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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배우/외
이혜란
[그럽시다. 화끈하게 거머시냐 나이 또 웨딩으로다가 결혼식 올려 버리자고요 잉~]
떨림과 긴장으로 버무린 첫 대사와 달리 마지막 대사는 후련하면서 아쉽다. 큰일을 마무리했을 때 오는 안도감이랄까. 숙제를 마무리하고 찍는 마지막 점 같은 명쾌함이랄까.
나는 2년 차 무명 배우다. 취미 삼아 시작한 연극이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기회라는 가족의 위로가 힘이 되어 주었다. 오늘 ˂내 꽃을 받아줘˃ 란 제목으로 무대에 올랐다. 연기를 처음 시작한 사동 평생학습관 대강당에서다.
꽃 피는 봄날처럼 젊음도 한때다. 그들도 나이를 먹는다. 그리고 원하지 않아도 병에 걸린다. 하지만 만고의 진리처럼 본성은 잃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남자 환자가 부인 닮은 환자2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다른 환자들은 두 사람을 부러워하고 한편으로는 질시한다. 하지만 결국 결혼시켜주며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나는 치매 노인 가운데 5번 환자역이다. 왕년에 큰소리 꽤나 치며 살다가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본인 이름조차 기억 못 하면서도 예전에 잘 살던 기억은 뚜렷하다. 이런 비슷한 증상의 노인들이 모인 요양병원의 일상을 다룬 연극이다.
우리는 부모님이 지어준 이름으로 시작점을 출발한다. 한번 시작한 출발은 멈출 수가 없다. 달리다가 걷기도 하고 또 쉬다가 뛰기도 한다. 가끔은 오랫동안 주저앉을 때도 있다. 하지만 멈추는 시점은 한 곳이다. 내가 연극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확연하다. 하나의 이름으로만 살다 가기에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았다. 연극은 잠깐이나마 다른 사람의 인생에 참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엿보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나는 무대 위에서 다른 사람이 되고 다른 이름이 된다. 그것은 짧은 시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희열이다.
연극이 끝나고 쫑파티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문자가 왔다.
[전화기 액정이 깨졌어요. 편의점에 가서 상품권을 현금으로 사서 지정한 곳으로 보내주세요. 그러면 집에 와서 사정 설명도 해주고 돈도 갚아 줄게요.]
자칭 딸이 보낸 문자다. 달아 오른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 슬그머니 전화기를 덮었다. 단원들은 전원 초보자들이다. 열정 하나로 무대까지 올렸다. 모두들 무대에서 아쉬운 점과 나름 만족한 부분을 이야기하기 분분하다. 나도 만족감보다는 부족한 부분이 더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그렇듯 아쉬움은 남았다. 그래서였을까. 순간 중독된 것처럼 연극무대를 떠나지 못한다는 선배 말이 스쳤다.
그런데 또 문자가 왔다. 휴대폰에 문제가 생긴 비슷한 내용이다.
[엄마 딸인데 휴대폰 또 어디다 두었는지 모르겠어ㅠ ㅠ. 급해서 그러는데--중략 --- 돈 좀 보내줘.] 딸 바보인 나는 두 번째 문자에 잠시 흔들렸다. 평소 딸이 당혹스럽거나 난처할 때 ㅠ ㅠ 을 쓰곤 한다. 무엇보다 실제로 딸은 휴대폰을 찾는 일이 잦았다. 그녀 연기는 포인트를 잘 잡은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이미 알려진 대본 때문이었다. 요즘 성행하는 보이스피싱 내용 말이다.
