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
인간중심주의와 생태중심주의는 세계에 대해 서로 대비되는 형이상학적 믿음이자 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내 인간이나 다른 요소들의 위상, 그들 간의 관계 등에서 이들 두 입장은 서로 대척점에 위치해 있다. 그렇기에 어떤 입장이 옳고 그르며 맞고 틀리는지의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차이나는 지점이 무엇인지 또 인간의 실천적 행위나 문화적 코드, 지식체계 등이 어떠한 인식론적 기저를 바탕에 두고 있는지 신중히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먼저 ‘인간중심적’ 관점은 이 세계 안에 존재하는 현상들 가운데 인간을 중심적 존재로 전제하고 나머지 생명체나 산⋅물⋅땅⋅나무 등을 오로지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도구적 존재로 보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과 인간 이외의 존재가 세계에 존재하게 되는 바 애초부터 그 동일성(identity, 본질적 실체)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이원론적 분할을 전제하는 것이다. 환경결정론, 가능론 등 그동안 서구 근⋅현대 지리에서 인간-환경 간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시도한 이론들에서 환경은 곧 무엇인가를 둘러싸고 있는 ‘envirionment’로 그 중심에는 인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Geography의 인간-환경 간 관계 설정의 인식론적 대전제가 인간중심주의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반해 ‘생태중심적’ 입장은 ‘탈인간중심적’ 입장에서 세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현상들을 균질적 존재로 보고 그들 간의 유기적 순환관계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로 인해 세계는 인간만이 중심이 아닌 인간 이외의 존재들도 중심이 될 수 있는 어찌 보면 중심의 부재(absence), 중심의 해체로 특징지을 수 있다. 이는 세계 내 존재들이 물이나 불, 기(氣) 등 그 개념적 표현은 다르더라도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한다고 보는 일원론적 세계관과 관련된다. 만물일류(萬物一類)나 만물균(萬物均), 제물사상(齊物思想)*등 일원론적 세계관의 동양적 표현과 관련된 동기간(同氣間) 개념은 인간-환경 간 관계를 생태중심적 입장에서 이해한 풍수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그동안 전통적 자연관 또는 환경관으로 이해되어 온 풍수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너무도 익숙한 ‘인간중심적’ 입장과 구별되는 생태중심적인 인식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생태중심적 인식의 반영이 용맥(龍脈), 득파(得破), 좌향(坐向) 같은 풍수의 주요 요소와 관련된 개념이나 이론들인 것이다.** 현재 익숙한 용어나 이론, 인식 틀과는 구분되는 개념이나 이론으로 구성된 풍수를 차이나는 인식론적 기저를 반영한 독특한 문화현상으로 봐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풍수 관련 연구자들이 풍수와 관련된 실제 현장이나 지식체계에 대한 접근에서 의미 있게 고려할 부분이기도 하다. 이와 같이 풍수를 생태중심적 환경관으로 규정하는 것은 풍수의 입장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현대의 인간중심적 입장과는 구분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최근 전지구적 차원에서 제기되는 ‘인류문명의 위기’ 또는 심각한 ‘환경위기’의 대안으로 생태중심적 입장이 주목받고 있는 상황을 볼 때, 이러한 문제의식은 풍수에 대한 현대 환경론적 재해석의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동시에 그 동안 풍수는 한국의 전통지리, 지리사상 또는 지리관 등으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여기서 풍수적 환경관을 살피는 것은 현대의 서구적 환경관과 구분되는 한국의 전통적인 입장이 무엇인지 관심 갖는 작업이기도 하다.
*만물은 차등이 없이 모두 평등하다는 인식.
**이와 관련해 권선정, 「전통지리 풍수에서의 산」, 한국인에게 산은 무엇인가, 민속원, 2016, 47-71쪽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