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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한 가르침 경(M60) Apaṇṇaka Sutta
/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2권 548-573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라는 꼬살라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2.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이렇게 들었다.
“사꺄의 후예이고, 사까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라는 분이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다가 살라에 도착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른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부처님[佛]이며, 세존(世尊)이다.'라고.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낸다.'라고.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3. 그러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을 뵈러 갔다.
세존을 뵙고는 어떤 자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고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한 뒤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말없이 한 곁에 앉았다.
4. 한 곁에 앉은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에게는 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어떤 스승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는 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스승이 한 분도 없습니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에 드는 스승이 한 분도 없다면
이 확실한 가르침(*1)을 받아 지녀 실천해야 한다.
장자들이여, 확실한 가르침을 받아 지녀 실천하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 ‘확실한 가르침’은 apaṇṇaka-dhamm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모순되지 않음, 애매모호하지 않음, 확정적임,”으로 설명하고 있다. (MA.ⅲ.116)
장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확실한 가르침인가?”
5. (A)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2)
(*2) 여기서부터 본경 §5에는 ①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의 [사후] 단멸론(uccheda-vāda)이,
그리고 §13에는 ②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의 도덕부정론(akiriya-vāda)이,
그리고 §21에는 ③ 막칼리 고살라(Makkhaligosāla)의 무인론(ahetuka-vāda)이 나타난다.
주석서는 이 셋을 “확정된 삿된 견해(niyata-miccha-diṭṭhi)"라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계속해서 §9 등에서는 이런 견해를 가진 자는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언급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본경 §§5~28에서 이 세 가지 견해를 각각 모두 8가지 방법으로 드러내시어 모두 24가지로 설명하고 계신다.
역자는 각 문단에서 이 8가지를 각각 (A), (A1), (A2), (A3)와 (B), (B1), (B2), (B3)로 표기하였다.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3)
(*3) 이 정형구는 『디가니까야』 제1권 「사문과경」 §§23에 나타나는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의 [사후] 단멸론(uccheda-vāda)의 앞부분이다.
『청정도론』에서는 이것을 ‘열 가지 그릇된 견해’라 부르고 있다.
6. (B)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들 사문·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 ․ 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7. (A1)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그들은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지 못하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8. (A2)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말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9. (A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만약 저 세상이 없다면 이 몸이 무너지면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저 세상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여기에서 '이 사람은 나쁜 행실을 가졌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고 허무주의를 말한다.'라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 쪽 모두에서 최악의 패를 가진 것이다.
즉 바로 지금·여기에서 지자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 지녀 실천하여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
10. (B1) "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기 때문이다."
11. (B2)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바르게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나쁜 행실은 제거되고 좋은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와 바른 말과
성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음과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12. (B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 천상세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저 세상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여기에서 '이 사람은 좋은 행실을 가졌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내생이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지자들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패를 가진 것이다.
즉 바로 지금·여기에서 지자들의 칭송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 실천하여
해로운[不善] 경우를 배제하고 양면으로 모두 충족시킨다."(*1)
(*1)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는 것은 양쪽 부분인 자기의 주장(saka-vāda)과
다른 사람의 주장(para-vāda)을 모두 펴고 확신하면서 지낸다는 말이다.
‘저 세상이 있다.’라고 해도 안전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해도 안전하다.”(MA.ⅲ.118)
13. (A)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행하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키고, 슬픔을 주거나(*2)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주도록 시키고, 괴롭히거나(*3)
괴롭히도록 시키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거짓말을 하고 하더라도 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4)
(*2) “‘슬픔을 준다(socayato).'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등의 행위로
자기 스스로 슬픔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MA.ⅲ.118)
(*3) “‘괴롭힌다(kilamayto).'는 것은 음식을 빼앗거나 묶어놓거나 주거침입 등으로
자기 스스로 괴롭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MA.ⅲ.118)
(*4) “‘하더라도 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은
내가 어떤 죄악을 범하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하더라도 죄악(pāpa)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죄악도 없다는 말이다.”(MA.ⅲ.119)
만일 어떤 이가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갈아서
하나의 고깃덩이 하나의 고기뭉치로 만들어버리더라도
그로 인해 어떤 죄악도 없고, 죄악의 과보도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5) 가서 죽이거나 죽이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켜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고, 죄악의 과보도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도록 시키고,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도록 시키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공덕이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
(*5) “‘남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고 거칠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서는 ‘죽인다(hananta)’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반면, ‘북쪽 기슭’에 사는 사람들은 신심이 돈독하여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청정한 신뢰를 보였으므로
그들에 관해서는 ‘보시를 한다(dadanta)'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MA.ⅲ.119)
14. (B)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그들 사문·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행하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키고, 슬픔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주도록 시키고,
괴롭히거나 괴롭히도록 시키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거짓말을 하면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갈아서
하나의 고깃덩이 하나의 고기뭉치로 만들어버리더라도
그로 인해 죄악도 있고, 죄악의 과보도 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켜도 그로 인한 죄악도 있고, 죄악의 과보도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도록 시키고,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도록 시키면 그로 인한 공덕도 있고, 공덕의 과보도 있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진실한 말을 하면 공덕이 있고, 공덕이 생긴다.'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5. (A1) "장자들이여, 여기서 '행하거나 행하게 하고, …
공덕이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그들은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지 못하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16. (A2)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말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 대항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17. (A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업 지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지면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업 지음이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여기에서
'이 사람은 나쁜 행실을 가졌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고 업 지음이 없음을 말한다.'라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 쪽 모두에서 최악의 패를 가진 것이 된다.
즉 바로 지금·여기에서 지자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 지녀 실천하여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
대림스님 옮김. 『맛지마니까야』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