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우공양>
음식인지 작품인지 헷갈린다. 먹어도 되는 건가. 작품에 누가 되는 거 아닌가. 우려와 식욕이 교차한다. 음식은 역시 개운하고 깊다. 그래도 속인이라서인지 뭔가 누락되어 있다는 느낌 또한 어쩔 수 없다. 섬세한 요리 손끝이 위로이자 숙제가 된다. 귀족 대접이 반가우면서 나는 이렇게 절대 못할 거 같다는 무력감이 드니 말이다.
1. 식당얼개
상호 : 발우공양
주소 : 서울시 종로구 우정국로 56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 5층
전화 : 02-733-2081
주요음식 : 사찰음식
2. 먹은날 : 2022.3.24.점심
선정식 1인 30,000원
3. 맛보기
제일 간단한 점심메뉴를 주문했는데도 음식의 성향이 어지간히 보인다. 음식의 한 정점이라는 느낌, 어떤 요리에서도 느껴진다. 단순한 채식을 넘어서서 채소와 곡물로 만든 작품 전시회에 참여하는 기분이다. 기가 죽어 작품에 함부로 손대기가 어려운 느낌이 마지막 찬까지 지속된다. 한식이 원래 채식 위주니 사찰음식이 한식의 지평 확대에 크게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다.
먹는 것이 공부하는 것같다. 음식의 사회적 의미, 음식에 관한 종교적 통제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이렇게 담백하고 부담없는 음식이 왜 보편화되지 않았는지도 의문을 가지면서. 먹으면서 생각하기를 하다가 음식은 음식인데, 너무 생각이 많으면 소화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도 생긴다.
자, 일단 먹는다. 생각하라고가 아닌 먹으라고 만든 음식이잖아.
더덕콩죽. 잘게 씹히는 노란콩 알갱이가 좋다. 간이 없어 물김치와 먹어야 한다. 먹는 법까지 낯설다.
두부쌈장. 3년 숙성된 간장과 함께 만든다. 깊고 개운한 쌈장. 아, 쌈장도 끝이 없구나.
두 코스가 지나고 이제 본식, 밥이다. 품새도 맛도 식감도 빠진 게 하나 없는 밥상이다. 배추 김치 양념은 홍시이고, 알타리 김치 양념은 보리이다. 아직 익지 않는 배추 김치에도 어떻게 하면 이런 발효의 맛이 들어가는지. 알타리는 예술처럼 살포시 익었다. 보리의 시원함을 제대로 담고서 말이다.
겨자 소스. 두 주인공은 당근배추말이이다. 파란배추잎은 밖을, 어리고 하얀 배추 줄기는 안을 담당하고 호응해 당근채무침을 감쌌다. 겨자 소스를 곁들이니 제3의 맛이다.
단 내가 만들어서 먹기는 어려울 듯. 누군가 만들어줘야 할 것같은 정성과 디자인 집합인 음식. 황후가 따로 있나. 먹으면서도 기가 죽는다. 이런 호사스런 음식 먹을 자격이 있나.
딸기 소스란다. 전호나물과 돈나물 샐러드다. 돈나물만 익숙한 나물, 전호나물은 울릉도에 가야 보는 건데, 향이 조금 약하긴 했다. 그래도 그 귀한 전호나물을 싱싱한 모습으로, 거기다 딸기소스로 만난다.
딸기소스, 딸기는 주인공이지, 조연으로 이렇게 변신한다는 것은 상상 못했다. 인식의 전환이다. 조연으로 주연을 너무 잘 살린다. 채식, 익숙한 식재료 낯설게 하지 수법같다.
봄나물들깨찜. 섬세한 들깨소스가 원추리, 방풍, 죽순을 담았다. 방풍과 죽순은 낯익은 것이어도 원추리를 음식으로 만나는 건 처음인 거 같다. 봄나물이 주제여서 다른 봄나물로 바뀔 수도 있다.
알고보면 원추리는 조선시대 때부터 무쳐먹은 식용기원이 오랜 식재료다. 위 사진 앞 부분 넙적한 나물이 원추리다. 넙적한 나물이라고 넘나물이라고도 하는데, 한자어로는 훤초이다. 원추리는 당태종 이세민이 모친을 위해 뜰에 가득 심었는데 이후 어머니의 뜰에 훤초를 심게 되어, 자당과 함께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르는 의미로 '훤당'이라는 말이 쓰이게 되었다.
지난 해 마른 잎이 새순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는 모습이 자식을 보호하는 어머니와 같다 하여 모애초라고 불리는 원추리꽃의 이미지와 당태종의 가족 애증관계 이미지와 결합한 것이 아닐까 싶다.
형제들을 살해하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당태종은 정관의 치라는 태평성대를 이끌었지만, 형제를 죽인 황제라는 부담은 떨치지 못했다. 그것이 선비족인 모친에 대한 효성으로 나타나고, 인간적인 면을 강조하려는 정치적인 노력이 훤당 설화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고 생각해본다.
하여튼 어머니와 효도의 이미지를 가진 원추리는 삶아 무치면 훌륭한 나물이 된다. 거기 방풍과 죽순이라는 진귀한 식재료와 만나 생소한 음식이 되었지만, 맛만은 훌륭한 음식이 되었다. 나물의 진화를 주도한 식품이 되었다.
버섯강정. 버섯으로 강정을 만들 수도 있구나. 또 학습한다. 오늘 음식 가운데 속인의 입맛에는 가장 풍성하게 여겨지는 고기를 닮은 듯한 식감을 내는 것이다 . 튀겨서 소스에 무쳐냈다. 고기처럼 쫄깃하고 탕수육처럼 부드러운 소스의 진한 맛이 식욕을 자극한다.
