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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민수기20장1~13절
제목 : 하나님과 다툰 이스라엘
40여 년이 지나 광야 여정 종반에 접어듭니다.
20장은 미리암의 죽음과 함께 모세와 아론이 왜 가난안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 사건의 전말을 묘사합니다.
1. 미리암의 죽음, 백성의 불평(1~6절)
1) 신 광야 가데스에서 미리암이 죽으매 거기에 장사지냅니다(1절)
“[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첫째 달(정월)에. – 출애굽 제 40년째 되는 해 1월(아빕월)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여기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곧장 호르 산으로 진행했고,
거기서 아론이 죽었는데, 그 연대가 출애굽 제 40년 5월 1일로 기록된 사실에서 확인된다(33:38).
*출7:1~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 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 +3
*33:38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십 년째 오월 초하루에 제사장 아론이 여호와의 명령으로 호르 산에 올라가 거기서 죽었으니”
한편 아빕월은 오늘날 태양력 3-4월 쯤에 해당되는 봄철입니다.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이르더니. - '크고 두려운 광야'(신 1:19;8:15)라는 별칭을 지닌 '신 광야'는 대부분이 불모의 땅으로서
가나안의 남방 경계를 이루는 지역입니다(34:3, 4;수 15:1).
*34:3,4 “[3] 너희 남쪽은 에돔 곁에 접근한 신 광야니 너희의 남쪽 경계는 동쪽으로 염해 끝에서 시작하여[4]돌아서 아그랍빔 언덕 남쪽에 이르고 신을 지나 가데스바네아 남쪽에 이르고 또 하살아달을 지나 아스몬에 이르고”
그리고 이 지역의 한 귀퉁이에 회한의 땅 '가데스 바네아'(13:26;14:28-35)가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곳에서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기나긴 방랑 생활에 들어갔고, 이제 그 38년간의 징계의 기간이 끝나고 다시금 그 땅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한편 다음 도착지인 호르 산에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아론이 죽었는데,
그때가 5월 1일인 점으로 미루어 보아(33:38),
이스라엘백성들은 아마 이곳 가데스에서 약 3-4달 가량 머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체류의 주된 이유는 미리암의 죽음에 대한 애도의 기간 때문이었으리라 추정됩니다.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 - 모세와 아론의 누이로서(26:59), 어릴적에는 갈대 상자에 넣어져 강에 떠내려가는 동생 모세를 보호한 적이 있었고(출2:4), 후에는 이스라엘의 여선지자가 되어 백성들을 이끌던 지도자적 인물입니다(출15:20;미 6:4).
*출15:20 “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미6:4 “내가 너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종 노릇 하는 집에서 속량하였고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네 앞에 보냈느니라”
그러나 한때는 교만한 생각으로 아론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의 전권대사 모세를 비방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기도 했습니다(민 12:1).
*12:1,10 “[1]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 그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니라[10]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
아마 그의 마지막 생이 이처럼 간략히 서술된 것도 그 일에 대한 견책의 성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미리암이 갈상자에 담겨져 떠내려가는 모세를 지켜보고,
또 바로의 공주에게 유모를 알선해 준 점에 비추어 볼 때(출 2:7),
아마 그녀의 나이는 모세 보다 10살 정도는 위였으리라 추측됩니다.
따라서 이때 모세의 나이가 120세였으므로,
미리암의 나이는 130세정도는 족히 되었을 것입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들었습니다(2절).
“[2]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물이 없으므로. – 팔레스틴 남쪽 변방에 위치한 '가데스'는 일종의 사막의 오아시스지역으로 본래 좋은 샘(시내)들이 여러 군데있었습니다.
따라서 출애굽한 백성들은 주로 이곳을 주요 활동 무대로 삼아 생활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긴 방랑 생활 끝에 다시금 이곳으로 돌아올 때에는 당연히 물을 얻을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해에는 심한 가뭄으로 인해 모든 샘과 시내가 말라버렸다(Leon Wood, A Survey ofIsrael's History).
