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길을 나섰으면 끝장을 봐야 합니다. 가다 멈추면 그만큼 가고자 하는 곳과 심리적 거리감은 점점 멀어지기 때문이죠 ... 지금 글을 올리고 있는 '선배 공론장'은 이 카페의 터줏대감들 및 진솔한 탐구자들이 더 깊은 도담을 위한 전 단계로 설정한 카테고리 입니다. 이 곳을 반드시 거쳐야만 다음의 '사공 공론장'의 글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글을 올리다 보니 주제가 자꾸 확산되는군요. 이번에 올린 '음양(陰陽)'이란 주제도 그냥 지나치기엔 핵심적 주제가 빠졌다는 생각이 들어 올리게 됐습니다. (틀린 부분은 꼭 지적해 주시면 감사합니다!)
1. 음양(陰陽)이란?
도판이나 주역을 공부하는 분들 중에는 '음양(陰陽)'을 '실재적 기운'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제법 많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음양'은 우주적 순환에 대한 '관념적 개념'이다. 따라서 '음양'을 '실재적 기운'으로 인식하면 '음양'에 대한 동양의 사상이 왜곡될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일까?
` 서양의 우주론은 유물론과 신학적 토대 위에 정립됐고, 이는 결국 합리성에 바탕한 '과학'이란 잣대에 의해 분해되고 난도질 돼 인간의 인식 내에서 관찰되고 증거로 제시돼야 한다. 그래서 인간의 관점에서 주장됐던 우주의 천동설은 결국 지동설로 바뀌었다.
` 동양의 우주론은 '사유(思惟)'로부터 출발한다. 이 기저에는 인간은 천(天)이란 무형계와 지(地)란 유형계가 합쳐진 별개의 존재란 인식에 바탕하며, 이 사상에선 천(天)과 지(地) 그리고 인간은 서로 맞물린 인과관계로 해석했다. 그래서 동양의 핵심 사상인 '음양(陰陽)'론은 실재적 관찰에 의한 것이 아닌 '관념적 개념'으로 자리했고, 자연(自然)에서 표출되는 현상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체득된 사상이다.
음과 양은 상(商)나라 때만 해도 햇볕이 비추는 곳과 햇볕이 비추지 않는 곳을 나타내던 용어였다.
` 양달 - 햇볕이 드는 곳(陽)
` 음달 - 햇볕이 들지 않는 곳(陰)
햇볕이 들면 만물이 자라기 시작해 모체로부터의 '분리'가 일어나 확장과 팽창을 시작하게 된다. 반면 햇볕이 줄어들면 만물은 응축하고 결실을 맺게 된다. 이처럼 자연을 통해 우주의 섭리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 현상을 통해 우주는 주기적으로 팽창과 응축을 반복하고 이것은 불변의 진리로 인식돼 이를 '도(道)'라고 말하게 된다. 그래서 『주역』「 계사전 상 繋辭傳 上 」제5장은 음양에 대해 다음처럼 정의한다.
` 一陰一陽之謂, 道
(한 번 음으로 한 번 양으로 작용하는 것을 도(道)라 한다) --> 도(道)는 음양이 서로 교대 작용하는 것이다.
` 陰陽不測之謂, 神
(음양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 신(神)은 음양으로 나뉘지 않고 음양이 합덕된 것이다.
2. 음양의 분리
음과 양은 대칭성을 갖는다. 이는 절대성에 바탕한 것이 아닌 상대성에 바탕한다. 아래 예처럼, 乾과 坤. 日과 月. 人과 神 .... 등을 대칭적으로 표현할 땐 음(陰)과 양(陽)으로 분리했다. 이는 분명히 '관념적' 표현이지 절대성에 바탕한 분류는 아님을 유념해야 한다.
` 양(陽) == 乾 日 人 外 左 前 明 男 晝 南 東 夫 火 上 春 夏 ...
` 음(陰) == 坤 月 神 內 右 後 暗 女 夜 北 西 婦 水 下 秋 凍 ...
그렇다면 최초의 음양(陰陽)이란 개념은 어디로부터 유래했을까?
이는 하도(河圖)로부터 유래했다.
하도(河圖)는 황하의 지류인 하수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표시된 그림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다. 하도의 윗쪽은 남쪽이며 2.7이 자리하고 하늘(乾)이다. 그림 밑의 1.6은 북쪽이며 땅(坤)이다. 왜 2.7을 하늘(乾)이라 했을까?
그 이유는 용마의 목 부분에 2.7이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목은 신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즉 머리 쪽이기 때문에 하늘로 상징됐고, 1.6은 꼬리 부분에 위치해 있어 땅(坤)으로 상징화됐다.
하도는
1. 6
2. 7
3. 8
4. 9
5. 10
으로 짝지워 지는데,
1 3 5 7 9 ---> 흰색 (陽數)
2 4 6 8 10 --> 검정색 (陰數)
흰색은 홀수로서 맑고 가벼운 기운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아 천수(天數)라 했고, 검정색은 짝수로서 무겁고 탁한 기운이 자리잡은 것으로 보았으므로 지수(地數)라고 부른다. 그래서 밝은 흰색을 양수, 어두운 검정색을 음수로 보았다.
