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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예술 2023. 5월호>
춘파(春坡) 전형(全馨)과 대전문학사
초대 대전문학관장 박 헌 오.
역사는 끊임없이 보정(補正)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로잡힌 역사가 정착되어야 한다. 대전문학관의 초대 관장을 맡아 처음으로 대전의 문학 자료들을 한곳에 모아 보존하고, 연구하고, 전시하고, 학습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하여 초기적 노력을 거듭하면서 나름대로 대전의 문학사에 관하여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언제라도 역사를 바로잡는 일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므로 문학관장의 임기를 마치고도 지속해서 대전 문학사를 연구하고 집필하는 일을 틈틈이 추진해 왔다. 몇 차례 『대전문학 총서』의 편집위원장을 맡았고, 충남 근현대 예술사 편찬위원으로도 참여하였다. 그러면서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나 작품들을 찾아서 알리는 일에 함께하고자 노력했다.
평소 많은 가르침을 주시는 대전 문단 선배이신 최송석 시인께서 여러 차례 “대전의 문인 가운데 누구라도 나서서 전형(全馨) 선생에 대한 조명(照明)작업을 시작해야 한다.”라는 말씀을 주셨다. 그래서 거론을 시작하면 앞으로 역량 있는 학자들이 나서줄 것이란 기대를 가지고 자료수집에 착수하고자 한다.
중요한 업적이 있는 문인들이 묻히고, 잊는 사례를 나는 이렇게 보았다.
첫째로 화자(話者)가 되어야 할 중요한 문인들이 지나치게 겸손하고 자중함으로 자신의 문학작품이나 업적을 내세우지 않는데 원인이 있다. 현시대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 염치도 체면도 없이 나서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자 보면 진실로 앞세워야 할 분들이 뒤로 뒤로 빠지게 된다.
둘째로 청자(聽者)는 일반적으로 무관심한 방관자가 많으므로 알아서 훌륭한 문인을 제대로 평가하고, 좋은 작품을 기억해주고, 추천해주려 하지 않는다. 자연히 묻히고 잊히게 마련이다. 때에 따라서는 편향된 사고를 가지고 편파적으로 선택하여 주장하는 일들도 비일비재하다. 공정하지 않은 바가 없지 않다고 느끼면서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오판의 빌미가 될지 우려된다.
셋째로 청산해야 할 역사적 과제가 있다. 36년 동안 일제의 강점을 받으면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문인들의 99%의 애국적 작품들이 1%의 불가항력적 모호한 작품이 있다 하여 모두를 매몰하려 드는 극단적 절손의 사례가 없지 않다. 월북하거나 납북된 작가들의 작품도 오랫동안 금서(禁書)로 단정해 오다가 1988년인가 풀린 바가 있다. 그동안 그분들의 많은 작품도 소실된 부분이 없지 않다. 역사도 몸과 마찬가지로 치유와 치료의 과정을 통하여 건강을 찾도록 앞날을 위해 용인할 수 있는 범위에서 화해(和解)를 도모할 합리적인 평가와 합의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상술(詳述)은 별개로 하고 우선 대전의 문학사를 일정 부분 다시 고쳐 써야 할 전제로 전형(全馨)의 문학작품에 대한 화두를 열고자 한다.
대전 문인의 현대 문학작품을 논할 때 서두에‘ 1935년 정훈(丁薰) 선생이 《가톨릭 청년》지에 발표한 「유월 하늘」이거나 1937년 《자오선》 창간호에 발표된 「六月空」’으로 설명해 왔다.
그런데 놀랍게 전형(全馨)의 작품이 1927년부터 본격적으로 발표되기 시작하였고, 1937년에는《자오선》 창간호에 정훈(丁薰)과 나란히 전형(全馨)의 작품 두 편이 발표되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본고(本稿)에서는 그 일부 작품을 들어 소개하고자 한다.
전제(前提)해 둘 것은 전형(全馨)은 1907년 옥천(沃川) 출신이지만 해방 이후 대전 최초의 신문인 동방신문(東邦新聞)의 창립 편집국장을 지냈고, 1952년부터 1070년까지 대전일보(大田日報) 편집국장, 주필, 논설위원 등을 맡아왔으며, 호서문학회장, 대전문화원장을 맡기도 하였다. 그래서 충남 문학상을 받기도 하였고, 대전광역시에서 발간하는 인물 지에도 수록되어 있다.
문학적으로는 시(詩 ), 시조(時調), 소설(小說), 평론(評論),수필(隨筆) 아동문학(兒童文學), 희곡(戲曲) 등의 작품을 두루 발표하였으며, 신문을 통한 논설과 세평의 문장들도 참으로 명문(名文)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고(本稿)에는 전형(全馨)의 초창기 작품 가운데 시(詩)와 시조(時調)를 몇 편을 우선 원문대로 소개하고자 한다.