따라서 백성들은 마치 곧 죽을 듯이 불평을 터뜨렸던 것입니다.
이때 백성들이 불평했던 장소에 대해 시 106:32에서는 정확히 '므리바'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시106: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
한편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도 식수가 없다는 이유로 해서 백성들은 불평한 적이 있었습니다(출 17:1-7).
물론 이 두 사건은 전혀 다른 별개의 사건입니다.
모여드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알'은 단순히 전치사로서 '...에 적의를 품고 대항하는'(against)이라는 뜻입니다.
곧 백성들은 반란을 일으킬 자세로 모세와 아론에게 따지고 대들면서 원망하였던 것입니다(16:19, 42).
*16:19,42 “[19] 고라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그 두 사람을 대적하려 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42]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툽니다(3절)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 이는 10정탐꾼의 불신앙적 보고 이후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 그 당시 20세 이상이던 구세대가 약37년간 광야에서 죽어가던 상황을 가리킵니다(13:25;14:26-35).
따라서 이러한 백성들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그들 조상들의 죽음을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가 아니라 자연사(自然死)로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죽었더면 좋을 뻔하였도다. – 백성들의 경솔하고도 배은 망덕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 줍니다.
실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물'이 아니라 '인내와 믿음'이었습니다(약5:7-11).
4) 어찌하여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죽게하느냐(4절).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 백성들의 역사 의식이 결여된 상태를 반영한 말로써 진정 노예의 상태와 자유의 상태를 구별 못하는 어리석은 불평입니다.
아울러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낸 것은 모세나 아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음을 깨닫지 못하는 불신앙의 외침입니다.
더욱이 이 말은 출애굽 초부터 계속되어온 불평인데(출14:11;16:2, 3;17:3), 광야 40년 동안에도 변화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들이 얼마만큼 완악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악인이 돌이키지 않는 이유는 그의 생활에서 하나님이 보이신 기적이 부족해서가 하니라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회중. – 여호와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은 회중을 가리킵니다. 16:2 주석을 참조하라.
5)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5절).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
나쁜 곳(하마콤 하라)- 직역하면 '아무 쓸모 없는 땅'. '해(害)를 제공하는 장소'입니다.
즉 사람이 도무지 생존할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에는...없고 ...없고...없고...없고...없도다 - 백성들이 머물렀던 가데스는
그들의 말대로 모든 것이 절대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육신적인 눈으로 그곳을 바라본 것에 불과합니다.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곳은 모든 것이 넘치는 충만의 장소였습니다.
즉 그들에게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고,
가나안 땅에 대한 소망이 있었으며 계약 백성으로서의 미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정적인 발언은 결국 그들의 불신앙에서 나온 말에 불과할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을 허락하실 것이라 하셨지, 그들의 말대로 '죽음의 땅'을 약속하신 것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출 3:8;13:5).
*출3:8 “내가 내려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 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 브리스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의 지방에 데려가려 하노라”
*출13: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
그런고로 참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하신 바를 현실에 그대로 수용하는 것입니다(히 11:1).
6) 모세와 아론이 회막 문 에 엎드리매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에게 ᄂᆞ타납니다(6절).
“[6] 모세와 아론이 회중 앞을 떠나 회막 문에 이르러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나타나며”
엎드리매 여호와의 영광이...나타나며 - 14:5, 10 및 16:4, 19 주석을 참조하라.
2. 하나님의 응답과 모세의 불순종(7~11절)
1)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가지고 회중을 모이게 하고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십니다(8절).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네가 그 반석이 물을 내게 하여 회중과 그들의 짐승에게 마시게 할지니라 ”
지팡이를 가지고. – 이 지팡이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17:8)가 아니라,
출애굽 당시모세가 바로 앞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던 그 지팡이(출 7:15;9:23)를 가리킵니다.