천수(天數) - 1. 3. 5. 7. 9 (양수)
지수(地數) - 2. 4. 6. 8. 10 (음수)
이미 복희 때로부터 음양(陰陽)의 개념은 하늘(天)과 땅(地)의 상징으로 대두됐다.
음양은 자연에 대한 인문(인간의 관점)적 관찰 결과 얻어진 것이므로 만물에만 적용되고 신에겐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신들과 관련해선 체(體)와 용(用)으로 적용된다.
음양 = 자연원리 ---> 인문적 관찰 ---> 만물에 적용 (신은 인문적 관찰이 어려우므로 음양으로 헤아리 못한다) |
3. 음양과 증산사상
증산께서 '광구창생'의 길을 걷기 전에 … "유(儒) ・불(佛) ・선(仙) ・음양(陰陽) ・참위(讖緯)를 통독하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행록2장1절) ... 라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증산께선 천지공사에 '음양'을 매우 중요하게 활용했다.
"강태공은 72둔을 하고 음양둔을 못하였으나 나는 음양둔까지 하였노라" - (행록3장 28절)
72둔(遁)
72둔이란, 천문. 지리의 변화를 72가지로 구분하여 그 각각을 인사(人事)에 적용한 법술이다. 이 원리를 깨닫고 행한 인물이 강태공이다.
` 하늘(天) --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10天干)
` 땅(地) ----- 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 (12地支)
천지는 10천간(十天干)과 12지지(十二地支)의 작용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땅(地)은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하늘의 십천간(十天干)이 변화의 기준이 된다. 십천간(十天干)은 갑기토운(甲己土運)이라 하여 갑(甲)과 기(己)가 음양 기운 전환의 기준이 된다.
` 甲乙丙丁戊
` 己庚辛壬癸
甲과 己가 음양 기운이 전환되는 기준이 되는데, 甲일에서 己일까지 소요되는 일수는 5일이므로 이 5일을 하나의 단위로 해서 음양의 변화가 있게 된다. 이 변화의 단위가 되는 5일을 1후(候)라 하며, 1년 동안 모두 72개의 후(候)가 존재하기 때문에 1년에는 72가지의 변화(72遁)가 있는 셈이다.
` 甲乙丙丁戊 -- 1후
` 己庚辛壬癸 -- 1후
` 5일(1후) x 72 = 360
음양둔(陰陽遁)
음양둔은, 음과 양이 하지와 동지를 기준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하지 이후에는 일음(一陰)이 시생(始生)하니 음(陰)의 기운이 점점 커져 간다는 뜻으로 음둔(陰遁)이라고 부른다. 동지 이후로는 일양(一陽)이 시생(始生)하니 양(陽)의 기운이 점점 커져 간다는 뜻으로 양둔(陽遁)이라고 부른다.
` 음둔(陰遁) = 하지 이후 --> 일음시생(一陰始生)
` 양둔(陽遁) = 동지 이후 --> 일양시생(一陽始生)
음양둔의 원래 의미는 1년을 하지에서부터 동지까지인 음둔과 동지부터 하지까지인 양둔으로 나눈 ‘기간’의 의미다.
그런데 ‘음양둔을 한다’라는 동사형으로 사용했을 경우에는 음과 양으로써 조화를 부리는 차원을 말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 그것은 음양둔의 둔(遁)이 둔갑(遁甲)에서 나온 말로서 곧 도술이나 조화를 부리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주 삼라만상의 근본인 음양으로써 조화를 부리기 위해서는 음양의 주재자(主宰者)라야만 한다.
` 72둔(遁)은 원래 72절후(節候)에 따라 5일(1候)마다 하늘 기운이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1년이면 72번의 하늘 기운이 바뀌게 된다. 이를 인사(人事) 즉 인간사에 적용한 이가 강태공이다.
` 음양둔(陰陽遁)은 원래 하지부터 동지까지의 음둔과, 동지부터 하지까지의 양둔으로 나뉜 기간의 의미다.
` 이것(72둔과 음양둔)은 세상에서 사용되던 섭리였다. 증산은 이를 '신명계'에 적용해 공사로 활용했다. 증산께선 왜 세상에 있는 섭리를 활용해 공사에 이용했을까? 공사에 활용된 것들은, 세상에서 이용돼 쓰여졌지만 이는 선천 하늘이 섭리를 위해 세상에 내려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록 세상에서 활용되고 있었지만 이는 하늘의 '의도'에 따라 미리 내려준 것이므로, 세상에 있을지라도 결국 하늘의 도수이기 때문이다. |
음양은 만물의 변화를 인문적 관점에서 이해한 사상으로서, 그 핵심은 '분열과 팽창(陽)' 그리고 '응축과 숙성(陰)'이란 우주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오로지 만물에 대한 관찰 결과로서 얻어진 진리이므로 이를 신명계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다만 신명들의 체(體)와 용(用)을 설명할 때는 음양을 적용할 수 있다. 예로서 선천의 신명과 후천의 신명 역할을 상대적으로 비교할 땐 음양을 적용해 선천은 양(陽), 후천은 음(陰)으로 적용할 수는 있다. 따라서 신명계에 음양을 도입해 음신(陰神) 양신(陽神)을 언급하는 것은 음양과 아무런 상관이 없을 뿐더러 천부 천모를 대입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태을천상원군은 '태을'이 주격이며 천상원군은 '태을'을 보조하는 격이고, '태을'이 천상원군(하늘의 으뜸가는 임금)이란 뜻으로서 '태을'을 음양으로 분리해 보는 것은 맞지 않다.
