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길 : 만세교 길(경흥대로의 중요 경유지, 역사와 마주하는 길)
“만세교萬世橋는 도로고를 비롯하여 대동지지, 증보문헌비고 등에서 북관(경흥)대로 주요 경유지로 기록되어 있으며 태조 이성계가 함흥을 오갈 때 이 지역 다리를 지났다고 하여 만세다리 혹은 만세교”라고 하였다. (경기 옛길 안내 책자) 한다.
하지만 임금이 물을 마시면 그 물은 여정이 되고, 물가에서 하룻밤을 지내면 왕숙천이 되는 것처럼 관을 높이고 민을 비하하는 청산되어야할 왕조시대의 유물이기에 만세다리라는 명칭에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일까? 만세교는 이성계가 함흥을 오고갈 때 다리를 건넜기 때문에 이름한 것이 아니라 3, 1운동 당시 이 고장 사람들이 독립 만세를 불렀기 때문에 독립 만세를 기념하여 만세교로 명명하였다는 설화가 가슴에 와닿았다.
민중의 삶이 역사의 주체라는 생각으로 만세교길을 걸어간다. 출발지는 신북면 행정복지센터이다. 예전에는 동사무소라고 불렀지만 백성에게 더욱 깊은 봉사를 실천하여 보다 나은 삶을 뒷받침하고자 ‘복지센터’라고 개명한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센타‘라는 명칭에서 눈살이 찌푸려진다. 외국어는 우리말로 고쳐써야 할 진데 우리 나라의 관청을 우리말 아닌 이국어를 써야 하겠는가?
출발부터 시비를 안고 신북 교차로에 이르러 건널목을 건넜다. 길 찾기 주의 지점이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의 건널목을 건너가면 경흥길 6-2코스 가는 길이 되고, 좌측으로(경복대학교 방향) 진행하면 6-1코스 가는 길이다.
전봇대에는 6-2코스로 가는 표지가 선명하게 부착되어 있지만, 좌측으로 진행을 알리는 표지기는 눈에 띄지 않아 6-2코스로 가기에 십상이다. 시작부터 신중을 기하여야 했다.
한내 요양 병원에 이르러 길 찾기에 도움을 준 박스를 수거하는 노인어른께 감사의 말을 전하니 어디 가시느냐고 물어 운천을 간다고 하였더니 이 추운 날씨에 어떻게 걸어갈 수 있느냐고 걱정을 하신다.
길을 걷는것이 삶의 취미라고 말씀드렸더니 웃으시며 아무튼 조심하라는 인사까지 한다. 오늘 기온은 매우 낮아 체감 온도가 영하 20도가 되는 매우 추운 날씨이다.
집에서 쉬고 있어도 추운 날에 자동차가 주행하는 도로를 위험을 감수하며 손수레를 끌고 박수를 수거하러 이곳저곳을 다니시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자신보다 타인을 배려하는 노인장의 따뜻한 온정을 대하니 가슴이 따뜻해 진다..
노인장의 선한 마음에 집중한 탓일까? 신북교를 건너고 있였다. 지도는 다리를을 건너지 않고 천변을 따라 걷도록 되어 있지 않은가! 오던 길을 되돌아가 포천천 득방에 이르니 테크길을 만들어 놓았다. 다시 만난 포천천을 왼쪽에 두고 걸어간다.
흐르는 물소리는 도란도란 속삭이는 연인의 숨결같아 가슴에 파고드는 차가운 바람이 오히려 시원하게 느껴지고 저 먼발치에서 올망졸망 솟아있는 아름을 알지 못하는 고만고만 산들이 힘차게 뻗어 힘을 북돋워 준다.
영흥길 4길인 파발막 길을 걸을 때 만났던 포천천을 오늘 또다시 만난 것이다. 어찌 반갑지 않을 수 있으랴? 그때에는 태양 빛이 강렬한 7월의 여름날에 걸었고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겨울에 걷고 있다.
여름과 겨울, 가장 힘들때 걸어가고 있으니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길이되어 걸음걸음 가벼워지며 흥이 인다. 무심코 냇물에 묻는다. “냇물아, 냇물아 어디로 가니 “냇물이 말한다. ”강물따라 가고 싶어 강으로 간다 “
냇물은 가는 곳이 정해져 있다. 그리하여 그곳을 향하여 부지런히 쉼 없이 가고 있지만, 나의 젊은 시절은 어찌하였나? 삶의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가? 그리고 그 길을 향하여 부지런히 갈고 닦으며 실천하였던가? 나이가 들어 지난날을 그려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눈물과 기쁨이 교차하는 걸음 속에 마침 반대 방향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있어 모두에게 물어본다. 천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선뜻 대답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하나같이 ’모른다‘ 였다.
내가 사는 곳의 명소라면 명칭 조차는 알 수있을텐데 왜 모를까? 그 지역에 관심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몸이 아파 건강을 위해 걷기 때문에 먼서거 귀찮아서일까? 다소 충격에 쌓여 스스로 대답해 본다.
