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에 앞서..
지난주 혹독한 칼바람을 맞으며 미련스럽게 산행한 댓가는
코에 생긴 영광의 상처였다. (2도 동상 凍傷 걸렸슴다.) ^^;
이제 추운 산은 정나미가 떨어져 이번 주는 한 주 쉬려고 했는데..
막상 주말이 다가오자 금새 마음이 흔들린다.
여자의 마음은 변하기 쉽고, 남자의마음은 흔들리기 쉽다?
일기예보의 원안대로 날씨가 추워지면 아예 포기할텐데
아, 이눔의 날씨가 와이리도 점점 따뜻해지는가 말이다.
결국 집에서 빈둥거리느니 산에 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난다. ㅋㅋ
마침 크리스마스를 맞이하여 서울서 아들도 내려오고
딸도 수능시험을 마쳤으므로 역사적(?)인 가족산행을 가기로 한다.
산에 가기를 싫어하는 딸은 엄마와 한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한다고 한다.
어쩐지 순순히 따라온다고 했더니 다 이유가 있은 셈이다. 크..
산행지는 근교산으로 하되 산행기를 쓰지 않은 산으로 압축하니 적석산이 당첨이다.
어느분께서 말씀하시길 적석산에 현수교도 새로 건립했다니 구경도 할겸..
그런데 적석산 만으로는 너무 짧아 깃대봉을 경유하기로 작심한다.
▷ 발산재 (수발사 입구 산행초입) <11:55>
발산재(고갯길)로 향하여 올라가면 고갯길 못가 교차로가 나타난다.
이 교차로에서 직진하면 새로 길이 난 도로가 나오는 발산재(절개지)가 나오지만
좌측 길(舊 도로)로 진입해 조금 올라오니 잠시 후 수발사 입구에 도착한다.
수발사 안내판이 보이는 이곳에 주차를 하고 기념 촬영을 한다.
이렇게 가족끼리 산행을 하는 것이 실로 얼마만이던가!
▷ 수발사 <12:07>
산행초입에서 조금 올라오면 삼성각(三聖閣)이란 건물이 나타난다.
생김새가 법당 같고 탑까지 있어 처음에는 삼성각이 수발사인줄 알았다.
하지만 삼성각을 지나 50m쯤 올라오면 멋진 수발사가 나온다.
수발사입구 좌측으로 산판길 같이 넓은 등로가 산행초입이다.
이 산판길을 올라가면 좌측 산길로 이어지고 산길을 따라
약 10분 정도 올라가면 묘 4기가 나타난다. 다시 묘지를 지나
오름길을 치고 올라오니 땀이 많이나 외투를 벗는다.
한 20분 땀을 흘리니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 깃대봉 오름길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괘방산~오봉산~여항산~서북산 라인 <12:45>
▷ 첫 번째 암봉에서 바라본 적석산 <12:49>
전망바위에서 조금 올라오니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바라보는조망은 대충 시계방향으로
괘방산, 오봉산, 여항산, 서북산, 광려산, 인성산,
적석산, 구절산, 깃대봉 등이 보인다.
▷ 위 사진 네모부분을 줌 촬영 (현수교 지나 산님들이 보이는 좌측의 넓은 반석이 정상.) <12:50>
▷ 깃대봉 오름길 능선에서 뒤돌아본 첫 번째 암봉쪽 풍경 (판상절리형 바위가 보인다.) <12:55>
첫 번째 암봉을 지나 10분 정도 바위 능선길을 걸어오면
너럭바위가 있는 두 번째 봉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선 서쪽의 산군들이 잘 보이는데
고만고만한 산들이 하도 많기도 하지만 이곳은
유명산이 거의 없어 식별이 곤란하구나.. (무식 탄로)
확실한 것은 이곳이 깃대봉이 아니라는 것..ㅋㅋ
▷ 깃대봉 정상 <13:20>
두 번째 봉우리 정상에서 20분 정도 오르면 깃대봉 정상이다.
산행초입에서 이곳까지 1시간 25분 정도 걸린 셈이다.
오늘은 가족과 함께하므로 평소보다 많이 느린 산행이다.
이 사진은 아내가 찍었는데 좀 흔들린것 같다.
(사진이 이것 밖에 없어 할 수 없이 실었슴다.) ^^;
▷ 깃대봉에서 남쪽으로 하산하면 만나는 삼거리 길 <13:38>
▷ 삼거리 길에서 조금 가면 우측으로 리본이 많이 달린 오름길이 나타난다. <13:54> 깃대봉에서 잠시 능선길을 걷다가 잠시 후 급경사길로 쏟아져 내려간다.
평소보다 천천히 내려오는데도 세 식구들은 보이지 않는다.
바람이 세게 불어 앉아서 기다릴 수도 없어 그대로 내려오니 임도가 나타난다.
5분 정도 기다리고 있으니 그제서야 세 사람이 내려온다.
이제 길은 탄탄대로라 그대로 내려가면 슬슬동풍인데
우측 오름길에 리본이 많이 붙어있는 것을 본 아내가
우측으로 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며 나를 헷갈리게 한다.
