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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한마당 후기
노벨 문학원고료상 <열린아동문학>
정은미
1. 신발 끈을 묶고 집을 나서다
오랜만에 먼 길을 나선다. 함께 가기로 한 이경애 시인은 집 안에 일이 생겨 못 가게 된 미안한 마음을 죄인처럼 전한다. 가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못 갈 때는 그 심정이 오죽하랴. 사람의 일이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인데, 그럴 수 있지. 별 수 없이 혼자 가야겠구나 싶었는데 지방을 오르내리던 조영수 시인이 바쁜 와중에 함께 가겠다고 해서 어찌나 고맙고 반갑던지.
우리 집에 차를 세우고 내 차로 합승한 조영수 시인과 나는 오붓한 여행길에 올랐다. 언제 둘이 여행하자는 말이 이루어진 셈이다. <방파제 열린 한마당> 때문에. 경남 고성으로 가는 길에 뿌린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서행인 길이 있는가 하면 시속 120km이상으로 달리는 길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이야기도 천천히 곱씹을 때도 있었고 막힘없이 달릴 때도 있었다. 곱씹은 이야기 중 단연 으뜸은 ‘감동’이라는 단어 밖에 달리 말할 수 없는 <열린아동문학>의 특별한 원고료다. 노벨 문학상 시상식에 감동과 감격을 주는 특별한 원고료가 있음을 세계인에게 알리는 ‘노벨 문학원고료상’ 이 있다면 단연코 <열린아동문학> 일 것이다. 정말로 이런 상이 신설되면 참 좋겠다. 적어도 세 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음을 세계에 알릴 기회라도 생기니 말이다. 분명 손님 맞을 준비에 종일 분주하실 세 분을 생각하니 우리의 마음도 바빠져 속도를 높였다.
2. 안녕? 동시동화나무의 숲아!
도착했다. 철문이 활짝 열려 있다. 구비 구비 올라온 길을 이제는 천천히 구비 구비 내려간다. 정겨운 벽화가 제일 먼저 인사를 한다. 절로 입이 벙글어진다. 그리고 나란히 길섶에 서서 반기는 나무들과 그 아래에서 반짝이는 돌에 새겨진 익숙한 이름들이 손을 흔든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우리도 이름을 따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고요한 겨울 숲이 손님맞이에 들썩이는 듯했다.
마당에 들어서니 반갑게 뛰어나오시는 분이 계셨다. 누구였겠는가? 바로 배익천 선생님이시다. 누구라도 오면 버선발로 뛰어 나올 기세로 스텐바이하셨던 모양이다. 내게 꼬리가 있었다면 박경용 선생님의 ‘눈 오는 날’처럼 강아지 꼬리보다 더 바쁘고 설레였을 것이다. 주방에서 물기어린 손으로 나와 순박한 웃음으로 맞아주시는 예원 선생님과 푸근하면서도 투박한 경상도 목소리로 “어서오세요” 하시던 홍종관 선생님.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반기고 맞아주시는지, 겨울 숲의 향기가 살아있는 건 바로 이 분들 때문이 아닐까.
3. 열린 상에 둘러 앉아
6시가 되기도 전 속속 모여들었다. 시끌시끌… 손을 잡고, 부둥켜안기도 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언제 왔냐, 뭘 타고 왔냐, 누구랑 왔냐, 자고 갈 거냐, 요즘 작품은 많이 쓰냐, 발표한 작품 보니 좋더라, 신상이 훤해졌네, 늙지도 않네, 비결이 뭐냐… 반가운 소리들이 웃음을 달고 나비 떼처럼 날아다녔다.
조촐한 식사를 준비했으니 먼저 먹고 시작하자는 배익천 선생님의 말씀에 뷔페 접시를 들고 줄을 선다. 아니, 누가 이런 음식들을 보고 조촐하다고 하는가. 예원표 음식들이 즐비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데, 육류와 어류 그리고 온갖 나물들이 골고루 갖추어져 있었다. 크고 싱싱한 조개들이 가득한 조개탕이 보글보글 끓고 있으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지경이었다.
게다가 필자들이 가져온 간식거리들도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입은 더 바빠졌다. 먹느라 바쁘고 이야기 하느라 바쁘고.
