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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미주 가르멜 가족 원문보기 글쓴이: 모세수사
1. 현상학 관련 작품과 번역서
1.6. 세례 이전에 출간된 현상학 관련 작품들
1) 『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절친한 동료였던 아돌프 라이나흐가 1917년에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미망인과 동료들 사이에서는 라이나흐의 유고집을 출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에 부응해서 에디트는 이 작업을 맡았으며 특히 ‘운동’ 문제에 대한 라이나흐의 사상을 정리하는 난해한 작업을 하게 된다. 이는 라이나흐가 1913년부터 1914년에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강의를 통해 나눈 주요 주제 가운데 하나였다.
1918년 에디트는 상당 기간을 괴팅겐에 머무는 가운데 라이나흐의 미망인인 안나 라이나흐 부인과 함께 라이나흐가 남긴 원고들을 정리하면서 출간을 준비했다. 이 원고는 1920년에 완전히 준비됐으며 이듬해인 1921년 라이나흐의 유고집으로 출간됐다. A. Reinach, Gesammelte Schrifte,Niemeyer, Halle, 1921.에디트가 정리한 부분은 이 책의 406〜461에 『운동의 본질에 대하여』 라는 제하에 포함됐다.
여기서 에디트는 운동과 관련해서 제논을 비롯해 엘레아학파,디오게네스의 견해에 대해 언급한 후 다음의 네 가지 대 주제를 소개했다. 1)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제시
된 논쟁, 2)베르그송에 의해 제시된 논쟁, 3)운동의 본질, 4) 제논의 어려움들에 대한 발견.
2) 『인격의 구조와 그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
이 책은 에디트의 작품 가운데 작성 시기와 관련해서 가장 논란이 많은 작품이다. 또한 에디트를 연구하는 학자들 가운데는 아직도 그 제목에 대해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 작품은 다음의 제목으로 출간됐기 때문이다. 『인격의 구조와 그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 작품의 작성 시기와 관련해서 다양한 논란은 있지만, 이 작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서간집』718에 준해서 볼 때 이 작품은 대략 1921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작품은 이전의 여러 작품에 비해 적은 분량이지만, 에ᅵ디트의 전체 작품 세계에서 볼 때 일종의 보석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본서가 다루고 있는 주요 주제는 출간된 제목이 제시하는 것과 달리, “본성,자유,은총”이다. 그가 이 책을 통해 다룬 이 주제들은 그리스도교 철학의 고전적인 문제들이다. 즉 본성과 은총간의 관계, 은총과 자유 간의 관계가 그렇다. 또한 그는 여기서 구원에 대한 은총과 자유의 참여 문제도 다뤘다。
1.7. 1922년 이후에 출간된 현상학 관련 작품들
1) 『현상학이란무엇인가?』
이 작품은 에디트가 가톨릭 교회에 입교하고 난 후 처음으로 쓴 작품이다. 이 작품은 1924년에 잡지 Wissenschaftliche Beilage zur Neuen Pfälzischen Landeszeitung을 통해 발표된 논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논문의 제목은 아주 간결하다. 『현상학이란 무엇 인가?』. 내용 역시 제목에 맞게 현상학의 본질에 대해 다루고 있다. 에디트는 얼마 되지 않는 분량을 통해 현상학이 의도하는 바가 진정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해 이 학파가 탄생된 역사에 대해 소개했다. 당시 학계에서는 아직 현상학에 대한 이해에 혼란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어서 에디트는 다음의 세 가지 측면 을 규명하는 가운데 현상학적 방법론을 종합적으로 제시했다. 의식의 객관성,직관,관념론. 마지막으로 그는 이 짧은 분량으로 현상학을 본격적으로 다루기에는 무리임을 의식하는 가운데 후설의 주요 작품에 그 작업을 일임했다.
2) 『후설의 현상학과 성 토마스의 철학』
1922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후 에디트는 몇 년간 그간의 방대한 철학 연구, 특히 현상학에 대한 연구를 멈춘 듯이 보였다。그 시절의 에디트는 슈파이어의 사범학교 교사로 활동 하며 성 토마스의 주요 작품들에 대한 번역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나 당시 쓴 여러 편지를 통해 우리는 그가 여전히 현상학과 관련된 많은 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에디트는 자신의 스승인 후설의 70회 생일을 기념하는 시기에 즈음해서 새롭게 현상학에 몰두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이미 신앙인이 된 그는 이전과 달리 그리스도교 철학을 바탕으로 현상학과의 연계를 추구하는 작업에 들어갔으며, 이 에 대한 결실이 다름 아닌 『후설의 현상학과 성 토마스의 철학』이다.
