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다 안다 / 이훈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에 대해,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문제는 지나친 자기 확신이다. 그런 태도는 확장해야 할 논의를 각자의 폐쇄회로에 가둔다. 세상 대부분의 사건, 특히 가치관과 관련한 것은 자명하지 않다.(박권일, 「셜록 홈스적인 세계」)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217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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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여진 배우 하면 영화 <살아남은 아이>가 가장 먼저 떠오를 만큼 그 작품을 좋아하는데요. 아이를 잃은 엄마를 연기하며 타인의 감정을 평면적으로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서 유독 고민했으리라 짐작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대충 넘겨짚지 않는 데 최소한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나요?
“‘나는 모른다’라는 마음 아닐까요.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넘겨짚게 되는 것 같고요. 그 사람은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이해의 걸림돌이 된다고 봐요. 짐작을 하더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사실 난 잘 모른다’라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야 그 사람에 대해 정확히 보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편견 없이 듣고 받아들이게 되겠죠. 무엇보다 그런 태도는 타인뿐만 아니라 우선 나에게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해요.”(배우 김여진)
https://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102196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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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보를 많이 모아 놓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무지를 의식하는 것이다. 모르는 것이 있으니까 알려고 묻게 된다. 읽을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책이 책을 부른다고 할 만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책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가다 보면 생각지도 않은 곳에 이르게 되기도 한다. 모른다고 의식한 덕분에 받은 뜻밖의 선물이다!
그런데 반대로 책을 읽지 않으면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니까 다 아는 것처럼 굴게 된다. 그래서 책도 질문도 필요 없다. 모르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뭐 하러 눈과 머리 아프게 책을 읽겠는가! 이런 사람들은 질문하지도 않거니와 질문 받는 것도 싫어한다.(이훈, 「질문의 힘」)
https://cafe.daum.net/ihun/jIQm/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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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풀지 못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맞춘 똑똑한 오이디푸스도 정작 자신이 누군지는 몰랐다. 지와 무지는 같이 간다. 모른다고 의심해야 알게 된다. 모르면 다 안다고 바꿔서 얘기해도 좋겠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니 저 비극의 주인공처럼 오만할 수밖에 없다.
삶과 세상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면 겸손은 자연스럽게 내 동반자가 된다. 내 눈이 모든 것을 다 보지 못할뿐더러 본 것마저도 실상과는 아주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이런 태도를 배척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만 같다. 디지털 세계가 이 흐름을 더 빠르게 만든다. 유튜브를 한 편 보고 나면 인터넷이 알아서 내가 좋아함 직한 목록을 컴퓨터에 올려 준다. 이렇게 나와 다른 생각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배제되고 만다. 요즘 들어서 많이들 말하는 확증 편향, 진영 논리가 그 증거다. 여기에다 해마다 어김없이 쌓이는 나이도 한몫 거든다. ‘나 때는’이라든지 ‘내가 해 봐서 안다’ 등으로 달라진 세계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이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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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게 될수록 겸손해질 것 같다. 앎이 깊어질수록 모르는 게 많아지기 때문이다. (생략) 나는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으며 살기 때문에 타자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거두지 말아야 한다. 이런 겸손한 태도는 결국 내가 잘못 알거나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깨달음에서 나온다. 내가 알고 믿는 것만 옳다고 하면 겸손의 자리는 없다. 오만이 대신 들어선다. 맹목과 독선이 무서운 것은 세상을 다 안다고 생각해서 알려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기 때문이다. 호기심이 없으니 질문도 하지 않는다.(이훈,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의무다」)
https://cafe.daum.net/ihun/jsjy/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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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도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남을 해친다. 우리 부모가 자식 좋으라고 공부하란다고 하고 알아야 면장도 한다지만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공부는 필연적으로 내 개인의 영역을 넘어설 수밖에 없다. 진리의 객관성과 보편성은 다른 주체의 관점을 고려하지 않으면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적인 유아론(唯我論)과 무지는 같은 말이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고 심지어 피해를 끼치기도 한다. 나이 든 이의 ‘나 때는 말이야’는 그냥 자기 과거 경험을 얘기하는 것에서 멈추면 들을 만한 역사이기도 하지만 다른 세상을 사는 사람에게 따르라고 강요하면 폭력이 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포함한 존재를 보호하려면 열심히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 안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무시하고 억누르고 심지어 죽이게도 된다.(이훈, 「무지는 남을 해친다」)
https://cafe.daum.net/ihun/jsjy/42
첫댓글 저도 예전에 수학학원 가서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엄마께 "나는 왜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지?" 라고 물어봤더니 모르면 질문도 못 한다고 늘 얘기해주셨어요.
무지는 음주 운전과 마찬가지로 남을 해친다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공부란 그런 것이란 걸 새삼스럽게 깨우쳤습니다.
※음전 운전과~음전은 음주의 오타지요?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정말 홍익인간이 특별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어제의 나보다 더 나은 오늘의 나를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