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이 창경원이었던 시절, 춘당지 연못 위로 케이블카가 다니고 청춘남녀가 보트를 타며 데이트를 즐겼다고 하면 지금의 MZ세대들은 그 사실을 전혀 믿지 않으려 하겠지요.
당시의 춘당지는 서울의 핫플레이스로 유명하였던 곳입니다. 놀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도심 한복판에 있는 테마파크의 큰 연못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발길을 끌기에 충분하였지요. 일제강점기 때에는 남쪽 춘당지에 일본식 건물인 수정(水亭)을 세웠고, 광복 후인 1965년에는 케이블카까지 설치했습니다.
지금의 춘당지는 북쪽의 작은 연못과 남쪽의 큰 연못 두 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허리가 잘록한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지요.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그 잘록한 허리 윗부분만 연못이었고 아래 부분은 ‘내농포’라고 하는 궁궐 내의 작은 농장이었는데 1909년 일제가 창경궁을 창경원으로 만들면서 그 아래 부분도 연못으로 바꿔버렸던 것입니다.
‘내농포’는 임금이 농사를 장려하고 백성들의 고단한 노동을 직접 체험하기 위하여 궐내에 조성한 전답을 말합니다. 총독부 관리들로서는 그러한 전답의 존재가 달가울 리도 없었을 테고, 창덕궁 후원에서 흘러 내려오는 엄청난 양의 물을 관리하기 위하여서라도 연못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고 합니다.
1984년 문화재관리국에서 창경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면서 여러 놀이 시설, 편의 시설을 전부 철거했고, 현재의 모습으로 재정비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러 지금의 주무관청인 문화재청에서는 남쪽의 큰 연못을 다시금 내농포로 되돌릴 계획을 세워두고는 있지만 추진이 지지부진하다고 해요.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춘당지 모습 그대로를 즐기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창경원 시절 '나체팅'이라는 유행어도 있었는데요, 봄철 밤에 벚꽃놀이를 할 때, 춘당지에서 미팅하려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은어였다고 합니다. '나이트(night) 체리 블러섬(Cherry blossom) 미팅(meeting)'의 줄임말로, '밤 벚꽃 미팅'이란 뜻이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