이 작품은 1929년 후설을 기리는 현상학 연보에 추가된 특집호로 출간됐다. 여기서 에디트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그리스도교 철학과 현상학 사이의 대화를 시도했다. 하지만 하이데거는 이러한 에디트의 시도를 탐탁해하지 않았다. 훗날 이 작품은 에디트 슈타인 작품 전집의 제15권으로 1993년에 다시 출간됐다. 제목 역시 다음과 같이 약간 수정됐다。『철학이란 무엇인가? 에드문트 후설과 토마스 아퀴나스 간의 대화』.
3) 『현상학의 우주론적 의미』
『현상학의 우주론적 의미』역시 소품에 해당된다. 이 작품이 작성된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작성한 목적 역시 알 수 없다. 다만, 여러 가지 정황으로 봤을 때 1930년대 초반에 작성 됐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성녀가 본문에서 현상학의 탄생에 대해 말하면서 “대략 30년 전”이라고 언급한 것을 바탕으로 추정 한 것이다。여기에 더해 작품의 원본 종이와 필체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이 작품이 정확히 에디트가 뭔스터에서 활동할 당시인 1932년부터 1933년 사이에 작성됐을 것으로 학계에서는 추정한다.
에디트는 작품의 1장을 통해 제목에 소개된 용어들의 의미를 규정하는 가운데 주제를 전개했다. 또한 후설과 막스 셸러, 후설과 하이데거 사이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석, 소개했다. 반면, 2장에서는 현대 세계의 개념에 있어서 현상학이 갖는 중요성을 고찰했다. 그리고 세계와 관련된 가톨릭적인 전망과 현대 철학의 전망을 비교 분석하면서 작품을 마무리했다.
4) 『현상학』
에디트는 이 작품을 통해 1932년 9월 쥐비시에서 있었던 토마스 학회 모임에 참석했다. 이 작품 당시 모임에서 있었던 여러 발제자들 중에 에디트가 발표했던 것이다. 이 모임에 초대된 것은 에디트가 이미 뭔스터의 교육 연구소에서 교수로 활동하던 때였다. 에디트는 이 모임을 통해 자크 마리탱을 비롯해 당대의 가롤릭 지성들을 만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에디트는 이 모임에 현상학 분야의 전문가로 초빙됐다. 당시 에디트가 발제한 것은 훗날 불어로 번역되었으며 불어와 독어 두 개의 언어로 출간됐 다. 해당 주제에 대한 에디트의 발제는 분명하고 정확했다. 에디트의 발제문은 Journées d’Etudes de la Société Thomiste, Editions du Cerf, Paris,1932에 『현상학』이라는 제하에 실려 서 출간됐다.
1.8. 첫 번째 번역서들
1) 번역가로서의 에디트 슈타인
번역가로서의 에디트 슈타인은 그의 사상에 대한 연구와 관련해서 아직 제대로 조명된 부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살던 시대에 고대와 현대의 여러 주요 작품들을 번역, 소개함으로써 신학적인 차원에서 독일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다. 예컨대 그는 현대의 대표적인 사상가인 에리히 프르치 바라와 폴 뉴먼의 주요 작품들뿐만 아니라 신학 역사상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성 토마스의 주요 작품들을 독어로 번역했다.
에디트가 처음으로 시도한 번역서는 그의 동료 철학자 가운데 하나인 알렉산더 코이레의 연구서였다. 이 역서를 기점으로 그는 1930년까지 다양한 역서를 소개했다. 소위 ‘철학함’을 자신의 생애에 있어 주요 작업으로 여겼던 에디트에게 있어 역자로서의 활동은 그의 사상을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여하튼 에디트는 1920년대에 심혈을 기울여 다양한 저자들의 주요 작품을 독일 신학계에 소개했다. 알렉산더 코이레의 작품에 대한 번역을 끝낸 에디트는 상당한 시간을 들여 뉴만의 작품들에 대한 번역 작업에 몰두했으며 이어서 성 토마스의 주요 작품들도 손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참 후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한 다음에는 위 디오니시오의 작품 전집을 번역했으며 십자가 성 요한의 작품 가운데 시들을 번역했다. 그리고 그 밖에 전례와 관련된 성가,시편, 기도문 등도 번역 했다. 번역가로서의 에디트를 접하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보다 그는 다양한 고대어와 현대어에 능통했다는 점이다.
