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권시절,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일본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개방이 있었습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발해를 꿈
꾸며"의 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깊었던 DJ인지라, 아마 개방한다 하여도 한국의 대중문화가 그
리 쉽게 휘둘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친일행각이라고 해봤자 "예, 선생님. 저 도요타
입니다"정도 밖에 안되는 입장이라서, 그 문제에 있어 역대 대통령들보다 자유로운 입장이었을 것입니다. 한마디로 구태
여 민족주의자인 척 할 필요가 없었던 셈이지요.
여하튼 김대중 정권때 대한민국은 일본문화에 대해 대문을 활짝 열어제꼈고, 일본영화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하지
만, 이 렇다 할 성과는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하튼, 당시 저는 동네 비디오 가게 매출의 거의 절반을 책임진다 봐도 무방할 정도로 비디오광이었는데, 그때 본 영
화가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하나비"입니다. "하나비"는 일본어로 "불꽃놀이"라는 뜻이라 하는군요.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강력반 형사 니시, 그리고 그의 파트너 호리에. 니시의 아내는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고, 호리에
는 야쿠자의 습격을 받아 불구가 됩니다. 야쿠자를 죽여버리고 나서 경찰직을 치아버린 니시. 아내 병구완, 불구가 된
데다 이혼까지 당한 친구 호리에에게 미술용품을 구해주려고 급기야 야쿠자에게 돈까지 꿉니다. 야쿠자의 빚독촉에 시달
리던 니시 는 다시 경찰을 사칭해서 은행을 털고 말지요. 모처럼 아내와 함께 단 둘이서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좁혀오
는 수사망을 빠져나가지는 못합니다. 자신을 체포하러 온 후배경찰들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하고는, 니시는 자신의
아내를 사실한 후 자신도 자결하고 맙니다.
대충 이런 스토리입니다. 스토리 자체는 심플한 것 같지만, 영화 자체는 상당한 몰입도를 자랑하는 것 같군요. 마치 퍼
즐을 짜맞추는 듯한 스토리 텔링이 압권입니다. 흐트러져 있던 것들이 하나둘씩 정리되어가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이
영화의 강점이라고 생각되는군요. 중간중간에 삽입되는 지루한 롱테이크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영화는 헐리우드의 영향을 받아서 극 전개가 아주 속도감이 있는 한국영화와는 달리, 다소 늘어지는
듯한 유럽영화쪽의 영향을 더 강하게 받은 것 같습니다. 아주 좋았아요. 비록 "하나비"의 감동을 잔뜩 기대하고 본 영화
"소바티네"때문에 급실망을 하긴 했지만... 웬수들을 몽땅 쓸어버리고 나서 돌아가는 도중에 갑자기 자살을 해버리더군
요. 원래 자살이 주특기인 줄 모르는 바 아니자만, 어리고, 이쁘고, 가슴 죽여주는 여친이 기다리는데 갑자기 자살을
하더니... 통 이해가 할 수가 없었습니다.
감독 키타노 타케시는 원래 우리나라의 심형래처럼 코미디언 출신입니다. 소시절에는 적군파에도 가담했었다고 하는
군요. 심형래라는 사람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쳤는지는 모르겠지만, 키타노 타케시 감독의 경우, 스트립 클럽의 엘레베
이터 보이로 사회생할을 시작 했고, 아주 우연한 기회로 무대에 오릅니다. 소위 밤무대 출신이었던 것이지요. 거기에 전
공노 세대라고 합니다. 전공노 출신에 대해서는 일본의 주류사회가 철저하게 배척한다고 하는군요. 좌익운동세력인데
좀 유별났던 모양입니다. 타케시 감독 역시 배척당하는 입장인지라, 이는 그의 영화에서 걸핏하면 주인공이 죽는 이
유라고 하는군요.
여하튼 그는 1983년 영일합작영화 "전장의 크리마스 Merry Christmas, Mr.Lawrence"라는 영화에 조연으로 출연합
니다. 아마 이것이 그가 영화와 처음 맺은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은데... 주연은 당시 영국의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David Bowie였고, 키타노는 악역인 하라상사역을 맡았다고 하는군요.
e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시사회 당시 키타노는 관객들 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서 몰래 뒷문으로 들어가서 자신이 찍은 영화를 봤다고 합니다. 물
론 관객들하고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은 꿈도 못 꿨구요. 그런데 자신이 나오는 씬에서는 관객들이 킥킥거리고 웃더라
고....
