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두 의학박사의 요양병원 이야기(42)
사랑과 관심
손 할머니는 86세로 2021년 12월 길을 가다 자전거가 뒤에서 부닥치면서 넘어졌다. 골반뼈에 금이 가 한 달이나 입원하였다가 퇴원했는데 기력이 떨어져 또 낙상을 하였다. 이 나이에 한 달이나 침상에서 안정을 취하면 근육, 근력이 약해지고 인지까지 저하되어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된다.
척추전문병원에서 CT(컴퓨터단층촬영) 검사를 해보니 골반의 치골 부위가 조금 어긋나 있고 척추협착증과 척추뼈가 삭아 통증이 지속되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허리 통증이 계속되어 재활치료 목적으로 우리 병원에 입원하였다.
우리 병원은 재활의학과 전문의가 있어 체계적으로 재활치료를 하고 있다. 이분은 침상에 누워 움직이지 않으니 소화 기능도 떨어져 자주 체하고 배탈을 앓으셨다. 아플 때마다 소화제나 진통제를 처방한다. 아프다고 재차 연락이 오면 병실에 찾아가 환자의 배에 손을 대고 시계방향으로 주무르며 ‘먹고 싶어 먹었다. 쑥쑥 내려가라~쑥쑥 내려가라~’하고 말을 한다. 주문을 외우듯이 말하며 배를 쓰다듬으니 곁에 있던 신세대 간호사가 웃고, 환자도 빙그레 웃는다. 약을 써서 효과가 없을 때는 직접 손으로 배를 마사지해 주면 통증이 신기하게도 없어지는 것이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약이 아니고 관심과 위로인 경우가 많다.
약을 쓰는 것보다 손으로 배를 만져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어릴 때 어머니에 대한 기억에서다. 필자가 어릴 때는 시골에 의사도 없고 약방도 없어 배가 아플 때면 항상 어머니가 손으로 배를 만져주며 ‘먹고 싶어 먹었다. 쑥쑥 내려가라~쑥쑥 내려가라~’하고 말하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통증이 가시면서 스르르 잠에 빠져들곤 했다.
‘어머니 손은 약손이다’라는 말이 결코 헛된 말이 아니다. 손으로 배를 만져주면 정서적인 안정감을 갖게 되고 자율신경을 자극하여 소화가 촉진되고 웬만한 배탈은 낫는 것이다. 속 쓰림, 소화장애, 구역질, 설사, 변비 등 위장 관계 질환의 많은 부분이 정서적인 문제에서 온다고 배웠다. 노령자의 정서와 심리상태는 어린이와 비슷하여 항상 애정 어린 관심을 갈망한다.
병실에 들어가 이름을 불러주며 “어제 배 아팠던 것 지금은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면, “예, 선생님이 다녀간 이후 좋아졌습니다” 하고 답하여 약을 준 것보다 직접 와서 배를 만져준 것에 더욱 만족하는 분위기다.
김 할아버지는 87세로 폐암과 전립선암이 있었지만 고령인 데다 직계가족이 없어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입원하셨다. 이분도 명치 밑이 아픈 만성 상복부 통증이 있었다. 이분도 늘 복통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배를 주물러주니 통증이 호전되었다. 회진할 때 이분에게는 등을 두드려주면서 “아플 텐데 잘 참으시네요. 대단하십니다”라고 격려를 하면 “아파도 참아야지요. 어쩌겠습니까?”라고 대답을 하신다.
독거노인에게는 외롭지 않도록 우리가 곁에 있으니 안심하시라고 말한다. 복통으로 진통제를 쓰거나, 배 마사지를 해주기도 하지만 복통을 호소하기 전에 등을 두드리며 칭찬과 격려를 하여 증상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도 좋은 방법임을 느끼게 한다.
윤 할아버지는 78세로 뇌경색 후유증과 위염을 앓고 있는데 헛배가 자주 불렀다. 장폐색이 있는지 걱정이 되어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장은 정상이었다. 이분에게도 배를 만져주며 ‘쑥쑥 내려가라~’ 주문을 걸면 헛배가 서서히 꺼지며 안정을 되찾게 된다.
어머니가 배워주신 약손의 기법. 이곳 요양병원에서 잘 활용하고 있다.
집에서나, 병원에서나 어르신들은 따뜻한 사랑의 손길을 기대한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집에서 자녀들이 모시지 못하여 우리에게 잘 부탁한다며 바통터치하듯 모시고 오는 어르신들이다.
2023년 새해에도 이분들이 고통 없이 편안히 지내시고 가족들이 안심하는 한 해를 기대하며 한 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