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학교로 난 직장으로 남편의 잦은 한국출장(?)으로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생활전선에서 바둥거릴때는 외로움 그리움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었지요 40넘어 미국 이민개척사에 발딛는 순간 그동안의 나는 간 곳 없고 언어, 문화, 사고가 다른 이방의 나라에서 오직 페이먼트와의 전쟁만 했을 뿐이었죠.
어느순간 생존경쟁의 허덕임에서 탈피하고 모든것 털어버리고 나름대로 욕심에서 해방되니 감춰졌던 외로움이 나를 덮치더군요 물론 한국사람이 많은 이곳에서 정 들이면 되겟지만 이민사회의 뭔가 모를 각박함이 거리감을 두고 살수 밖에 없음을 알았기에 혼자서 사색하고 혼자서 노는 나가 되어버렸지요 못견디게 그리우면 한국을 방문하고 옛친구에게 전화통을 붙들고 전화료깨나 날렸어요.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상대는 가여운 내 친구들... 그들은 내가 한 번 편지하면 한 번 떼어먹고 백 번 편지하면 백 번 떼어먹는 상습적인 편지기피자들 이었죠 답장을 못 해주는 마음이 고문이라 하더이다 한 친구는 편지 좀 해달라 애원하니 차라리 백만원 보내줄게 다녀가라더군요 한 통의 편지쓰기 보담 백만원이 훨씬 쉽다나요
그후부턴 편지한 통에 백만원의 의미를 두었습니다 편지를 쓰다보니 타이핑을 배웠고 타이핑을 하고보니 컴과 씨름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러다가 인터넷을 알았고 사람 모인곳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르기에 난 그만 인터넷에 빠진여인이 되버렸어요 딸아이 말이 엄마는 언제나 그 자리에(컴앞에)라고 한답니다.
컴을 알게된 후론 외로움 그리움이 사라졌어요 한국 살 때 가족들 모두 직장 학교로 보내고 집안정리 마친 후 맘 맞은 이웃들과 차 한 잔 나누며 담소하고 이집저집 돌아가며 점심 나누어 먹던 그런 인정을 바로 이 친구모임에서 찾았답니다.
후후~ 한국의 친구들은 제가 죽엇나 했었대요 제가 말햇죠 바람이 낫노라고 바로 인터넷에 말입니다 아마도 내친구들은 휴~ 살았다 할거에요.
이자리에 앉는 그 순간부터 나를 다시 찾앗고 즐거움도 알앗고 화통하게 웃는법도 배웠답니다 정말 우리들의의 만남은 내 인생에 있어 너무도 특별한 만남이 되엇었지요 잃었던 삶의 활기를 찾았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