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섭은 1884년 7월 21일 경북 안동군 풍북면(豊北面) 오미동(五美洞)에서 풍산(豊山) 김씨(金氏)인 부친 김병규(金秉奎)와 모친 신천 강씨(信川康氏) 사이에 2남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김지섭은 어릴 때부터 재주가 비상하고 학문에 출중하여 천재의 칭송을 받았고 일찍이 한학을 배워 사서삼경에 능통하였고,1910년 8월 일제의 무력과 강압에 의하여 국권이 상실되자 자신도 공직을 분연히 사직하고 고향으로 내려와 김원봉(金元鳳)․곽재기(廓在驥)․김시현(金始顯) 등과 시국을 담론하여 조국독립 운동방략에 대하여 숙의하였다. 1919년 운동이 일어나자 김응섭과 함께 대구에서 독립운동을 계획하였으며 그 후 일제치하에 있는 국내에서 더 이상 활동이 어렵게 되자 국외에서 동지들을 규합하였고 독립투쟁을 조직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1920년 5월 단신으로 국경을 넘어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후 1924년 1월 24일 이중교에 폭탄을 투척하기로 결정하였고, 다음날 오전11시 폭탄을 투척하려고 하지만 부근을 순찰하고 있던 경관에게 들키고 재빨리 폭탄을 던지지만 불행하게도 도화선의 고장으로 뇌관만 발화 하였을 뿐 폭발되지 않았다. 김지섭은 순간 번개같이 호위경관을 밀치고 나머지 폭탄2개를 이중교 한복판에 던졌으나 이번 또한 약한소리의 폭음만 내고 불화되고 말았다. 결국 거사는 실패하였고 1928년 2월 20일 옥사 순국하시니 향년 44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