[참고] '3. 음양과 증산사상' 부분은 아래 링크에서 발췌했음 (글쓴이 또한 이글을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전경한자 해설'을 출처로 함. 필독을 권함)
72둔(72遁)과 음양둔(陰陽遁) : 네이버 블로그
첫댓글 😊😄🤔 '음양이 관념적 개념이라면 증산께서 이를 통해 공사를 볼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증산 공사는 '있는 것'을 소재로 활용했다. 음양론은 동양철학의 핵심 기저로서 이미 섭리로 사용돼 왔다. 그러므로 증산께선 당연히 동양의 핵심 사상을 활용해 공사를 본 것은 타당하다
선배 공론장이라고 하니 댓글을 답니다
『주역』「 계사전 상 繋辭傳 上 」제5장은 음양에 대해 다음처럼 정의한다.
一陰一陽之謂, 道
(한 번 음으로 한 번 양으로 작용하는 것을 도(道)라 한다) --> 도(道)는 음양이 서로 교대 작용하는 것이다.
陰陽不測之謂, 神
(음양으로 헤아릴 수 없는 것을 신(神)이라 한다) -->
신(神)은 음양으로 나뉘지 않고 음양이 합덕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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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대한 의견 입니다
교법 3장 27절
증산의 道는....
나는 생(春)ㆍ장(夏)ㆍ염(秋)ㆍ장(冬)(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쓰나니
이것이 곧 무위이화(無爲而化)니라.입니다.
공자가 말하는 도와 증산이 말하는 도는 다른 것 입니다
遁은 '숨거나 달아나다'라는 본뜻에서 파생되어,
은둔, 『 “변신” 』, 피함 등 다양한 한자다.
遁(둔)은 '숨다', '달아나다', '피하다'라는 뜻을 가진 한자로,
한자문화권에서 '은둔', '도망', 『 “변신” 』 등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희역 八卦 36弓에 조작한 주역 八卦인 36弓을 덥어서
주역72 遁(둔)이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주역 八卦에 정역 八卦 36弓을 덥어서 정역 72遁(둔)이 되는 것입니다
하여 72遁(둔)과 72候(후)는 그 뜻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72遁(둔)은 易과 관계 된 것이고
72候(후)는 절후와 관련 된 것입니다.
陰陽遁란
희역 때는 中弓에 九數가 있었고
주역 때는 中弓에 五數 있었으며
이번
정역에는 中弓에 一數와 六數가 陰陽으로 있으니 陰陽遁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왜 一數와 六數가 中弓에 있게 되엇는지 봅시다
일부의 역은 시발점이 二로 출발 하여 六數가 中弓에 이르고
十數에 끝나지만 十數에 一數가 빠져 숫자로 아홉 개 밖에 안 됩니다.
증산은 일부가 빼먹은 一數를 中弓으로 시작하여
中弓에 다시 六數가 들어 오므로 一數와 만나 陰陽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증산이 공사 본 “陰陽遁”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 신명계의 “陰陽”은 {鬼神之神明}입니다
즉 신명계도 “陰陽”으로 돌아가나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가 않죠.
희역 때는 “陽”으로 돌아가는 넘치는 세상 이였고
주역 때는 “陰”으로 돌아가는 모자라는 세상 이였습니다.
하여 주역 때는 “鬼神”세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정역 세상으로 “陰陽”으로 돌아가는 “神明” 세상인 것입니다
그리하여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은 서로가 相生하는 世上인 것입니다
또한 공자는 자연을 바라보는 道였다면
증산은 神明界를 바라보는 道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자의 道와 증산의 道가 다른 것입니다
박우당 훈시입니다
道가 陰陽이며 陰陽이 理致이며 이치(理致)가곧 經緯이며 經緯가 法이라는 眞理를 깨달아야 한다.
『 “道” 』가 무엇이냐.神이다. 神이 道다.
우리가 믿는다면 무엇을 믿느냐 하면 神을 믿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道는 神道이다
.”우리 道는 神道이다.즉 神明의 道다.
우리의 일은 사람의 일이 아니고 神明의 일이다.
그래서 道가 神이다. 우리가 道를 믿는다면 神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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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道와 증산의 道가 다르다는 것을 박우당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공자가 바라보는 萬物은 자연이지만
증산이 바라보는 萬物은 十二地神입니다
하여 증산 曰:
산제사에서 자리로는 띠자리가 깨끗하다고 했죠
여기서 띠는 열두 띠의 八挂 자리를 말 하는 것이죠
태극도, 대순, 상도, 수도인들이 99.9999%로가 부정 하는 열두 띠 자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