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란우데에서 기차를타고 몽골수도 울란바타르로 갔다.
아침 7시24분 기차로 출발하여 울란바타르 역에는 다음날 05시경(울란우데시간 06시)에 도착하게되니
거의22시간30분이 소요된다.
울란우데 - 울란바타르행 기차는 매일 있지만 시간은 조금씩 다르다.
특히 주의할 점은 티켓에 찍히는 시간은 출발지인 울란우데시간이 아니라 항상 모스크바시간이 적힌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07시24분 울란우데에서 출발하는 기차의 티켓에는 02시24분 출발이라고 찍힌다.
기차비는 좌석에따라 다양한데 내가탓던 쿠페(칸막이가 있는 침대칸)는 3200루불을 지불했으니 한화로10만원가량한다.
울란우데 기차역은 풀랫폼으로 가려면 바깥으로 나가서 다시 육교를 건너야하기에 처음오는 사람은 찾기가 조금 헷갈린다.
사람들은 가격도 싸고(기차의 30%가격) 또 빠르다면서(12시간) 버스를 권했지만 나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싶어서 기차를탓다.
참고로 버스는 아침7시반경에 출발하면 저녁에 도착한다.
(기차내부는 이처럼 아래에 두사람 위에 두사람이 잘 수 있도록 되어있고 커피나 차 또 컵라면등을 판매한다)
기차에 올랐더니 몽골국립전통악단에서 여러악기를 다루는 아마르가 타고있었다.
울란우데음악학교와 바이칼앙상블에서 돈을 더 준다기에 4개월간 근무했는데 수입이 생각처럼 많지않다면서 돌아간다고하였다.
하여간 돈을 많이 벌었는지 자신의 악기(클라리넷. 섹스폰, 뿔피리)외에 각종 선물꾸러미가 널려있었다.
아마르는 한국 남양주에있는 몽골문화촌에서 10개월 근무한 탓인지 한국말도 몇마디 하였다.
기차는 천천히 달렸다.
울란우데에서 6시간 반 가량 달린후에(약 200킬로) 러시아 국경도시 나우쉬키에 도착했다.
역무원이 오더니 여기서 5시간 가량 쉬고간다면서 원하면 바깥으로 나가서 구경하고 화장실에 다녀오란다.
기차가 쉴때는 화장실을 잠그기에 역에있는 화장실을 돈을 지불하고 사용해야한다.
아마르는 전날 제자들과 송별파티한다고 술을 많이 마셨는지 속이 불편하다고 하였다.
역 바깥의 마을로 걸어가다보니 조그마한 가계가 나오기에 들어갔더니 닭다리도 팔고, 컵라면도 팔았다.
아마르는 술때문에 힘들어 하면서 또 맥주와 계란을 시켰고 나는 닭다리와 컵라면을 시켜서 배불리 먹었다.
운동삼아 마을을 걸었는데 동네는 사람구경하기 힘들만큼 조용했고 불어오는 바람때문에 조금 추웠다.
기차로 돌아왔더니 시간이 많이 남아서 또 다시 역주변을 산책했다.
오후 5시에 여권검사를 한다고했지만 5시반이 넘어서야 검문이 시작되었다.
러시아 경찰같은 국경수비대사람들이 개까지 끌고다니면서 검사하엿다.
처음에는 짐검사를 다음에는 여권을 보면서 불법물건이 있는지 물었다.
조금 있으니 한 무리의 학생들이 들어닥쳤다.
어디서오는 길이냐고 물었더니 러시아 이르쿠츠크대학에서 유학하는 몽골학생인데 기차비를 아끼려고 갈아탄단다.
이르쿠츠크에서 갈아타지않고 울란바타르로 가는것보다 이렇게 갈아타면 기차비가 반이상 절약된단다.
슈가르라는 20살 청년과 18세인 여동생이 우리칸에 탓다.
슈가르는 러시아가 좋다면서 또 이르쿠츠크대학의 장점을 나열하였다.
학비가 일년에 260만원 이상인데 가난한 몽골에서 어떻게 두 남매를 공부시키는지 그 부모님이 대단하다.