” 이 천은 포천천입니다. 예전에는 산내천으로 불렀습니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무봉리에서 발원하여 영평천을 거쳐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으로 포천 지역의 지명을 딴 이름입니다.
포천의 고구려 때 이름은 ‘물홀’로 예로부터 물이 많은 고장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포천이라는 한자 지명 역시 같은 맥락에서 붙여진 것이라고 전합니다. “
윤중 아파트에 이르러 냇가를 건넌다. 징검다리가 놓여 있다. 사각형의 돌덩이가 묵직하게 놓여 있지만, 보폭이 맞지 않아 두 발을 모아 걷는다. 차가운 물소리가 어찌하여 시원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문득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라는 소설이 떠 오르지만 그런 낭만도 추억도 없다. 그런데 어찌하여 징검다리에서 소나기란 소설이 떠올랐을까? 그런 시절로 돌아가고 싶기 때문일까? 아니면 아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러함인가?
징검다리를 건너서 포천천의 둑길로 진행하여야 할 것으로 여겼지만 포천천에 합류하는 실개천을 건널 수 있는 징검다리도 없고 넓적한 돌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어 길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도로 위로 올라섰다. 아스팔트 길이 있었지만, 경기 옛길을 알리는 어떠한 표지판도 없다.
하는 수없이 다시 내려와서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표지기가 길에 떨어져 있었고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돌들은 여름 장마 때 패인 것 같았고 실개천의 건너편에는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경기옛길로 미루어 진행하였더니 표지기가 펄럭였다. 하루빨리 길 정비가 되어야 할 곳이었다.
둑길에서 천변을 바라보니 두루미인지. 백로인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날개를 퍼덕이고 있다. 고요함의 정적을 발걸음 소리가 깨트리며 옛시조를 떠 올린다.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마라
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우나니
청강(淸江)에 고히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신평교를 지나니 설립때부터 문제가 있었고 시험가동 중에 폭발사고가 있었다는 포천 석탄 화력발전소가 있었다. 장자 산업단지를 지나 한바위교에 이른다. 이곳에서 종착지인 영중 농협까지 8.3km이다.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방향을 바꾸는데 바람이 세차게 분다. 칼바람이었다. 손에 추위를 느끼기 시작한다. 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아랫목에 손을 들여놓은 것 같았다. 정면으로는 길벗이자 지킴이인 둥글둥글한 산들이 솟아있다.
북만세교에 이르러 다리를 건너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전환하여 43번 국도인 호국로상의 만세 검문소 버스 정류장에 이르렀다. 호국로를 따라 만세1리길을 걸어갈때 다리 앞에 포천시 영중면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조선 후기 4대 문장가로 꼽혔던 이서구 선생께서 만세교 근처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을 때 어떤 젊은 선비가 강을 건너가게 됐다. 그는 체면에 발을 걷을 수 없어 건네 줄것을 부탁했고, 이서구는 청을 들어줬다.
마침 해가 저물어 젊은이는 양문리에서 유숙하게 됐고, 자기를 업었던 노인이 조정 대신을 지낸 것을 알고 백배 사죄했다. 이서구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허물을 빨리 고치면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충고를 했다고 한다.(인터넷에서 퍼옴)
만세교에 서린 아름다운 설화를 듣고 다리를 건느니 직진 방향은 신철원, 운천으로 가는 방향이고 우측은 김화, 일동을 알리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신북면과 영중면의 경계지역으로 길 찾기에 주의를 요했다.
만세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느면 경기 석재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또다시 횡단보도를 건너면 신북면을 알리는 도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 영중 놓협까지 6.3km이다. 이곳에서 소로를 통해 진행하면 좌, 우측으로 굴다리가 있고 우측의 굴다리를 통과하여 호국로를 다시 만났다.
호국로인 43국도는 경흥대로 원형 노선과 가깝기에 옛 선인들의 삶의 자취가 서려 있어 자동차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질주하는 자동차와 함께 걸어도 자연 친화적인 길이 아니라고 불평을 하지 않을 텐데 경흥길은 곧바로 농로로 접어들었다가 호국로상의 금주3리 버스정류장에 이르렀다.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 싫지 않았다. 만남은 다시 헤어질 것을 염려하지만 헤어지면 다시 만날 기쁨을 안고 있기에 기대와 설렘으로 걸어간다. 길을 걷는것과 등산은 연인이요, 친구이다.
그러니 길을 걷는 것은 먼 곳에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것과 다름없으니 길을 걸어가는 것이 얼마나 즐겁겠는가? 금주 삼거리에서 호국로를 걸어갈떼 포천 미륵사가 있었다.
호국로 바로 옆에 있어 들어가 참배하고 싶었지만 대한 불교 조계종 소속의 사찰이 아니기에 두 손을 모아 禮만 표하고 지나친다. 경흥길은 호국로에서 소로의 포장도로를 따라 걸어간다.
