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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령 목사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여러모로 생각해 볼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런 글을 올리기가 망설여집니다. 이와 관련해 주님 앞에 부끄러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타인의 인격과 관련된 부분 앞에 주저함이 없지 않습니다. 만약 소명 앞에 선 목사였다면 결코 옮기지 않고 마음에 묻어 두었을 듯 합니다. 오늘 낮에 해벗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았습니다. 왜? 이글을 올려 두었을까도 반문해 보았습니다.
목사님께서 예전에 진주노회에 계셨다함은 의외였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관계로 그곳 교회들의 역사와 면면을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이세령 목사님, 좀 둘러서 저의 생각을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저는 일선 목회자들이 노회 앞에 아니, ‘노회를 대표하는 권위’ 앞에 일반적이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현실을 두고 개인적으로 굉장히 실망한 적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도 현재진행형인 이 현실 앞에 일선 목회자로 산다는 것이 여간 부담되는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여전히 진주노회하면, 이금0목사를 떠올리는 일선 목회자들의 보노라면 비켜 갈 수 없는 현실 앞에 뭐라 말할 수 없는 동류의식과 서글픈 마음을 가집니다. 여전히 저희노회도, 이웃노회도 그 ‘노회를 대표하는 권위’가 있었고 현재에도 있음에 말입니다. 지금 그들이 사라진 자리를 두고 혹자는 그 권위의 향수를 입에 올리기도 하지만 그들만의 ‘노회정치’ 그 ‘공리’가 별 달라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일전에 정치인 이기택이 월간 조선에서 계파정치와 보스정치가 시대적 산물로 正機能的 역활을 다했다고 하더군요, 동일한 주장을 하는 목사님들이 계실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세령 목사님 저는 일전에 이 카페를 통해 ‘노회의 성격적 근거와 그 필요성’에 대해서 ‘노회의 직무’에 대해서 간략하게 언급한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목회자 생활비’ 문제가 미시적으로는 개교회와 목사개인의 문제이겠지만 거시적으로 ‘교회정치’와 분리할레야 할 수 없는 사안임을 잘 알고 계실 줄 압니다. 물론 사회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교회정치에 대해서는 우리들이 고백하는 웨스트민스트 신앙고백서 30장 1-2항, 31장 1-3항이 말해주고 있는 바와 같이 “교회의 왕이요 머리이신 주 예수께”로부터 세속의 위정자와는 구별되게 교회 직원들의 손에 제정하신 그 정치원리이며 ‘권위’인 것이며 그 직무는 주께서 세우신 교회와 위탁한 복음을 위해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본 교단이 채택하고 있는 교회정치의 원리가 웨스트민스트 회의에서 제정된 것은 아니라도 그 정신이 분명 잇대어 있음은 분명합니다. 목사님 ‘장로의 회’(딤전 4:14)인 노회원을 세우기 위해 목회자후보생부터 어떤 자격과 심사를 요구하는지는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목사의 자격, 목사의 직무, 목사의 청빙, 목사의 임직은 또 어떻습니까? 현대의 목회자들이 혹 이름없는 자식들이 되지는 않았는지요.. 목회자의 생활비만 따로 떼놓고 보기에는 너무 공허하지 않습니까?
목사님 기본적인 전제를 말씀드렸으니 본론으로 들어가서 미흡하지만 목사님의 질문에 답해 보겠습니다. 혹 기본적인 전제가 다르다면 모르겠지만, 저희 상황에 대해서 공감해 주셨기에 목사님에 대한 믿음을 가져보겠습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저희 노회는 불과 2년 전만 해도 규모로 봐서 고신교단에서 0번째 가는 큰 노회였습니다. 오늘 서류를 통해 2006년 4월 본 노회 정기노회 시에 보고 된 저희 시찰을 현황을 보니 12개 시골교회에 교역자수 9명 전체교인 수 433명 이중 세례교인 남76명 여 190명입니다. 12개 교회 가운데 가까스로 교인 수 50인이 넘는 교회는 단 한 교회뿐입니다. 물론 교세가 중요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한 개의 시찰회가 이렇게 분리되어 조직될 수 있었을 까요? 재정규모가 큰 무수한 이웃의 규모 있는 교회를 두고 말입니다. 저로서는 이해하기 매우 힘든 부분이었습니다. 분명한건 이유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찰 12개교회의 노회상회비가 300만원정도에서 올해 60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어덯게 보면 참 작은 돈입니다만, 오른 이유를 짐작해 보면 소름이 끼칩니다. 사실 이 이유로 항의했고 인정했습니다.
