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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의 향상- 지선至善은 제도 아닌 사람의 문제》
* 출처: 신동기 저 《어른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4월 출간) p332-337
역사 발전의 종점, 민주정
헤겔(1770-1831)은 인류 역사 발전을 4단계로 인식합니다. ①동양 세계, ②그리스 세계, ③로마 세계 그리고 ④게르만 세계, 4단계로입니다.
헤겔에 있어 ‘동양 세계’는 가부장적인 자연적 공동체로 아직 인간의 정신이 자연으로부터
미분화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그리스 세계’는 노예제 도시 국가로 개인의 의식이 외부의 힘에 좌우되는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로마 세계’는 시스템을 갖춘 국가로, 내부적으로는 귀족정과 민주정이 갈등하고 외부적으로는 황제 한 사람이 여러 다른 민족들을 억압하는 상태를 의미했고, 마지막 ‘게르만 세계’는 객관적 진리와 자유의 화해가 실현된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4단계 각각에 대한 헤겔의 인식이 적절한지는 일단 차치하고, 헤겔은 역사 발전에 종점終點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그 종점은 ‘모든 인간에게 평등하게 자유가 주어지는 과정’, 곧 게르만 세계였습니다.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시대 민주정의 등장을 목격한 헤겔에게는 19c 초반이 바로 그 역사 발전의 종점이었습니다.
민주정은 국민이 그 국가의 주인인 정치제도입니다. 오늘날의 민주정은 대의제 민주정으로, 국민은 스스로 선출한 대표자를 통해 주인으로서의 권력을 행사합니다. 바로 국회의원 등의 의원들을 선출함으로써 ‘입법’에 참여하고, 행정부의 대통령을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선출함으로써 ‘법률의 집행’에 참여합니다.
신동기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에서 “자연 상태 아닌 국가 환경에서, 자신에게 적용될 규칙을 스스로 정하는 것보다 더 큰 자유는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직접민주주의든 대의제 방식의 간접 민주주의든.
그래서 헤겔은 섣부른 인정이긴 했지만 프랑스혁명으로 인한 왕정의 붕괴와 민주정의 등장을 보면서 이제 역사는 더 이상 발전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판단했습니다. ‘민주정’이 역사 발전의 종점이라 생각했습니다. 헤겔에게는 ‘민주정’이 공자가 말한 ‘지극히 좋은 세상’ 즉, ‘지선至善’이었습니다.
‘정치혁명의 구조’가 말하는 ‘정치발전 3단계’와 ‘사회 행복 총량’의 변화
신동기는 《이 정도는 알아야 할 정치의 상식》에서 ‘정치혁명의 구조’를 말합니다.
정치는 3단계로 발전하는 데, 1단계는 기존의 왕정에 민주정이 도전하는 ‘정치혁명&대립 단계’이고, 2단계는 기존의 자본주의에 사회주의가 도전하는 ‘경제혁명&대립 단계’이고, 3단계는 기존의 보편성·획일성에 개별성·다양성이 도전하는 ‘문화혁명&대립 단계’입니다.
정치발전에 있어, 정치 영역에서 가장 먼저 혁명&대립이 일어나는 것은 왕정에서 민주정으로의 전환이 그 사회의 행복 총량을 가장 크게 증가시키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만이 자유롭던 상황에서 모든 이가 자유로운 상황으로 바뀌니 그 사회의 행복 총량이 수직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체제의 혁명&대립이 가져온 혼합경제(Mixed economy)는 그 사회의 행복 총량을 정치혁명 때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증가시킵니다. 빈익빈부익부를 완화시켜 경제적 평등도가 높아지니 사회적 총효용 즉, 사회적 행복 총량이 상당히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 단계인 문화혁명&대립에서는 사회적 행복이 그리 크게 늘지 않습니다. 정치·경제의 혁명&대립 때처럼 사회적 큰 틀을 바꾸는 것이 아니고, 그 사회구성원의 기호·욕구 다양화에 따라 그 기호·욕구 그룹 간 미세한 조정이 이뤄지는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적 행복 총량이 늘더라도 조금 늘 뿐입니다.
우리나라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다양한 복지’가 ‘자본주의(Capitalism)적’이 아닌, ‘사회주의(Socialism)적’이라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심지어 정치의식이 아직 왕정 시대에 머물러 있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는, ‘정치혁명의 구조’ 3단계 중, 첫 번째 민주주의와 두 번째 혼합경제 복지국가를 이루고, 현재 마지막 세 번째인 문화혁명&대립 단계 진행 중에 있습니다.
성적 소수자(LGBT)에 대한 기존의 사회 통념이 바뀌는 중이고, 인권을 넘어 동물권이 사회적 중요 이슈가 되고, 먹는 행위가 생명유지를 위한 숭고한 의식 아닌 예능이 되고 게임이 되고 있는 때입니다. 그것은 곧,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즉, ‘사회적 행복 총량’을 늘리기 위해 우리가 ‘제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로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21c 이 땅의 지선至善은 ‘제도’ 아닌 ‘사람’의 문제
대한민국 사회는 A. 토크빌(1805-1859)이 ‘보통선거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회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는 것이다.’라며 우려했던 그 보통선거제를 완전히 정착시켰습니다. 다수결에 의한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 체제적으로는 의료보험제도, 연금제도, 실업수당 등을 비롯한 다양한 복지제도의 도입으로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상당한 수준의 사회안전판을 갖췄습니다. 그리고 문화적으로는 다양한 분야에서 현재 미세한 클릭 조정이 한창 이루어지고 있는 중입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 경제적으로 ‘복지’가 상당히 이뤄지고, 도로, 공원 등의 사회간접자본이 거의 세계 최고 수준인 상태에서 이 땅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즉, ‘지극히 좋은 상태에서 머무는’ ‘지어지선止於至善’이 아니라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마땅히 제도 아닌 다른 영역에 있습니다. ‘사람’입니다.
한 사회의 ‘이성 능력’이 향상되면 그 사회는 더 공정해지고 제도적으로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민주주의 사회가 됩니다. 사람들이 사실과 논리를 따져 각자 독립적으로 판단해 적극적으로 사회참여에 나서니, 언론과 정치인들의 말장난이 개재될 가능성이 크게 낮아집니다. 당연히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사람들을 끌고 갈 수 없게 됩니다. ‘민주주의’에 맞게 시민이 참 주인이 되는 사회가 됩니다.
한 사회의 ‘윤리적 태도’가 향상되면 그 사회는 지상천국에 가까워집니다. 한 사람의 윤리적 행동은 주위 여러 사람을 기쁘게 하는 데, 도처에 그런 일들이 일어나니 세상이 온통 배려와 감사로 넘쳐흐르게 될 것이니까요.
우리 사회는 제도로서의 지선至善 은 거의 완성되었습니다. 제도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이제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지금이 ‘지극히 좋은 사회’, ‘지선至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면 각자 결심을 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좀 더 이성적인 사람이 되고, 지금보다 좀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결심을.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지극히 좋은 사회’, ‘지선至善’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아니,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어찌 보면 매우 쉽기까지 합니다. 그냥 각자 인간으로서의 ‘인간성’을 회복하고, 추구하면 됩니다. 본래 인간에게 주어진 ‘선한 본성’을 회복하고, 그리고 가능성으로 주어진 ‘이성’을 추구하면 됩니다. 한마디로 ‘인성人性’을 갖추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성人性 ’입니다.
* 출처: 신동기 저 《어른의 인성 공부》(생각여행, 2024년 4월 출간) p332-337
*****(2024.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