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웠던 나의 시절 인연
개암 김동출 수필
2019년에 교직에서 은퇴 후 이런저런 이유로 몇 해 동안 등산의 즐거움을 체험하지 못했다. 70~80년대 자가용이 귀하던 시절 1년에 한두 번 ‘1박 2일’로 교직원 친목회에서 주관하는 직원 여행을 다녔다. 교직 생활 42년이니 전국 유명 관광지는 다 밟아본 셈이다. 하지만 ‘진달래나 철쭉이 만개한 봄철이나, 단풍이 곱게 물든 가을철’은 학기 중이라 좀처럼 틈내어 산행하지 못한 것이 내내 후회되었다. 은퇴한 후에도 동기나 가까운 지인들이 외국의 관광지를 다녀온 인증 사진을 메신저 앱에 올린 것을 보면 아내에게 괜히 미안했다.
지난 11월 초순에 고등학교 동기 친구 ‘L’에서 고향에 거주하는 동기생들의 산행 모임에 초대한다는 메시지가 왔다. 합천 황매산으로 억새 구경 가잔다. 아! 너무 잘됐다. 이참에 보고 싶었던 친구들과 황매산에 드디어 가게 되는구나! 파란 가을 하늘 아래 산등성을 온통 뒤덮은 하얀 억새 군락이 서늘한 가을바람에 하늘거리며 춤추는 정경을 상상하면서 당장 사진 촬영 장비부터 챙겼다. 며칠 후 다시 메시지가 왔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우람한 친구 ‘K’의 제안으로 목적지가 변경되었다는 메시지가 왔다. 1,200m 황매산 등산길을 70대의 우리가 오르기는 무리라는 의견이 나와 곤돌라 케이블카로 쉽게 오를 수 있는 ‘덕유산’으로 목적지가 정해졌단다.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에 걸쳐있는 덕유산은 나와의 시절 인연이 있는 산이다. 2011년 12월 중순 통영시 낙도 S 초등학교 분교장에서 근무할 때 본교와 4개 분교장(돈지, 내지, 양지, 읍덕) 어린이 60여 명과 함께 덕유산 리조트에서 1박 하며 스노보드를 즐겼던 추억이 서린 곳이다. 지난 정초에는 신앙 안의 형제 김 사무엘 부부가 눈꽃 산행으로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다 본 아름다운 눈 풍경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현장에서 중계방송하듯 여러 번 이어서 보내 주었다. 감탄사를 지를만한 설경! 처음 본 상고대였다.
이번 여행에 합류하기 위해 이른 새벽에 창녕에서 내려오는 친구 YG의 차에 편승하여 고향으로 내려가 고향의 동기생들과 합류하는 길도, 여행을 마치고 통영에서 내려 노선버스로 돌아오는 길도 애로가 많았다. 텅 빈 터미널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그러나 꿈많았던 고등학교 시절에 만난 멋진 친구들을 만난다는 설렘이 주저하는 내 마음을 밀어내었다. 애당초 약속했던 친구 중 이런저런 핑계로 불참한 친구들을 제외하고 이번 가을 여행을 함께한 친구는 남, 여 합쳐 모두 스무 명이 못 됐다. 요즘 자신의 소프라노 연주 실황을 유튜브에 올리며 노후를 즐기고 있는 부산 사는 CS가 오지 않아 섭섭했지만 종갓집 시모님 같은 YH가 신 아침 길거리에서 살갑게 반겨주어 새벽길을 달려온 몸과 마음이 훈훈해졌다.
몇몇 친구들을 출발점 장승포에서 만나 준비해온 음식물을 전세 관광버스에 싣고, 자세한 여행 일정을 들으며 도중에 몇몇 친구들을 태우고 통영에서 ‘통영 대전 고속도로’에 올랐다. 아침은 고성 공룡휴게소에서 준비해온 병어회를 안주하고 김밥으로 간단히 해결하였다. 목청 터질 시간은 아니지만, 노래방 기기 반주로 노래도 한 곡씩 부르니 교회 권사인 S는 ‘구월의 노래’를 열창하는 놀라운 노래 솜씨를 보여주었다. 장승포에서 출발한 지 2시간여 만에 덕유산 곤돌라 탑승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예약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서둘러 곤돌라에 나누어 탔다.
고등학교 졸업한 지 51년 만에 곤돌라 케이블카 안에서 마주 보고 앉아 웃음꽃 피우니 이내 해발 1,520m 설천봉이다. 유령 같은 고사목이 눈에 띄는 산마루에서 잠시 휴식하고 서둘러 향적봉으로 오르기 시작하였다. 목재 데크 계단이 놓인 등산로는 걷기 편했지만 체력이 부실한 나를 주저앉히곤 하였다. 친구들은 초입에서 향적봉 오르기를 만류하였지만 예까지 와서 정상에 오르는 생애의 기회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회장 L과 조선소 기장(機長) 출신 CY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응원하였다. 설천봉에서 향적봉까지는 겨울철 ‘상고대’로 이름난 지역. 키 작은 참나무 숲이 산등성에 이어진다. 간혹 늠름한 주목이 넓은 가지를 드리우며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야생화 군락지라고 알려진 길섶에는 이미 낙엽이 수북이 덮여 있었다.
