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阪(오사카) 남쪽 중심지에 四天王寺(시탠노지)가 있다. 593년에 창건했다고 하는 일본 최초의 사찰이다. 聖徳太子(쇼우토쿠타이시)가 불교 반대 세력과의 싸움에서 四天王에게 기원하니 승리하게 해준 것이 감사해, 당시의 수도에 사천왕사를 세웠다는 유래 설명이 <일본서기>에 전한다.
四天王은 유래가 힌두교의 신인데, 대승불교에서 수용했다. 불교도 수호하고 국가도 수호한다고 여겼다. 그런 일이 한국에서도 있었다, 신라 문무왕 때인 679년 수도 서라벌에 四天王寺를 세워 당나라 군사의 침공을 물리쳤다는 말이 <삼국유사>에 있다. 신라 서라벌의 사천왕사는 없어졌다.
유래가 더 오랜 일본 오사카의 사천왕사는 아직 건재해 찾아갈 수 있다. 가서 보니, 사찰 이름으로 삼은 四天王이 없다. 입구 양쪽에 金剛力士만 있고, 四天王은 없다. 일본의 다른 절에서도 四天王을 찾기 어렵다. 奈良 東大寺에서는 四天王의 두상 넷을 본당 구석에 방치한 것을 보았다.
한국은 이와 다르다. 거의 모든 사찰에 四天王이 있다. 金剛門의 金剛力士, 天王門의 四天王을 보고 본당으로 가게 되어 있다. 사천왕의 위엄 있고 용맹스러운 모습을 잘 만들어 눈을 끌고 강한 인상을 남긴다. 사천왕이 일본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의문으로 남겨두고, 관련되는 사례를 찾아보자.
오사카 사천왕사를 구경하고 나와 점심을 먹으려고 고풍스러워 보이는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보리밥의 영양가에 대해 잔뜩 써 붙여 놓은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고 그것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가지고 나온 것을 보니 흰쌀만 보이고 보리는 찾기 어려웠다. 기대와 너무 달라 할 말을 잃었다. 어울리는 반찬이 없어 가까스로 먹었다. 한 끼 건너뛴 느낌이었다.
한국의 보리밥은 보리로만 지은 진품이라야 알아준다. 집 근처에 진품 보리밥을 즐길 수 있는 곳이 있어 이따금 찾는다. 열무김치 맛이 뛰어나 보리밥을 더욱 빛나게 한다. 일본에도 그 근처에 가는 것은 있으리라고 기대했으니 심한 착각이다.
여기까지 한 말을 정리해보자. “사천왕사에 사천왕이 없다.” “보리밥에 보리가 없다.” 이 두 말이 함께 떠오르고, 어떤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어떤 연관인가 생각하다가 한 가지 경험을 더 보태 생각의 폭을 넓힌다.
며칠 뒤에 京都國立博物館에 가니, 전관에서 <親鸞(신란) 탄생 850년 기념전, 생애와 名寶>만 하고 있었다. 전시는 모두 7장으로 이루어졌다. 1. 신란을 이끈 7인의 고승, 2. 신란의 생애, 3. 신란과 門弟, 4.신란과 聖徳太子, 5. 신란의 말, 6. 淨土眞宗의 名寶, 7. 신란을 전하는 名號이다. 원본으로 인정되는 시각적 조형물, 소상, 초상, 繪卷, 글씨 등이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을 찾아내 풍부하게 전시한 것이 놀라웠다.
繪卷(에마키)라고 하는 두루마리 그림이 많은 것이 일본의 자랑임을 특히 잘 보여주었다. 사후 33년에 제작한 <부처가 사천왕이>에서 9세에 출가해 90세에 입적하기까지 있었던 주요 사건을 그림으로 그리고 글로 쓴 에마키가 선명한 모습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신란과 관련된 다른 승려의 생애를 다룬 에마키도 여럿 전시했다. 신란의 친필도 여러 사찰에서 잘 보존하고 있다가 내놓았다.
“아미타불의 구제를 전하는 자필의 저작”이라고 하면서 내놓은 <敎信行證>이라는 것을 특히 주목할 만했다. 지은 책이 더 있다고 하지 않아 실망하고, 그것이 전시의 절정임을 확인했다. 신란은 惡人正機說을 주장해 악인이 선인보다 먼저 극락에 갈 수 있다고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악행을 일삼는다고 자인하는 무사들이, 그 때문에 신란을 성인으로 받든 것도 알고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을 전시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신란은 惡人正機說은 독창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철학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일본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신란에 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전시회에서 이에 관해 더욱 진전된 논의를 발견할 수 없어 서운했다.
