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성탄절 연휴 뉴욕의 록펠러대학교에서 연구원 (Research Associate)으로 일을 하고 있는 종형(從兄)댁에 머물며, 뉴욕의 이곳저곳을 구경하였습니다.
간단히 사촌형(박채규박사)을 소개하면, 서울대 미생물학 3년에 졸업하고, 유학의 길에 올라, 현재 일을 하고 있는 록펠러대학에서 한국인으로는 두번째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후 군에 입대 만기전역후, 다시 미국에서 연구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한국과학재단 지정 생물학연구정보센터에서 한국을 빛내는 사람들에 뽑혔으며, ( http://bric.postech.ac.kr/trend/scientist/0401/0401_04_1.html ), 홈페이지 GCI (Good Capital Institute, http://www.goodcapital.org/ )을 운영중이십니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독보적인 록펠러 대학을 소개하는 글을 저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과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형을 존경해 마지 않으면서, 글을 옮깁니다. 글을 보내주신 형에게 감사드립니다. -------------------------------------------------------
록펠러대학교 (The Rockefeller University, 발음상, 락커펠러대학교가 정확함) 는 1901년 록펠러의학연구소라는 이름으로 뉴욕 맨하탄의 동부 해변가에 역사적인 부호 존 D 록펠러에 의해서 세워졌다. 당시 맨하탄에는 록펠러 소유의 금싸라기 부동산이 세군데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 한 곳에 록펠러 대학교가 세워졌고, 또 한 곳에는 대공황 당시 실업자 구제를 위한 프로젝트로서 세계 최초의 마천루 complex 인 록펠러센터를 건설하였으며, 마지막 한 곳은UN본부의 건설을 위해 UN에 기증하였다고 한다. (하늘에서 찍은 학교 전경, 출처 록펠러대학교 웹사이트 www.rockefeller.edu )
이렇게 하여 맨하탄의 중심에 자리 잡게 된 록펠러의학연구소는 처음에는 당시 뉴욕시, 아니 전세계에 만연하던 전염병을 퇴치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으나점차 기초 의학, 생명과학 전반을 연구하는 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설립직후 미국 최초의 연구전용 병원을 교내에 갖추었듯이 창립이래 임상의학과 기초의학을 연결하는 노력을 꾸준히 해왔으며, 1950년대에 들어서는 교육기관으로서의 기능까지 추가하여 이름을 록펠러대학교로 바꾸고 Ph.D. 대학원과정을 도입하였다. 하지만, 록펠러대학교에는 여타 다른 미국이나 세계의 대학교들과 다른 점이 많이 존재한다. 우선 록펠러대학교는 학생의 교육을 주목표로하는 학교는 아니다. 여전히 연구 기능이 가장 크며 교육도 주로 박사학위를 가진 Postdoc 을 교육하는 기능이 더 크고, Ph.D. 과정의 대학원생 교육은 그 에 병행하는 과정으로 보면 될 것이다. 즉, 다른 대학교들과는 달리 소수의 Ph.D. 과정의 대학원생만을 선발하고 있어서 대학교의 인적구성을 볼때 Postdoc 이 대학원생들보다 3배이상의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 물론 록펠러대학교에는 학부학생은 없고 대학원생도 생명과학분야의 Ph.D. 과정만을 교육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록펠러대학교에 입학하는 대학원생들은 Postdoc 에 못지 않은 지식과 능력을 갖출 것을 요구받게 되고, 그대신 다른 미국의 어느 대학교들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의 자유와 지원이 학생들에게 부여된다. (학교 정문, 출처 : 록펠러대학교 웹사이트 )
록펠러대학교는 그 명성에 비해서 무척 규모가 작은 학교이다. 우선 면적도남북으로 다섯 블록, 동서로 한 블록 정도로 서울시내의 규모가 작은 초등학교 정도의 면적밖에는 되지 않는다. 이런 해변가 캠퍼스에 크지 않은 건물 10개 정도가 잘 가꾸어지 정원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록펠러대학교는 다른 대학교와는 달리 대학교 내에 단과대학 (school) 이나 학과 (department) 가 없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각 분야에서 대가의 자리에 오른 분들이라, 각 교수들이 하나의 학과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즉, 각 교수들이 30에서 50명이넘는 큰 규모의 실험실을 유지하며 각 실험실이 하나의 학과로서 대접을 받는다. 즉, 대학교 총장 아래에 단과대학장이나 학과장이 없고 바로 교수가 있다. 대신 교수들이 자기 실험실에 여러 명의 부교수나 조교수를 둘 수가 있다.
록펠러대학교가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들은 아래와 같은 것이다.
유명 교수들의 집합체이다. 보통 미국 대학교에 한두 명, 많아야 대여섯 명밖에 없다는 학술원 회원이 록펠러대학교에는 30명이 넘는다. 즉, 교수들의 반수 정도가 학술원 회원이다. 유명 교수들이 많으니 당연히 상을 받은 사람도 많다. 록펠러대학교는 생명과학분야만을 연구한다. 그러므로 생명과학과 관련된 노벨 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받은 출신자가 현재 23명이고 (아마 세계에서 가장 많을지 모른다), 현재 록펠러대학교에서 그중 8명과 마주칠 수가 있다. 다른 상들은 언급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학교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Founders Hall, 출처 : 록펠러대학교 웹사이트 )
왜정시대 교육을 받으신 어른들은 일본의 세균학자 노구찌 히데요를 잘 알고 계신다. 노구찌 히데요가 록펠러대학교에서 연구하다가 일생을 마쳤다. 현재 노구찌 히데요의 흉상이 록펠러대학교 도서관에 있으며, 일본사람들은 자주 찾아와서 기념식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발견을 하고도 노벨상을 받지 못한 에이브리 박사가 이곳에서 DNA 가 유전물질이라는 사실을 증명했다. 아마도 록펠러대학교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업적일 것이다.
그밖의 업적으로 ABO 혈액형의 발견, 발암 바이러스의 발견, 콜레스테롤의 위험 발견, 경구 폴리오 백신 개발, 세포내 구조의 분리와 규명, AIDS 혼합약물치료법 개발, 등등 무수히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