선택에는 언제나 계기가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전화번화가 정보의 전부인 그녀도 무명배우일지 모른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배우 말이다. 한 번에 무작위로 보낸 문자다. 그녀가 맡은 역할은 그물을 치는 여부 역이다. 한 번의 노력으로 여러 명의 희생자를 낚는 대본을 연기 한 그녀다. 누군가는 절박한 딸 생각에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선한 마음을 이용한 악역이다. 그녀의 연기가 뛰어날수록 그녀의 악역은 빛을 발할 것이다. 그리고 박수갈채 같은 보상으로 통장이 두둑해질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일상을 맛깔나게 연기하는 배우를 연기 참 잘한다고 한다. 관객들도 극중 인물과 동일시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푹 빠진다. 막이 내리면 연기자의 만족도가 높을수록 관객의 환호성도 높다. 다른 사람의 연기를 통해 관객은 카타르시스를 얻고 대리 만족을 한다. 연극의 본질은 진정성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 연기자란 이름으로 출발선에 섰다. 달리다 보면 숨이 찰 때도 있고 걷다가 쉬고 싶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자 하나로 대중을 속이려 부단히 노력한 그녀처럼 나도 다른 사람의 인생을 진짜처럼 연기해야 한다. 관객이 속아 넘어갈 수 있도록 맛깔 나는 연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와 그녀가 다른 점이 있다면 진정성의 문제일 뿐.
겨울이 오기 전에 미리 맞는 주사가 있다. 독감 예방 접종이다. 나는 슬럼프가 올 것을 대비해 미리 예방 접종을 한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같은 일을 반복해서 하다 보면 처음보다 잘하게 되고 결국에는 전문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니 지레 겁먹지 말자. 새롭게 가는 길, 찬찬히 들여다보며 걸어가자. 바쁘게 살다 놓쳐버린 조그만 들꽃 하나 돌멩이 하나 참견하면서 걷자. 빨리 걸어도 느리게 걸어도 길의 끝은 있게 마련이고 나는 아직 갈 길이 먼 무명배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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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그릇 같은 친구
이혜란
비를 모으고 있는지 하늘은 꾸물꾸물 회색이다. 약속도 없이 홀로 있는 여유시간, 카 톡 소리가 연이어 울렸다. 백 미터 달리기 하는 선수마냥 다급하고 숨차다. 모처럼 작정하고 게으름을 피우려는 마음 들킨 듯 미간을 찡그렸다. 무음으로 해 두지 못한 때 늦은 후회를 하고 있는데 참다못해 터지는 울음소리마냥 전화벨이 울렸다.
간간히 마른 천둥소리를 내던 하늘에서 끝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미처 우산을 챙겨 나오지 못한 사람들의 뛰는 모습이 창밖에 아른거린다. 눈물이 빗물인 듯 흘러 앞이 뿌옇다. 우산 없이 소낙비를 만난 것처럼 발만 허둥댔다. 통화를 끝내고도 오래도록 휴대폰 진동마냥 몸이 떨렸다.
한 참을 옥상에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고 빗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일까. 믿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불과 며칠 전 둘이서 일산 킨텍스를 다녀왔던 기억만이 뚜렷하다. 타 기관과 연계를 위한 전산 프로그램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기초생활 수급자 가정 자녀와 다문화가정 자녀에게 미술 지도를 위한 학교를 세웠다. 안산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봉사하는 프로젝트로 안산시 지원을 이끌어낸 사업이었다.
그날도 그랬다. 걱정스런 마음에 괜찮은지 물었다.
“미리 한 주먹 먹어놨어. 아무리 힘센 놈이라도 정신 못차릴걸”
그녀 대답은 해맑다 못해 엉뚱했다. 진통제 한두 알로는 어림없다는 말을 가벼운 농담처럼 던진다. 강의가 끝나고 오는 길 갑자기 위가 뒤틀린 듯 복통이 왔다. 전날 밤 심한 불면증으로 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어젯밤 체기가 아직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설상가상 평소에 안하던 멀미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이 먹는 진통제를 한 알 내밀었다. 시간이 지나자 먹구름이 서서히 걷히듯 통증도 사라졌다. 겨우 진통제 한 알에 요란한 통증은 말끔해졌다.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던 그녀보다 내가 더 엄살을 피운것 같아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그녀는 큰 그릇이다. 어떤 것을 담아도 빛이 나게 하는 그릇이다. 흙으로 빚었지만 오랜 시간 정성으로 구운 도자기처럼 그녀는 단단하고 강했다. 그녀가 몹쓸 병에 걸린 것은 몇 년 전 일이다. 지인들과 가족의 만류에도 수술을 포기했다.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환경미술협회를 이끌었고 솔선수범했다. 늘 활짝 핀 꽃처럼 환하게 웃었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편하게 대해 주변에 사람이 많았다. 덕분에 환경미술협회도 번창했다. 그녀는 크고 작은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했고 새로운 일을 만들어 앞장섰다. 이러한 그녀 행동이 암이 뼈까지 번져 수술도 어렵다는 사실을 믿지 않게 했고 가끔은 잊어버리게 했다.
