 후 그 이유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보완 방안과 그 근거를 제시하시오.
제시된 조셉 코수스의 작품인<하나와 세계의 의자>는 1960년대 말 미니멀 아트 이후 태동된 현대미술의 한 조류로서 ‘개념미술’에 해당된다. 개념 미술은 1960년대를 특징짓는 소비주의와 반문화적 신념과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서 모더니즘을 비평적으로 점검하려는 자의식적이고 엄격한 사색을 통해 당시 미술계의 새로운 경향으로 나왔다.
개념미술은 1970년대 들어 더욱 광범위한 정치 비평적 실천으로 발전해 갔다. 개념미술의 영역에서 개념, 즉 언어의 성격이 강해지면서 그것은 또한 미술이 재현의 영역에서 추상의 영역으로 다시 의미의 영역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즉 미술이 예술성 혹은 그 예술성을 담는 매체(캔버스나 오브제)를 탈피하여 본질적인 미술 영역의 확장을 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더욱 분석적이고 언어적인 의미에 바탕을 둔 경향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퍼포먼스 요소를 포함하는 플럭서스의 행위와 유사하게 드러나면서, 개념미술은 예술이 무엇인지, 예술 제도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역할은 무엇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 했다.
개념미술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쳐 등장한 하나의 운동으로서 뿐만 아니라 비판적 태도를 지닌 모든 예술로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래서 현재 이 개념미술은 현대 미술의 가장 획기적인 전환점의 하나로 간주된다.
개념미술 작가들의 주요 활동은 예술적 모더니즘에 대해 더욱 근본적인 문제 제기를 하면서 작업 방식도 더욱 광범위하게 사회정치적 쟁점을 언급한다.개념미술의 대표적인 작가인 조셉 코수스의 작품인 <하나와 세계의 의자>의 표현특성은 다음과 같다.
<하나와 세 개의 의자>라는 작품에는 사진으로찍은 의자와 가운데의 실물 의자, 그리고 의자에 대한 사전적 정의를 그대로 확대한 종이가 부착되어 있다. 그가 제시한 의자는 ‘나무나 철 등 단단한 물질로 만들어져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가구’라고 정의되는 어떤 물건이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중 무엇이 진정한 의자일까? 나무로 만들어 진 중앙의 의자는 언제든지 폐기 처분될 수 있다. 그러나 의자의 정의인 개념은 지속적이다. 코수스의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가 “의자란 무엇인가? 의자를 어떻게 재현할 것인가? 미술이란 무엇인가? 재현이란 무엇인가?”등의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 할 수 있다.
플라톤 이래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구의 철학은 존재론적인 물음이 두드러진 면이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현상적으로 존재하는 개체들은 절대적 실재에 대한 모방이기 때문에 진정한 실재가 아니다. 우리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각각의 고양이는 진정한 단 한 마리의 고양이의 모방이라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의 이상적 존재론은 현대에 와서 역전된다. 바로 개체들의 속성이 진정한 실재라는 것이다.
조셉 코수스의 이 작업도 그리스 이래 참으로 오래된 문제에 대해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고 있다. 이를테면, 기표인 의자와 그 의자에 대한 개념인 기의를 나란히 우리 눈앞에 제시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의자에 대한 의미 분석’을 하나의 작품으로 제시한 것이다.
조셉 코수스는 미국 오하이오 톨레도 태생으로 디자인학교와 미술학교에서 수학하고, 뉴욕에서 인류학과 철학까지 전공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단지 특정 영역의 예술가가 아니라 비평가와 이론가로서 언어, 논리, 과학적 사고를 아우르는 종합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예술관을 갖고 있었다. 결국 코수스의 <하나와 세 개의 의자>에서 의자의 사전적 의미와 사진, 그리고 오브제는 토탈러지, 즉 동어 반복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한 매체에 지나지 않는다. 즉 작가가 가진 예술에 대한 개념이 형태로 다시 반복되어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형식적 완성체’ 가 아닌 제목 속에서 드러나는 토탈러지 속에 숨겨진 아이디어 속에 그 핵심이 있는 것이다.
<하나와 세 개의 의자>의 전시가 끝나자 이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은 이것을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고심하다 미술관의 논리에 따라 의자는 디자인과에, 의자사진은 사진과에, 그리고 의자의 사전적 정의인 복사물은 도서관에 각각 보관했다고 한다. 즉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존제할 수 없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개념미술의 속성을 입증한 셈이다.
조셉 코수스의 작품 <하나와 세 개의 의자>를 바탕으로 모더니즘 형식주의 비평단계인 펠드먼의 비평단계에 적용할 경우 다음과 같은 한계점이 나타난다.
첫째, 형식주의 미학을 바탕으로 하는 펠드먼의 비평단계로는 반 형식주의를 그 특징으로 하는 개념미술 작품을 제대로 감상학습 할 수 가없다. 기호나 문자등의 비 물질에 의한 표현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개념미술 작품에 펠드먼의 비평단계 중 특히 ‘분석’이라는 단계의 적용, 즉 조형요소와 조형원리의 관계를 이해하는 단계는 코수스의 작품 감상에 무의미한 것이 된다. 또 형식주의 미학을 도입함으로써 작품의 표면적 특징에만 주의하고 작품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 탐구를 경시하고 있다는 한계점이 있다.
둘째, 펠드먼의 단계적, 직선적 비평단계에서는 비평자가 작품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수가 없다는 점이다. 직선적이고 단계적인 비평방법은 의미 있는 토론을 촉진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토론을 억제하게 되며, 단계적 절차를 강요하는 가운데 교사는 학생의 반응을 제한 하거나 토론의 방향을 어느 한쪽으로 정해 버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기계적인 절차를 따라감으로써 학생들의 관심을 무시할 수도 있으며, 작품 중 특정한 한 측면만을 지나치게 강조, 훈련시켜 원치 않는 교리나 경직화를 조장할 수 있다. 따라서 의미분석을 하나의 작푸으로 제시한 코수스의 개념미술 작품의 감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셋째, 펠드먼의 비평방식은 감상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반응을 소홀히 여긴다는 점이 있다. 펠드먼의 비평방식은 말하기와 쓰기를 통해 해석하고 평가하는 활동이 주가 된다. 하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어떤 사람이 이미 이해하고 평가한 것을 학생에게 알리고 이해시키는 활동에지나지 않는다 의자에 대한 의미분석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여기는 코수스의 작품감상에는 감상자의 개인적 반응을 더욱 중시하기 때문에 펠드먼의 비평단계의 감상 수업의 적용에는 한계점이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게히건은 펠드먼의 미술 비평학습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감상학습에 ‘비평적 탐구’를 그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즉 펠드먼의 미술비평방식을 ‘비평적 담화’로 바라보고, 비평학습은 담화로서의 언어적 활동이 아니며 또한 선상구조로 진행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비판하였다. 탐색하고 발견하는데 미술감상의 초점을 두고 순환적 과정 속에서 미술의 비평 감상학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엿다.
하지만 감상학습에 있어 펠드먼의 ‘비평적 담화’와 게이건의 ‘비평적 탐구’를 두고 양자텍일 하는 식으로 어느 한쪽을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신 두 모델의 장점을 상호보안적인 입장에서 취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계획된 시간 내에서의 ‘교수-학습의 전개’라는 특수한 성격과 절차상으로 보아서 ‘비평적 담화’ 모델을 ‘과정’ 으로 하고, 그 과정에서 적용되는 비평학습의 방법적 측면에서는 게히건의 ‘비평적 탐구’ 모델과 방법을 도입, 적용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감상학습이 될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