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시간의 누비 과정이 끝나기 하루 전이다.
매일 눈 뜨면 보따리를 챙겨서 출석 시간보다 한 시간 남짓 빠르게 사회적 기업 민들레 누비로 간다. 가는 길에 절대로 빼 먹을수 없는 게 전통시장 한 바퀴다.
꼭 뭐라도 산다.
끝물 고추나 고춧잎, 칼로 빗금을 긋듯이 베어 장만해 둔 참박, 조선 호박 잎은 물론 깐마늘 꽃 만큼 예쁜 실파도 한 단 산다.
청방배추는 일주일에 한 단만 사서 김치를 담고.
고대구리 배가 잡아오는 생선은 그때그때 다르다.
요 철에는 누른 금빛이 도는 전어가, 장어가 좋다.
문어는 언제 먹어도 좋아서 자주 사서 삶아 냉동실에 얼려둔다.
시장 보는 재미도 누비 만큼이나 좋다.
시장 본 것을 한 보따리 치켜 들고 민들레 누비 교육장에 올라가면 벌써부터 공업용 미싱 앞에 앉아 눈을 박고 미싱을 돌리는 동기들이 반이나 된다.
다들 꼼꼼한 성격인지 2밀리미터 간격의 외줄을 타고 끝없이 내려 박아가는 통영 전통누비를 잘도 누빈다.
나만 갈 짓자를 놓고 있다.
눈 나쁜 핑계를 대지만 순전히 덜렁대는 성격 탓이다. 나에게는 애시당초 통영전통 누비는 무리였다.
그걸 하루라도 빨리 인식 했기에 그저 감으로만 의지해서 미싱을 돌렸다.
9월 28일과 29일 양쪽눈 다 노안과 백내장 수술을 하고 오면 비로소 제대로 잘 할 수 있으리라고 호언장담 하며.
한 달동안 매일 배우고 누빈 원단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제일 잘 못 누빈 나도 작품을 만들긴 했다.
그 대신 색감과 디자인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걸로.
내가 만든 내 거라서 그런지 제일 맘에 들었다.
장지갑과 복주머니형 스몰백은 와인 주머니형 2개와 함께 동생에게 선물로 줘야지.
수료식 하루 전날은 새벽 늦게 잤다.
민들레 누비에서 일하는 베트남 이주여성들에게 줄 옷을 일곱 벌 포장 했다.
그녀들은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 왔다.
미령이는 인평초에서, 미정이는 유영초에서 기간제교사를 하면서 만났는데 두 아이 엄마가 모두 이곳에서 일하고 있었다. 학부형이다.
인평에서 2학년 때 만났던 미령이는 4학년, 유영에서 지난 해 만났던 미정이는 2학년이 되었다.
민들레 누비에서 일하는 이주 여성들은 하루 종일 미싱만 돌린다.
그렇게 코를 박고 번 돈으로 애들을 학원에 보낸다.
나는 누비 배우는 시간에 틈틈이 나와 승민이와 미정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고, 숙제를 봐 주고, 시계 보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애들을 돌봐 줄 사람이 없어 엄마가 일하는 곳에 와서 하루종일 휴대폰 게임만 하는 애를 붙들어 앉혀놓고 뭔가를 하려고 해봤다.
다행이 애들도 좋아하고 잘 따라 주었다.
그러나 긴급 돌봄에 갈 수 있다면 더 좋은 교육환경이 될 것 같아 한려초, 유영초, 인평초 담임에게 편지를 썼다.
신청기간을 놓쳤지만 다행이 배려를 해 주셔서 세 명 모두 혜택을 받게 되었다.
나는 징검다리다.
내가 부탁하면 사람들은 모두 호의를 베풀어 준다.
나는 인복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