그가 번역한 작품들은 영어,프랑스어,스페인어 같은 현대어를 비롯해 라틴어,그리스어 같은 고대어에 걸쳐 있었다. 그는 이러한 언어적 재능을 바탕으로 고대와 현대의 주요 사상가들의 비전을 접했으며 이를 번역, 소개함으로써 독일 철학계와 신학계에 공헌했다。
2) 첫 번째 번역서
앞서 잠시 언급 했듯이, 에디트가 처음으로 번역한 작품은 그의 동료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알렉산더 코이레가 불어로 쓴 다음의 작품이다. 『데카르트의 사상에서 본 하느님에 대한 개념과 그 존재 증명에 대한 시도 (Essai sur I’idée de Dieu et les preuves de son existence chez Descartes)』. 당시 저자는 이 작품이 불어와 독어로 동시에 출간되기를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는 못했다. 결국 1922년 불어판만 출간됐으며 독어판은 그로부터 1년 후인 1923년에 출간됐다. 에디트는 이 번역 작업을 자신의 절친한 벗인 헤드비히와 함께했다. 에디트는 이를 위해 1921년부터 1922년까지 근 2년을 그의 집에서 보냈으며 이 시기는 그가 헤드비히의 집에서 성녀의 『자서전』을 접함으로써 가톨릭으로 전향할 것을 결심한 바로 직후에 해당된다.
독어로 출간된 이 작품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데카르트와 스콜라철학 (Descartes und die Scholastik)』. 이 책은 1923년 코헨 출판사에 의해 본에서 출간됐다. 그러나 이 책에는 에디트와 관련된 직간접적인 언급이 전혀 없다. 아마도 헤드비히와 에디트 의 의도는 동료인 코이레를 도와주고 자신들은 드러내지 않으려는 것 같다 이 작품이 에디트의 역서임을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1922년 9월 30일 자로 잉가르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이다 (서간 731).
3) 에리히 프르치바라와 뉴먼의 작품에 대한 번역
프르치바라는 19세기 초 독일 가톨릭 신학을 꽃피운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예수회원이다. 그의 업적 가운데 하나는 디트리하 폰 힐데브란트와 함께 뉴먼 추기경의 주요 작품들을 독어로 번역한 것이다„ 두 사람은 뉴먼의 사상이 독일 가톨릭 사상의 변화와 토착화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여기며 그의 작품에 대한 번역 작업에 착수했다.
힐데브란트와 에디트 슈타인은 괴팅겐의 현상학회에 소속되어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 왔으며 프르치바라는 힐데브란트의 소개로 1923년 에디트를 알게 된다。힐데브란트는 1914년 가톨릭으로 개종했으며 1920년대에 뮌헨에 테아티너 출판사를 설립해 뉴먼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번역, 출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프르치바라는 에디트를 가톨릭 철학 학회로 인도했으며 그가 다양한 주제로 강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또한 프르치바라는 에디트로 하여금 성 토마스의 작품들을 번역하도록 조언하기도 했다. 물론 두 사람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프르치바라는 에디트로부터 현상학의 영향을 받았으며 자신의 주요 작품인 『존재의 유비』 에서 자신이 철학적인 면에서 슈타인 박사의 제자라고 고백한 바 있다.
4) 뉴먼 추기경의 작품
에디트는 1923년 6월 19일 자로 자신의 절친한 벗인 잉가르텐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쓴 바 있다. “그 일을 하기에는 여유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부서지는 바람에 1년 전에 시작한 뉴먼 추기경의 『대학의 이상』 을 번역하기가 어렵습 니다. 이제 그 책의 제2권을 번역해야 합니다. 그 책을 번역하는 것은 제게 진정 기쁨입니다.”(서간 737).
우리는 이 편지를 통해 당시 에디트가 구체적으로 뉴먼의 어떤 작품을 번역했는지 알 수 있다。1) 『대학와 이상』. 이 작품은 에디트 생전에 출간되지 못했으며 현대로 들어와 2004년에야 에디트 슈타인 작품 전집 가운데 21권으로 출간됐다. 2) 에디트가 번역, 출간한 뉴먼 추기경의 책은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하기 전까지 작성했던 『일기』 와『서간집』이다. 이 두 권에 대한 번역 작업은 1925년에 끝났을 것으로 추정되며 1928년에 『가톨릭교회로 전향하기까지의 서간과 일기(1801-1845)』 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현재 이 작품은 『인생의 전반부에 있어서 서간과 텍스트(1801〜1846)』 라는 제목으로 에디트 슈타인 작품 전집 22권에 속한다.
