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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만나는 우리동네 문화유산]울진망양정..조선 임금도 반한 동해 언덕길
원형래2026. 10. 18. 09:38
솔향기 따라 오른 망양정…동해 절경에 가을이 머물다
관동팔경의 으뜸, 왕피천과 동해가 빚어낸 천하절경
전국 관광객 발길 이어져…케이블카 길 안내 개선 목소리도
관동팔경의 하나인 울진망양정 정자 모습.원형래기자
경북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푸른 동해와 왕피천이 만나는 해안 언덕 위에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望洋亭)이 자리하고 있다. 수백 년 전 시인과 묵객들이 찾아와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래했던 이곳은 오늘날에도 전국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울진의 대표 문화유산이다.
기자는 망양정 입구에서부터 정상까지 직접 걸으며 가을의 정취와 문화유산의 숨결을 느껴봤다.
망양정 정자까지 가는 포장도로로 걸어서 200m거리가 바람소리길 모습.원형래기자
입구에서 시작되는 나무 데크 계단은 다소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오르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방문객을 맞았다. 곧게 뻗은 소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숲길에는 가을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들었다.
바닥에는 떨어진 솔잎이 쌓여 있었고, 숲속에서는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계단을 오르는 동안 숨은 조금 가빠졌지만 시원한 숲 공기와 솔향기가 피로를 덜어줬다.
첫 번째 데크 계단을 지나 약 15m의 평탄한 길을 걸은 뒤 다시 오르막길로 접어들었다. 약 200m로 보이는 산책 구간은 경사가 있는 편이지만 소나무가 우거져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 솔향기 가득한 숲길, 관동팔경의 역사를 걷다
관동팔경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안내비.원형래기자
산책로 주변에는 관동팔경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비석과 안내 조형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에 세워진 '관동팔경(關東八景)' 비석에는 동해안의 대표적인 명승 여덟 곳에 대한 설명이 새겨져 있다.
관동팔경은 통천 총석정, 고성 삼일포, 간성 청간정, 양양 낙산사, 강릉 경포대, 삼척 죽서루,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으로 이뤄져 있다. 특히 울진에는 망양정과 월송정 두 곳이 포함돼 있어 동해안 역사문화 관광지로서의 위상을 보여준다.
비석 옆에는 관동팔경의 옛 모습과 역사적 의미를 소개하는 안내 조형물도 설치돼 있다. 소나무 사이로 스며드는 가을 햇살 아래 비석을 살펴보니 망양정으로 오르는 길 자체가 선조들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 역사문화 탐방로처럼 느껴졌다.
망양정 정자 옆에 동서트레일 안내비가 세워져 있다.원형래기자
산책로 주변에서 또 하나 눈길을 끄는 것은 '동서트레일' 안내 조형물이다. 경북 울진에서 충남 태안까지 이어지는 총 849㎞의 장거리 숲길을 소개하는 시설이다.
2022년 9월 설치된 안내 조형물에는 '아름다운 우리의 숲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동해에서 서해까지 이어지는 숲길의 주요 구간이 표시돼 있다. 울진의 금강소나무와 태안의 안면소나무를 연결하는 숲길의 의미도 담겨 있다.
망양정 일대의 소나무 숲은 이러한 동서트레일의 취지와도 어우러진다. 숲과 바다를 함께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망양정은 걷기 관광의 매력을 갖춘 곳이다.
망양정 정자에서 가을현장체험 마치고 후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단체사진모습.원형래기자
산책로를 걷던 중 어린이들의 밝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가을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후포초등학교 병설유치원 어린이들이 교사들과 함께 망양정을 찾은 것이다.
방문 목적을 묻자 한 교사는 "가을 현장체험학습을 위해 왔다"고 답했다. 어린이들은 선생님의 안내를 받으며 숲길을 걸었고, 자연 속에서 가을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강원도 태백에서 방문한 학생들과 교사들도 망양정 주변을 거닐며 동해를 감상하고 있었다. 망양정이 자연을 직접 관찰하고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살아 있는 교육 현장임을 보여주는 풍경이었다.
