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시동선생유탐라기(詩童先生遊耽羅記)

[바당 집(이승익)]

시동선생유탐라기(詩童先生遊耽羅記)|

 

// 1. 또라이 송이 아닙니다


   그날 바다는 조용했다. 우리들이 나누는 정담을 빼지 않고 들어보려는 듯
파도도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낸 자신의 시 몇
편 읽어보고 이어 천상병의 "새"를 낭송했다. 낭송이 끝나는 순간 다시 시끌
벅적대는 술자리. 그가 자신을 소개했다. 경상도 억양이 강한 바리톤 목소리로
"지는 에라이 송, 아니믄 또라이 송이라 캅니다."
   권재효 시인의 "미루나무가 있는 풍경"을 이승익 시인이 낭송했다. 대단한
시이다. 듣는 이 모두 감탄하고 있는 사이 송 시인의 부인도 활발하게 그녀의
문학관을 피력하면서 자리는 뜨거워졌다. 술판이 서서히 익어 가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송 시인의 직업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이에
송 시인이 철공쟁이 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예전에는 기름쟁이 라고 소개했다
가 철공쟁이라고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고 했다.
   그러다 또라이 송이 라고 본인을 소개할 필요가 있냐고 그 동안 불만이
쌓였는지 부인이 애교 있는 말투로 쏘아 부쳤다. 이에 우리는 항상 어린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시인이 되는 게 좋겠다 싶어 소나무 송에 아해 동자를 써
송동(松童)이 시인이라 부르기로 했다. 한참 화제 삼아 이야기하다 송동이
송유천 보다 시동이라는 호가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글쓰는 사람이니 글 시에 아해 동을 써 시동(詩童)이라 하면 어떨까 라는
말이었다. 본인도 만족하고 부인이 더 시동이라는 호를 좋아했다. 이제까지의
또라이 송유천이 시동선생 송유천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모두 술 한잔 더
하면서 시동선생을 축하해주었다. 

   2 귀염둥이 남편


   귀엽다는 형용사는 사람을 "귀(貴)하게 대한다"의 뜻이다.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 치고 귀하고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겠지만 그중 제일은 부부가 아닐까.
그 사람은 실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는 얼굴을 지니고 있다. 이마에 주름살,
볼에도 약간 깊이 파인 주름이 있고. 귀여운 얼굴과는 거리가 있게 보인다.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가 볼 때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귀염둥이인데. 바로
그 부인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걸 모르고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실
없이 떠들어 대고 있었으니. 아이구, 우리 남편이 얼마나 귀여운 데요. 자세히
보면 보조개도 있고 마 이리 귀여운 사람 있음니꺼. 음성도 좋고...
   그리 보니 귀여운 얼굴이다. 귀여운 얼굴이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눈으로 귀엽게 보면 귀엽게 보이는 게 정상 아닌가. 미적 기준이라는 것도
애초에 따로 없는 주관적인 판단이니까. 그랬다. 귀여웠다. 남편을 그리 바라
보고 그리 생각하며 귀하게 대하는 부인의 사랑이 귀여웠다.
   그녀는 시를 쓰는 남편의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는다 한다. 시를 읽고
이러쿵저러쿵 평을 하면 남편의 시풍이 달라질까 걱정하는 깊은 속내가 그녀의
마음속에 있어서이다. 부인 역시 문학을 공부하고 사랑하는 문학도이기에.
귀염둥이 남편에 귀염둥이 아내가 아닌가. 내 입가에 살며시 미소가 살아났다.

3 시동선생


   난생 처음 제주도를 여행한다는 시동선생. 태풍 '디에무'가 온다는 소식에 여행
마저 취소되는 줄 알았다. 다행히도 첫날은 비가 조금 내려 여행에 운치를 더해
주었다. 성산포로 가는 길에 주위에 보이는 검은 색의 밭을 보고, 안개 낀 오름을
보고 지평선을 보았다는 말에 역시 시인은 눈이 남다르구나 생각했다.
   남자 넷이서 마신 소주 10병 속에 문우로서의 우정이 가득했다. 술기운은 내 뱉
는 정담 속에서 증발해버리고 즐거움만 자리에 가득했다. 10시 반쯤 밤이 깊어진
만큼 술이 거나해지자 모두 일어나 바다로 갔다. 바다의 집에서 20여 미터 떨어진
곳이 바다이다. 누구인지 노래를 하자 따라서 불렀다. 밤바다가 자다말고 일어나
파도소리로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글쟁이들의 요란한 노랫소리가 잠든 이웃을
깨우지 않게 파도가 적절하게 음량을 맞추어주었다.
   바다의 집 주인장 이승익 시인이 아쉬움을 나타냈으나 숙소로 돌아가야 하는
시간이기에 차를 타고 제주시로 향했다. 좌우엔 어둠만 가득하고 이따금 자동차
불빛이 보이는 산간도로를 타고 제주시로 오는 차안에서 흥이 남은 권재효 시인
이 노래를 부르고 운전하던 강연옥 시인이 그에 노래로 답을 하는 사이에 차는
밤안개 속을 조용히 뚫고 지나갔다.
   뒷좌석에 앉은 시동선생과 부인은 제주에 와서 즐거운 시간을 갖은 것은 물론
시동이라는 좋은 호를 바다에서 주어간다고 연신 기쁜 표정이다. 귀여운 부부의
첫 제주여행은 이렇게 첫날을 채워나갔다.  

(온달교수문학동네 에서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