예전의 호국로였다. 굽어 돌아가는 도로였기에 직선으로 도로를 새로히 조성하여 페허가 된 길이었지만 도로 양변에 심어 놓은 가로수는 그대로 있었고 굽은 듯이 돌아가는 길은 운치가 있어 폐쇄된 도로였지만 경흥길로 되살아 난 것이다.
옛 국도 가까이 터전을 잡았던 마을 사람들은 신작로가 개설되어 도로의 소음에서 벗어날 수 있어 좋아을 것이고 그 길이 경흥길이 되어 사람들이 끊어지지 않고 찾아드는 곳이 되어 마을은 오히려 번성하였을 것이다.
옛 호국로에서 또다시 새로이 건설된 43번 국도인 호국로와 상봉하고 횡단보도를 건너니 거사1리 백로주 마을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마을 유래 안내판을 세워 놓고 백로주를 알리는 표지석을 세워 놓았고 마을의 지킴이 천하 대장군, 지하여장군이 나란히 서서 길손을 맞이하고 있었다.
“백로주는 영평 8경의 하나로 포천천 한가운데 섬바위를 중심으로 여러개의 바위가 주위의 소나무, 백사장, 백로 등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은 자연 하천으로서 향기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벡로주는 이백李白이 지은 시 구절 중 <一水中分白鷺洲 >와 유사한 지명이라고 생각한 `관찰사 동강 선생이 300년 전에 서돌 바위에 白鷺洲라고 크게 새겨 놓았는데 훼손되어가는 글씨를 안타깝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이를 탁본하여 동네 입구에 세워 놓았다”라고 마을 유래 안내판은 설명하여 주었다.
버스 정류장 바로 뒤편에는 조그만 정원이 조성되어 있어 쉬어가기 적당한 곳이었지만 겨울철의 찬바람이 생생 불었다. 하지만 허기를 면하고저 간식용으로 준비한 빵과 찐 달걀을 먹었다. 종착지로 향하였다.
백로주교를 건너며 물가에 솟아있는 바위를 바라다본다. 내가 높은 곳인 다리 위에서 다리 아래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는데 어찌하여 낮은 곳에 있는 바위는 하늘 높이 솟아 있는 것같고 나는 왜소하게 느껴지는 것일까?
백로주교를 건너니 포천천 양쪽으로 좌, 우측의 길이 있었지만 경흥길은 좌도 우도, 아닌 가운데 길인 백로주 길로 진행되었다. 대규모 비닐 하우스 단지를 지나 계속되던 백로주 길에서 인삼 재배밭이 있는 금화봉길인 우측으로 진입하여야 했다.
야트마한 산기슭에는 저택이 자리 잡고 포장도로에는 자동차 통행이 거의 없는 아늑하고 조용한 길이 계속된다. 산과 물이 조화를 이룬 곳에 자리 잡은 저 주택의 소유자는 우리에 앞서 전원주택이 무엇인지 알았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저 앞만 보고 땀 흘리며 하루하루를 생활할 때 한발 양보하듯 도시의 생활을 버리고 산수가 조화를 이룬 이곳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들이 자동차를 타고 시내로 나갈 때 다니는 길은 명품길인 경흥길이 되었으니 또한 얼마나 기뻐하였을까?
하지만 그들의 전원주택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비록 괴롭고 힘들었지만 지나온 나의 삶의 자취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할 것이다. 내것을 버리고 남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은 나의 삶에는 없다.
아늑한 길에서 거사교를 건너 다시 포천천 둑길을 걸어갈 때 신북 행정 복지 센터에서 포천천변으로 진입하면서 가슴을 뛰게 하였던 불무산이 가까이 다가왔다. 가슴이 울렁인다. 나만의 짝사랑일까?
불무산을 바라보며 걷기 시작하여 불무산을 바라보며 오늘의 걷기를 마치니 그 흥이 배가 된다. 뻐꾹천교에 이르러 경흥길은 우측으로 방향을 전환하며 포천천과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뻐꾹 1교를 건너 영중 놓협에 이르러 오늘의 걷기를 마치었다. 버스 정류장에 이르러 버스 도착 전광판을 살펴보니 1386번 버스가 진입함을 알리고 있었다. 이 버스를 놓치면 앞으로 1시간을 기다려야하기 때문에 종착지인 종착지의 풍광을 담지 못하고 버스에 탑승하였다. 하지만 기뻣다.
● 일 시 : 2022년 12월1일 목요일 맑음
● 동 선
- 10시10분 : 신북면 행정 복지 센타
- 10시50분 : 윤중 아파트
- 11시52분 : 만세교 1리
- 12시36분 : 백로주(거사1리)
- 13시19분 : 거사교
- 14시00분 : 영중 농협
● 총거리 및 소요시간
◆ 총거리 : 11.8km.
◆ 소요시간 : 3시간5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