■ 숙종이 극찬한 관동제일루, 동해의 절경을 품다
망양정 정자에서 바라본 왕피천과 바다가 만나는 곳 모습.원형래기자
숲길을 따라 더 오르자 마침내 망양정의 웅장한 모습이 나타났다. 전통 기와지붕과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된 정자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냈다.
계단을 올라 정자에 서자 사방으로 시야가 열렸다. 발아래에는 왕피천 하구가 펼쳐지고, 그 너머로 끝없이 이어지는 동해의 수평선이 한눈에 들어왔다.
잔잔한 바다와 모래톱,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상시켰다.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왕피천 하구의 경관은 망양정만이 지닌 특별한 매력이었다.
정자 내부에 설치된 역사 안내판에는 망양정이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망양정은 원래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현종산 기슭에 있었으나 조선 철종 11년인 1860년 현재의 근남면 산포리로 이전했다. 이후 1958년 중건했으며, 다시 낡아 2005년 완전히 해체한 뒤 새롭게 건립했다.
특히 조선 숙종은 관동팔경 가운데 망양정의 경치를 최고로 평가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을 하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망양정의 아름다움은 문학과 그림으로도 전해진다. 숙종과 정조의 어제시,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이 대표적이며,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에 수록된 망양정도 역시 유명하다.
다만 정철과 정선이 만났던 옛 망양정은 현재와 위치가 다르다. 정자의 위치와 건물은 세월에 따라 달라졌지만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옛사람들의 정취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날 망양정에서 만난 경기도 평택의 한 관광객은 동해안 여행 중 울진을 찾았다고 했다.
그는 "동해안은 자주 여행하지만 울진과 포항 일대는 자주 오지 못했다"며 "지난번 산불 이후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 울진을 방문했는데 당시에는 망양정까지 둘러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망양정에서 바라본 풍경에 대해서는 "한쪽에는 산이 있고 다른 쪽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어 마음이 탁 트인다"며 "이런 풍경을 바라보면 저절로 시가 나올 것 같다. 참 좋은 고장"이라고 감탄했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 현판,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마음의 여유를 찾았던 곳 망양정.원형래기자
■ 관광객 발길 이어지는 망양정, 편의 개선은 과제
망양정 주변 상인들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사계절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개선해야 할 과제도 제기됐다.
망양정 인근에서 강변민박·오리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주민은 "왕피천케이블카를 검색하고 찾아오는 외지 차량들이 길을 잘못 안내받아 가게 앞에서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반나절만 지켜봐도 차량 10대 정도가 길을 잘못 찾아와 유턴하거나 같은 장소를 두 바퀴씩 도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며 "그때마다 관광객들에게 케이블카 탑승장으로 가는 길을 직접 안내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주민은 "케이블카 관계자에게도 문제를 전달했지만 아직 개선됐다는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외지 관광객들이 작은 불편 없이 울진을 여행할 수 있도록 내비게이션 목적지와 진입로 안내를 바로잡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주민의 목소리는 망양정과 왕피천케이블카 등 주변 관광자원을 연결하는 안내체계를 점검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망양정의 매력은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에만 있지 않다. 입구에서 정자까지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과 관동팔경 비석, 동서트레일 안내 조형물, 정상에서 만나는 동해의 절경이 하나의 문화탐방 코스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망양정이 단순히 정자에 올라 바다를 바라보는 관광지에서 벗어나 역사와 문학, 자연을 함께 체험하는 문화공간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산책로와 문화해설 콘텐츠를 더욱 체계적으로 연계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과 관동팔경의 역사, 망양정의 문화적 가치를 알리는 현장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왕피천공원과 왕피천케이블카, 성류굴 등 인근 관광자원과 연계한 체류형 관광 기반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망양정은 단순한 옛 정자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시인과 화가들이 자연의 아름다움을 기록하고 후세에 전해 온 울진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솔향기 가득한 숲길을 따라 올라 마주한 푸른 동해. 옛 선비들이 노래했던 망양정의 절경은 오늘도 변함없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가을 햇살 아래 망양정은 그렇게 자연과 역사, 사람들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원형래기자 hrw7349@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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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속의 누정
김홍도의 그림 속에 보이는 관동 제일의 명승지, 울진 망양정
망양정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 바닷가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의 망양정은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 있었다고 한다.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일 경치가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고려 때부터 세워진 원래의 망양정 모습이 김홍도, 정선, 허필 등의 조선시대 화가들에 의해 그려져 전해지고 있다.