1.9. 성 토마스의 작품들에 대한 번역
1) 성 토마스와의 만남
에디트는 가톨릭교회로 들어온 뒤 끊임없이 풍부하기 그지없는 가톨릭 전통을 알고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보다 그는 여러 가지 이유로 성 토마스의 사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가 1923년부터 1931년까지 가르쳤던 도미니코 수녀회에서 운영하던 성녀 막달레나 사범학교에서 여러 성인 가운데 특히 성 토마스를 공경했던 것도 특기할 만하다. 에디트가 성 토마스의 작품들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뉴먼 추기경의 작품들에 대한 번역 작업이 끝난 1925년부터였다.
당시 에디트가 관심을 가졌던 토마스의 작품은 『진리론』 으로, 이는 프르치바라와의 만남을 통해 영감을 받은 것이다. 당시 두 사람 은 공통의 학문적인 긴급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즉 가톨릭의 전통 철학과 현대 철학을 비교하는 가운데 둘 사이를 새롭게 통합하는 것이 그것이다. 에디트가 1925년 8월 8일자로 잉가르텐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와 관련해서 에디트의 원의가 잘 드러나 있다. 분명한 것은, 에디트가 성 토마스의 사상에 깊이 빠져 들어갈수록, 그의 철학 작품들을 번역해야 한다는 깊은 확신을 갖게 됐다는 점이다. 가톨릭 철학과 현대 철학 간의 결실 있는 대화를 원한다면 그에 합당한 자료를 마련하는 게 필요했기 때문이다. 성 토마스의 작품은 에디트로 하여금 이 작업을 진지하게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었다.
2) 성 토마스의 『진리론』 번역
에디트는 성 토마스의 작품 번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미를 부여했다. “성 토마스와 관련된 작업에서 제 일은 없습니다. 저는 단지 성 토마스가 말하게 할 뿐입니다. 저는 각각의 연구의 마지막에 어떠한 비판적 입장도 취하지 않은 채 그분의 글에 대해 간단히 요약할 분입니다”(서간 812).
그러나 성 토마스의 사상에 대한 에디트의 연구는 단순히 그의 작품에 대한 번역에 그치지 않고 그가 제기한 주제들을 현대적 스타일로 가공해서 적용시키는 데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에디트는 성 토마스의 사상을 충실히 재현하기 위해 그가 설명한 모든 주제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역서가 출간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에디트가 번역한 성 토마스의 작품은 학계에서 잘 받아들여졌으며 당시 독일의 그리스도교 계열의 주요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인 그라브만은 이 역서에 추천사를 써 주기도 했다. 에디트가 번역한 성 토마스의 『진리론』은 1931-1932년에 두 권으로 나뉘어 출간됐다。그로부터 한참 후 에디트는 이를 보완하는 또 다른 책의 출간을 준비했다. 그것은 성 토마스의 철학 분야에 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들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일종의 『성 토마스 사상 색인 용어집』 이라고 할 수 있다. 에디트가 번역한 『진리론』은 훗날 에디트 슈타인 작품 전집의 3권과 4권으로 출간됐다.
3) 성 토마스의 『유(有)와 본질에 대하여』 번역
에디트는 『진리론』에 대한 번역과 더불어 성 토마스의 사상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구 작업을 통해 에디트가 이룬 주목할 만한 결실이 다름 아닌 『현실태와 가능태』 라는 작품으로 그는 이를 통해 성 토마스의 사상과 현상학 간의 대화를 시도했다. 이 주제가 한층 더 광범위하게 다뤄진 작품이 그의 『유한한 존재와 영원한 존재』라는 작품이다. 이에 더해 에디트는 성 토마스의 주요 작품 가운데 하나인 『유와 본질에 대하여』 라는 작품을 번역했다.
그가 정확히 언제 이 작품을 번역했는지 는 알 수 없지만 대략 1934년에 쾰른 가르멜 수녀원에서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주지하다시피,에디트는 수녀원에 입회한 후 서원을 발한 다음, 장상들의 허락 하에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당시 에디트는 그리스도교 사상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위해 성 토마스의 이 작품을 번역했다. 또한이 선상에서 훗날 위 디오니시오의 작품들도 번역하게 된다.
첫댓글 성녀 에디트 슈타인의 작품 세계 (현상학 관련 작품과 번역서) (2)
자료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