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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레이스 알렌 박사와 광혜원(제중원)-1885년 4월 14일 개원(고종실록) |
광혜원 개원일에 대해서는 4월9일, 10일, 12일 14일 등 여러 설이 있으나, <日省錄>과 <高宗實錄>에 의하면 국왕의 결재가 이루진 날이 “4월14일”로 되어 있으며, 알렌박사도 1885년 4월 14일을 공식 개원일로 여겨, 첫 6개월 기간(4-9월)의 서울지역 중심으로 건강진료보고서를 작성하였다. A4용지 15쪽 분량의 보고서 제목은 “서울(한국)의 건강 보고서, 1885.4-9월”<Report on the Health of Seoul(COREA). April-Sep, 1885>이였다. 알렌박사도 “일기”(4월10일자)에서 “병원은 어제 개원했다”(The Hospital opened yesterday)고 했으나, 공식개원일은 고종황제께서 결재한 날인 4월14일로 보고 있다.
이는 알렌가 첫 건강 보고서의 6개월 진료기간을 “4월14일부터 10월14일까지“라 표기하여 4월14일을 개원일로 여기고 있으며, 진료한 7,234명의 환자를 분석하고, 211개 질병 명으로 분류하여 상세한 진료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음을 보아 알 수 있다. 감리교 선교사 윌리암 스크랜튼 박사(5월)와 장로교 선교사 죤 헤론 박사(6-10월)가 협진 하였다.
▲ 광혜원(제중원P에서 협진한, 윌리암 스크랜튼 박사와 죤 헤론 박사 |
광혜원의 병원운영 일체경비는 한국정부에서 부담하였으며,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 外衙門)의 관리들이 사무를 담당하는 “정부병원(政府病院)이였다. 알렌의 영문 보고서에도 "Korean Government Hospital, Seoul“이라 했다. 광혜원은 개원(4.14.) 20일 후인 4월23일에 “제중원”(濟衆院)으로 개정되었다.
알렌박사의 제중원 의료보고서는 한국의 기후와 생활환경 및 습관이 건강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있는가를 분석하고 있다. 알렌박사는 한국인들의 의식주생활(衣食住生活)을 설명하면서 쇠고기 사용의 가장 큰 장애는 병든 소를 식품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그 고기를 먹는 사람들이 죽어간다고 하였다.
또한 도시의 배수가 좋지 않아 하수도 물이 우물에 흡수되어 질병의 원인이 됨을 지적하였다. 한국의 마루와 벽, 지붕사이에 습기로 인하여 곰팡이가 끼어서 설사와 만성 이질 환자들이 발생케 된다고 하였고, 추위로 인하여 폐결핵에 걸리기 쉽다고 분석하였다. 온돌방 때문에 직접 발생되는 치질과 농양도 지적하였다.
또한 목욕하지 않는 습관이 질병의 요인이 되고, 머리의 상투와 망건으로 머리를 조이는 것이 두통의 원인이 된다 하였다. 귀에서 턱과 귀로 이어지는 모자의 끈에서 임파선의 질병으로 연주창이 생긴다고 지적하였다.
여성은 격리되어 있고 바깥에서 거의 운동할 수 없으므로 노이로제, 성병, 류마치즘 등으로 고통을 받고 있으며, 맹인들은 주로 백내장이 원인이고 가끔 천연두로 눈이 벌기도 하는데 이는 치료받아 나을 수 있다고 하였다. 정신 이상자와 나환자들은 거지로 길거리를 방황하며, 간질은 놀랄 정도로 많아 결혼에 방해 되지도 않는다고 했다.
식습관은 많은 양을 급히 먹기 때문에 소화불량, 복통 등 위장병이 많다고 했다. 특히 성교(性交)는 너무 많이 행해지고 조혼(早婚)과 일부다처(一夫多妻)로 인하여 매독, 임질, 연성하감, 만성요도염 등이 성행하며, 환자들을 놀라게 하지도 않는다고 분석하며 지적하였다.
한국의학계는 중국에서 내려 온 것으로 인삼은 만병통치약이며, 침술과 뜸이 인삼 다음의 치료제라 하였고, 한국인의 안경제조 기술이 우수함을 지적키도 하였다.
외래진료 환자 7,234명의 병명과 환자수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질병은 말라리아로 인한 열병종류가 738건으로 가장 많고, 매독과 매독에 의한 피부병이 728건이며, 소화불량은 467건이라고 통계보고 하였다.
알렌의 건강 의료보고서는 1885년 4월14일부터 10월14일까지 6개월간의 진료보고서로 한국선교 초기의 건강, 환경, 습관 등 생활상이 밝혀져 있다. 광혜원(제중원)은 1월22일에 한국정부에 개원개설에 관한 계획서를 제출했고, 그 계획이 받아들여져서 4월9일에 개원하고 6개월 동안 진료한 분석 첫 건강보고서이다.
▲ 노 종 해(CM리서치) |
알렌은 정부공식 병원으로 개원하여, 서울지역을 중심으로 왕실과 고관, 양반들, 외국 공관원들의 공의(公醫), 전국에서 찾아오는 외래환자들을 진료 활동하면서, 선교사의 신분보다는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한국기독교 선교를 돕고, 선교의 길을 열어준 분이다. 1885년 첫 의료보고서는 치밀하고 상세한 분석으로 의사로써의 성실성과 활동력을 보여 주고 있다.
알렌(1858-1932)박사는 미국 웨슬리안 대학과 마이애미 의과대학을 수료(1883년)하고, 미 북장로교 중국선교사로 파송 받아(1883년) 상해에 부임하였으나, 이듬해 선교지를 변경하여, 1884년9월20일에 미국 공사관 의사로 한국 서울에 도착하였다. 1887년부터는 외교관으로 한국공사과 서기, 총영사 등 외교관으로 근무하다가 1905년 을사보호조약으로 공사관 폐쇄 이후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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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초사료>
H.N. Allen; "Report on the Health of Seoul(COREA),18854.14-10.14". in Appenzeller' Papers-Varia: Korea General-.
<편지와 일기>
알렌(김인수 역): 알렌의사의 선교외교편지. 장신대 한국교회사연구원 2007.
Horace Newton Allen's Diary(알렌의 日記, 金源模 完譯, 檀國大出版部 2008.
*Dr.H.N. 알렌 박사의 "서울 건강보고서" 표지(1885년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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