망양정(望洋亭)은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산포리 716-1 바닷가에 있는 정자이다. 원래의 망양정은 현재의 위치가 아닌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숙종이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편액을 내려줄만큼 관동팔경 중에서도 제일 경치가 좋은 곳으로 손꼽힌다. 누가 처음에 지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고려 말기에 지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 성종 2년(1471)에 평해군수 채신보(蔡申保)가 현종산 기슭으로 옮겨놓았다. 중종 12년(1517)에는 비바람으로 정자가 파손되었다.
그 이듬해 안렴사(按廉使) 윤희인(尹希人)이 울진군수 김세우(金世瑀)와 조력하여 중수하였다. 그 후 선조 23년(1590)에 평해군수 고경조(高敬祖)가 중수하였으며, 1860년(철종 11) 울진현령 이희호(李熙虎)가 근남면 산포리 둔산동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망양정이 오래되어 퇴폐된 것을 1957년에 울진군 및 경상북도와 울진교육청의 주선으로 보수하였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작업을 하다가, 경상북도 북부권 유교문화권 문화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2005년 완전 해체하고 새로 지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김홍도 금강사군첩 망양정(사진출처:한국데이터진흥원)
관동팔경의 하나인 이 정자는 예로부터 해돋이와 달구경 명소로 유명하다. 「관동별곡(關東別曲)」의 저자인 송강(松江) 정철(鄭澈),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그리고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 추강(秋江) 남효온(南孝溫) 등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이 정자에 올라 감회에 젖은 글을 남겼다.
‘망양(望洋)’을 직역하면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이지만 이 말에 내포된 의미는 보다 깊고 넓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을 보면 ‘망양지탄(望洋之嘆)’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위대한 인물이나 심원한 학문 또는 대자연에 대한 자기의 식견이 미흡함을 깨닫고 탄식한다.”는 의미이다.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이 중국의 『사고전서(四庫全書)』의 방대함을 보고 “규모가 거창하고 내용이 광범위한 책을 대하니 망양지탄하기가 이를 데 없다.”라고 『다산문집』에서 밝히고 있는데, ‘망양지탄’이라는 말의 용례를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망양정은 그저 바다를 구경하는 정자가 아니라 ‘망양지탄’의 뜻을 새긴 정자인 것이다.
조선 광해군 때 문인인 이항복은 그의 문집 『백사별집(白沙別集)』의 「망양정(望洋亭)」에서 아래와 같이 망양정을 묘사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해평군 누정조 「망양정리(望洋亭記)」에서 조선초기의 문신인 채수(蔡壽)도 “옷깃을 헤치고 한번 오르면 유유히 드넓은 기운과 짝하고 놀지만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고, 널리 조물주와 함께 해도 그 끝을 알지 못한다.”고 하면서, “여기서 비로소 이 정자가 기이하고, 하늘과 땅이 크고 또 넓은 줄을 알게 된다.”라고 망양정에서의 감회를 피력하였다.
망양정의 정면 들보에 현판 세 개가 붙어 있는데, 가운데가 매월당 김시습의 시고, 오른쪽에는 정조의 어제시(御製詩), 왼쪽에는 숙종의 어제시가 걸려 있다. 북쪽 보에는 채수의 「망양정기」가, 서쪽에는 고려말의 문신 정추(鄭樞: 1333~1382)의 시와 정철의 「관동별곡」 중 망양정 관련 글이 한글로 새겨져 있다. 남쪽에는 이산해(李山海)의 시가 걸려 있다. 그밖에도 여러 시인의 시 편액이 걸려 있다.
