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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발자취(1)
베들레헴
(Bethlehem)
베들레헴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임금인 다윗이 태어나고 자라난 곳이며, 무엇보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으로 유명하다. 베들레헴의 지명은 히브리어로 “빵(레헴)”의 “집(벧트)”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 유대 사막을 배경으로 한 베들레헴
(Bethlehem with the Judaean Desert in the background)
■ 위치와 지형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남쪽으로 약 10km 떨어진 곳으로 해발 777m 지점의 석회암 언덕 위에 형성된 마을이다. 팔레스티나를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중앙 산악 지대에 위치한 이곳은 이집트에서 헤브론을 거쳐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주요 대상로(隊商路)에 위치했다. 이러한 지리적 요건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헤로데 군인들의 학살을 피해 이집트로 피신할 수 있었다.
▲ 크리스마스 이브에 베들레헴 구유 광장에서 가톨릭 행렬
(Catholic procession in Manger Square, Bethlehem, on Christmas Eve)
■ 구약성경의 베들레헴
구약성경에서 베들레헴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야곱의 사랑스런 아내인 라헬의 죽음과 관련 있다. 그녀는 베텔에서 베들레헴으로 가던 중에 야곱의 열두 번째 아들인 벤야민을 낳고 죽게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 가에 묻혔다.(창세 35,16~20) 그리고 판관 19,1에서 베들레헴은 유다 땅으로 소개된다. 룻기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는 유다 베들레헴이다. 즉 나오미와 보아즈의 고향이 베들레헴이다. 나오미의 며느리인 모압 출신 룻은 보아즈와 결혼하여 오벳을 낳았는데, 오벳은 이사이를 낳고 이사이는 다윗 임금을 낳았다.
1사무 16,1~13에 따르면,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나서 자란 곳일 뿐 아니라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곳이다. 그 후 베들레헴에는 필리스티아인들의 수비대가 있었고(2사무 23,14), 르하브암 임금은 그곳에 견고한 성읍을 세웠다.(2역대 11,6)
특히 베들레헴이 주목 받고 메시아 신앙의 중심지가 된 것은 미카 5,1의 예언 때문이다.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 너는 유다의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 너에게서 나오리라.” 즉,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태어나리라는 것이다.
■ 신약성경의 베들레헴
마태 2,1-12에 따르면, 헤로데 임금 때에 예수님이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동방 박사들이 그분을 경배하였다. 그 후 마태 2,16~18은 헤로데가 베들레헴과 그 온 일대에 사는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들을 학살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루카, 2,1~20에 의하면,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 등록을 위해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갔다. 거기에 머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하였고 아기 예수님을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그 고장에서 들에 살면서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 예수님을 찾아 와 경배하였다.
요한 7,41~42에서는 군중 중의 사람들이 “메시아가 갈릴래아에서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성경에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 가운데에서, 그리고 다윗이 살았던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하지 않았는가?”라고 말한다. 이것은 예수님 당시의 유다인들이 메시아와 관련하여 가지고 있던 생각을 잘 드러낸다.
■ 중요 순례 장소
베들레헴의 여러 중요한 장소들 중에서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몇 곳들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예수 탄생 성당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최초의 로마 제국 황제는 콘스탄티누스이다. 그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는 324년 베들레헴에 와서 예수님의 탄생지로 전해 오던 동굴에 순례하였다. 사실 기원후 2세기의 그리스도교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이 베들레헴의 동굴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이 전승은 나블루스 출신의 유스티누스 교부가 150년경에 쓴 “트리폰과의 대화”와 외경 중의 하나인 “야고보의 원 복음서”에 의해 전해진다. 헬레나 성녀는 이 동굴 위에 성당을 세우게 하였는데, 339년 5월 31일에 완성된 성당이 축성되었다. 콘스탄티누스 성당으로 불렸던 이 첫 번째 성당은 불행히도 화재로 소실되었다. 오늘날의 예수 성탄 성당은 531년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에 의해 세워졌다. 지금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인데, 현재의 성당에서 옛 콘스탄티누스 성당의 모자이크와 팔각형 구조를 발견할 수 있다.
▲ 예수 탄생 성당, 베들레헴
(Church of the Nativity, Bethlehem)
▲ 예수 탄생 성당의 튼튼한 기둥
(Stout pillars in the Church of the Nativity)
성당 입구로 들어서면 긴 회랑이 나온다. 바닥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 성당 바닥을 장식한 모자이크가 남아있다. 이 성당이 이슬람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고 지금까지 1500여년 동안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두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성당 정면에 있는 모자이크에 아기 예수를 경배하러 온 동방박사들이 페르시아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군은 이 모자이크를 보고 너무나 감동해 성당을 허물지 않고 참배했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이유는 「쿠란」에 동정녀 마리아가 하느님의 종이며 예언자인 예수를 종려나무 아래에서 낳았다고 하는데, 이 종려나무가 바로 베들레헴에 있다는 이슬람의 전설 때문이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예루살렘 이슬람 황금사원과 헤브론 성조 사원을 순례한 후 베들레헴 예수 탄생 성당도 참배하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성녀가 그리스도교 신앙 자유 이후 베들레헴에 순례와 예수님 탄생지로 전승돼 온 동굴 위에 지어 339년 5월 31일 봉헌한 성당이다. 그러나 이 성당은 화재로 소실됐고, 그 유일한 흔적으로 성당 중앙 통로 바닥의 모자이크가 있다. 지금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은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531년에 완공한 것으로 15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원형이 거의 그대로 보존돼 있다.