된장찌개. 인근 홍국사의 된장을 썼단다. 간단한 음식이 내력이 있다. 깔끔한 맛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거섶 버섯의 쫄깃함도 좋다.
알타리보리김치. 보리를 양념으로 썼다. 채 삭지 않은 보리 낱알이 눈으로도 혀로도 느껴진다. 국물에는 시원함으로 남았다. 제주도의 진한 보리열무김치 생각이 난다. 제주도청보리김치가 아주 신선한 귀족 김치가 되어 새로운 기운을 일으키는데, 이 작은 종지 김치에서도 그 기운이 느껴진다.
홍시김치. 고추가루 대신 홍시를 소스로 썼다. 김치의 개념 파괴이다. 홍시와도 만나서 김치가 되는구나. 이렇게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시원한 맛을 낼 수 있구나. 생김치 맛도 멋있구나. 놀라운 음식이다.
가죽소스. 가죽으로 만들었다는데 가죽나물이 어떻게 이런 소스로 변신할 수 있는지, 신비롭기만 하다. 나물 비빔밥에 넣으니 고추장보다 더 깊게 야무진 맛과 간을 낸다.
나물무침. 원추리 미나리 취나물이 섞였다. 조합도 실력이다. 원추리가 다시 보인다. 이렇게 폭넓게 활용되는 식재료에 그 동안 너무 무심했다.
치자밥. 강황밥만큼 고운 노란색이다. 밥이 화려해지니 맛도 화려해지는 것같다. 세가지 나물에 가죽소스에 호사의 극치이다. 사찰음식이 이렇게 화려할 거라고는 예상 못했다. 맛, 색, 식재료와 그 조합 모두모두 화려하다. 향유하는 사람이 화려하지 못해 어울릴지 모르겠다.
마지막 후식. 쑥차와 생강지짐이다. 화전은 지져도 생강지짐은 생각못했다. 생강가루에 찹쌀가루를 넣어 부친 것이다. 생강을 다지면, 찹쌀가루를 좀더 굵게 내면 식감을 더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러나 지짐이 위에 끼얹은 오미자민들레 조청은 생각도 만들기도 언감생심이다. 어려운 음식이다. 혀끝에서는 이렇게 녹는데, 이 안에 들어간 수많은 시도와 노력은 헤아릴 길이 없다. 너무 정교해 일상과의 거리가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이렇게 맛볼 수 있는 행복만으로도 충분한 거 같다.
사찰음식 공부를 할 요량으로 메뉴판을 다 찍어보았다. 이 음식, 이 조리법만 탐구하고 숙지해도 집밥의 수준이 엄청 높아질 거 같다.
실내는 룸 형식이고 방마다 산 이름이 붙어 있다. 낯선 산 이름이 더 많다.
4. 먹은 후
숙제를 여러가지 안고 온다.
1) 집밥에서 적극 활용해야
채소반찬에서 적극 활용해야. 일상식에서도 활용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식재료의 확장, 구하기 쉬운 식재료간의 새로운 조합, 전통 식재료를 활용한 소스 등등 한이 없다.
그런데 어려운 건 손이 너무 많이 가는 것, 일부는 식재료 구입이 만만치 않은 것 등등이다. 젓갈이나 고춧가루 및 오신채 도움 없이 어찌 이런 음식을 만들고 보편화시키겠는가.
그래도 산이 많은데 불가능한 일일까. 산이 품은 수많은 산나물은 산과 함께 사는 우리의 것이다. 산을 품은 사찰에서는 보다 활용이 용이해서 이렇게 예술을 만들었겠지만 흉내는 낼 수 있지 않을까.
2) 꼭 채식이어야 하는가
인간은 원래 지구상의 생물 중에 드물게 채식과 육식을 다하는 동물,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가. 농경사회보다 수렵사회가 더 초기의 모습이다. 거의 자연과 일치되었던 시대는 오히려 수렵사회다.
자연으로의 회귀나 채식은 모두 자연을 존중하는 것이 아닌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 그 자연스러운, 혹은 시원적인 삶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살생을 금하라는 불교의 계율은 동물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식물은 생물 아닌가. 거친 생각이지만 채식 앞에 엉뚱한 의문이 생겨나기도 한다.
3) 이렇게 화려한 음식이 일상화, 보편화 될 수 있을까
먹는 사람은 기분이 좋지만, 만드는 사람은 매우 오랫동안 힘들었을 거 같다. 보기 어려운 식재료도 많다. 가격이 올라가면 식재료 희귀성은 더 높아진다.
이런 음식을 먹으려면 누군가의 시간을 엄청 써야 하고, 식재료를 위한 많은 노력이 있어야 할 거 같다. 채색으로 자연보호도 좋고, 건강도 좋지만, 전제되어야 할 누군가의 노력값은 자연보호와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음식 마련에 시간과 공이 덜 들어가야 모두의 삶이 자연과 거리가 더 가까워질 거 같다.
음식 마련하는 전문가를 따로 둔다면 그것은 매식이나 고용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둘 다 많은 금전을 필요로 한다. 다른 말로는 사회적 위계관계가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반 자연적인 일이 아닐까.
간단한 음식은 1)에서와 같이 보급이 필요하고 가능할 터이지만, 너무 고급화된 음식은 대중과의 거리로 또 하나의 문제와 의문을 낳을 수 있다.
그래도 우선은 메뉴라도 눈여겨 보고 이곳에서 진행되는 사찰음식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져보고 접근할 만한 것이 있는지 찾아보자. 우선은 예술같은 음식을 개발해서 접할 기회를 만들어 준 모든 분들께 감사한다. 음식 설명을 차분하게 해준 직원분에게도 감사한다. 외국인이 많이 찾는 집이라니 한국음식 소개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선한 음식 멀리 퍼지기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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