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일서 4장 7-8절 7절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절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공동번역)
제목: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도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입추가 지나고 처서가 왔는데도 무더위는 물러가지 않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제 아내는 코로나에 재감염되고 저는 몇주 동안 구내염을 앓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건강한 사람도 견디기 어려운 판국인데 장애인 등 약자들에게는 갑절의 무게로 다가오게 마련입니다.
이렇게 아프고 지친 사람들이 많고 저희도 열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딱딱한 설교보다는 보편성을 띠고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힐링을 줄 수 있는 문학작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 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라는 작품을 통해 진정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되새겨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이러한 성경적인 소설이 웬만한 유명 설교자들의 설교보다 훨씬 보편적으로 읽히고 거부감 없이 기독교 정신을 수용하게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학이라는 장르가 불필요한 강조법을 남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독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리치료 기법 중에는 이러한 문학작품을 읽고 치료하는 “문학치료”라는 분야가 새롭게 각광을 받고 있는 추세입니다. 소설의 맛을 제대로 보려면 직접 읽어봐야 합니다. 여기서는 맛보기로 간단히 요약을 해드릴테니 여유가 되실 때 소설 전체를 읽어보시고 새로운 감동과 깊은 힐링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미카엘 천사가 한 여자를 데려오라는 신의 명령에 불복해서 세상으로 쫓겨납니다. 신의 명령은 며칠전 남편을 사고로 잃고 혼자서 쌍둥이 여자이들을 낳은 여자의 영혼을 데려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죽고 아이들을 키울 사람이 자기밖에 없으니 자기 영혼을 거두지 말아 달라고 애원을 했습니다. 천사는 빈손으로 신에게 올라갔다가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신은 천사를 내려보내면서 세 가지 문제를 내주었습니다. 1) 사람에게는 무엇이 있는가? 2) 사람에게는 무엇이 없는가? 3)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이 세 문제에 대한 해답을 구하면 죄를 용서하고 천상으로 복귀시켜주겠다고 합니다.
미카엘은 벌거벗은 채 몹시 추운 한 겨울에 교회 벽에 기댄 채 꽁꽁 얼어붙어 있었습니다. 마침 그 길을 지나가던 구두장이 시몬이 그를 데리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의 아내인 마트료나는 남편이 사오라고 부탁했던 외투는 고사하고 술을 마시고 낯선 사내까지 데려오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욕을 퍼붓고 저녁도 안 주겠다고 하고 남자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남자의 얼굴을 보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서 저녁을 내주고 잠자리도 제공해주었습니다.
이때 미카엘은 첫 질문에 대한 답을 알게 되어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 답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로 미카엘은 시몬에게 구두 기술을 배워서 열심히 일하며 함께 지냈습니다. 어느 날 거대한 남자가 엄청 비싼 독일제 가죽을 가져와서 1년 동안 절대 떨어지지 않는 장화를 만들어 내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러나 미카엘은 그 가죽으로 시신에게 신기는 신발을 만들었습니다. 그 남자가 왔을 때 죽음의 천사가 그의 뒤에 서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번째 문제를 풀게 되었습니다. 그 해답은 사람에게 없는 것은 자기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아는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즉 사람들은 자기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모르고 필요 없는 것을 쫓는 습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문제에 대한 해답은 쌍둥이 여자아이를 키우는 부인이 아이들의 신발을 주문하기 위해 방문하면서 풀렸습니다. 그 쌍둥이는 바로 미카엘에게 자기를 데려가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던 그 여자의 아이들이었습니다. 그 아이들을 다른 여자가 지극 정성으로 키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중 한 아이는 그 어머니가 세상을 떠날 때 발을 뭉개는 바람에 한쪽 다리를 절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부인은 이런 사연을 이야기하면서 다리를 저는 아이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을 보고 미카엘은 깨달았습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을....
사람은 사랑이 없으면 한시도 살 수가 없습니다. 만일 잠깐이라도 사랑을 잃으면 끔찍한 죽음의 악취가 풍긴다고 미카엘은 묘사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도 제가 화가 나서 말을 하고 있을 때는 입에서 독 기운이 뿜어져 나온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랑은 매순간 호흡처럼 우리 존재에 충만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악감정과 분노를 품고 있으면 그 시간은 영혼이 질식되고 죽어가는 시간입니다. 그러한 죽음의 기운이 쌓이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까지 죽이는 끔찍한 독 기운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러한 독 기운에 사로잡혀 흉기를 들고 묻지마 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이 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에 굶주려서 영혼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을 가까이하고 안아주고 싶어도 섣불리 다가가기가 무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범죄심리학 등 세상 학문들은 그들의 뇌 구조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사람들이라고 일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류가 이미 하나님 앞에 사이코패스가 된 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인류 전체의 죽음에 이르는 병을 치유할 길은 오직 하나님 자신의 무한한 사랑뿐임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죽음의 나락으로 치닫지 않고 본연의 고향으로 회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나라와 이 땅에 연결된 사랑의 사다리이신 예수님이십니다.
문제는 그분의 우주적 사랑을 어떻게 하면 사랑에 굶주린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맛보게 할 수 있는가입니다. 교육, 경제, 정치, 상담 등 수많은 대안들을 내놓고 있지만 어찌된 셈인지 그런 것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간들은 더욱 외로워지고 고립되어 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한결같이 강조하는 것은 그 모든 것을 동원하되 반드시 “사랑”을 밑바닥에 깔고 실행해 나가라는 것입니다. 제도를 말하는 이들은 딱딱한 사회 용어들만 남발할 뿐 사랑을 거론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그 수많은 이론과 말들은 결국은 “사랑”의 다른 이름들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굶주림은 사랑을 받아야만 치유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랑은 베풀고 나누어야만 사랑의 능력이 성장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예수님도 사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베풀고 섬기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도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사랑의 샘을 터서 이웃으로 흘러가도록 길을 열어줘야 합니다. 그리할 때 꽁꽁 얼어붙은 독 기운과 죽음의 악취가 풀려나고 치유와 행복의 향기가 되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소식
1. 제 아내가 코로나에 재감염되어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자가격리를 하고 오늘부로 격리 기간을 마쳤습니다. 격리기간 동안 활동지원사 선생님들께서 쉬는 날에도 출근하셔서 정성을 다해 식사를 챙겨주셨습니다. 세째처남 내외와 처제 내외는 과일과 반찬 생과일쥬스 등을 들고 오시고 그 외 카톡과 전화로 안부를 물어주셨습니다. 덕분에 아내가 아무 후유증 없이 거뜬히 회복되었습니다. 성원해주신 모든분들께 깊이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 기승을 부리던 폭염이 서서히 물러나고 있습니다. 야간에는 서늘해지다가 추워지게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환절기에도 늘 몸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가을 맞이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