러시아에는 몽골과 중국학생이 많은데 그 부모들이 월급외에 얼마나 많은 돈을 과외로? 버는지는 미스테리다.
슈가르는 한국도 가봤다면서 한국음식과 사람들이 친절하다면서 한국자랑을 늘어놓아서 기분이 좋았다.
실지로 몽골에는 한국식당이 많은데 한국 식당을 찾는 사람들중에 몽골사람들이 휠씬 많이 있다.
몽골의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서 일하거나 공부를 하면서 한국음식에 맛을 들였고 몽골로 돌아와서도 한국음식을 찾는 것이다.
슈가르는 같이온 여동생외에도 집에 4명의 동생들이 더 있다면서 선물을 엄청 사가지고왔다.
어떻게 이많은 짐을 가지고 기차를 탔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짐은 우리칸을 가득 메웠다.
40kg 은 되어보이는 큰짐외에 15kg가방2개 바나나 한상자, 손사방2개 심지어는 동생들준다고 눈썰매까지 사가지고갔다.
바나나는 몽골에도 있을텐데 굳이 러시아에서 사가지고 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맛이 다르단다.
몽골의 많은 과일은 중국에서 수입되는데 중국과일은 맛이 없단다.
슈가르 남매와 이야기를 하는동안(40분가량후) 기차는 몽골국경인 수흐바타르역에 도착하였다.
기차는 도착했지만 내릴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몽골국경 수비대가 짐을 검사하기시작했다.
슈가르남매의 짐은 물론이고 아마르가 러시아에서 사가지고온 소세지와 식료품까지 포장을 뜯어라고 하였다.
짐검사를 마치자 이번에는 여권을 검사하는 2사람이 나타났다.
사람을 한사람씩 일으켜세우면서 여권사진과 대조를 하고있었다.
예전 20년전에 헝가리에서 여권을 검사하던 건방진 헝가리 국경수비대가 생각이났다.
참 어른들을보고 일어서라, 똑바로쳐다보라면서 사진과 대조하는 폼이 공산주의 잔재같아 불쾌했다.
침대에 누워있는데 내차례가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내려와서 일어서라고 하길래 "내가 아이냐? 네가 고개를 숙여서 보면되지 왜 내가 일어서야 하느냐고 했더니
나를 쳐다보더니 오케이 하면서 여권을 가지고 돌아갔다.
공산주의는 관료가 우선이고 서민들의 불편은 조금도 고려하지 않는다. 특히 경찰들은 ...
내가 경찰에게 일어서지않고 도리어 경찰보고 고개를 숙여서 내얼굴이 맞는지 보라고 한것은 이것이 부당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많은 돈을 지불하고 기차를 탔으며, 또 정당한 돈을 주고 몽골비자를 받았으며 또 여행을하기 위하여왔다.
이런 귀한 손님들에게 더구나 어른들을 "일어켜세워서 죄인 신문하듯이 검사하는것"은 부당한 것이기에 고쳐주려는 것이다.
한참있으니까 조회를 마친 경찰이 여권을 가지고 오더니 한국말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면서 재롱을 떨고는 떠나갔다.
여권검사를 마치자 이번에는 전역에서 탓던 한무리의 몽골학생들이 우루루 내렸다.
아니 왜 여기서 다내리는지 아마르에게 물었더니 몽골기차로 다시 갈아탄단다. - 그럼 기차비가 러시아보다 반 이하로 싸단다.
울란우데에서 기차표를 끊을때와 울란바타르에서 끊을때는 기차비가 3분의1정도로 싸단다.
그들이 나가고나자 기차는 썰렁하게 비었다.
그래서인지 러시아기차는 한칸만 남기고 모두 떠나가 버렸다.
여기서 두시간을 쉰다고 하기에 역밖으로 나갔다.
수흐바타르 시내로 들어가보았다 / 황량했다.
마을은 우리나라 70년대 말처럼 썰렁했지만 연말이라고 식당들에서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마을을 돌아보니 길은 윗처럼 포장이 되어있지않았다.
5월이오면 온 천지가 진흙바닦으로 덮힐것을 생각하니 예전 볼고그라드에서의 봄 분위기가 생각났다.