그리고이 지팡이는 '르비딤 물 사건'에서도 사용되었었습니다(출 17:5).
그러므로 모세는 이 지팡이를 통해 지금까지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냈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는 이 지팡이를 땅에 내려 놓고 엎드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지팡이'는 그 자체에 어떤 신통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단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상징적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의 목전에서. – 여호와의 이적이 공개적으로 실행되어 그의 영광과 능력을 여러 사람에게 분명히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참된 능력과 진리는 항상 떳떳하여 가리울 것이 없습니다.
반석에게 명하여. – 여기서 '반석'(셀라)이란 '바위' 외에 '높은 요새'란 의미도 지닙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출 17:1-7의 르비딤물 사건에서 언급된 것과 같은'반석'(추르), 곧 단순한 돌덩어리가 아니라 절벽처럼 높다란 바위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단지 그 반석을 향하여 '물을 내라'는 명령만을
하도록 당부하셨습니다다.
그 이상의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고(창 1장;히 11:3). 그것을 운행하시는(롬 11:36) 하나님의 능력으로 볼 때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습니다.
2)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았습니다(9절)
“[9] 모세가 그 명령대로 여호와 앞에서 지팡이를 잡으니라”
그 명령대로 – 출애굽 후 지금까지 모세의 순종은 완벽했습니다.
그러나 11절의 결정적인 불순종으로 인해 모세는 그가 이때 껏 쌓아 올린 순종의 아름다움을 산산히 부수어 놓고 말았습니다.
이는 상징적으로 율법 준수의 한계를 암시합니다.
즉 율법 계시의 전수자요, 공포자인 그도 '율법으로는' 구원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의 가나안 입국 실패는 이러한 구속사의 깊은 진리를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3) 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물을 내랴 분노를 나타냈습니다(10절)
“[10]모세와 아론이 회중을 그 반석 앞에 모으고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반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하고 ”
반역한 너희여(함모림) - '너희, 반역자들아'로 표현합니다.
즉 불평과 원망을 일삼는 백성을 향해 모세가 극도의 혈기섞인 분노를나타내었던 것입니다.
시 106:32, 33에는 이 장면을 정확히 묘사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백성들이 모세의 감정을 돋구어 모세가 매우 격앙스런 말을 했다고 전합니다.
*시106:32,33 “[32] 그들이 또 므리바 물에서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으므로 그들 때문에 재난이 모세에게 이르렀나니[33] 이는 그들이 그의 뜻을 거역함으로 말미암아 모세가 그의 입술로 망령되이 말하였음이로다”
특히 감정이 폭발한 모세가 '우리' 곧 하나님을 들먹이면서까지 화를 내었을 뿐 아니라, 마치 하나님과 동등한 자격을 지닌 자기가 백성들에게 물을 줄 수도, 심판할 수도 있는 자처럼 행세하며 혈기를 부린 것은 거룩한 의분을 지나 일종의 '망령된' 행위였습니다(시 106:33).
따라서 이일은 결국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것으로 정죄되어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12절>.
4)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십니다(11절)
“[11] 모세가 그의 손을 들어 그의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니 물이 많이 솟아나오므로 회중과 그들의 짐승이 마시니라”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 치매. – 모세는 순간적으로 나마 하나님의 능력의 실현이 마치 자신이 반석을 침으로써만 가능한 것처럼 생각하여 반석을 힘껏두 번내리쳤습니다(Keil).
그러나 만일 이때 모세가 단순히 '명령'으로만 반석에게 '물을 내라' 하였다면,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이 높이 드러났을 것입니다<8절>.
그러나 모세는 자신의 말과(10절)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를 대신하고자 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고(6절),
백성을 치고 싶은 심정으로 반석을 두 번이나 두들겨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욕하는 바로 그 백성에게 기적을 보이시고
당신의 능력과 영광을 높이 드러내고자 하셨으나,
모세가 백성에게 혈기를 냄으로써
오히려 여호와의 영광과 거룩성을 파괴하고 말았던 것입니다(Lange).
