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 계곡과 둘레길이 함께하는 "소똥령"으로 떠나요!!!
***** 소똥령의 유래 *******
소똥령 옛길. 이름부터가 생소하면서 참 재미있다.
강원도 진부령에 위치한 고개로 사람들 손이 많이 닿지 않아 아름다운 자연이 잘 보존되어 있다.
포근함이 감도는 옛길은 `소똥령`이라는 이름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트레킹을 선사한다.
진부령에 위치한 이곳 옛길이 소똥령이라고 불린 데에는 몇 가지 유래가 있다.
그중 가장 널리 전해지는 이야기는 장에 팔려가던 소들이
고개 정상 주막 앞에 똥을 많이 누면서 산이 소똥 모양이 되었다는 설과
동쪽의 작은 고개 소동령(小東嶺)이 자연스럽게 소똥령으로 바뀌었다는 설 등이다.
어쨌든 소똥령 마을 고개를 넘어 다니는 길은 최근 트레킹 족들에게 알려지며 인기를 얻고 있다.
한편, 간성과 인제를 연결하는 고개들 중 그 규모가 작은 편이라 '동쪽의 작은 고개'라는 뜻으로
소동령(小東嶺)이라 부르던 것이 자연스레 소똥령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선지지자료』에서는 간성군 해상면(海上面) 신평리(新坪里)에 위치한
소동령이라 기록되어 있으며 한글 지명으로 '쇳영'이라 기록되어 있다.
*산행일 : 2021년 8월 7일
*산행지: 진부령 소뚱령 트레킹과 건봉사
*산행코스,거리,시간
-1팀:출렁다리 → 소똥령1봉 → 2봉 →3봉 → 칙소폭포 →소똥마을 (3시간)
-2팀: 장신유원지 계곡에서 물놀이(입장료 별도)
*산행회비 : 26,000원(1인2석)
-진행자외 15명 출발시 산행비 10,000원 추가됩니다(차내에서 거출)
-아침 김밥,생수,커피 제공
*산행준비물 : 약 5시간 전후 산행복장(여벌 옷,양말 등), 도시락,행동식(육포,과일, 쵸코렛 등),
간식 및 식수, 모자.장갑.방수방풍의.우천시 비옷,개인상비약
*부천,신도림 도착 예정시간 : 저녁 8~9시 전후(도로 교통사정에 의해 변동될 수 있습니다)
*출발지 출발시간
-송내역 : 남부역 1번출구에서 경인국도변 200m 직진 씨유편의점앞 6시10분 출발
-중동역 : 송내우체국 앞 6시15분 출발
-부천역 : 농협(심곡동지점)앞 6시20분 출발
-소사역 : 소사역 지구대 건너편 6시25분 출발
-역곡역 : 홈플러스 앞 6시30분 출발
-오류동역: 오류역 입구 신한은행 앞 6시35분 출발
-개봉역 : 개봉삼거리에서 서울방향 200m 직진 남현교회 앞 6시40분 출발
-신도림역: 신도림역 1번 출구로 나와 푸르지오 2차 주상 아파트 횡단보도 건너
직진 푸르지오2차 상가앞(마음치유클리닉) 버스정거장에서 승차 6시50분 출발
*하차시에는 신도림역 먼저 하차
*좌석표
1. | 2.산새님 | 3.산애림 | 4. |
5. | 6.아리님 | 7.아리님 | 8. |
9. | 10.아카시아님 | 11.아카시아님 | 12. |
13. | 14.임형빈님 | 15.원화님 | 16. |
17. | 18.마감 11인 스타렉스 이용 마감 합니다 | 19. | 20. |
21. | 22. | 23. | 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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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 30. | 31 | 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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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똥령산행 시작합니다.
입구의 출렁다리.
소똥령3봉에서 내려다본 소똥령마을.
칡소폭포에서~~~
고성 금강산 건봉사(乾鳳寺)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
신라 법흥왕 때 아도(阿道)가 창건하고 원각사라 하였다.
신라 말에 도선(道詵)이 중수한 뒤 절의 서쪽에 봉
형(鳳形)의 돌이 있다고 하여 서봉사(西鳳寺)라 하였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선사가 중건하고 건봉사라 하였다.
조선 세조 때 자신의 원당(願堂:소원을 빌기 위한 지정 사찰)으로 삼은 뒤
어실각(御室閣)을 짓게 하고 전답을 내렸으며, 친필로 동참문을 써서 하사하였다.