그런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보듬은 따뜻한 손길만큼 많은 사람들이 눈물로 마지막을 애도했다. 그녀를 보내고 돌아와 방치했던 항아리 뚜껑을 찾았다. 지름이 한 뼘 정도 되는 항아리 뚜껑이다. 금이 간 고추장 항아리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되면서 혼자 남았다. 단짝 잃은 설움 혼자 삭히듯 베란다 구석에 있던 항아리 뚜껑이다. 작지만 단단하다. 화려하지 않지만 편하다. 무엇을 담아도 빛을 내줄 것 같은 질그릇이다. 물을 담으면 물 항아리가 되고 술을 담으면 술항아리가 된다. 질끈 허리를 꺽은 들꽃을 꽂아도 멋진 화병이 된다. 그날 이후 항아리 뚜껑에 두부 김치를 담으면 멋스러웠고 부침개를 올려놓으면 품격이 느껴졌다. 샐러드를 담으면 주인의 센스가 빛났다.
버릴 요량으로 마당 화단에 둔 금 간 고추장 항아리를 들고 왔다. 잊고 지낸 시간 관심 밖으로 밀려난 항아리는 깨져 있었다. 날카로운 모서리를 여러 날 갈아 손이 다치지 않게 다듬었다. 바닥에는 구멍도 뚫었다. 멋진 화분으로 재탄생했다. 가운데는 위로만 자라는 아비스를 심고 항아리 입구에는 길게 뻗어나가는 성질을 가진 호야를 심었다. 처음부터 화분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항아리는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항아리는 같은 화초를 심어도 일반 화분보다 눈길을 끄는 매력이 있다. 그릇이 가진 힘이다.
작은 체구의 그녀는 평범한 얼굴이다. 남다른 열정이 매사에 최선을 다하게 했을 뿐 눈에 띄는 화려함도 없다. 그녀 곁에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녀는 밝은 에너지를 나눠주는데 아낌이 없다. 평범한 얼굴의 그녀는 입 꼬리가 다 올라가도록 활짝 웃어 주변 사람의 경계를 허물었다. 질그릇 같은 그녀의 가장 강한 무기는 진정성에서 나오는 꾸밈없는 인품이었던 셈이다.
항아리 뚜껑에 음식을 담을 때마다 그녀가 살아난다. 깨진 항아리에 심은 화초를 볼 때에도 그녀는 곁에 있다. 음식을 빛나게 하는 그릇 같은 화초를 더 아름답게 만드는 항아리 같은 그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필경 그녀는 떠났지만 따뜻한 기억들이 남아 아름답게 꽃을 피운다. 올해는 호야 꽃이 활짝 피었다. 달달한 꿀을 머금은 꽃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눈길을 오래 머물게 하는 호야 꽃이 그녀를 닳았다. 변함없는 수수함이 더 값지게 느껴지는 호야 꽃을 만져본다. 입천장을 드러내고 환하게 웃는 그녀가 떠오른다. 우리가 친구로 보낸 칠 년의 시간이 어제 일처럼 스쳐간다.
“그곳에서도 맑은 웃음 전파하면서 바쁜 일정 보내고 있니? 친구야.”
고개 들어 하늘을 본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이 파랗다 못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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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장 난 손저울
이혜란
그럴 때가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헐거워진 고무 패킹 틈새로 물이 새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비집고 나왔다. 이런 날은 고개 빳빳하게 쳐들어 천정을 봐도 고개 모로 돌려 딴청 떨어도 속수무책이다. 휴지로 꾹꾹 찍어낸 눈가만 연신 따끔거렸다. 식당 바로 옆자리 짧은 커트를 한 반백의 할머니와 젊은 여자가 앉았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어서 많이 먹어"
"엄마 먼저 드세요."
접시를 밀고 당긴다. 서로 너무 챙기려다 언성이 살짝 높아지기도 한다. 그 모습마저 한없이 부럽다. 내게 없는 것, 아니 다시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얼굴, 엄마란 단어는 내게 치명적이게 아린 그리움으로 남아 있었다.