배불리 먹고 나서 빈 접시를 나르고 상을 정리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때 벌처럼 와서 내 귀를 쏘는 말 “이번 모임의 후기는 정은미 선생님이 써 주세요.” 순간, 멍했다. 모처럼의 긴장을 풀고 잘 놀다 가자는 심사였는데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마이크로 발사되는 배익천 선생님의 말씀. 손사래도 칠 시간 없이 바로 진행하시는 바람에 내 몸의 세포들이 긴장상태로 돌입했다. 허둥대는 나를 보고 박선미 선생님이 필요한 종이와 펜을 앞에다 가져다주었다. 꼼짝없이 이 일을 수행해야만 하는 처지가 되었다.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었더라면 처음부터 사진을 찍고, 처음 보는 선생님들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접근하고(?) 그 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을텐데 그렇지 못한 점은 순전히 배익천 선생님 탓이라 돌리면 혼내시려나? (후후……) 나 못지 않게 당황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조영수 시인이다. 조영수 시인은 나 대신 열심히 사진 찍느라 제대로 앉아 있지도 못했다. 이 지면을 통해 고맙다는 마음을 전한다.
4. 제 32회 열린 한마당 문이 열리고
드디어 제 32회 열린 한마당이 시작되었다. 먼저 축하소식을 전했다. 이규희 선생님의 제 11회 윤석중 문학상 수상과 김옥애 선생님의 동화집 <봉놋방 손님의 선물>, 장진화 선생님의 첫 동시집 <바닷물이 참 맵다> 발간에 힘찬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빨간 장미 한 송이가 그 분들의 손에 주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필자들이 소개되었다.
김옥애 동화작가를 시작으로 박선미 동시작가, 양정숙 동화작가, 오주영 동화작가, 이가을 동화작가, 이하은 동화작가, 임순옥 동화작가, 한수연 동화작가, 그리고 정은미 동시작가, 이림 동화작가, 최미선 동화작가가 소개되었다. 소개 될 때마다 공통적으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고, 그때마다 격한 공감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박선미 시인은 7년 만에 동시가 실렸단다. 아마 편집위원이었기 때문에 필자로서의 기회가 잘 주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가을 선생님의 선물이 강권이었다. 손수 만든 퀼트 가방(에코백)을 하나씩 선물하고(아쉽게도 나와 조영수 시인은 받지 못함.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동화작가들이 받아 간 듯하다. 언젠가 받을 수 있을 거라 은근 기대하며^^) 세 분 선생님의 털모자를 짜 오셨다. 다음 날 두 분이 털모자를 썼는데 30년은 젊어 보이는 오빠가 되었다는 소중애 선생님의 말씀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이가을 선생님은 윷판까지 퀼트로 만들어 오셨는데 쓰기에 아까워서 작품으로 걸어 놓았다. 귀한 선물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셨을까. 선생님의 사랑과 정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다음엔 이 자리를 빛내주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와 주신 경남아동문학회 회원들을 소개하셨다. “경남아동문학회에서는 이곳을 세미나나 야유회 장소로 많이 이용해 주시고, 이젠 발행처가 부산에서 고성으로 옮겨졌으니 열린아동문학을 경남잡지라고 생각하고 많이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말로 한 분 한 분 소개하셨다.
회장을 맡고 계신 이한영 동극작가, 이창규 동화작가, 김복근 시조 시인 겸 동화작가, 조현술 동화작가, 하영 동시작가, 변정원 동시작가, 장진화 동시작가, 박종순 평론가, 정희숙 동화작가, 도희주 동화작가, 유행두 동화작가, 이경순 동화작가 순으로 소박한 인사 말씀까지 들었다. 이한영 회장님은 세 번째 이곳을 왔는데 올 때마다 동화 속의 숲속처럼 아주 고요하고 아름답다, 동시동화의 숲이 더욱 무성해져서 아동문학의 거점이 되고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 담긴 말씀을 해 주셨다. 이창규 선생님은 동화집 <꿈꾸는 밥상>을 한 권씩 선물로 주셔서 축하와 감사의 박수를 받기도 하셨다. 김복근 선생님은 당신이 만들고 있는 시조잡지에서는 원고료로 된장을 주는데, 여기에서는 김치를 드리는 것을 보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가 보다, 아동문학의 전당인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와 보니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셨다.
