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와 가을비는 닮은 듯 다르다. 둘 다 이슬비나 가랑비의 형태이고 성격이 내성적이다. 그리고 그 두 가지 비가 내리면 사람들의 기분이 차분히 가라앉는 경향이 있다. 그 둘이 말수가 적은 건 비슷하지만 좀더 내막을 들여다보면 그 두 종류의 비는 성격이 미묘하게 다르다. 아마 봄비의 MBTI가 ISFP—조용하고 예술적이며 감각적 경험을 중시—라면 가을비는 ISTJ—신중하고 체계적이며 현실적 해결책을 선호—일 것 같다. 가을비가 자연과 인간을 잠재우는 반면에 봄비는 그들은 깨운다. 가을비는 만물에게 아쉬움이지만 봄비는 반가움이다.
봄비는 주로 밤에 기별 없이 왔다가 다음날 늦은 오후쯤 역시 소리 없이 간다. 봄비는 조심성이 커서 발자국 소리를 죽여서 오고 간다. 요란스럽게 찾아와서 한바탕 휘젓고 가는 여름 소낙비나 스토킹하듯 징하게 물고 늘어지는 장맛비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잠결에 누군가가 창문을 조심스럽게 똑 똑똑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고, 그게 봄비가 에어컨 실외기인지 보일러의 양철 연통인지를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라는 걸 알게 된다. 베란다 난간 가로대에 물방울들이 나란히 맺혀 있지만 그것들이 서둘러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는 않는다.
봄비는 조용한 감격이다. 날이 밝아 밖을 살펴보면 봄비를 맞이하는 세상은 평소보다 오히려 더 차분하다. 1945년 8월 15일, 일제 치하 우리민족에게 해방이 찾아왔던 바로 그날도 정작 차분하고 조용했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분인가가 해방이 도둑처럼 찾아왔다고 했다. 축복은 예고하고 주장하고 생색내고 사람들을 한껏 들띄워 놓고 찾아오는 게 아닌가 보다. 봄비가 이처럼 내로라 내세우지 않고 은근히 찾아오기 때문에 자연도 조용한 평화 속에서 그를 맞이한다. 그러나 그 조용한 평화 속에는 무한한 설렘과 가슴 박찬 감동이 담겨 있다. 겨우내 잠들어 있던 마른 씨앗의 머리를 봄비가 살짝 건드려 깨울 때 그 씨앗이 느끼는 반가움을 생각해 보라. 차갑고 메마른 흙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겨울을 보낸 나무뿌리와 풀뿌리들을 봄비가 따스하고 촉촉한 손길로 어루만질 때 그들이 느끼는 전율을 상상해 보라. 그 순간 씨앗들과 뿌리들은 고요한 환희의 탄성을 터뜨릴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봄비는 자연과 우리가 해마다 맞이하는 작은 구원이다. 혹시 언젠가 이 세상을 구원하게 될 구세주가 오게 된다면 그분도 봄비처럼 오시지 않을까. 세상을 구하겠다는 정치 지도자들이나 종교 지도자들이 너무 요란스럽고 뻔뻔할 정도로 떠들썩하게 생색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짜 구세주는 심판과 구원을 장대비처럼 퍼붓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신앙이 베푸는 평화는 우리의 마음속에 그리고 온 세상에 결코 강처럼 넘쳐흐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 평화를 벌컥벌컥 들이켤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봄비처럼 자연과 인간의 마음속에 천천히 스며들 것 같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구세주든 세상의 지도자든 그처럼 인자했으면 좋겠다. 변덕스러운 소나기나 미치광이 폭풍우처럼 날뛰는 정치 지도자들은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몇 사람으로 그만이었으면 좋겠다. 너무 호들갑스럽고 화끈하고 넘쳐흐르는 건 사람이든 자연이든, 사랑이든 평화든 반전이 있게 마련이고 폭력적일 가능성이 크다.
* 에밀리 디킨슨의 시 “A Light exists in Spring” (「봄에는 어떤 빛이 존재하네」)을 번역해서 소개하면서, 시의 첫 행 첫 단어인 ‘A Light’를 ‘A Rain’으로 바꾸어보았습니다.
A Light(A Rain)* exists in Spring
Not present on the Year
At any other period—
When March is scarcely here
A Color stands abroad
On Solitary Fields
That Science cannot overtake
But Human Nature feels.
It waits upon the Lawn,
It shows the furthest Tree
Upon the furthest Slope you know
It almost speaks to me.
Then as Horizons step
Or Noons report away
Without the Formula of sound
It passes and we stay—
A quality of loss
Affecting our Content
As Trade had suddenly encroached
Upon a Sacrament.
3월이 막 시작될 무렵
봄에는 어떤 빛이(비가)* 존재하네
연중 다른 어떤 시기에도
출현하는 않는—
외로운 들판에
한 가지 색깔이 사방으로 퍼지네
과학은 포착할 수 없지만
인간 본성은 느끼는 색깔이
그게 잔디밭에 문안하고
멀리 떨어져 있는 나무를 드러내 보여주네,
네가 아는 한 가장 먼 경사지에 서 있는 나무를
그게 나에게 말을 거는 듯하네.
그런 다음 지평선들이 발걸음을 옮기듯
혹은 한낮들이 보고하며 멀어지듯
소리의 어떤 형식도 갖추지 않고
그게 지나가고 우리는 머무네—
어떤 속성의 상실감은
우리의 만족감을 해치는데
그게 마치 성찬식에
갑자기 거래가 개입했을 때와 같네.
디킨슨의 위 시는 여리면서도 따스한 그러면서도 거의 초자연적인, 이른 봄날 빛이 띠는 특성을 묘사한다. 그 빛은 혹은 빛깔은 짧은 순간 존재했다가 덧없이 사라지면서 우리에게 심원한 상실감 같은 걸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 빛을 감각적으로 경험하지만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 빛은 무한한 경외감과 깊은 영적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그 빛이 가버리고 나면 우리는 성찬식에 세속적인 거래가 침입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봄비도 우리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것 같다.
첫댓글 호미 님에게서 ’봄비와 같은 사람‘이라고 불리우는 분은 최고의 찬사를 받은 거네요. ^^
그렇지도 않습니다. 글짓기를 하느라 억지스럽게 사삭스러운 표현을 짜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어떤 비든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내리면 반가운 선이고 그렇지 않을 때 내리면 귀찮은 악인 것 같습니다.
성찬식은 일종의 거래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 구원의 거래, 혹은 교환이라고나 할까요? 신학적으로는 속성의 교환, 뭐 이런 이야기도 합니다만.. 아마도 그래서 일부러 communion이 아니라 sacrament를 썼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변덕스런 소나기나 폭풍우를 고요하게 바라볼 수 있기만을 바래봅니다.
참 아름다운 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