전형(全馨)은 필명이고 본명은 전우한(全佑漢)이며 아호는 춘파(春坡)이다. 그의 형은 전좌한(全左漢)으로 독립운동가이다. 형인 애국지사 전좌한(全佐漢) 의사(義士)는 일생 독립운동에 몸 바쳤으며 특히 전형(全馨)이 문학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인 1926년에는 <조선혁명군대본영>이란 비밀 독립운동 결사체를 만들어 10월 1일에 신축 낙성식을 갖는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기 위해 활동하다가 9월 22일 체포되어 1927년 1월 6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어 1927년 8월 3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 형(刑)을 선고받고 복역한 후 1931년 3월 26일 출옥할 때는 폐인이 되고 말아 평생 폐인으로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집안이 모두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혀 8. 15. 광복 때까지 일경(日警)의 감시 받게 된다.
전형(全馨)의 작품은 형이 겪은 참혹한 옥고와 폐인이 되어 세상에 나온 형에 대한 울분(鬱憤)을 표현한 열변 적(獅子吼的) 와 자탄(自嘆) 적 입장의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전형의 작품 몇 편을 원문으로 소개한다. 작가의 표기는 본명이나 필명 또는 아호를 적기도 하였기에 그대로 게재한다.
한 숨
沃川 全佑漢
어제나 ᄯᅩ오날이나
보라빗 내 가슴속의 웅뎅이에서
쉬임업시 작구만 니러나는 그 한숨이 무에뇨
單調롭고 意味깁게 슯흐게 쳐오르는 그것이―
가난이의 궁상인가?
푸로魂의 告白인가?
웬한숨이뇨?
배곱흔 우름이뇨?
孤獨하고 疲困한 나의 魂이
배곱흐고 헐벋은 푸로의 魂이
삶이란 獄속에 사로잡힌 魂들이
소래업시 우는 울음의 한숨이뇨?
<1928. 10. >
【출처】 朝鮮詩壇 2·3 合倂號
소화 3년(1928년) 12월 6일 발행 조선시단사(朝鮮詩壇社)
아츰이 왓단다
春 坡
묵업고 근심스런 긴 밤의 神祕를 헤치고
새벽빗이 ᄯᅥ오른다
시집가는 시악씨갓치 고웁게 丹粧하고
五色이 玲瓏한 새벽 노을이 터지는구나
그 우흐로 빙그레 우스며 아츰햇쌀이 퍼진다
시골에 서울에 그리고 ᄯᅡᄭᅳᆺ까지
지금것 어둠에 뭇첬든 모든 物象은
大宇의 큰 캄파쓰우헤 그려진 畫面쳐럼 울퉁불퉁 ᄯᅮ렷이 소사오른다
모든 形體가 굵은 線 가는 線으로 奔走히 自畵像을 그리면서
우리의 피는 세찬 瀑布갓치 흘러 나린다 머리에 가슴에 皮膚에
왼놈둥이가 시집가는 시악씨갓치 학근거린다 熱은 발톰와로 손톱ᄭᅡ지 치미여 오른다
우리의 마음에는 햇쌀가튼 빗과 긔운이 들어찬 그리고 샛ᄲᅡᆯ간 燈불이 켜진다
모든이 脫獄의 囚人갓치 깃븜이 차힌다
가슴이 운다 ᄯᅮᆼ 하고 울엉차게 고동을 틀면서 모든 일군은 일터로 나아간다
工場으로 000으로 ᄯᅩ 00日報社로 그리고 ᄯᅩ 학교로
하나 둘 셋 힘잇는 거름거리로 ᄯᅦ를지어 나아간다
동무여 모히라 「새로운 世界」의 建築場으로
기대리든 우리의 아츰이 이제 닥왓단다
【출처】조선시단(朝鮮詩壇) 제5호, 특대호, 청년시인백인집(靑年詩人百人集) 78쪽 소화4년(1929년) 4월 3일 발행, 조선시단사(朝鮮詩壇社)
꿈을 깨다
꿈을 깨다
달고도 쓴 꿈을 깨다
임에게 안기든 꿈
아! 달고도 쓴 꿈
임이 그러면
나를 다시 그리워하나!
아! 그러나 그 꿈을 깨다
꿈에 그 꿈에
나를 안어 주던 임은
그림자 가치도 사라지다
아- 그 꿈은 쓰고도 단 꿈
내가 임을 그리워하나?
아- 그러나 그 꿈을 깨다
쓰고도 단 꿈을 깨다
오- 임이여-
꿈에 나를 안든 임이여!