나도 확실히 등로를 모르므로 일단 아내의 의사대로
우측 오름길을 올라가니 정상 등로가 아니었다.
아마도 이 길은 낙남정맥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잠시 후 바람없고 낙엽이 깔린 멋진 곳에서 전을 펼친다.
S라면에 파송송 계란 '탁'하고 넣으니
모두들 맛이 좋다고 야단이다. ㅋㅋ ^^
▷ 삼거리길에서 10분 정도 내려오면 나타나는 사거리길 <14:36>
점심 식사를 마치고 넓은 임도를
유유자적 한 10분정도 내려오면 사거리가 나타난다.
불쌍한 딸은 제발 직진하는 오름길이 아니길 빌었지만
불행(?)하게도 가야할 길은 직진(오름길)이다. ㅋㅋ
하지만 조금만 오르면 곧 길은 비단길로 이어진다.
▷ 일암저수지 갈림길 (정상 1.2km - 이정표 - 일암저수지 1.2km) <14:48>
비단길을 지나 15시경 암릉지대가 나타난다.
암릉을 직등할까 하다가 오른쪽으로 우회한다.
모녀의 산행속도가 만고강산이라
나역시 만고강산으로 올라가니 모녀와 간격이 유지된다. ㅋㅋ
암릉을 우회하니 전방에 또 다른 암봉이 보인다. (통천문 암봉)
이곳에서 망원경으로 깃대봉 정상을 살펴본다.
(정상석이 하도 작아서 보이지 않았슴다.) ^^;
▷ 전망 암봉에서 바라본 적석산의 암봉 (가운데 통천문바위가 보인다.) <15:06>
이곳에서 정상까지가 백미라 할 것이다.
전망 암봉을 지나면 본격적인 릿지길인데
철제 시건장치가 있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또한 이곳의 암릉은 편평한 돌들을 차곡차곡 쌓은
판상절리(板狀節理)형상이다.
판상절리 (板狀節理)) 란..
땅속 깊히 묻혀 있던 암석이 침식을 받아 땅 표면에 드러나면
암석이 받치고 있던 하중(荷重)이 제거되면서 균열이 생긴다.
이러한 균열은 지표에 평행하게 배열되며,
그 간격은 지표에 가까울수록 좁고 지표에서 멀어질수록 넓다.
판상절리가 잘 발달한 암괴(岩塊)는
양파껍질처럼 조금씩 암석조각이 떨어져 나간다.
화강암에서 잘 일어나며, 미국의 요세미티국립공원에 있는 바위나
우리 나라의 서부지방에서 많이 발견된다
▷ 전망 능선에서 바라본 깃대봉과 지나온 능선 <15:11>
▷ 통천문 풍경(철제다리를 건너 바위틈새로 길이 열려 있다.) <15:16>
적석산에도 통천문이 있다.
아들이 서 있는 곳에서 왼쪽으로 에돌면 바위틈새가 보인다.
이 틈새로 들어가 철계단을 건너면 암봉을 오를 수 있으니
참으로 자연의 조화가 신비롭지 아니한가!
▷ 현수교를 건너면 적석산 정상이다. <15:22>
통천문을 통과하면 또 다른 암봉이 나타난다.
바로 저곳이 적석산 정상이다.
그런데 몇 년전에는 없었던 멋진 현수교가 보인다. ^^
마산시에서 건립한 이 현수교의 준공식은
놀랍게도 내일(2005.12.26.)이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그 높이가 장난이 아니다.
하이고오 어지러버.. 띠용~~
▷ 현수교 다리에서 바라본 남쪽풍경 (고성 거류산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통영 벽방산이다.) <15:24>
▷ 적석산 정상에서 가족사진을.. <15:33>
적석산 정상에서 먼저오신 산객의 도움으로
가족사진을 찍는다. 그동안 숱하게 산에 다녔지만
산 정상에서 우리 네 식구가 찍은 유일한 사진인 셈이다.
▷ 뒤돌아본 적석산 정상 (까마귀 떼와 현수교 그리고 서쪽의 山群들이 보인다.) <15:39>
적석산 정상에는 유난히 까마귀가 많았다.
상공에는 제트기류가 흐르는지 마치 매처럼 비행을 하고 있다.
사진을 놓쳤지만 하산시 한 무리의 까마귀 떼들이 일제히 날라가는데
정말 멋진 장면이었다. 옛날엔 까마귀가 흉조였지만
요즘은 길조로 바뀐지 오래다.
▷ 하산하면서 바라본 적석산 정상의 암봉 <15:54>
적석산 정상에서 내려오면 길은 두 갈래 나뉘진다.
우측은 고성 구만면 하산길이고 좌측이 마산시 진전면 하산길이다.
좌측 길로 들어서서 다시 좌측 급경사 길로 쏟아져 내려가면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로서 가장 짧은 길이고
직진 능선길이 지도상 가려고 하는 길이다.
좌측 하산길을 버리고 직진한다고 하니
혼자서라도 좌측 주차장 길을 가겠다고 하는 딸을
아내가 살살 달래서(꼬셔서) 내려온다. 그런데 잠시 후
한참을 기다려도 아내와 딸이 내려오지 않아 슬슬 부아가 난다.