② 겸손의 문
아르메니아 수도원을 오른쪽에 두고 구유의 광장이라 불리는 넓은 광장을 지나 예수 성탄 성당을 향해 걷다보면 성당의 출입문을 만난다. 이 출입문은 시대에 따라 여러 차례 변화를 겪었다. 오늘날에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의 성당 상인방을 확인 할 수 있는데, 그 아래에는 중세 시대의 아치 모양의 출입문 흔적이 있다. 그 아래에 있는 현재의 출입문은 높이가 1.2m, 너비는 80cm가 채 되지 않는 매우 작은 형태이다. 이것은 말이나 마차를 타고 성당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작게 만든 것으로서 누구든 예수 성탄 성당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그래서 이 출입문을 “겸손의 문”이라 부른다.
③ 예수 탄생 동굴의 은색 별
예수 성탄 성당의 중앙 제대에서 계단으로 내려가면 예수 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그리스 정교회의 소유인데, 동굴 바닥에는 베들레헴의 별이라 불리는 은색 별이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탄생 지점을 가리킨다. 14조각의 은색 별은 마태오 복음서의 예수님 족보가 14대씩 나누어진 것을 상징한다.
이 베들레헴의 별은 마태 2,1~12의 동방 박사들이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성경에서 메시아와 관련되는 별의 이미지는 민수 24,17의 발람 예언인 “야곱에게서 별 하나가 솟고 / 이스라엘에게서 왕홀이 일어난다.”에서 유래한다.
▲ 예수 탄생 동굴 (Grotto of the Nativity)
▲ 베들레헴의 별, 예수 탄생 동굴
"이곳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
(Hic de Virgine Maria Jesus Christus Natus est.)
이 복된 말씀을 세상을 향해 선포하고 있는 세계 유일의 성당이 바로 베들레헴 '주님 탄생 기념 성당'이다. 이 성당에선 구세주 탄생을 기념해 매일 성탄 미사가 끊이지 않고 봉헌되고 있으며, 하루 수천 명 순례자가 성당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 있는 주님 탄생 동굴로 몰려와 '베들레헴의 별'에 손을 얹고 구세주를 경배한다.
중앙 제대 바로 아래에는 '예수 탄생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가톨릭과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각각 소유권을 갖고 있다. 중앙 제대 왼쪽은 아르메니아 정교회, 오른쪽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다. 예수 탄생 동굴은 그리스 정교회 소유이지만, '베들레헴의 별'이라 불리는 동굴 바닥의 은색 별은 가톨릭에서 설치한 것이다. 또 예수 탄생 동굴에서 3~4m 물러서서 두 계단을 내려가면 '구유동굴'이 있다. 아기 예수를 구유에 눕힌 곳이라고 하는 이 곳은 가톨릭 소유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가 하나되기를 희망하셨지만 당신의 탄생지조차 세 교회의 소유로 쪼개져 있는 것은 역사의 아니러니가 아닐 수 없다. |
④ 성 가타리나 성당
예수 성탄 성당의 왼쪽에는 근대식으로 지어진 가타리나 성당이 있는데, 가톨릭 교회 소유로서 1881년에 프란치스코회의 수도자들에 의해 세워졌다. 이 성당에서는 매년 성탄 자정 미사가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주례로 거행되는데, 이 미사는 전 세계로 생중계된다. 여담으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는 성탄절을 12월 25일에 지내는데, 그리스 정교회는 1월 6일, 아르메니아 교회는 1월 18일에 성탄절을 지낸다.
▲ 주님 탄생 기념 성당 왼편에는 188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세운 근대식 건축물인 '가타리나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에게 봉헌된 성당이다. 가타리나 성당 지하에는 예로니모 성인이 34년간 은거했던 동굴이 있다. 성 예로니모는 이 동굴에서 신ㆍ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 완간했는데 이것이 그 유명한 '불가타 역본'이다. 사진은 가타리나 성당 구유 예수로 매년 성탄 미사 때 등장하는 아기 예수상이다.
⑤ 예로니무스 성인의 동굴
가타리나 성당의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면 근처의 예수 탄생 동굴과 비슷한 여러 동굴들이 있다. 그 중의 한 동굴에서 예로니무스 성인이 386년부터 34년간 머물면서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였는데, 이것이 불가타(Vulgata) 성경이다.
