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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행하라. 霊の導きに従って歩みなさい。( 2024년 12월 8일 주일예배)
본문 갈 5:16~21
갈 5:16 ○내가 또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이 둘이 서로 적대관계에 있으므로,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18 그런데 여러분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19 육체의 행실은 환히 드러난 것들입니다. 곧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20 우상숭배와 마술과 원수맺음과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분쟁과 분열과 파당과 21 질투와 술취함과 흥청망청 먹고 마시는 놀음과, 그와 같은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여러분에게 경고하였지만, 이제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할 것입니다..
16. わたしが言いたいのは、こういうことです。霊の導きに従って歩みなさい。そうすれば、決して肉の欲望を満足させるようなことはありません。17. 肉の望むところは、霊に反し、霊の望むところは、肉に反するからです。肉と霊とが対立し合っているので、あなたがたは、自分のしたいと思うことができないのです。18. しかし、霊に導かれているなら、あなたがたは、律法の下にはいません。19. 肉の業は明らかです。それは、姦淫、わいせつ、好色、20. 偶像礼拝、魔術、敵意、争い、そねみ、怒り、利己心、不和、仲間争い、21. ねたみ、泥酔、酒宴、その他このたぐいのものです。以前言っておいたように、ここでも前もって言いますが、このようなことを行う者は、神の国を受け継ぐことはできません。
지난 주일에는 복음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누리게 된 자유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이란 육신적이고 감정적인 기분에 내키는 행동이 아니라, 상대의 존엄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지키는 태도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끝없는 탐욕과 욕망으로 인해 혼돈과 심판을 자초하는 이 세대 가운데, 서로의 존엄과 영생의 가치를 지켜주는 강력한 자유의 주인공으로 든든히 설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주일에 나눴던 본문 중에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는 방종을 경계하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서는 가장 먼저 이러한 방종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은 성령님께 순종할 때 얻을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은 성령이 인도해 주시는 대로 살아갈 것을 요청하고 있는데요. 바로 성령께 순종하는 것이지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령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바울은 성경이 곧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 밝히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며, 어떤 태도로 살기를 원하시는 지를 알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이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성경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곧 모든 성경구절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의 일점일획도 빠트리지 않고 모조리 암기한 다음에야 경우 성령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은 우리가 가진 현실적인 한계입니다. 또한 보고 듣는 만큼 알게 되는 것도 사실이지요. 그러므로 먼저는 성경을 아는 시간, 즉 접하는 기회를 자주 가져야 하고, 또한 그렇게 할 때 성령님의 음성을 분별하는 앎의 지평이 확장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살기 위해서 가장 먼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읽고 듣고 생각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일상의 가장 첫 시간으로 두시기를 강력히 권면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오케스트라를 연주하기 위해서 모든 연주자들은 반드시 자신의 악기를 조율하지요. 그런데 너무 상식적이게도... 악기를 조율하는 시간은 연주가 끝난 순간이 아니라, 연주를 하기 전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만큼의 삶을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면 성경 앞에 자신을 앉히는 시간을 먼저 확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위해서는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과 함께 성령충만을 기도하고 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의 모습이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성령님께서 마가의 2층 집에 모여서 기도하던 120명의 제자들에게 불의 혀와 같은 모습으로 임하시는 것을 증언하고 있죠.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승천하신 후 함께 모여서 열흘동안 힘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행 1:14-15a)
하나님께서 우리를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성령님의 능력을 체감하도록 하시는데 기도라는 방법을 취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다니시던 어느 날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에 들려 고생하는 아이를 고쳐 주셨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 아이의 아버지는 먼저 제자들에게 치유를 요청했는데요. 제자들은 이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 그 때 제자들은 자신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나중에 예수님께 여쭈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 9:29)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능력을 실감나게 체험하는 현실에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구하고, 자신의 소망을 진솔하고 명확하게 주님께 아뢰며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품게 하신 소원이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씨앗이 된다고 증언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
우리는 각자 그 소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 소원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 선한 길로 가는 씨앗이 됩니다. 그 기도의 응답으로 가장 선한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가장 선한 것, 가장 위대한 것, 가장 강력한 것이 곧 성령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 11:13)
아버지는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어합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싶어하지만,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그 더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과수원을 운영하는 어떤 부자인 아버지에게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 아들은 늘 게으름만 피우고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중병에 걸려 죽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셋을 앞에 앉히고 유언하였습니다. 과수원 어느 곳엔가 보물상자를 묻어 두었다고... 그러니 아버지가 죽거든 그 보물상자를 꺼내서 셋이 셋으로 나누어 가지라고 말이지요. 아버지가 죽고 세 아들은 그 뒤로 과수원 이곳저곳을 파보며 보물상자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보물상자는 발견되지 않았지요.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제들이 열심히 과수원 이곳저곳을 삽으로 일구어 놓은 덕분에 풍년이 들었다고 합니다. 풍작을 이룬 과수원의 수확과 부지런히 땀을 흘려 몸을 움직이면 반드시 풍족한 열매를 맺는다는 가르침이 그들에게 가장 값지고 축복된 유산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과 기도로 자신을 지키려 하면 당장은 자기 육신의 바람과 행동에 거리낌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하지요.