사단법인을 설립하려고 동분서주하고 계시는 송정욱 과장님을 소개하면서 배익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저희가 언제까지 이 잡지를 만들지 몰라서 사단법인으로 하려고 합니다. 우리 세 사람이 죽어도 열린아동문학은 계속 되어야하기 때문에 송정욱 과장님께 이 일을 맡기고 있습니다.”
이에 송정욱 과장님은 2017년 7월 전에 법인체로 만들려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동시동화의 숲’ 조성에 더 힘을 쏟겠노라며 인사를 하셨다. 모두들 열렬한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우리가 먹은 맛있는 밥의 출처는 송 과장님이 가져오신 쌀이었다는 말씀에 또 한 번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동시가 좋아 동시 공부를 하신다는 송 과장님, 꼭 등단하셔서 좋은 동시로 <열린아동문학상> 받으시길 기도합니다.
뒤늦게 도착하신 김향이 동화작가가 소개되었고, 나와 함께 온 조영수 동시작가와 이가을 선생님을 모시고 온 배유안 동화작가와 허명남 동화작가가 차례대로 소개되었다. 김향이 선생님은 작년 5월에 원주로 내려가 6만 평 되는 산을 가꾸고 있단다. 그래서 세 분 선생님이 얼마나 고생하시는지 몸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있다, 지난 토요일 아동문학인협회 총회 때 배익천 선생님의 뒷모습을 봤는데 오른쪽 어깨가 많이 쳐져 있어 마음이 아팠다, 세 분 선생님 강건하셔서 후배들에게 큰 사랑으로 존경받기를 바란다는 애정담긴 말씀을 하셨다.
자주 참석해 달라는 배익천 선생님 말씀에 조영수 시인은 한 번 빠지고 모든 행사에 참여했음을 강조하면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에 모두들 웃었다. 전에는 내가 참 잘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주변이 잘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살고 있다, 여기 오신 모든 분들 잘 되기를 바라며 특히 글로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말로 인사를 했다.
부산에 사시는 배유안 동화작가와 허명남 동화작가는 단골 도우미란다. 오늘의 꽃인 이가을 선생님을 모시고 왔다, 사실 모시고 올 때는 꽃인 줄 몰랐는데 여기에 와 보니 많은 분들에게 꽃이었다라는 말에 한바탕 웃었다. 오늘 참석한 필자 중에서 가장 연세가 많다고 하지만 꿀피부로 전혀 연세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동화작가들은 이가을 선생님을 뵙게 된 것에 모두 기뻐하며, 동화의 롤모델로 삼는 작가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러니 꽃 중에 꽃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엔 편집위원들 소개할 차례다. 열렬 편집위원인 소중애 동화작가는 손수 만든 두건을 썼는데 멋졌다. 지난 토요일 아동문학인협회 총회에 갔더니 여러 작가들이 와서 인사를 하더란다. 글샘의 물을 마시고 한 사람은 두 군데 신춘문예에 당선되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상을 받았다하고, 어떤 사람은 새 책을 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세 분 선생님께 해야 하는 인사를 내가 받았다, 여기 오신 여러분들도 꼭 글샘의 물을 마시고 ‘앗쭈구리’하면서 이마치고 가시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것이다라는 동화 같은 이야기로 분위기를 한층 즐겁게 해 주셨다
상복이 많은 이규희 동화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지도 보는 것을 좋아해서 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살면서 길을 잃어버릴 때도 있었지만 항상 길 끝에는 꿈이 있었고, 그 꿈은 언제나 동화였으며, 동화는 나를 지켜주고 길을 잃지 않게 해 주었다, 그 생각을 하면 지금도 울컥거린다며 동화작가의 프로 정신을 엿볼 수 있었다.
뒤늦게 식사를 마친 임지윤 동화작가와 장경숙 동시작가가 소개되며 짧은 인사를 나누었다.
임지윤 동화작가는 2년 조금 넘은 새내기 작가로 한 권의 책 밖에 내지 못했다. 그동안 생활에 빠져 사는 바람에 작품을 제대로 못 썼다, 여기 오니 자극을 받게 되고 여러 작가님들을 만나게 돼서 반갑다고 말한다.
장경숙 동시작가는 등단했지만 아직도 동시와 동화를 배우는 학생이다. 나는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작가들의 낭독콘서트를 주최하는데 이번에 임지윤 작가편을 했다. 그래서 오늘 여기에 같이 오게 되었고 만나서 반갑다는 인사를 했다.