결국 모세가 반석을 두 번 친 것은, 원망하는 백성에게 일단 물을 제공하셔서 그들에 대한 당신의 끝없는 사랑과 보살핌을 확인시키려 하셨던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와 거룩성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 불경스런 처사라 할 수 있습니다(시 106:32, 33).
이것이 바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죄목이었습니다(12절).
한편 구약 사가 레온 우드(Leon Wood) 박사는 본절에서 다음과 같은 영적 진리를 설파하고 있습니다.
즉 여기 이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데(고전10:4),
그분은 갈보리 십자가의 죽음으로 상징되는 바 한번 '매'를 맞는 것으로 족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이후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그에게 구하기만 하면 영생수를 얻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이 반석을 두 번 침으로써 이 모형적 진리를 범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덧 붙혀 그는 말하기를, 만일 모세가 이가데스의 거역만 범하지 않았던들, 그가 가나안 땅에들 어가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합니다.
물이 많이 솟아 나오므로. – 인간의 혈기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당신이약속하신바를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3. 하나님의 징계(12~13절)
1)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았으므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였습니다(12절).
“[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 아론도 모세의 망령된 언행(言行)에 동조 내지는 방조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그도 모세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야 했습니다(28절).
(1) 나를 믿지 아니하였다.
“나를 믿지 아니하고”. – 모세와 아론이 백성들처럼(3-5절) 하나님을 불신앙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말은 백성의 지도자인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교만히 자신의 혈기대로 행한 사실<10, 11절>을 두고 한 말입니다.
어쩌면 교만하여 하나님께 전적 순종치 않는 것도 불신앙의 한 단면 인지 모릅니다.
(2)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 모세가 하나님의 뜻과는반대로 백성에게 분노한 것<11절>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빚었다.
하나님의 뜻은 비록 원망하는 백성들이지만 그들에게 이적을 베푸셔서,
당신이 그들의 보호자이시며 진정한 왕이심을 밝히시고 그로 인해 당신의 거룩성을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혈기는 바로 이 뜻에 대한 도전이요 장애였던 것입니다.
(3) 결국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모세와 아론은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영예를 박탈당했습니다.
그리고 이 징계는 그러한 영예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가나안 입국이 금지되는 준엄한 내용까지 포함된 것이었습니다(28절;27:12-14;신 32:48-52).
이는 지도자의 작은 실수가 얼마나 큰 비극적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명확히 제시합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와 아론이 그들의 행위에 대한 책망은 받았으나 그들이 누릴 영적 축복과 하늘나라의 시민권까지 박탈당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마 17:3).
*마17:3,4 “[3]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와 더불어 말하는 것이 그들에게 보이거늘[4]베드로가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
한편, 여기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데에는 영적으로 심오한 진리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즉 모세는 율법의 수여자요, 선포자이며, 전수자로서 '율법'을 상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는 것은
'율법으로는' 결코 새 하늘과 새 땅(천국)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음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상징인 모세가 그 율법(행위)으로 인해 죽었거늘,
하물며 그 누가 율법(자신의 공로)으로 구원 얻을 수 있다고 자신할 것인가(롬 3:28). 율법은 단지 우리를 가나안(천국)의 입구까지 인도하는 몽학선생에 불과할 뿐입니다(롬3:20;갈 3:24, 25).
*롬3: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갈3:24,25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따라서 여기 하나님의 이 선언은 당신의 깊은 섭리의 경륜이 깔린 구속사의 대선언 인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의 실수는 그러한 섭리의 결과로 파생된 하나님의 또 다른 뜻이었습니다.
2) 하나님이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였고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13절).