가려거든 꿈에 보이지나 말지
꿈에라도 오시었거든
오- 꿈이여 -
네나 영원히 깨지나 말지
그러나 그 꿈은 깨다 벌–서
1927. 7. 관성 죽동서
《매일신보》 1927. 8. 7.
【출처】《마중문학》42호,2019. 8. 25.마중문학사,「옥천에서 부른 사랑의 소나타 · 1927」-전형의 초기 시편들. 한명수 현대문으로 소개
근영(近咏)
全佑漢
世上시름 잊으려고 냇가에 와서
흐르는 물 우둑히 나려다 보노라니
달빛에 아롱지는 물소리 뿐인 것을
어이하랴 둘 곳 없는 이내 시름을.
뷘들엔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잔여울 물소리만 새롭게도 들릴 뿐인 것을
人生에겐 死와 寂寞만이 잇음을 내 이제 알앗거니……
【출처】《동광》 제20호 72쪽, 1931. 4. 1. 영인본『『韓國詩雜誌集成』 卷二 (全 5 冊) 편자겸 발행자 沈漢輔 / 頒布處 太學社 에서 발췌.
幻滅의 노래 외 短歌 等
全 馨
長江을 구비치던 물이 여울에 막힌 듯이 가슴속에 ᄭᅳᆯᆯ턴 情熱이 헤식어감을 늣기며 내 靑春의 녹쓸 生命의 鐘을 울니면서 虛空을 向하야 손더듬으며 歎息하고 십픈 나의 心境 曠野에우는 孔雀이랄가 아득한 바다우에 길을 일코 ᄯᅥ도는 갈맥이에 설흠이랄가 돌아보고 도리켜보아도 너무나 서글퍼서! 그러타! 너무나 어이업서서 히스테리칼한 우슴을 우서보고 십고나 너는 그래도 네 가슴 속에 일은 情熱의 불길노
이 밋음性 업는 世上을 삿삿치 불부칠 듯한 野慾으로 너의 좁은 가슴을 태우던 한때의 허황한 幸福의 꿈을 꿈꾸려 하엿으며 어리석게도 不自然한 눈물을 흘니던것을 ᄭᅢ닫고 소스라치는 지금의 너! 幻滅의 苦悶은 너를 울닌다! 幻滅의 悲哀는 좀먹은 靑春의 한토막을 눈물속에 葬事하는구나
幻滅은 무덤일다! 그럿타! 이 청춘의 무덤을 ᄭᅵ여안고 목노아 울어라!
지난날의 허황한 꿈을 이 무덤에 고이 물고 새로운 來日로의 스타―트를 힘잇게 내여드듸자! 그곳에 ᄯᅩ 幻滅이 잇을ᄯᅢ 그ᄯᅢ야말노 네 人生의 全部를 무덤속에 파뭇는날이다 오오! 씩〃한 내 人生의 第二 스타-트여 내몸은 한울에 ᄯᅳᆫ 수리개
九萬長天을 가다 죽어도 나르지 안흐랴. <※ 단가는 게재를 생략함>
( 1934. 2. )
【출처】朝鮮詩壇 續刊 제8호 38쪽. 소화9년(1934년) 9월 17일 발행
조선시단사(朝鮮詩壇社) 79쪽.
鬱 憤
全 佑 漢
오날도 지향업시 동으로 서으로 ᄯᅥ도는 兄弟여!
어데로 가랴는가 玄海灘을 건느랴 豆滿江을 건느랴!
그러치 안흐면 ᄯᅡᆼ이라도 두다리며 목을노하 울어나보랴!
올은들 별서 잇나 그한울 그ᄯᅡᆼ이 그냥 잇는 것을―.
형뎨여! 우리가 가진 것이 그무엇이냐 무엇을 가젓느냐
한ᄯᅢ기의 밧이나 초라한 오막이나마 가젓든 것은 업새이고
지금 가진것이란 오직 눈물과 ᄯᅡᆷ만을 가지지 안엇는가
그리고 알몸동이에 불타는 情熱을 가졋슬 ᄲᅮᆫ이 안인가
우리가 가면 어데로 가랴 ᄯᅡᆷ심흐든 밧을 버리고
눈물속에 ᄭᅮᆷ을 역든 오막을 버리고
우리가 가면 어데로 가랴 굿하여 간다면 가기야 못하랴만은
그곳에 간들 게도 ᄯᅩᅩ한 이러한 인간들이 사는곳이 안이랴
형뎨여! 발을 멈추자! 그리고 약속하자! 우리의 ᄯᅡᆷ과 눈물이 방울돗는곳
아름다운 ᄭᅩᆺ치피고 영원한 락원이 될 것을―
【출처】《 HESUNG 彗星 什一月號 》 京城 開闢社 發行
제1권 제8호 1931년(소화6년) 11월 15일 발행 132~133쪽
춘일점경(春日點景)
全春坡
밧두덕 비탈길에 아즈랑이 고닯히고
병아리 양지ᄶᅩᆨ에 모이를 줍는고야
새파란 한울우에 소리개춤도 한가하이
마을압 수양버들 싹트는 가지들은
비단ㅅ결 실바람이 살랑살랑 불ᄯᅢ마다
흐느적 흐느적어려 억개춤만 추더라.