“빠진 사람 없이 다 소개를 했지요?” 하면서 좌중을 둘러보시던 배익천 선생님이 빙그레 웃으시며 “아직 두 분이 있지요? 매번 소개할 때마다 쑥스러워하시지만 이 숲을 만들어주신 홍종관 사장님을 빼 놓을 순 없지요.”하자 모두들 환호하며 열렬한 박수로 맞이했다.
“반갑습니다. 배익천 선생님과의 인연이 30년을 넘었지만 덕분에 아동문학인들을 매번 만날 수 있어 저는 행복합니다. 옛말에 문을 닫고 글을 쓰면 행복하고, 문을 열면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어 행복하고, 문을 나서면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고성에서 이 세 가지를 다하고 있기에 행복한 사람입니다. 앞으로도 법인체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며, 빛이 발할 수 있도록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계셔서 저는 늘 행복합니다.” 홍종관 사장님의 인사말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행복하기만 한 것은 분명 아닐 텐데 말이다. 뭐가 그토록 사장님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배익천 선생님이 덧붙여 말씀을 하신다.
“예원 선생님은 인사시킬까봐 어디 도망가셨나 보네요. 안 보이시네. 사실 예원 선생님 몸이 안 좋습니다. 그래서 우리 세 사람은 월요일마다 진주에 가서 특별 진료를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원 선생님은 힘이 닿는 대로 봉사하겠노라 합니다. 두 분을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천사 같습니다. 사람들은 <열린아동문학>은 걱정 없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홍종관 사장님은 나 보다 빚이 더 많습니다. 어느 때는 종업원들 월급을 제때 지급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기도 합니다. 나는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작년에 알았습니다.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그동안 한 번도 이런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보이지 않고 <열린아동문학>을 물심양면 도와주셨던 그 마음에 정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아, 이런 어려움이 있었구나. 나 역시 모든 아동문학지가 폐간의 위기를 맞아도 <열린아동문학>은 든든한 후원자가 있어 아무 걱정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지, 1년에 4번 발간하고, 필자들을 초대하고 문학상을 수여하고, 동시동화의 숲을 조성하는 모든 제반적인 일들이 그리 쉽겠는가. 사업에 전혀 이익이 될 수 없는, 그래서 대기업도 후원해주지 않는 아동문학을 개인이 후원한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 신비한 일이다. 배익천 선생님과 홍종관 사장님의 우정이 빚어낸 기적 같은 일들을 지금 해내고 있고, 우리 아동문학인들은 그것들을 값없이 누리고 있다. 더 좋은 글로 보답하는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마지막 배익천 선생님의 말씀이 또 감탄을 자아낸다.
“저는 어제 오후에 들어와 해가 질까봐 옷도 벗는 둥 마는 둥 하고 산길을 쓸었습니다. 가랑잎이나 솔잎이 마르면 미끌어지고, 초보 운전자가 있을까 싶어 오늘 아침에도 쓸었습니다.
옛날 어르신들이 일찍 일어나 마당을 쓸고 골목을 쓰는 이유를 이제야 알았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아동문학의 길을 가는데 늘 비를 들고 쓰는 남자가 되겠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섬기려고만 하실까? 이 정도 위치가 되면 권위적이고 대접 받으려고 하실 텐데 말이다. 여러모로 세 분 선생님 앞에 서면 절로 고개가 숙여질 수 밖에 없다.
이제 모든 순서를 마치고 건배제의가 있었다. 경남문인협회 회장을 맡고 계신 조현술 선생님에 따라 모두 잔을 들었다. “열린아동문학이 오직 바라는대로 마음먹은대로! 오바마!!!”
어찌 이렇게도 말을 잘 만들어내는지…후후. 우린 온 기운을 모아 “오바마”를 외치며 즐거운 술 파티로 들어갔다.
5. 2부 이야기꽃 술 그리고 금빛 술
누가 가져오셨는지 모르겠지만 45도, 50도 되는 고량주가 그 날의 꽃주였다.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금방 불이 붙을 것 같이 화끈했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는 그냥 그 느낌이 좋았다. 쬐금씩 쬐금씩 마시는데 와우, 한꺼번에 입에다 털어 놓는 애주가들을 보면서 연발 감탄을 했다. 여기서 애주가라면 아는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이름은 거명하지는 않겠다(웃음).
