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의 알바
조 춘 성 (zenithhealth@hanmail.net)
며칠 전 영국에 있는 딸(슬기)아이에게서 이메일이 왔다. 내가 요즘 글 쓰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혈압이 올라갔다고 했더니, 제 깐에는 걱정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외로운 외국생활을 이겨내기 위해 헬스장에서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하니 다행스럽다. 국내에 있을 때 억지로 체육관에 끌고 가 등록을 시킨 일이 있었다. 그러나 운동은 뒷전이었고 슬슬 시간만 때우다 오곤 했다. 그런 딸아이를 생각하니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슬기는 나의 유전자를 많이 물려받아서인지 힘이 세고 덩치도 큰 딸아이다. 그래서 나는 우스개 소리로 조 장군이라고 놀리곤 했다. 그럴 때면 ‘아빠! 정말 내 친아빠 맞아요.’ 하며 물었다 그런 아이가 지금은 영국에서 세련된 직장인이 되어 자신의 아름다운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 아이가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용돈을 벌기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일이 있었다. 제 스스로 돈을 벌어 쓸 수 있어 가계에 보탬이 되어 좋았고, 한편으로는 자신의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어 적극 권장했다.
제 친구 어머니의 소개로 초등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일을 했다. 그 일이 그만 시원찮았는지 몇 달 만에 그만 두었다. 그리곤 여기저기 알바자리를 알아보다, 패스트푸드 점에서 일하게 되었다.
처음엔 아침에 출근하더니만, 얼마 지난 뒤에는 야간으로 근무시간이 조정되어 새벽이 다되어서야 일을 마치고 퇴근하였다. 늦은 귀가시간 때문에 얼마 동안은 걱정도 했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더니만 차츰 걱정이 없어지는 게 아닌가.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일어나 거실에 나가보니 식탁위에 조그만 봉지가 올려져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봉투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먹음직스러운 햄버거가 들어 있었다. 산에 다녀와서 나중에 물어볼 요량으로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방문을 열고 나온 딸아이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는데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끌어냈다.
근무하던 가게에서는 붐비는 시간에 대비해서 미리 햄버거를 많이 만들어 놓았다가 손님이 찾으면 팔곤 한다고 했다. 그런데 햄버거가 다 팔리지 않는 날이면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남은 햄버거를 나눠 준다는 얘기였다. 몇 개 받아왔으니 내게 먹어보라 했다. 싸게라도 팔면 될 것이련만, 회사방침이 일정한 시간이 지난 햄버거는 절대 판매하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 양심이 없는 일부 식품점에서는 유효기간이 넘는 음식을 속여 팔기도 한다. 이에 비하면 참으로 양심 바른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딸아이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는 있지만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상 그런 햄버거는 오십 년 동안 한번도 먹어보지 못한 아주 생소한 식품이었다. 토속적인 음식을 선호하다보니 먹을 기회가 없었기도 했지만, 값도 헐하지 않아서였다.
햄버거나 퓨전음식에 길들여진 요즘 젊은이들과 달리 처음 맛보는 것이었지만 아침시간에 먹기에는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콜라 같은 음료수와 곁들어 먹어야 제격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이 햄버거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한다고 하니, 어린 시절 어머니가 밥 하실 때 호박잎을 깔고 쪄 주었던 보리개떡이 떠올랐다.
보리 겨를 사카린 물에 반죽해서 모양에 관계없이 손바닥으로 탁탁 쳐 넓적하게 만들어 먹었던 보리개떡은 눈물과 가난이 물씬 묻어있는 음식이었다. 맛이야 지금의 햄버거와 비교가 될 리 없다. 하지만 어머니의 정성과 한숨이 젖어있는 귀한 음식이었다.
딸아이는 근무하기가 괜찮았는지 그곳에서 꽤 오래 근무했다. 성격이 활달하여 영업 쪽으로는 적성이 맞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얼마 후 웬일인지 출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니 눈물을 글썽이며 제가 부당하게 해고당했다고 억울해 하였다. 손님이 많아 눈코 뜰 새 없이 일하는 시간에 철없는 점 장이 인터넷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일손이 딸리자 딸아이는 점장에게 다가가, 바쁜데 바둑 그만 두시고 도와달라고 했다한다. 그리고 난 후,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점 장이 불렀다고 했다. 내일부터 그만 두라고 했다한다. 점장은 일종의 하극상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매장의 모든 것이 자신의 지시아래 결정되고 집행되는데, 딸아이의 행동이 오만방자해 보였나 보다. 제 깜냥에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말을 했지만 점장은 악의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딸아이는 자신도 세상일을 경험하며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알바 일을 시작했지만 뜻하지 않는 암초를 만나 그 뜻이 좌절되고 만 것이었다. 그 일이 있는 뒤로는 슬기는 매사에 부정적이었고,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위로하는 마음에서 내가 근무하는 가게로 불러 몇 달간 함께 일을 했다. 하지만 올곧은 성격 때문에 나와도 의견 충돌이 많았다. 자식과 다툼을 할 수 없어 고민하다 영국으로 보내기로 했다. 어차피 인생이란 홀로서기를 해야 만이 진정한 독립이라 생각 한 것이었다. 지금은 학교를 졸업하고 매니저로 근무한다. 알바 생들을 관리도 한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한국에서 을의 입장에서 눈물을 보였지만 지금은 갑의 입장에 서서 결단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빠, 나는 아빠를 닮아 카르스마가 있는 거 같아요.’ 라는 말을 했던 아이가 혹시 유학 온 가난한 학생들에게 모진 행동을 할까봐 걱정이 되어 잔소리도 많이 했다. 네가 유학생활 할 때 했던 고생을 잊지 말라고·······.
슬기는 햄버거 가게에서 느꼈던 일을 거울삼아 열심히 살아 갈 것이다. 비록 순간은 분함과 미운마음이 있었겠지만 지금은 그게 학습효과가 되어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다.
* 조 춘 성 435-759 경기도 군포시 산본동 1156=1 한라아파트 401-204
(011=235=2887)
첫댓글 아버지를 닮은 따님!! 분명 영국에서 멋지게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인 노력을 기울익있을겁니다. 슬기 화이팅!!
지금은 살기가 괜찮은지 소식이 없네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더니....
인간은 최악의 상태에서도 희망을 잃어서는 안된다...고집이 센 자녀가 효도한다고 합니다..분명..따님 슬기님은 제몫을 잘 해내리라 믿습니다..자랑스럽습니다^^*
잘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자식놈의 목소리에 기분이 달라지니,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도 그러하셨겠죠.
빗점골님 반갑습니다. 슬기가 좋은 경험을 했군요. 짧은 시간동안에 알바가 앞으로 살아나가는데 밑걸음이 될거라 여겨집니다. 발목은 이제 완쾌 되셨는지 궁금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염감사합니다....^^
언제쯤 위하여에 합류하실건지
건강히 잘 지내시고 계신다니 기쁘네요. 시간이 되면 참석해야죠.
나마스떼~ 오랜만에 들렸더니 멎진 카리스마가 풍기시던 빗점골님의 소식도 있군요~^^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