인진 왜란때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오면서
불사리와 부처님 치아를 되찾아와서 이 절에 봉안하였다.
왕가 왕비 그리고 수많은 관료들의 도움으로 절 살림이 대단했으나
6·25전쟁 때 2년여에 걸쳐 아군 5,8,9 사단 및 미군 제10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 치열한 공반전을 벌인 전투전적지로
이때 총 641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던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현재 고성 건봉사지는 강원도 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고,
6·25전쟁 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불이문은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35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 밖에도 능파교와 십바라밀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진 두 개의 돌기둥,
‘대방광불화엄경’이라고 새겨진 돌기둥 등이 있다.
건봉사 입구에 있는 불이문은 1920년에 건립된 건봉사 경내 출입문으로
사찰의 건물중 유일하게 6.25동란때 유일하게 불타지 않은 건물이다.
돌기둥에는 길이 90cm 크기의 도안화된 금강저가 음각되어 있는데
이는 천왕문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불이문에 사찰 수호의 기능까지
보탠 것을 의미한다.
불이문 우측에는 거대한 팽나무가 있는데 수령 약 500년이다.
6.25 동란시 불이문이 불타지 않은 것은 팽나무가 불이문을 지켜주었다고
전하고 있으며 건봉사를 지켜주는 상징목으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숙종때 지어진 건봉사 능파교는 대웅전 지역과 극락전 지역을 연결하는 홍교로
규모도 비교적 크고 잘 보존되어 있다.
2005년 10월에 복원하였다.
능파교 입구 사각형 석주 2기가 서있는데 이를 십바라밀석주라고 부른다.
십바라밀(十波羅蜜)은 대승불교의 보살이 실천해야할 열가지 덕목을
상징화한 것으로 그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다.
보궁치아사리탑은 적멸보궁 뒤쪽에 있다.
적멸보궁 안쪽에서 유리창을 통해 봉안탑을 볼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건봉사의 왕소나무는 300여년 세월동안 이자리를 지키고 있다.
불이문옆에는 연화교라는 나무로 둘러진 다리가 있다.
이곳으로 가면 연화샘이라는 샘물도 만나볼 수 있다.
건봉사는 항일(抗日) 본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구의 침략에 맞서 서산대사가 승병을 일으켰을 때
그 본진이 건봉사에 주둔했다.
조선이 망하고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을 때 건봉사 스님들은
기꺼이 항일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으며 학교를 지어
인재를 양성하고 포교당으로 국민들의 의식을 일깨웠다.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통도사에 난입하여 금강계단에 모셔진 사리를 탈취했다.
사명대사가 조선을 대신해 일본으로 건너가 포로를 구해오는데
그 때 훔쳐간 통도사 사리도 되찾아온다.
사명대사는 왜적이 파괴한 통도사 금강계단을 중수하여
사리를 다시 모시면서 왜적이 다시 약탈할 경우를 우려해
12과를 나누어 맨 처음 승군을 규합했던 건봉사에 봉안했다.
이러한 사실은 400여년 뒤에 밝혀진다.
1986년 6월 사리탑이 도굴되면서 알려진 것이다.
당시 건봉사는 민통선 내에 위치하여 민간인 출입이 불가했다.
이를 악용한 도굴꾼들은 모대학 건봉사 복원조사단을 사칭해
위장출입증으로 검문소를 지나 건봉사에 잠입해 2시간에 걸친
도굴 끝에 치아사리를 훔쳐갔다.
하지만 이들은 얼마 뒤 부처님이 나타나 “사리를 돌려주라”고 꾸짖는 꿈을 꾼다.
똑 같은 꿈이 계속되자 불안에 못이겨 도굴을 주도한 주범이
서울의 모 호텔에 훔친 사리 12과 가운데 8과를 맡겨놓고 달아났다.
그러나 나머지 4과는 공범 중 한 명이 가지고 달아나는 바람에
아직까지 행방이 묘연하다.
건봉사는 되찾은 부처님 진신사리 8과 가운데 3과는 적멸보궁 석탑에,
나머지 5과는 법당에 봉안하여 참배불자들이 친견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건봉사 진신 치사리는 전 세계에 15과에 불과하며 그 중 12과가
건봉사에 있어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건봉사는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분연이 일어난 민족의 스승이며 지도자인
사명대사와 만해선사, 정남용(鄭南用)스님를 기리고
그 정신을 잇는 기념관을 만들어 교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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