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종’ 김수환 추기경 시복추진 심포지엄 [연재8]
4.2. 향주 삼덕에 대한 증언
1) 믿음[信德]
-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새로운 교회상과 주교상을 정리했는데, 진정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대로 사목하신 분이시다. 모범 주교로 우러러 본다.”[두봉 주교, 1: 150~151].
- 저에게 “이 신부 기도하나?” 그러세요. 그래서 “잘 못한다.”고 하면 “기도해라.”고 말씀 하시면서 항상 “나는 하루 한 시간 성체 앞에서 기도하네.” 세상에! 저는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바쁘신 분이[이성운 신부, 3: 241].
- 그 상황에서 이분이 그 시대 속에서 새롭게 펼쳐지는 상황을 보고, 듣고, 그렇지만 항 상 고통 속에서 행동하셨습니다. 그 기준이 예수님 말씀이었고 교회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주수욱 신부, 4: 385].
- 추기경님이 사회학을 공부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세상 속에 들어가서 정말 고통스러운 사람들 그네들 속에 그리스도를 만나는 영성을 말씀해 주셨어요. 십자가라든지, 썩는 밀알이라든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영성이라고 할까, 죽음의 영성이라고 할까[최기식 신 부, 6: 13].
- [2002년 포콜라레 국제예술단 젠 베르데의 공연 리허설 후] “이 어려운 언어[한국어]를 여러분이 이렇게 완벽하게 배운 것을 보니까, 진짜 여러분은 하느님의 힘을 믿었기 때문” 이라며, “사랑이라는 그것, 한국인에 대한 사랑이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라고 하셨어요 [민순신 선생, 6: 113].
- [‘참회와 속죄의 성당’을 짓는 기간] 꼭 14년 동안 서슴없이 당부하신 게, 기도 열심히 하라는 말, 기도는 핵무기보다 강하니 기도를 적당히 하지 말라고, 기도 많이 하라고. 제가 제일 가까이서 들었는데 제일 실천을 못했어요[봉두완 회장, 7: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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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그리운 김수환 추기경』 제1권~제7권까지 수록된 성덕에 대한 증언 내용의 항목 별 분류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안건 역사와 고문서 전문가 위원회 구성을 위한 제5차 준비모임’(2024년 3월 13일)에서 준비위원들이 작업한 내용의 도움을 받았다. 제8권은 2024년 말에 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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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희망[望德]
- 교회를 위해서 교회가 있는게 아니라, 세상을 위해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보신 거지요. 그런데 결국 그것을 지향하는 궁극적인 가치는 평화였다고 생각합니다[강대인 원장, 3; 291].
- “재미만 있으면 안 되지. 보람을 느껴야지.” 그러시면서 “어린이들을 위한 일이 바로 나라를 위한 일이고 미래를 위한 일입니다. 김 기자 하는 일이 중요하니까 보람을 느끼면서 열심히 하세요.” 이러시더라고요[김병규 작가, 4: 65].
- 제자들이 스승께 궁금한 눈초리로 그럼 스승께서는 어떻게 새날이 오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지나가는 사람들이 내 형제로 보일 때 비로소 새날이 온 것이니라.”고 답했답니다 [김정남 전 청와대 교육문화사회 수석비서관, 4: 296~297].
- 한번은 이 파스텔 그림을 걸어놨는데, 추기경님이 그림들을 하나씩 하나씩 잘 보셔서 제가
“이 그림은 이름을 붙이고 싶은데, 못 붙이고 있어요.”그랬더니 즉석에서 ‘영원의 갈망’이라고
말씀하셨어요[최종태 교수, 5: 88].
- 그때 한 30분쯤 있었는데, 들어가자마자 웃기 시작해서 끝까지 웃고 왔어요. 집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병문안을 갔는데 오히려 나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환자가 애쓰신 거예요. ‘성인 아닌 다음에 어떻게 그렇게 할까’[최종태 교수, 5: 94].
- 김수환 추기경님의 원동력은 아버지라는 소명의식인 것 같아요. 사제가 아버지잖아요... 저는 추기경님의 그런 모습이 예수님의 또 다른 육화셨다고 생각합니다[금필화 수녀, 7: 215].
3) 하느님을 향한 사랑[愛德]
-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 같이 우리가 사랑을 하고 주는것,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성공이고 그것이 최고의 인생입니다. 김수환 추기경도 그렇게 사셨습니다[김형석 교수, 1: 98].
- 추기경님은 미사 중에 “하느님은 정말 참사랑이시다.”라고 말씀하셨지요. 대원군 4대 손자의 연미사를 하시는 김에, 대원군을 위한 위령미사까지 하신 거죠. 그때 우리가 모두 감동을 받아서 울었어요[이남주 교수, 5: 231].