“[13]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와 다투었으므로 이를 므리바 물이라 하니라 여호와께서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내셨더라”
므리바 물. - '므리바'란 '다투다', '싸우다'는 뜻의 '리브'에서 나온 말로서, 곧 '다툼'. '투쟁'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므리바 물'이라 한 것은 '반석에서 물이 솟은 장소'를 가리킨 말이 아니라, '여호와를 원망한(다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여호와께서 반석에서 내신 물'을 가리킵니다(27:14;신 32:51).
*27:14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 물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이니라”
*신32:51 “이는 너희가 신 광야 가데스의 므리바 물 가에서 이스라엘 자손 중 내게 범죄하여 내 거룩함을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타내지 아니한 까닭이라”
따라서 이것은 르비딤의 반석에서 물을 나오게 함으로 그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한 것과는 다릅니다(출 17:7).
*출17:7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그러나 물 때문에 마음이 상한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크신 은력으로 반석에서 물을 내신 그 사건 자체와 의미는 상호 밀접히 연관됩니다. 출 20:1-7 주석 부분참조.
그들 중에서 그 거룩함을 나타 내셨더라. –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훼손한 아론과 모세를 징벌하심으로 당신의 거룩함을 나타내셨고, 또한 원망하는 백성들에게는 그들의 요구대로 물을 공급하사 불평을 일추 시킴으로써 당신의 거룩함을 증명하셨습니다(Keil).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에게 물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참고 참으십니다.
불평은 불평으로 끝납니다.
우리의 불평, 불만, 근심은 하나님의 은혜를 잊었기 때문에 나타납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를 생각하며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바랍니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거룩을 함을 나타내지 못하므로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믿음이 없으므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있을때에 소망이 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가나안도 절망스러운 광야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불순종하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세는 결국 말씀의 권능을 드러내기 보다 자기의 감정을 드러냄으로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오늘도 나의 감정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거룩함을 헤치는 일 없도록 주안에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하루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 마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는 백성에게 물을 주십니다(6~8절).
이스라엘은 예나 지금이나 힘겨운 상황 앞에서 늘 믿음을 거두고 불평하지만 하나님은 자비를 거두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신실하심이 없었다면 출애굽의 구원도, 홍해 도강도, 광야의 만나도, 메추라기도, 반석에서 물이 솟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연약함을 아시고 참고 또 참으시면서, 오늘도 우리의 믿음을 기대하십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다시 가데스입니다(1절).
이스라엘 자손은 40년 전 정탐 보고를 듣고 가나안 입성을 거부한 곳으로 돌아와 다시 섰습니다.
특히 미리암의 죽음은 광야 세대의 종식을 상징합니다.
이제 구세대의 불신을 청산하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믿음으로 결단할 때가 이른 것입니다.
불신은 약속의 때를 지연시켰지만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현실이 될 것입니다.
2) ‘불평’에서 시작한 광야 여정이 ‘불평’으로 끝납니다(2~5절).
부모 세대의 불평에서 자녀 세대의 불평으로, 새로운 세대의 시작이 이전 세대의 시작과 닮았습니다(출17:1~7절).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애굽을 그리워하고 가나안의 약속은 외면합니다.
믿음이 없으니 광야는 늘 불만의 장소가 되고, 구원의 감격과 감사는 싸늘한 불평과 의심으로 바뀝니다.
나의 불평, 불만, 근심은 이미 받은 과분한 은혜와 이미 경험한 하나님의 능역을 잊었기 때문은 아닙니까?
3) 모세와 아론은 반석에서 물을 내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분노와 능력을 앞세우며 이스라엘으 목전에서 그분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않았습니다(9~13절).
모세는 이 사태가 “지도자 자신에 대한 불신임”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임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평가는 냉정합니다.
백성의 불평에 대해선 관대하셨지만 하나님의 거룩함을 훼손한 지도자에 대해선 형벌을 내리십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그 어떤 책망도, 하나님보다 나를 내세우는 그 어떤 사역도 결코 정당화되거나 용인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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