목사님 노회 규칙에 제가 늘 의문을 가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노회 ‘회원의 권리’인데 “본회 회원은 교회정치 각장, 조, 항에 준하여 권리를 가진다.” 라는 조인데, 당연히 섬김을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일반안건과 특별안건에 대한 청원 권리도 포함된다고 믿고 싶습니다. 그러나 과연 시찰회가 이런 형편에서 그 권리를 주장 할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세우신 원리에 따라 당연히 가능하리라 생각하지만 냉혹한 현실은 그러하지 못합니다. 교회를 살피는 자들의 형편이 살핌을 필요로 하는 자들과 같다면, 역설적으로 교회를 살피는 자들이 살핌을 필요로하는 당사자라면 노회를 통해 보고하는 것이 굉장한 굴욕일 것입니다. 저는 ‘노회정치의 현실’ 안에서 그들의 그러한 양심을 존중해 주고 싶습니다만.... 세상적 굴욕이 교회 안에서 굴욕이 되지 않는 풍토를 위한 양심....
더불어 노회안의 계파정치의 폐해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싶으나 다음기회로 미루려 합니다. 한가지만덧붙이면 계파정치라고 해서 고신의 (개혁파/돼지파)만 언급하는 것은 아님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 외에 자신의 소견과 이익대로 파당을 짓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생존모티브를 제공한 돼지파, 부곡파, 개혁파의 정치적 행보에 주께서 죄 없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뭐가 그렇게 걸리는 것이 많은지.... 같은 교회를 통해 부름 받은 노회원들 간에 고신대 신학과 출신이면 어떻고, 일반대 전형이면 어떻고, 경북, 호남신학대학 출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꼭 꼬리표를 달고 다니는 SFC간사 출신이면 또 어떻습니까? 목사님! 목사님의 경험에 의하면 과연 시골의 목사들이 진주노회 이금0목사에게, 마산노회의 곽삼0목사, 남마산노회 강호0목사.....에게 후원해 달라고 권리를 주장하셨던 분이 계시던가요?
목사님 저는 개교회의 성도에 불과합니다. 현실에 있어서 그 누구도 개인성도로 노회의 정치를 두고 왈가불가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웃 시찰의 성도가 많이 출석하는 재정규모가 큰 교회에서 지금 교회로 가족전체가 이명 해 왔습니다. 물론 정식으로 교구목사님께 이명신청해서 절차를 밟아 왔지만 담임목사님이 면담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곳에서 와서 같은 지체로 느끼는 심정은 이러합니다. 곧 저의 마음이고 저의 형편이기도합니다.
현재 저희 교회는 10년에서 몇 해 빠지는 개척교회 입니다. 성도들과 목사님이 교회를 개척할 당시에는 이 지역에 다른 교단교회가 몇 있었지만 저희 교단 교회가 없었고, 이곳 주민의 수도 꽤 많았습니다. 현재 본 교회를 개척하신 담임목사님은 이 노회에서 목회자후보생을 거쳐 임직하셨던 분이었고, 이 시찰을 한번도 벗어난 적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제가 알기로는 노회로부터 교회개척 후 개척을 빌미로 어떠한 후원금도 받은 적이 없고 교회 건축을 빌미로 노회의 여러 형제교회에 연보를 요구한 적도 없습니다. 저희 교회가 따로 건물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그럴 일도 없었습니다.