17절에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이 바라시는 것은 육체를 거스릅니다.” ...
말씀과 기도로 살아가는 것은 우리의 육신이나, 기분에 항상 맞아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는 뜻인데요. 우리의 육신과 기분, 감정은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걸림돌이 된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 이렇게 조금은 과하게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 8:5,13)
육신의 본능과 감각, 그리고 기분에 따라서 살면 육신의 마지막인 사망과 함께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우리의 죽음과 함께 썩어져 모두 분해되어 흙으로, 혹은 먼지가 되어 흩어져 버리는 것을 압니다.
성경은 경고합니다.
모든 육체가 다 함께 죽으며 사람은 흙으로 돌아가리라 (욥 34:15)
그렇습니다. 육체의 결말은 흙과 먼지입니다. 그리고 그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히 9:27)
그 심판의 자리에서 우리는 단 한 가지의 기준으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인데요. 말씀 드린 대로 성령에 따라 살았는지, 아니면 육신을 따라 육체의 욕망과 본능에 충실하며 살았는지로 판결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심판을 이렇게 말합니다.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계 20:12)
계시록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는 우리의 행한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요. 멸망의 심판을 받을 행위인 육체의 행실은 오늘 본문의 19절부터 21절 전반부까지에 기록된 내용입니다. 다시 읽기에도 민망하며 망측한 행실들이지요. 물론 본문에 기록된 이 15가지만 딱 피하고 다른 육신의 행실은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육신의 본능에 충실하여 살면 대표적으로 드러나는 행실들 중에 이러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외에 로마서 1장이나, 고린도전서 6장, 골로새서 3장, 디모데전서 1장, 계시록 21장 등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실을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제어하거나, 몸부림치며 애를 쓴다고 해서 금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 때 나타나는 증거와 증상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것 뿐이지요. 따라서 이런 성경적 죄의 행실들이 나타나면 더욱 성령님을 의지하고, 회개하여, 성령충만을 구하며, 말씀으로 자신의 지키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죄를 지을 자유가 아닌, 죄를 거부할 자유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랑할 자유라고도 하였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구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갈 자유입니다.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사용하는 자유는 결국 이런 더러운 행실의 열매를 맺게 되고, 그 행실로 말미암아 종말의 때에 죄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구원받아 의의 심판으로 영생에 이르게 되는 문을 열고 들어갈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그리스도인입니다. 복음을 믿는 우리는 육체의 행실에 따라 심판을 받아야 할 존재가 아닙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보혈로 정결하게 해 주신 거룩한 존재로 거듭난 성령의 인도하심에 합당한 존재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 존재의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매일 말씀을 읽습니다. 그리고 기도로서 주님께서 채우시는 성령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이고, 권능이며, 능력이 되고, 축복과 풍족함의 반석이 되는 것을 확고히 믿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일상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의 인도하시는 대로 살기 위해 먼저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로 마음에 안에 일어나는 거룩한 소원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십니다. 어떠한 기도에도 귀를 기울이시며 성령으로 응답하여 주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면, 우리는 육신의 욕망과 탐욕이 맺는 더러운 행실에서 자유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주님과 더욱 친밀하고 늘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삶을 통해 우리는 이 세상 가장 풍요롭고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만남과 성취, 성공의 축복 모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가운데 주어질 때 비로소 우리에게 좋은 열매로 맺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현실에서도 풍족한 축복의 주인공으로 일상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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