그런데 고량주가 인기 있던 이유는 바로 별빛처럼 반짝이는 금가루가 우리를 유혹했기 때문이다. 정말 금가루를 먹으면 우리 몸에 좋은 거야? 좋대, 좋으니까 들어있지. 마셔봐 좋을 거야. 지금 내 뱃속이 반짝거릴 걸, 낼 정말 황금변을 보는 거 아냐? 하하하, 깔깔깔…
늦도록 금빛 술은 그렇게 잘 넘어가고, 이야기꽃 술은 테이블마다 진하게 피어났다.
경남아동문학회 회원들이 일어났다. 늦게라도 집으로 갈 참인가 보다. 우르르 일어나서 인사하며 문을 열었는데 슈퍼문(달)이 우리의 머리 위에 금빛 술보다 더 환한 빛을 쏟아주고 있었다. 와~~~ 순간 모든 사람들이 그 빛에 매료되어 한참을 올려다봤다. 참으로 아름다운 밤이다. 갈 사람들은 가고, 남는 사람들은 남아 또 그 밤을 술로, 이야기로 불태운다. 그런데 유일하게 가무없이 보내는 밤이란다.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고 한다. 내가 봐도 노래보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것 같았다. 두 사람, 세 사람이 방으로 올라가면서 세 개의 탁자가 두 개가 되고, 두 개의 탁자가 한 개가 되어 끝까지 이야기 끈을 놓지 않는 사람들만 빙 둘러 앉았다. 보글보글 어묵탕이 끓고, 조개탕이 끓고 그리고 우리의 문학에 대한 열정도 보글보글 새벽까지 끓고 있었다.
6. 해돋이의 기상을 받고 돌아가다
새벽에 잠들었어도 해돋이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일찍들 일어났다. 부스스한 모습이지만 꽁꽁 싸매고 찬바람 속을 걸었다. 천황산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멋있다는 배익천 선생님 말씀에 부지런히 산길을 오른다. 늦게 일어난 사람들은 홍종관 사장님의 차를 타고 우리를 앞질러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 해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구슬 크기의 해가 강렬한 빛을 발하며 올라온다. 너무 강렬해서 감히 바라볼 수 없었지만 그 정기는 온몸으로 느껴지는 듯 했다. 순식간에 올라온 해는 세상을 다 드러내주고 있었다. 이처럼 거짓말들이 다 드러나서 더 이상 숨길게 없는 환한 세상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몇몇 선생님들은 소중애 선생님의 인도(?)를 받아 글샘에 가서 물을 마시고 ‘앗쭈구리’하며 이마를 치는 행사를 거르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 진지한 선생님이 있어 웃음을 자아냈다.
‘앗, 쭈구리고 앉아 5년 죽어라 노력하면 세계적 작가가 될 것이다’ 라고 쓴 팻말처럼 5년 죽어라 글 쓰면 이 세상에 명작 하나쯤 남겨 놓고 가지 않겠는가. 그 소망이 샘물을 마신 모든 선생님들에게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아침 식사로 뜨끈한 떡만두국이 나왔다. 찬바람 속을 헤치고 다녔던 선생님들은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큰 대접에 담긴 떡만두국 한 그릇을 후딱 비웠다. 빵과 고구마, 떡, 과일, 커피 등도 우리의 눈과 배를 즐겁게 하였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나니 10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날 때가 되었다. 1박 2일의 소중한 만남. ‘특별한 원고료’는 특별함을 뛰어 넘는 그 무엇이 되어 있었다. 각자 그 무엇을 안고 돌아간다. 그 무엇이 글로 나타나고, 관계 속에서 나타나고, 자신의 삶 속에서 나타날 것이다.
세 분 선생님들은 또 다시 일일이 배웅을 하신다. 하루 더 계신다는 세 분은 우리가 흘려 놓은 것들을 쓸고, 주워 담고, 정리하고… 다음 초대 손님들을 위해 또 머리를 맞대고 계실 것이다. 이번 여행은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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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정은미선생님, 후기 쓰시느라 고생많으셨습니다. 그 날의 감흥이 오롯이 살아납니다. 이리 훌륭한 글을 쓰시느라 편안히 술도 한 잔 못하셨지요? 다음 호 필자모임에도 참석하실 수 있는 권리를 일등으로 맡아놓았으니 그때는 편안하게 즐기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