(알고봤더니 아내와 신발을 바꿔 신느라 그랬다 한다.)
홧김(?)에 다시는 같이 오지 않겠다고 하니
안 그래도 이제는 두 번 다시 산에는 오지 않겠다고 한다.
한술 더 떠, 아빠 산행기가 완성되면 아빠의 만행(?)을
독자들에게 모두 알리겠다는 무서운 으름장을 놓는다.
(못된 승질은 꼭 제 애비를 닮아가지고스리..쯥) 하지만 밉지 않으니..^^
▷ 하산길 풍경 (유순한 육산길) <16:15>
하산길은 유순한 육산길로 이어지고
잠시 후 16시 19분. 우측으로 임도가 나타난다.
임도길을 버리고 좌측 산길로 내려가니
16시 25분. 두 갈래 길이 나타난다.
직진하고 싶었지만 아내의 뜻대로 좌측 길로 내려오니
경사가 심한 비탈길이다. 비탈길을 내려오다가
뱀 허물을 발견한 아들이 신기해하며 두 모녀에게 보여준다.
잠시 후 1분간격으로 묘 한 기씩을 지나고
5분 후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너덜지대에서 조금 내려오니
큰 병풍바위가 나타나는데 어느 무속인의 기도처였다.
부탄가스와 물통이 있어 이곳에서 취사를 했음을 알 수 있었고
병풍바위에는 세 명의 신(大神) 이름을 적은 요상한 글귀가 붙어있다.
이 병풍바위에서 한 5~6분 내려오면 마을 어귀에 도착한다.
▷ 마을 어귀에서 바라본 석양에 물든 적석산과 깃대봉 <16:57>
▷ 기망쥐 아들과 귀여운 토끼 딸 (적석산아 안녕~~) <17:02>
▷ 변씨 사당인 성구사 (誠久祠) <17:08>
성구사 (誠久祠)
고려말 충신 '변빈'선생과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변연수' 장군과
그의 아들 '변입'의 충절을 기리는 사당이다. 변빈선생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평리(정2품)로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성만용, 정몽주, 홍제, 이색, 조열 등
많은 충신들과 함께 망국의 한으로 슬퍼하다가 두문동에 들어가 죽으니
두문동 72현의 한 분이시다.
변연수 장군은 조선 중종33년 (1538년) 이곳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한 분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원근에서 의병을 모아 왜적을 격퇴하고 이순신 장군 휘하에
합류하여 당포와 옥포해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으며 정유재란때 당포해전에서
아들 변입과 함께 사력을 다해 적과 싸우며 순국하였다.
아들 변입은 전사한 아버지의 시신을 안고 통곡하며 父命에 따라 마지막까지 분전하다
그도 또한 아버지의 뒤를 따라 장렬한 최후를 마쳤다. 나라에서는 변연수 장군에게는 증 병조판서
아들에게는 증 좌승지의 첩지를 내리고 고향에 정려(삼강려)를 내려 후세귀감으로 삼게 하였다.
세상에서는 이 세 분을 일러 卞氏三賢 또는 三忠이라 일컫는다.
성구사는 후손들과 전국 유림에 의하여 1914년 인근 서제골에서 이곳에 이축하여 세워졌으며
매년 제향을 올린다. 그리고 경내에는 도산서원과 일신제 존양제 등 부속건물이 있다.
▷ 양촌리 마빈온천 <17:36>
사찰인줄만 알았던 변씨 사당 '성구사'는 한창 수리중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관광객은 사절이라한다.
할 수 없이 밖에서 사진만 한 컷 찍고 내려간다.
이곳에서 히치를 하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다.
결국 양촌 마을까지 걸어가니 마침 버스가 올라온다.
양촌리에서 제일 멋진 건물인 '마빈 온천'에서 온천욕을 즐기고
통영으로 돌아와 친구가 경영하는 '장어생각'에서 저녁을 먹은 후
집으로 들어가면서 (당연히 긍정적인 답이 나올 것으로 예상 하면서 ^^ )
"오늘 참 단산즐산 했다. 그치?" 하니..
산행 내내 재밋나? 하고 물으니 그 대답이 시원찮았던 딸..
마지막 말씀이 걸작이다.
"재밋긴, 나는 절산(切山)이다. 흥! "
흐으미.. ^^:;;;;;
산행지도
다음카페의 오류로 파노라마사진이 일방통행으로 달리오니 아래 사진에다가 마우스를 대고 클릭하신 후
다시 우하단에 나타나는 확대 표시에다가 재차 마우스를 대고 클릭하시면 긴 파노라마사진을 한방에 보실 수 있습니다. ^^
[2005.12.25. 12:49]
[깃대봉 오름길 (첫 번째 전망 암봉)에서 바라본 파노라마]
올 한해 허접한 제 산행기를 사랑해 주신 많은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허접 산행기를 쓴지도 어언 3년이 흘렀습니다.
언젠가는 끝이 찾아올 것이지만 산행기를 쓰는 순간만큼은
최선을 다한 산행기를 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