현재 저희교회는 노회로부터 어떠한 후원금도 받지 않습니다. 살펴서 스스로 후원해주지도 않고, 후원받으려 하지도 않는 풍토, 제가 재정 규모가 큰 교회의 집사로 있을 때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이명 후 새로 느끼고 보는 낯선 풍경입니다. 그렇다고 저희 교회 모든 후원금을 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서로를 살피는 일에 결코 인색하지도 부끄럽게 생각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적 원리에 맞을 경우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지난달에 교단은 다르지만 형제교회로부터 모든 성도들의 연보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무튼 저희 교회의 형편처럼 노회 안에 이웃교회의 형편이 그리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웃 교회 목사님은 스스로 사면하시고 배달업을 하십니다. 듣는 이야기로는 편할 리 없는 마음이 편하답니다. 노회정치의 환멸, 목회자생활비... 아마 전자의 비중이 더 높았을것 같습니다. 소명을 스스로의 놓을 만한 분이 아니었는데... 이제는 그 소명을 지키기도 힘든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문득 동대구노회로부터 제명된 박길현 목사님의 소회에 대한 글이 생각이 나는 군요, 아무튼 총회 전도위원장으로부터 미자립교회 추천의 건이 와도 누가 노회에 추천을 하겠습니까? 시찰장이요, 재정위원들이요... 결코 아닙니다. 스스로를 추천하는 모순과 뒤따르는 굴욕과 질시는 참기 힘든 일임에 틀림없을 겁니다. 교회성장을 실현하지 못한 죄, 그 무능의 죄.... 목사님 과연 죄요 무능, 열심 부족일까요? 현실 노회정치에 있어서 이 부분은 저보다 목회 현장에 계시는 목사님들이 더 잘 느끼실 것입니다. 이웃의 재정규모가 큰 교회로부터 후원을 받는 만큼 노회정치로부터 돌아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목사님 정확히 4인 가구 기준으로 2007년도 최저생계비가 125만원 입니다. 말 그대로 생계비 입니다. 최저, 오랜 목회 생활 가운데, 5인가족의 생활비와 교육비가 얼마나 될 것인지 짐작해 보면 잘 알 것입니다. 과거의 생활과 현재의 생활을 단절해 생각하지 마십시오. 과거나 현재나 생활을 통해 삶이 영위되어온 것 또한 사실입니다. 비록 과거의 생활이 빚으로 남는다 해도 덤으로 따라오는 무의미한 것은 아니니 말입니다. 개교회들이 청빙과 노회가 교회를 살필 때도 여전히 유효한 부분입니다.
저희 교회는 저희 교단 교회로부터 총 35만원의 후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임대료(사택포함 1000/30, 예전에는1000/ 50만원)주고 교회 운영비, 식대, 난방비.... 12개 시찰 교회의 총 세례교인이 260명입니다. 경제력이 없거나, 은퇴하신 분을 빼면 교회재정에 힘을 보태실분이 몇 명이나 될 것 같습니까?(참고로 이들의 연보가 많고 적음을 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최소의 자녀교육, 최소한의 생활 뿐..... 도서비, 퇴직금, 연금, 아무것도 없습니다. 뻔한 샘입니다.
오로지 교회성장만이 답일 수 있겠습니까? 수십 년이 넘은 시골 교회들이 왜 그 자리에 그대로 있겠습니까? 담임목사님께는 외람되지만 솔직히 개인적으로 주위에 참된 교회의 표지만 가진 교회들이 있다면 교회를 합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래도 그것이 주님의 몸된 교회를 다스리는데 원리에 맞고 교회에 득이 된다면 허락해 주실 분이라 믿고 있습니다.
이세령목사님 밤이 늦었습니다. 어제 아침에도 강단을 통해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에스겔을 통한 이스라엘 회복의 말씀.... 저는 공예배시에 속으로 많이 웁니다. '덧입혀지는 그리스도의 의' 그 말씀을 통해 참된 위로를 받고 살아가는 용기를 가집니다. 목사님 세상속에서 성도들은 연약합니다. 오직 약속의 말씀을 통해 기다리며 희망을 가질 뿐입니다. 강단을 통해 주님의 말씀이 바르게 전해진다면 이 교회 곧 주님의 몸된 교회가 마지막날까지 대지에 굳게 뿌리 내리고 있어야 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꾸러 갔을 때 꿀 수 있다면 행복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을 감내하고서라도 말입니다. 혹 나의 자녀를 제대로 공부시킬 수 없다면 저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병이 난다면... 자신으로 하여금 가족이 시련을 당한다면..... 그 해결할 수 없는 아픔 앞에 오늘도 많은 목회자들이 서 있습니다. 설령 그들의 빚이 시골교회 개척교회 목사 개인의 빚이겠습니까? 유혹은 참기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원하지 않으신다면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것을 저는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교회들이 주께로 부터 위탁된 복음을 전하지 않는 다는 사실 앞에, 개혁주의 교회의 존재가치를 더욱 깨달아 가고 있습니다. 사실 돌이켜 보면 고가의 음향, 액정을 구입을 요교구하며 장로, 권사 임직식을 빌미로 그랜져 사달라고 하던 목사보다 그 교회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지 않음이 더 가슴 아픈 일입니다.