별을 따라간 동방 박사 진리의 별 따랐던 페르시아의 현인들 ‘몰약’ ‘유향’ ‘금’ 세 가지 선물 통해 세 명 추정 성경의 ‘동방’은 현재 이라크 이란 방향 아기 예수 찾아 경배한 ‘겸손과 혜안’ 세속적 처세 지배하는 현시대에 큰 교훈 베들레헴에는 천오백여 년의 세월을 거쳐온 ‘예수 탄생 성당’이 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처음 봉헌했으며, 서기 6세기 유스티아누스 황제가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했다. 유난히 전쟁이 많았던 이스라엘에 이토록 오래된 성당이 보존된 계기는 ‘동방 박사와 아기 예수님’ 성화 덕분이었다. 서기 7세기 페르시아군이 침공했을 때, 그들은 탄생 성당 성화에서 동방 박사들이 페르시아 복장을 한 것을 발견했다. 이에 감동한 페르시아인들은,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는 줄 알고 무너뜨리지 않았다고 한다. 중요한 성지가 이런 생각지 못한 이유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찌 보면, 멀리서도 메시아를 알아본 동방 박사들은 그 후에도 메시아의 탄생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보호해 준 셈이다. ▲ 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제단의 별’. 성경에서 ‘동방’은 이스라엘 기준의 동쪽이므로 메소포타미아 곧 현재의 이라크, 이란 방향이다. 고대 페르시아는 이란 땅이 중심이었다. 동방 박사들은 페르시아 사제 계층으로 추정되며 왕실에서 임금을 섬겼다고 한다. 그러니 그 옛날 탄생 성당의 성화는 동방 박사들을 옳게 표현했던 셈이다. 이들은 페르시아 전통 종교인 ‘조로아스터’를 신봉했다고도 여겨지는데 조로아스터는 니체의 책으로도 유명한 ‘짜라투스투라’다. ‘동방 박사’는 페르시아어 ‘마구쉬’가 어원이며, 그리스어 ‘마고스’를 거쳐 라틴어 ‘마구스’가 되었다. 나중에는 ‘매직’, 곧 ‘마법’이라는 영단어로도 발전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의 움직임으로 시대의 흐름을 읽는 점성술가들이었다고 한다. 이 현인들은 점성술과 주변 지역의 정치, 특히 주변국 임금들의 즉위와 몰락에 관심이 많았던 듯하다. 그러니 헤로데는 심상치 않은 별의 움직임도 문제거니와 동방 박사들의 방문에도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다인의 피가 섞이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로마의 힘을 업고 왕위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점성술사들이 과히 긍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하느님은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방 임금들도 도구로 사용하시고(예레 43,10) 때로는 이방의 점술도 사실을 말하게 하신다(에제 21,26-28). 그래서 이 현인들은 구세주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한 이방 세계의 대표자들이며, 예수님을 성자로 받아들일 이방인들의 예표가 된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따라 예루살렘까지 왔으며(마태 2,1), 미카 5,1에 근거한 조언을 듣고 베들레헴까지 찾아갔다(마태 2,6). 이들은 헤로데도 알현했으나, 다시 와달라는 그의 부탁에도 돌아가지 않았다(마태 2,12). ▲ 이탈리아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당의 ‘구유 제단’. 우리는 동방 박사들을 셋으로 생각하지만, 마태오 복음은 몇 명인지 기록하지 않았다. 셋으로 여겨온 까닭은, 예수님께 바친 선물이 세 가지였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이들이 바친 ‘몰약’에서 예수님의 ‘죽음’을, 제사에 사용되는 ‘유향’에서 예수님의 ‘신성’을, ‘금’에서는 ‘왕권’을 떠올렸다. 예수님을 찾아온 동방 박사들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도 연상시킨다(1열왕 10장). 스바 여왕 또한 선물로 금과 향료 등을 가져왔다. 곧 마태오 복음은 다윗 후손 예수님과 다윗 아들 솔로몬의 공통점을 부각시키려 했던 것 같다. 솔로몬, 곧 ‘쉴로모’의 어근은 평화를 뜻하는 ‘샬롬’이다. 솔로몬은 이름값을 하여 그 시대에 전쟁이 없었다. 아기 예수님도 ‘평화의 군왕’으로서, 솔로몬을 능가하는 ‘끝없는 평화’를 가져오셨다(이사 9,5). 동방 박사들은 아기를 찾아내자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는데, 이것은 임금에게 행해지는 예의였다(1사무 24,9 1열왕 1,16). 페르시아 왕실을 섬긴 현인들이 한낱 아기에게 무릎을 꿇었음은 그들에게 배인 겸손과 진리를 알아보는 혜안을 드러내 준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베들레헴 탄생 성당의 구유 제단이 바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찾은 장소로 전해진다. 그러나 전승에 따르면 실제 구유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옮겨졌으므로, 베들레헴의 구유 제단은 기념 제단이다. 지성과 미덕 대신 감각적 욕망이 지배하는 요즘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우쳐주는 동방 박사들의 행보는 큰 교훈이다. 세속적인 처세술로는 권력을 쥔 헤로데에게 예를 표하는 것이 더 이익이 아니었겠는가?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겸손과 혜안으로 진리를 분별했기에 유다인들에 앞서 예수님을 만나는 기쁨을 누렸던 것이다.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천주교 광주대교구
남동 5.18 기념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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