이 일로 받은 충격때문인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고, 어쨌거나 키타노는 1989년부터 영화감독으로 데뷔합니다. 그리
고 1997년작 "하나비"로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 일본 전역을 시끌벅적하게 만들어 놓지요.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영화 "카케무샤"를 찍었을 당시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비용의 일부를 지원해줬다는 것은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전공노(적군파) 운동 경력에, 학력도 별 볼일없고, 거기에 코미디언 출신의 키타노가 영
화를 찍었을 때의 애로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거기에 비하면 심형래는 참으로 탄탄한 길을 걸어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로는 그는 김대중 정권
시절 이전과 이후로 구별하는 것이 합당할 듯 한데, 김대중 정권 이전부터 그는 아동용 영화를 계속 촬영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티라노의 발톱"이었습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이 어느 영화잡지에 실린 평론이었는데... 평론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습니다...
"건전한 상식을 지닌 성인이라면, 스놉시스만 보고도 영화를 보겠다는 생각이 싹 가실 정도로 엉성한 스토리이다. 애들
을 타겟으로 삼다 보니 배우를 매단 피아노줄이 보이던 말던 신경도 쓰지 않는다. 다만, 아이들은 영구라는 바보 캐릭
터를 보면서 우월감내지 동질감을 느끼기에 환호한다..."
하지만, 김대중정권이 "지식경영"을 모토로 내세움과 동시에 그의 처지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1개 개
그맨에서 1개 영화산업 경영인으로 발돋음한 것이지요. 많은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듯, DJ 역시 늘 새로운 것을 시도하
는 그를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영화 "디워"는 우리 한국을 극도의 분열상태로 몰고 갔으니, 황우석 사태와 더불어 현대사에 추가시켜도 될만한 사건이
아니었나 싶군요. 심형래는 결코 소외받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최소한 제가 보기에 확실히 그렇습니다. 그는 언론플
레이에 대단히 능한 사람이었고, 또 만만치 않은 자금동원력도 과시했습니다. 영화평론가 진중권 같은 이들을 일종의
트러블메이커로 폄훼시킴과 동시에 자신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일종의 선량한 노력가로써 대중들에게 어필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지요. 물론 이러한 시도는 엉성한 스토리를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땜빵질했다는 비난을 피함과
동시에, 그의 영화를 보는 것이 마치 조국에 대한 충성으로 격상시키는 역할까지 했던 것입니다.
영화 "디워"의 충격 덕분이었는지, 그의 두번째 야심작 "라스트 갓파더" 상영 때에는 대중들은 어느 정도 이성을 회복하
긴 했어요. 그래도 또한번 진중권을 이용한 노이즈마켓팅에 성공해서 400만의 관객을 그럭저럭 동원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군요. 이후 터져 나온 부실경영, 임금체불, 도박 등의 그의 가려져 왔던 치부가 드러남으로써 심형
래의 화려했던(?) 명성도 종지부를 찍었습니다. 강남 부근에서 우연찮게 골목길에서 봤던 심형래. 얼굴이 벌거니 낮술
을 했던지,아니면 건강에 문제가 있던지...
혹자는 관점의 차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영화는 심형래에게는 "산업"이었고, 키타노 타케시에게는 "예술"이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닌가... 일리있어 보입니다.
심형래에 관해서는 대단히 유감입니다. 그에 대해서 할 이야기는 억수루 많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결국 우리는 두 사
람을 잃고 말았습니다. 심형래에게 당신은 감독으로써 소질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시키고 그 사람을 차라리 영화
제작자로 나서게 했어야 했습니다. 몇 억도 어려운 판에 몇백억을 동원한 그의 자금동원력이라면 정말 휼륭한 영화제
작자가 될 수도 있었으니 우리는 영화제작자 심형래를 잃었습니다. 또 진중권이라는 훌륭한 평론가를 하나 더 잃고
말았습니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 우리 일반인들은 정말 버거울 정도의 사람들입니다.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 대
중을 쉽게 혐오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황우석 사태 당시 우리나라 과학자들의 카페인 "브릭스"에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데 정말 그렇습니다. 아무리 정나미가 떨어져도 우리는 전문가들이라는 족속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몸에
좋은 약이 입에 쓰듯이....
키타노 타케시감독의 영화 "하나비"를 이야기하려다 이야기가 엉뚱한 곳으로 나아갔군요. 그만큼 우리 사회에 미친 여
파가 크다고 판단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아주 아주 유감스럽게도 Full Movie를 구하지는 못했습니다. 아쉬운대로 Trailer하고 마지막 장면으로 대
충 넘어갑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길... 중국에 있으시면 이런 일쯤은 일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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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소문만 들었던 하나비
Full Movie를 볼 수 없어 아쉽네요

고마워요


영화광이라 소개했던 행민님 말씀처럼.. 다양한 경험을 하셨군요
저 이영화 보았어요. 하나비, 불꽃놀이란 아름다운 말 과는 달리... 자결장면이 긴 여운처럼 남는..기억이 좀 모호하지만. 일본여성 특유의 순진 한 아내는 자결을 아는지 모르는지... 마치 엘비라 마디간 마지막같은...긴 여운. 이 남자,'시부이'한 내면이 강렬한 남성매력, 멍하니 매료되었어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