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기도하는 사람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기 1:21)
어느 목사님이 수도와 가스가 한순간에 끊기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철저한 영적 훈련을 받았다는 간증을 읽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좋으신 하나님께서 정말 이렇게까지 훈련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개척을 준비하던 시절 오랫동안 수입이 전혀 없었다. 생활비조차 마련하기 어려워 가스요금을 내지 못했고, 결국 6개월 동안 가스가 끊겼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전기까지 끊기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전기밥솥으로 밥을 짓고, 가스버너를 가져와 음식을 해 먹었다. 그때만 해도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하나님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고난의 시작에 불과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상황은 더 힘들어졌다. 몇 달이 아니라 몇 년 동안 사역의 길이 열리지 않았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 같았고, 앞날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는 하나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고, 왜 나만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묻기도 했다. 욥의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한 심정을 이해할 정도였다.
사실 사람은 배우자와의 갈등이 계속되거나, 자녀의 문제가 오래 해결되지 않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이 이어질 때 원망하게 된다. 질병이 낫지 않거나 직장에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 교회에서 마음에 상처를 받고 사람에게 실망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얼마 전, 젊은 시절 전도사로 사역했다는 한 할머니를 만났다. 그 할머니는 아들 내외와 함께 살다가 지금은 집을 나와 혼자 살고 있다고 했다. 이유를 묻자 며느리를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며 오랫동안 쌓인 원망을 털어놓았다. 며느리의 입장도 한 번 생각해 보시라고 말씀드리려 했지만, 더 이상 들으려 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떠났다.
원망은 사람의 마음을 닫아 버린다. 상대의 입장을 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생각만 옳다고 여기게 만든다. 결국 관계를 회복할 기회마저 잃게 만든다.
그러나 성경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사람을 보여 준다. 바로 욥이다.
욥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재산과 자녀를 모두 잃었고, 자신의 건강까지 잃었다.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말했고, 친구들은 그의 고난이 죄 때문이라고 정죄했다. 누구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고 믿음을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욥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믿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욥은 모든 일을 이해했기 때문에 하나님을 신뢰한 것이 아니다. 욥은 자신의 고난의 이유를 끝내 알지 못했다. 왜 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선하시며 자신의 삶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는 믿음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고난 앞에서 모든 사람이 욥처럼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했다. 먹을 것이 없다고 원망했고, 물이 없다고 원망했으며, 가나안 땅을 눈앞에 두고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보다 현실의 어려움을 더 크게 바라보았다.
민수기 14장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 악한 회중이 어느 때까지 나를 원망하겠느냐.”
(민수기 14:27)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을 단순한 불평으로 여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믿음 없는 태도로 보셨다. 결국 원망하던 세대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만 가나안에 들어갔다.
우리도 예상하지 못한 고난을 만날 때가 있다. 기도해도 응답이 더디고,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그런 상황 앞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기도하는 사람의 삶이다.
송파물댄동산교회
(부설: 주야로기도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