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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24 주일설교
맹인 인도자를 따라가지 말라
(마태복음 15:12~14)
1. 예수님에 관한 오해 바로잡기: 예수님의 복음은 한없는 사랑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잘못된 개념을 바로잡으신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는 신자 가운데 예수님에 관해 크게 오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다름을 비판하지 말고, 서로서로 사랑하며 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살라고 하셨다는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온화한 말투로 달콤한 사랑의 복음을 말씀하셨다고 하는 생각은 착각일 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예수님의 복음은 매우 전투적인 복음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많이 하신 것은 사람들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고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망하는 길, 죽는 길에서 돌이키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이 전해주신 복음입니다. 그것을 위해 예수님은 자주 사람들을 공격했습니다. 바리새파, 사두개파,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은 물론이고 평민들도 공격 대상이었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아무에게나 시비걸고 싸운 것은 아니고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있어서 공격했지만 어쨌던 예수님은 늘 싸웠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할 때 예수님의 첫마디는 “회개하라”하는 말이었습니다(마 4:17). 세례 요한의 첫마디도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뉘우치라는 뜻도 있지만 돌이키라는 의미가 훨씬 강합니다. 내가 ‘이천’으로 가야 하는데 실수로 ‘연천’으로 가고 있음을 알았다면 빨리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가던 길을 멈추고 하던 짓을 멈추고 생각도 멈추고 말도 멈추고 새로운 길을 가며 새로운 생각과 말을 하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도전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멈추고 돌이키라고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이겠습니까?
예수님이 회개하라고 하신 것은 너희들이 잘못된 가치관으로 엉터리 삶을 살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잘못 살았던 이유는 그들이 잘못 배웠기 때문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라고 하셨습니다.
(마 5: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마 5:27)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마 5:28)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처럼 예수님은 사람들이 잘못 배워 잘못 살고 있는 것을 지적하고 바로잡았는데 그것이 바로 하나님 백성이 되는 바른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천국 백성이 되는 길이기 때문에 복음이지 말투가 온화하고 내용이 사랑스러워서 복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오병이어로 5000명을 먹인 것은 예수님이 생명의 양식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천국 복음은 서로서로 양보하고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어떤 죄도 용납하고 평화롭게 지내는 것이 아닙니다. 암 덩어리는 과감하게 도려내고 정결하게 되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심지어 오른손이 죄를 짓게 하면 오른손을 잘라내고 눈이 죄를 짓게 하면 눈을 뽑아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이보다 과격한 말은 또 없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족도 버리고 가족과도 싸우라고 하셨습니다.
(마 10:35)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마 10:36)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6장에서는 잘못된 의, 잘못된 구제, 잘못하는 기도, 엉터리 금식을 지적하며 바른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잘못 배워 생각이 잘못되니 구제와 기도와 금식 같은 종교 행위조차 잘못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바른 삶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은 1절에서 비판하지 말라고 시작하지만 이어지는 본문에서 예수님은 신랄하게 사람들을 비판하십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사람이 성경적으로 틀려도 틀렸다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남보고 틀렸다고 비판할 일이 아니라 자신이 틀린 것을 알고 자신을 고치라는 말씀입니다. 자신도 성경적으로 틀린 것을 고치고 다른 사람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났으면 돌아오게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8~10장에서는 병을 고치고 능력을 행함으로 예수님이 메시야이심 증명해 주셨는데, 이어지는 11장에서는 예수님을 거부하는 세대를 지적하셨습니다(11:16). 그리고 12장에서는 잘못된 안식일 개념을 바로잡고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여 입을 다물게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서는 7가지 비유로 천국의 특징을 말씀하셨는데 이 역시 단순히 천국의 특징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천국의 개념을 교정해 주신 것입니다.
2. 사람들의 문제: 성경을 읽고도 자꾸만 바리새인의 제자가 되어 간다.