- 김수환 추기경님이 지은 <나는 그리스도를 찾습니다> 그런 성가가 있죠?... “그리스도를 찾습니다. 그리스도를 찾습니다.” 하면서 계속 부를 때 “그러나 나는 무엇을 했나요?” 끝에 가서 그러거든요... 자기는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그 사랑의 행위를 얼마나 실천했는가에 대한 성찰을 그 성가를 통해서 알 수 있었습니다[최기식 신부, 6: 31].
- 체구도 작은 여성이그런 공연을 단독으로 두 시간을 끌고 나가는 걸 보면서,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무얼 얼마만큼 했나를 생각하게 되었다고요... 신부님들을 굉장히 독려하셨다는 거예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주님을 위해 윤석화 배우처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윤석화 배우, 6: 252. 253].
4) 이웃을 향한 사랑[愛德]
- 추기경님이 가난한 이들을 위해 노력하셨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지요. 추기경님의 생각을 지배하는 가장 큰 주제는 인간입니다. 인간이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을 가만히 볼 수가 없으셨어요[손인숙 수녀, 1: 49].
- ‘사랑하며 살라’ 하시던 온화한 미소와 목소리를 영원히 들을 수 없고 볼 수 없으며, … ‘울고 있을 시간에 한 번이라도,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겠지요[이옥정 대 표, 1: 136].
- 총책임자 자매가,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은 아줌마들의 보따리를 내려 주시는 모습이라고 얘기하세요[희자 작은 자매, 1: 237].
- 이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뭐냐? 하면 무관심이에요. 추기경님은 관심이 많으셨어요. 교회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어려운 사람 하나하나부터 대통령까지 관심을 많이 가지셨어요.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자예요[함제도 신부, 3: 28].
- 김 추기경님은 제가 제일 힘들고 외로운 시간에, 고통을 겪는 순간에 저를 챙겨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너무나 당황스럽고 송구해서 미사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이후 저한테는 크리스마스 미사를 못할 만큼 고통스럽고 아프고 외로운 사람들이 조금 더 잘 보입니다[안규리 교수, 3: 176~177].
- 추기경님이 명동에서 미사하시며 하신 말씀이 기억나요. “어떤 사람이 이곳 명동성당에 망치를 가져와서 석상이나 제대를 두들기면 야단이 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에 사람 들을 고통에 빠뜨리고 망치로 때렸는데도 아무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왜 그럴까?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존엄한 존재가 아닌가! 명동성당 안의 이 돌들이 귀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사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고 문요안나 수녀, 5: 69].
- 추기경님은 언제든지 “여자들이 더 영성적이다.” 말씀하시며 참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해 주셨어요. 저는 추기경님이 ‘당신 어머니를 그렇게 사랑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 생각했죠[오덕주 회장, 5: 168].
- 평신도 제자리 찾기 운동, 똑바로 운동 등뿐만 아니라 위기에 빠진 국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과소비 억제 운동, 근검절약 운동, 금 모으기 운동이나 북한 동포를 돕기 위한 옥수수·감자 보내기 운동, 민족화해를 위한 북한 동포 돕기 100만인 서명 운동 등 그런 모든 엄청난 일들을 추기경님을 모시고 같이 한 거죠[류덕희 회장, 6: 87].
- 그러나 그분의 대인관계는 늘 인내와 대화로 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음속으로는 고독을 느끼며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하셨지만, 그분은 늘 폭넓게 사람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구중서 교수, 7: 89].
- 추기경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에 대한 연민이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가난한 우리나라에 대한, 군부의 핍박을 받은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한 끊임없는 연민이었던 거죠... 우리나라 백성 자체가 전부 가난했었잖아요. 그래서 그 연민을 온 나라로 발산하신 거죠. 가난한 자를 향한 연민의 마음을요[금필화 수녀, 7: 219].
- 저는 당대에 우리나라의 정신적 임금님, 왕좌에 계셨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의 교황님 비슷한 역할을 하셨어요. 직접 몸소 실천도 하시고, 우리 ‘정신적 교황님’이시죠. 빈민굴 같은 곳에 막 찾아가시고, 말년에도 다 돌아가실 분이 나환자만 보면 힘을 내시고요. 나환자의 아버지이시잖아요. 그것보다 위로가 되는게 어디 있어요? 예수님도 나환자들을 그렇게 예뻐하셨잖아요[봉두완 회장, 7: 239].
- [부산 소년원 상공에서 교황 요한-바오로 2세와 함께 헬기로 선회하도록 하는 일을 성사 시킨후] 내가 그때 추기경님이 애 같은 줄 알았지. 그때 주교님들이 다 거기 모여 있는데 이렇게 깡충깡충 뛰면서... “네가 시키는 대로 했지, 했지.” 그 소리를 계속 하시느라 내 손을 잡고 못 놔[김상진 신부, 8: 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