신란(1173-1263)은 한국의 知訥(지눌, 1158-1210)과 동시대인이고, 아주 높이 평가되는 것도 같다. 지눌은 초상 한 점이 가까스로 전하기만 해서, 신란과 대등한 수준의 전시회를 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 대신 저작이 뛰어나다. <修心訣>(수심결)에서 스스로 깨달는 원리와 방법을 밝힌 철학이 신란의 신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앞에서 한 말에 하나 더 보탠다. “사천왕사에 사천왕이 없다.” “보리밥에 보리가 없다.” “성인에게 철학이 없다.” 일본이 이렇다는 사실을 말하니, 그 이유를 밝혀야 하는 임무가 생긴다. 이에 대해 서로 관련된 논의를 해야 한다.
부처와 사천왕, 쌀밥과 보리밥, 성인과 철학자, 이 세 쌍이 기본적으로 같은 관계를 가진다. 부처는 초탈의 경지에 있고, 사천왕은 위력을 과시한다. 쌀밥은 순수하고, 보리밥은 잡다하다. 성인은 존숭만 해야 하고, 철학자는 토론 상대이다.
일본 사람들이 초탈한 경지의 부처를 모를 때 위력을 과시하는 사천왕을 내세워 마음을 돌리게 했다. 그래서 사천왕사를 만들었으나, 그 뒤애는 사정이 달라졌다. 부처가 널리 알려지고 신앙의 대상이 되자, 사천왕은 장애가 된다고 여겨 배제했다. 이런 말이 쌀밥이나 성인이 홀로 빛나는 이유도 해명할 수 있다.
부처ㆍ쌀밥ㆍ성인이 홀로 훌륭하다는 것은 차등론이다. 부처와 사천왕, 쌀밥과 보리밥, 성인과 철학자가 양립하며, 부처ㆍ쌀밥ㆍ성인의 독주를 사천왕, 보리밥, 철학자가 제어하는 것은 대등론이다. 일본은 차등론을 지향하고, 한국은 대등론을 소중하게 여긴다.
일본의 차등론과 한국의 대등론 가운데 어느 쪽이 우월한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차등론이다. 열등한 쪽은 퇴출해야 한다면 분란이 일어난다. 각기 그 나름대로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인정하는 일차원의 대등론으로 둘을 포용해야 한다.
둘이 둘이면서 하나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차등론은 대등론을 배제하니 더 나갈 수 없다. 대등론은 차등론을 포용해 차원을 높일 수 있다. 차등론을 대등론의 한 짝으로 삼아 다른 짝을 더 키우면, 차등론과 대등론이 합쳐진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할 수 있는 말을 조금 한다.
부처가 사천왕이고, 사천왕이 부처여야 시비 분별에서 아주 벗어난다. 쌀밥과 보리밥에 관한 논란이나, 성인과 철학자에 관한 논란도 이와 같다. 부처와 사천왕, 쌀밥과 보리밥, 성인과 철학자의 영역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다.
조동일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국문학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학술원 회원으로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했다. 주요 저서로 <대등의 길>, <한일 학문의 역전>. <국문학의 자각 확대>, <우리 옛글의 놀라움>, <서사민요연구>, <한국문학통사>(전6권), <우리 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 <소설의 사회사 비교론>(전3권), <대등한 화합: 동아시아문명의 심층> 등 다수가 있다. 최근에 저술로 <문학 속의 자득 철학> 3부작: 1<문학에서 철학읽기> 2<문학끼리 철학논란> 3<문학으로 철학하기>도 있다.
첫댓글 신란은 惡人正機說은 독창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철학으로 평가할 수 있는가? <일본철학사가 있는가?> 하는 논문에서 이렇게 말한 적 있다. 신란에 관해 자세하게 알려주는 전시회에서 이에 관해 더욱 진전된 논의를 발견할 수 없어 서운했다.
신란(1173-1263)은 한국의 知訥(지눌, 1158-1210)과 동시대인이고, 아주 높이 평가되는 것도 같다. 지눌은 초상 한 점이 가까스로 전하기만 해서, 신란과 대등한 수준의 전시회를 할 만한 자료가 없다. 그 대신 저작이 뛰어나다. <修心訣>(수심결)에서 스스로 깨달는 원리와 방법을 밝힌 철학이 신란의 신앙과 상당한 거리가 있다.
둘이 둘이면서 하나일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차등론은 대등론을 배제하니 더 나갈 수 없다. 대등론은 차등론을 포용해 차원을 높일 수 있다. 차등론을 대등론의 한 짝으로 삼아 다른 짝을 더 키우면, 차등론과 대등론이 합쳐진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할 수 있는 말을 조금 한다.
부처가 사천왕이고, 사천왕이 부처여야 시비 분별에서 아주 벗어난다.
“사천왕사에 사천왕이 없다.” “보리밥에 보리가 없다.” 그것을 나무라기보다 그것대로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