마태복음 15장에서는 예루살렘에서 파송 받은 바리새인과 서기관, 즉 당시 율법 전문가들이 음식 먹기 전에 손을 씻는 정결 예식 문제로 예수님을 공격하는 문제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된 정결 예식 개념을 완전히 깨어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너희가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마 15:8). 그리고 사람의 교훈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한다고 지적하셨습니다(9절). 이처럼 예수님의 사역은 계속해서 사람들을 지적하고 비판하고 왜곡을 바로잡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은 마치 장기간 외출했다가 돌아온 엄마가 하는 일과 비슷합니다. 엄마는 가장 먼저 아이들이 집안을 어지럽힌 것을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친구를 데리고 와서 난잡하게 놀았다면 그 친구는 돌려보냅니다. 집 밖에서 더러운 것을 가지고 들어왔다면 집 밖으로 던져버립니다. 설거지를 하고 옷가지를 주워서 옷걸이에 걸거나 세탁기에 던지고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모으고 얼룩진 것은 걸레로 닦고 먼지는 청소기로 제거하고 그런 다음에야 맛있는 것을 차려줄 수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엄마가 와서 어질러진 집을 정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는 신자, 심지어 예수님의 가르침을 설교하는 설교자조차도 자꾸만 예수님의 제자가 아니라 바리새인의 제자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구약시대에도 있었는데 그래서 선지자들이 애타게 회개하라고 외쳤습니다. 회개하라는 말은 결코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미움받을 소리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모두 미움을 받았습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행 7:51)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도 너희 조상과 같이 항상 성령을 거스르는도다. (행 7:52)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 (행 7:53) 너희는 천사가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을 듣고 유대인들은 돌을 들어 스데반을 쳐 죽였습니다.
말씀을 왜곡하는 일은 중세시대도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교회를 바로잡았으나 100년이 되지 못하여 다시 변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종교개혁 이후 500년이 지난 지금 또 개혁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자꾸만 잘못된 것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게 좋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게 죄인들의 속성과 잘 맞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가치관을 성경과 비교하며 수정하고 개혁해야 합니다. 한번 개혁된 교회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개혁이 필요합니다.
“개혁된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해야 한다.”
3.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우리는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까요? 예수님은 좋은 말씀만 하셨고 서로서로 사랑하고 용납하고 평화롭게 살라고 하셨다는 고정관념부터 버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이 사랑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복음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포용하는 톨레랑스가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톨레랑스가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절대 순종만이 사는 길임을 믿으시면 ‘아멘’하세요.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 사랑의 종교인데 왜 남자끼리 사랑하고 여자끼리 사랑하는 동성애는 반대하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이 무슨 말인지 완전히 오해한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란 죄인에게 반복해서 찾아오시고 하나님과 원수된 우리를 살리시려고 예수님을 보내어 우리 대신 죽게 하심으로 지옥 백성을 천국 백성으로 만드는 그런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음란도 용납하고 동성애도 인정하고 우상숭배도 용납하면서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는 종교다원주의, 남의 종교를 비판하지 않고 서로서로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동성애는 가증하다, 혐오스럽다고 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와 인신 제사 역시 가증하다고 혐오하셨습니다. 과거의 인신 제사는 이 시대에 낙태로 표출되고 있습니다. 낙태는 명백한 태아 살해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 마태복음 15:14에서 예수님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첫째,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둘째, 맹인 인도자를 따라가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인 맹인을 지도자로 삼아 따라가지 말라는 말입니다.
구약시대의 영적인 맹인 인도자로는 거짓 선지자가 있었고 예수님 시대에는 바리새파와 사두개파, 잘못된 율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은 크게 두 종류의 맹인 인도자가 있는데 하나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있고 또 하나는 신비주의 이단이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자는 남달리 똑똑하고 공부를 많이 해서 사람을 미혹합니다. 신비주의 이단은 남달리 경건하고 기도를 많이해서 사람을 미혹합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자기를 성경의 권위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인간의 학문과 신비 체험을 성경 위에 올려놓는 사람들은 사악한 맹인 인도자입니다.
오늘날 교인 중 다수가 거짓에 미혹되어 있습니다. 특히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를 윤리 종교로 만들어버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죄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윤리 실천 종교는 모두를 인정하고 사랑하자고 속입니다. 간음과 동성애를 사랑이라고 속입니다. 하지만 부부의 범위를 넘어선 사랑은 범죄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거대한 영적인 전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온 누리에 평화를 주러 오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영적인 싸움을 하러 오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지금 여러분을 용사로 부르고 계십니다. 사실 그 싸움은 사탄이 먼저 시작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하와를 찾아와서 유혹을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참과 거짓의 싸움에 졌지만 예수님은 이기셨고 우리에게 이기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맹인 인도자를 따라가지 말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참과 거짓의 싸움, 거룩과 음란의 싸움에서 여러분은 어느 편에 서시겠습니까? 택함 받고 은혜 입은 여러분은 절대로 맹인 인도자, 거짓 선지자를 따르지 말고 주 예수님 편에 서서 진리의 싸움에 동참하는 용사가 되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용사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https://youtu.be/B8wbiIxIluQ?si=VEFhRNIQr41575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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