아버지 돌아가시고 꿋꿋하게 시골집을 지키던 엄마였다. 안부를 물을 때마다 잘 있으니 걱정 말라고 오히려 자식을 안심시키던 엄마가 이상 증상을 보인 것이다. 그 일은 마른하늘에 날벼락같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웃의 연락을 받고 달려갔을 때 다른 자식은 다 알아보면서 나만 못 알아봤다.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어찌할 줄 몰라하는 내게 언니들은 위로 같지 않은 위로를 했다. 가장 아끼고 사랑한 자식 정 떼는 거라고. 큰 아들 집으로 기도원으로 병원으로 전전하던 엄마는 딱 지금 내 나이쯤 돌아가셨다. 큰아이가 4살 때 일이니 벌써 30년 전의 일이다. 그렇게 엄마는 허무하게 병명조차 알지 못하고 내 곁을 영영 떠났다. 그러고 보니 지금 내가 딸 나이에 엄마를 잃은 셈이다.
팔 남매 중 막내딸에게 엄마의 손은 유독 후했다. 언니나 오빠에게 먹을 것을 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엄마의 논리는 명확해서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태어나서부터 젖이 말라 미음으로 근근이 키운 딸이다. 잔병치레가 심한 것도 젖을 물리지 못해서라고 여겼다. 심지어 몸집이 왜소하고 언니들보다 키가 작은 것도 당신 탓이라 여겼다. 그래서였을까. 엄마 손저울은 마음이 과하게 얹어졌고 중심에서 벗어나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어 고장이었다.
자식이 부모 마음 몰라 줄 때 자식 다 필요 없다는 말을 푸념처럼 한다. 하지만 마음에도 없는 소리다.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나는 부모가 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어설프게 엄마가 된 나는 힘든 시기를 딸과 함께 넘겼다. 학원을 운영할 때 일이다. 갑자기 개인 사정을 들어 결근한 선생님 대신 딸은 고등학교 졸업식 참석을 포기했다. 어차피 졸업식에 불참해도 졸업장은 준다는 논리였다. 그날도 나는 지고 말았다. 학원 아이들에게 선생님 빈자리를 채울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은 또래 친구들보다 고생을 많이 해서였을까. 큰딸은 철이 빨리 들었다. 무슨 일이든 매사에 혼자 해결하려 들고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런 모습이 너무 지나쳐 서운해질 때가 더 많았다. 진짜 효도는 엄마 마음 편하게 해주는 거라 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며칠 전에도 그랬다. 배탈이 심하게 난 딸은 출근을 못 하고 있었다. 약을 먹으려면 빈속은 안 된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엄마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고 마음만 동동거렸다. 생각 끝에 죽을 끓여 주려는데 엄마 힘들까 봐 있는 밥 먹으면 된다고 말린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찌개 끓이듯 속이 보글거린다. 종내는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꼭 너 닮은 딸 낳아서 키우라는 악담을 뱉고 말았다. 엄마 마음 몰라주는 딸이 야속해서 던지는 말이지만 금세 후회하는 것 보면 이 또한 진심은 아니다.
돌이켜 보면 나도 엄마가 되고 나서 엄마 마음을 알았다. 한없이 받기만 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정작 받은 사랑 돌려드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부모는 자식이 철들 때 까기 기다려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늘 죄송하고 못 해 드린 것만 마음에 남아 후회스럽다. 내가 그런 것처럼 내 딸도 같은 길을 갈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내리사랑일지 모른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언제부턴지 내 손저울도 고장이 났다. 자꾸만 마음이 얹어져 한쪽으로 기운다. 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옷을 사다 몰래 옷장에 걸어두었다. 옷을 발견한 딸 표정이 불 보듯 그려져 피식 웃음이 나왔다.
" 엄마 옷이나 사 입지"
" 하여튼 한번을 그냥 안 넘어가지"
나는 눈을 흘기고 옥신각신하겠지만 그래도 딸은 못 이기는 척 입고 다닐 것이 다.
딸은 딸 방식의 사랑 표현이고 나는 내 방식대로 딸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고장 난 손저울을 고칠 생각이 없다. 엄마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 내 딸도 그렇게 자식 키우며 아웅다웅 티격태격 살아갈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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