지금이야 눈으로 덮여있고 얼어있으니 깔끔하지만 봄이오면 미끄러워서 길을 다니기가 쉽지않을 것이다.
마을을 돌아서 역으로 갔더니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혹시 싶어서 300km가량 떨어진 울란바타르까지 기차비(몽골기차)를 물었더니 고작 한국돈 6천원이었고 침대칸역시 만원가량 ?
이러니까 몽골학생들이 모두 몽골국경에서 몽골기차로 갈아탄 것이었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러시아인들과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었고 더많은 돈을 지불하면서 갔다.
울란바타르 중심광장에있는 국회의사당이다.
정면에 징기스칸동상이 있고 매시간마다 임무교대식을 할때는 사람들이 몰린다.
이근처에 오페라극장과 대학 또 연극극장등이 즐비해있다.
기온은 보통 영하15도 ~ 20도인데 울란우데 보다는 따스햇다.
국립 오페라극장은 일본사람들이 지은 것이란다.
몽골을 다니다보면 온통 일본자동차로 물들어있다.
일본은 한국보다도 훨씬 먼저 몽골에 들어와서 몽골을 도와주면서 경제를 뒤흔들고있다.
거리의 70%이상을 점령한 자동차는 물론이고 많은 자원 채굴권까지 독차지하였다.
이유는 모르나 한국재품은 몽골로 바로 수출하기도 힘든 품목이 많을만큼 몽골에서는 일본에 뒤쳐져있다.
우리와 몽골은 여러면에서 비슷하고 또 동질감이 많은데 왜 무역에서 일본보다 조건이 나쁜지 아쉽다.
지금이라도 문화적인 지원을통하여 몽골과 친분을 맺고 몽골의 우수인재를 한국으로 초대하여 무료로 공부시켜서 지한파를 만들어야한다. 몽골사람들이 한국을 좋아하는데 왜 경재는 일본에 밀리는지 아쉬울 뿐이다.
몽골에 있는 수많은 한국식당이 잘 된다는것은 이들이 한국을 좋아한다는 증거다.
이들에게 한국연속극을 보여주듯이 지금은 한국의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면서 한국과 친구로 만들어야하겠다.
친구가되려면 먼저 베풀어야한다. 아무조건없이 몽골을 도우다보면 머지않아 친한 친구가 될것이다.
국립 오페라극장 극장장 또 예술 총감독과 만나서 차기 공연에 대하여 상의하였다.
올해는 몽골국립 오페라.발레극장에서 지휘를 할 것이다.
가장 좋은 비즈니스는 친구를 통하는 것인데 , 먼저 예술을 통하여 친구가 되어야하겠다.
첫댓글 몇년전에 몽골사람들을 지원하는 단체장에 의하면, 몽골 전체 수입의 1/10이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사람들이 송금화는 것이라고 하더군요.
우리나라가 13대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아직 먼 것 같습니다. 비단 몽골뿐만 아니라 동남아국가들 역시 우리의 투자는 영세한 가공업이 주류를 이루고 그 나라에 지원하는 것은 별로 없더군요.
이러하니 정치 경제계보다는 문화계에서 교류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맞습니다.
한국기업은 스폰을할때 당장 효과를기대하고 기업로고를대문짝만하게
홍보하길 원하는데 어떤선진국은 그냥 조그마하게
한줄적고 마음으로 전달하더군요.
그런데 효과는 후자가 크더군요.
한국이 몽골에서 성공하려면
먼저 몽골사람들에게 품위있게 행동하고
진심으로 도와줄때 몽골은 큰 사업건을 우리에게
던져줄것입니다.
예술교류를통하여 친구가된 후에
믿음을 바탕으로 사업은 가능할것입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지휘자님의 글은 눈앞에 보듯이 생생해서 마치 제가 그곳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군요. 지휘자님의 말씀에 공감하나 몽골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처지가 통탄스럽습니다. 모쪼록 건강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항상 겸손하시고
남을배려하시는마음앞에
제가 많이 배웁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울란우데로 떠나던날 울란바타르에 오셨군요!
사전에 일정을 조율했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집사람과 28일 저녁 열차를 타고 29일 새벽에 울란우데에 도착예정입니다.
점심이나 저녁 시간에 같이 식사나 하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