1580년(선조 13) 정철이 강원도관찰사에 부임하여 관동팔경을 유람하고 쓴 「관동별곡」 가운데 망양정에 대해 쓴 글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부상(扶桑)’이란 동쪽 바다의 해가 뜨는 곳이란 의미이다. 중국의 전설에서는 부상이 해가 뜨는 곳에 있는 신령스러운 나무라고 한다. 즉 망양정에서 깊고 드넓은 바다 위에서 해가 뜨는 것을 볼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망양정에 대해서는 시인 문객들만 글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이곳을 들렀던 화가들도 경치에 반하여 망양정에 대한 그림들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인 화가로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1745년∼?), 연객(烟客) 허필(許佖:1709~1761) 등을 들 수 있다. 정선은 1739년(영조 15)에 관동지역을 여행하고 관동의 명승지를 그려 놓았는데, 이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간송미술관 소장)이다. 이 화첩에 「망양정도(望洋亭圖)」가 있다. 김홍도도 1788년(정조 12)에 금강산 주변의 네 개 군을 여행하고 그린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개인 소장)에 「망양정도(望洋亭圖)」를 그려 놓았다.
이 화첩에도 관동팔경이 모두 들어 있다. 허필도 18세기에 그린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선문대학교 박물관 소장) 8폭 병풍에 망양정을 그려 놓았다. 이들이 그린 망양정은 현재의 자리로 옮기기 전의 울진군 기성면 망양리 해변에 있을 때의 원래 모습이다. 파도가 부딪치는 절벽 위에 망양정이 자리하고 있다. 사각형의 평면 위에 기둥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비교적 큰 정자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고, 정자는 문이 달려 있지 않은 개방형이다. 정자 주위에 기와집들이 담에 둘러싸여 있다. 꺽어지른 절벽과 일렁이는 파도와 산비탈의 소나무 군락이 인상적이다. 세 그림 모두 망양정을 각기 다른 각도에서 그리고 있다.
울진 망양정 전경
현재의 망양정 역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로 둥근 석축 위에 둥근 나무 기둥을 세운 다포양식의 건물이며, 지붕은 겹처마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고, 정자 주변을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르고 누마루 형식을 취하고 있다. 망향정 바로 옆에 해맞이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볼거리, 즐길거리가 다양하다. 기성면의 망양리에는 망양정구지(望洋亭舊址)가 있으며, 이곳에도 옛 망양정의 모습을 재현하여 세운 정자가 있다.
부가정보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정선이 1739년(영조 15)에 관동지역을 여행하고 관동의 명승지를 그려 놓았는데, 이 그림들을 모아 놓은 것이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이다. 이 화첩에 있는 관동의 명승지는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해금강의 「해산정(海山亭)」, 고성의 「삼일호(三日湖)」, 삼척의 「천불암(千佛巖)」,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통천의 「시중대(侍中臺)」이다. 간송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김홍도가 1788년(정조 12)에 금강산 주변의 네 개 군(郡)을 여행하고 그린 화첩이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이다. 이 화첩에는 금강산 주변의 4개 군뿐만 아니라 남으로는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에서 북으로 안변의 가학정(駕鶴亭)까지, 그리고 금강산 접경지역을 모두 포괄하여 그리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 화첩을 해산첩(海山帖)이라고도 불렀다.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은 허필이 18세기에 관동의 팔경을 8폭의 화폭에 그린 병풍이다.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의 관동의 팔경을 그려 놓았다. 선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자료
단행본
허균. 한국의 누와 정. 서울: 다른세상, 2009.
단행본
임연태. 정자에 올라 세상을 굽어 보니. 고양: 인북스, 2016.
웹페이지
"망양정." 디지털울진문화대전. n.d. 수정, 2018년 6월 1일 접속
기타
『신증동국여지승람』
기타
정선(鄭敾), 「망양정도(望洋亭圖)」, 『관동명승첩(關東名勝帖)』
기타
김홍도(金弘道), 「망양정도(望洋亭圖)」, 『금강사군첩(金剛四君帖)』
기타
허필(許佖), 「망양정도(望洋亭圖)」,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
집필자 장현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