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걸이 릴레이 / 박미숙
고등학교 친구 ㅎ 딸 결혼식이 있었다. 시댁과 친정에 형제가 없어 손님이 적을 거라고 걱정하길래 일찌감치 식장에 도착했다. 고운 한복 입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감색 정장 차림이라 의외였다. 한 번 빌려서 입으려면 50만 원이나 들어 아까워서, 그 돈으로 옷 한 벌 장만했다고 한다. 한복을 입진 않았지만, 릴레이(relay) 중인 진주 귀걸이가 은은하게 빛나고 있다.
4년 전, 작은딸이 혼사를 앞두고 진주 귀걸이를 선물해 줬다. 한복에 하면 예뻐 보인다고 하면서. 역시 올림머리에 잘 어울렸다. 평소에는 쓰지 않을 것이라 그냥 두기가 아까웠다. 마침, 제일 친한 ㄱ 아들 결혼식이 있어 “내 귀걸이 줄 테니 사지 마라.”고 했다. 축하해 주러 온 친구들에게, 앞으로 자식들 시집, 장가보낼 때는 저 귀걸이를 돌려가며 하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다. 일곱 명이 다 찬성했다. 그렇게 하여 귀걸이 릴레이가 시작되었다.
요즘은 결혼을 잘 하지 않으려는 세태이지만, 친구들 아들, 딸은 1년에 한두 명은 백년가약을 맺게 되어 귀걸이가 오랫동안 잠자는 일은 없다. ㅎ은 다섯 번째 주자다. 한복은 입지 않았지만, 릴레이에는 참여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다른 집과 좀 달랐다. 양가 어머니가 초에 불을 밝히는 의식을 생략한다. 그러고 보니 사위의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예전에 들은 기억이 난다. ‘아, 그래서 한복을 입지 않았구나.’ 싶었다. 축사하는 ㅎ 남편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한다. 시어머니와의 갈등으로 부부가 계속 떨어져 살았는데, 아내 없이 혼자서 딸을 키우던 힘든 시간이 떠오르는 모양이다. 울먹이는 아버지 얘기를 듣고 있는 신부는 눈물을 주르륵주르륵 흘린다. 항상 밝고 씩씩해 보였는데.... 앉아서 듣고 있는 ㅎ도 연신 눈물을 훔친다. 모두 숙연하다.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순서가 되었다. 신랑 부모님 자리는 비었고 탁자에 꽃바구니가 놓여 있더니, 거기다 절을 하며 하늘에 계신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드린다. 마지막으로 신랑 신부 행진. 신부는 어느새 활짝 웃는 얼굴이 되어 있고 신랑도 싱글벙글거리며 하객들에게 손을 흔든다. 명랑해 보인다. 혼자서 외롭던 ㅎ이 의지할 수 있는 또 한 명의 자식이 생긴 것 같아 지켜보는 우리도 든든해진다.
“다음은 누구 차례지?” “내가 받을 것 같은데, 꼭 껴야 할까?”라는 ㅅ의 말에 다들 합창이라도 하듯이 “그럼, 껴야지.”라고 한다. 집에 뒀으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을, 이렇게 좋은 날 돌아가며 쓰니 더욱 빛을 발한다. 이제 우리에게 진주 귀걸이는 단순히 장식이 아니다. 저만큼 키워서 시집, 장가보내느라 애썼다고 서로를 토닥이며 기쁨을 함께 나누려는 오랜 우정의 표식이다.
친구들은 내게 ‘은근한 리더(leader)’라고 말들 한다. 재작년 겨울, 삿포로 여행을 가면서 ‘삼선 운동복을 실내복으로 입자’는 의견에 빨, 주, 노, 초, 파, 남, 보로 하나씩 샀다. 라인 댄스(line dance) 공연복으로 입었던 주황색 옷을 그냥 두기가 아까워 한마디 한 것인데 모두 따라주었다. 하루 일정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서 무지갯빛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호텔 의자에 쭉 앉아 찍은 사진을 보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그 옷차림으로 호프(hof)에 가서 먹지도 못하는 술을 마시고 술김에 친구들에게 별명을 하나씩 지어 주었다. 마치 우리 반 아이들에게 하는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니 민망했는데, 그들은 그것이 여행을 더욱 즐겁게 해 주었다고 한다.
내 머리에는 때때로 이렇게 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번뜩인다. 사위를 맞으며, 우리 집을 환하게 하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최 서방’ 대신 ‘해님’이라고 불렀다. 다행히 사위는 이름에서 오는 무게감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며, 집안의 해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난 부족한 점이 많다. 예체능계로는 영 소질이 없다. 주민 자치 센터에서 배우는 보자기 공예나 라인 댄스 시간에 옆 사람과 비교하면서 부끄러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무언가에 특별한 의미를 붙이며 함께 하는 이들과 끈끈함을 맺어가는 것. 이것도 재주라고 할 수 있으려나?
첫댓글 당연하죠.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뛰어난 재주 분명합니다.
고맙습니다.
끈근한 정 맺는 것 재주 중에서도 상재주입니다. 아무나 하지 못하지요. 번뜩이는 생각도 재주입니다.
과찬의 말씀, 고맙습니다.
기발한 일을 생각했어요. '귀걸이 릴레이'라 그것 참 괜찮네요.
제가 시작해 놓고도 '참 잘했다' 싶답니다.
아이디어가 반짝반짝 빛나는 생활의 달인이네요.. 평범한 일상을 비범하게 만드는 재주가
돋보입니다.
선생님의 귀한 댓글에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고맙습니다.
귀걸이를 릴레이하다니, 정말 신선한 발상이네요. 우리 주변에도 박미숙 선생님 같은 분이 계시면 참 좋겠어요.
저도 재주 많으신 선생님과 이웃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야외 수업 때 꼭 뵙고 싶어요.
관계를 독독히 하는 건 정말 특별한 능력이네요.
조용하지만 내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니까요.
진주 귀걸이를 돌려서 끼는 참신한 생각을 어떻게 하신 건지, 정말 신기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돈독한 관계를 잘 이어나가는 데 양교장 선생님을 능가할 수 있는 분은 아무도 안 계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그런 발상을 하셨을까요? 정말 재주꾼이십니다. 제목을 보고 학생들 수업에 관한 릴레이인 줄 알았거든요. 선생님 글은 언제나 읽기가 편하고 좋습니다.
아, 고맙습니다. 평범하기만한 제 글이 발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선생님께서 만드시는 음식, 꼭 먹어보고 싶습니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하셨을까요? 우정에 재밌는 추억을 쌓아가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를 띤 선생님은 더 찐한 우정 만들어 가실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