단풍의 고운 빛깔이 겹겹이 메아리쳐 하늘에 닿은 2024년 11월 11일. 곤돌라 타고 설천봉을 거쳐 해발 1,614m 남한에서 두 번째로 높은 향적봉에 닿으니 만세라도 외치고 싶을 만큼 감개무량하였다. 매주 화요일마다 만나는 H.D는 이 맛에, 이 기분에 휴업일 목요일마다 등산하는가 보다. 북새통을 이루는 정상에서 차례로 향적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인증 사진을 찍고 돌아서니 멀리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뱀처럼 꿈틀거리며 이름 모를 고을을 포근히 감싸고 있다. 넓은 산자락 너른 품 안에는 겨울철이면 북새통을 이룰 스키장도 저기 보인다. 우리 일행은 여기서 이제 하산한다. 마지막 목적지는 함양 상림 공원이다. 오던 길로 되돌아 내려오니 ‘고은’의 詩 ‘꽃’처럼 하산하는 길목 곳곳에 올라갈 때 못 보았던 아름다운 것들이 내 오감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내려와 인근 주차장에서 전세 버스를 바람막이로 준비해온 점심과 만난 병어회로 주연을 즐긴 후 기분 좋게 ‘천년의 시간이 흐르는 함양 상림공원’으로 향했다. 덕유산 자락과 지리산이 이어지는 계곡 사이 단풍길을 꼬불꼬불 달려 한 시간여 만에 닿은 상림공원은 그야말로 가을 단풍이 절경인 최고의 힐링지였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아름다운 단풍 숲길은 그 역사만큼 고풍스러웠다. 1974년 교육대학 1학년 가을에 상림공원 인근에 근무하는 대학 동아리 선배의 초청으로 그곳을 방문했던 희미한 40년 전의 기억이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입구에서부터 한 바퀴 돌아 물레방아 쉼터까지 되돌아왔을 때 ‘천년 약속 사랑 나무’라는 표지석을 세운 연리목 앞까지 되돌아가서 나비 소녀 E.S와 인증 사진을 휴대전화에 담았다. 빨간 등대가 보이는 곳에서 펜션을 하는 HG는 ‘사랑 목’을 잡고 늘어지며 웃겼다.
우리의 고등학교 모교는 거제시 장승포에 있던 남녀공학 미션스쿨이었다. 모교가 있던 장승포는 일제강점기부터 어업중심지로 국내에서 처음 고등어잡이 주머니그물(두릿그물의 한 종류)이 시작된 곳, 거제도에서 전깃불이 처음 들어온 곳, 그 외에도 어선의 항 내 입출을 위한 방파제와 우편소(우체국), 근대적 식당, 여관, 극장, 다방, 유흥 시설까지 갖춘 곳으로 육지의 작은 도시 부럽지 않은 부유한 포구였다. 이러한 해양 중심 환경 탓인가? 이곳에서 초. 중학교를 나온 몇몇 친구들은 건달같이 품행이 거칠었다. 통영에서 중학교를 나온 필자에게 걸핏하면 시비를 걸어 적응하는데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중도에 퇴학을 결심하기도 했다. 반면에 이번 여행을 함께한 똑똑하고 심성이 바른 친구도 많아 이들과 서로 기대면서 공부하였다. 토요일 수업을 마치면 친구들과 어울려 좁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중국집에 몰려가 짜장면을 먹고 빨간 등대가 있는 방파제길을 걸으면서 푸른 꿈을 이야기하였다. 남(男) 중학교를 나온 필자는 여학생들 꽁무니 쫓아다니느라 학업에 소홀하여 나중에 식겁하였다. 이를 만회하느라 졸업 후 고향 집에 틀어박혀 꼬박 1년 동안 박 터지게 공부하였다. 뒤돌아보면 아쉬움이 많았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던 그 시절이 아름답기만 하다.
이번 고등학교 동기생들과 함께한 가을 여행은 변화 없는 일상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회장 HJ는 조용한 지도력으로 친구들의 안전을 지켰다. 청백리상을 받은 동장(동장) 출신 YO는 일정부터 먹거리까지 세심하게 준비하였다. 아직 조선업 현직에 있는 MS는 회칼까지 준비하여 여행 중에 생선회를 맛볼 수 있게 솜씨를 발휘하였다. 앞에서도 언급한 HG는 몸개그로 웃기며 모두를 즐겁게 하였다. 교장 선생님 아들 JG는 ‘분교’를 열창하여 분교장에 근무하며 고생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이처럼 남녀 친구 모두 하나같이 곱게 익어가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통영에서 내려 노선버스를 타고 오며 기대했던 친구 ‘YG’가 종착지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詩 낭송’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끝까지 동승 못 한 아쉬움을 달랬다. 집에 돌아와 피로도 잊고 동기들과 함께한 휴대전화기 사진을 모으고 배경음악을 선곡하여 부리나케 “K고 21기 가을 여행” 영상을 만들어 톡 방에 올렸다. 고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간 듯했던 짧았던 그 하루가 오늘까지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이번 여행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한 회장단과 참석한 친구와 ‘주의 말씀 생명 터’에서 3년 동안 함께 공부했던 남녀 동기 모든 친구에게 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빈다.
2024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