맨발에 짚신 ᅁᅳᆯ며 나물캐는 아가씨들
종달새 우지즘에 흥이절로 나오는지
군소리 주고밧기에 바구니 비울녜라
산기슭 양지ᄶᅩᆨ에 어린이들 모혀 안저
하나는 어미되고 하나는 아비되고
ᄯᅩ 하나 아들이되여 솟곱노리 즐기네
속닙이튼 잔디밧헤 다리 ᄲᅥᆺ고 들어누워
흰구름 ᄯᅥ다니는 푸른한울 바라보면
보채든 나의가슴도 늘엉늘엉 하더라.
―(1932. 3. 관성(管城)에서)―
【출처】《彗星 4월호》1932. 京城 開闢社 發行 150쪽,
黃順元 의 「街頭로울며 헤매는者여」와 한 페이지에 실림.
다음의 작품은 대전 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는 《자오선(子午線)》에 나란히 실린 정훈(丁薰)과 전형(全馨)의 작품을 함께 소개한다.
정훈(丁薰)의 작품은 1935년 《가톨릭 청년》지에 「六月 하늘」이 실리고 이를 改題하여 1937년 자오선(子午線)에 「六月空」으로 발표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며 이 작품은 대전의 문인 가운데 최초로 발표된 현대 시(詩)로 간주하여 왔다. 필자는《가톨릭 청년》지의 작품은 아직 확인하지 못하였고, 자오선(子午線)에 실린 작품을 확인하였으므로 이를 원문으로 소개한다.
六月空
素汀
때는 오전 열한시
蒼空에는 힌구름이
해오리처럼 떠단이오
뱃쨍이 찔 찌르르-
소리를 찟소
그 音響 따끈따끈 해라
靑제비가 더운가슴을
쏘고간 다음
푸른 畫幅에 꽃자마리 한쌍
【출처】『자오선(子午線)』창간호 19쪽. 소화12년(1937년) 11. 10. 子午線社 발행,
정야(靜夜)
思念의 바닥 깊이
요단이 옛 꿈의 서리고
희듸 흰 비달기
나래 떨고 나르는
憂愁
世紀의 사랑은 눈감고
슬픈 마음에 새벽이 오다.
【출처】『자오선(子午線)』창간호 24쪽. 소화12년(1937년) 11. 10. 子午線社 발행,
별을 우르러
잠에 서린 외로운 影像
華麗한 슲흠같이 자저드는 트레모
먼 하늘 비스듬이 캬리온이 빛나고
이밤 풍아기같은 내 마음은
아레베스크 모양 황홀하게 紋義지다.
白光의 遊星 弧線 위에 잠들고
어디선지 아아 어디선지
渺茫한 思慕가 끓어오르는 소리
아마 내 가슴 깊이 깊이
부른드의 童子가 잠들었나 보다.
구비치는 바다우에 길잃은 칸-느의 幻相
그라스 컵에 담겨 흩어지는 空虛한 마음 쪼각은
부즐없게도 그 멫 가락의 合唱을 불럿더뇨.
마음의 아드바룬-은 흰 標幟를 나린채
내 靑春이 昇天하려는 화려한 새벽
가슴엔 파-란 불이 붙다 파-란 불이.
<소화12년 7월 고향에서>
【출처】『자오선(子午線)』창간호 25쪽. 소화12년(1937년) 11. 10. 子午線社 발행.
위의 작품들은 필자가 수집 중인 자료 가운데 대전의 문학사를 다시 고쳐 써야 하는 이유를 공유하기 위하여 일부 소개하는 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의 선행 연구자분들과 함께 지금까지 묻혀 있었고, 잊혀 가던 전형(全馨)의 작품들을 발굴하고 연구하여 보고할 기회를 얻고자 한다. 그것이 대전의 문학사를 바로잡는 길이며 지금까지 알아 왔던 시점의 상향과 훌륭한 작품들의 감상을 통하여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한껏 높일 수 있는 요소가 될 것이란 확신을 하고 있어 그 뜻의 일단을 밝히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