목사님 노회의 후원금에 독이 발라져 있다고 한 것이나, 목회자 생활비의 문제가 노회정치의 덫에 걸렸다고 표현한 것은 목회자 생활비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구조적인 문제임을 생각해 표현 한 것입니다. 목사님 사실 이러한 현실이 보편적인 현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 목사님의 판단이고 이해라서 옳다면 저로서는 퍽 다행한 일이라 생각되어집니다. 특별한 사안에 지나지 않게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목사님 경황없이 옮긴 두서없는 글을 통해 목사님의 질문에 제대로 답변을 했는지 모르겠습다.
이세령목사님! 타지에서 건강하시고 늘 평안하십시오.

첫댓글 이 문제는 꼭 시골교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수적 성장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작은 도시교회도 같은 형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단은 다르지만, 제가 섬기는 교회도 노회로부터 보조없이 교인들의 헌금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목사님의 생활비는 지난 사년 동안 400,000원을 넘지 못하였고, 최근 3년은 600,000원을 드리고 있습니다. 월세와 관리비를 제외하면 그 이상은 어떻게 할 수 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교인들이 주장하여 노회에 후원금을 청구했지만, 생활비 후원금으로 일률적으로 100,000원이 책정된 것을 보고 분개하여 후원받기를 거절하였습니다. 후원금으로 상회비를 내라는 것인지---
이세령 목사님보다 먼저 댓글을 달아서 죄송합니다. 예전에 신학교를 같이 다니고 지금은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두 분을 잠시 말씀드릴까 합니다.한 분은 거창에 계시고,한 분은 함양에서 목회를 하시는데,거창에 있는 목사님은 교인수가 10명 남짓한 교회에서 신학교 다닐때부터 담임으로 사역을 했는데,발이 넓어서(?)그런지 인간적인 능력이 있어서 그런지 정학한 액수는 모르나 생활비 보조를 꽤 받았습니다.그러다가 목사 안수 받자마자,평소 거창노회에서 정치좀하는 목사님들에게 잘 보였는지,담임목사님이 은퇴하는 교회가 있었는데,거창노회에서 힘 좀있는분의 추천으로 그 교회의 담임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함양의 시골에서 목회하고
있는 목사님이 한 편으로는 부러워하는 것 같기도 하면서, 목사 되자마자 정치하는 목사들이나 ?아 다닌다면서 불만조로 저에게 말씀하시더군요.좀 부러워 하는것 같기도 하고요. 함양에 있는 목사님이 담임으로 있는 교회의 교인수는 노인10명정도와 아이들 몇명인데,한해 한해 줄어든다고 하더군요.교회로부터 받는 생활비는 90만원정도 였는데,그 돈은 노회로부터 얼마,그리고 여러교회로부터 10만원,또는 5만원씩 지원 받아서 가능한 금액이랍니다. 그런데 얼마전에 매월10만원씩 지원하던 교회중에 한 목사님에게 찍혀서 지원이 중단되었고,그 목사님의 영향으로 5만원씩 지원하던 두 곳도 지원을 중단 하였다고 합니다.
거창에있는 목사님은 생활비로 월130만원씩 16개월분을 지급받고,애들 등독금조로 얼마하고 기타 잡다한 지원금이 있다고 합니다.소위 자립교회라는군요. 신학교 다닐땐 거창에있는 목사님은 신학의 본질적인 공부에는 관심이 없었고,졸업하는데 함양에 있는 목사님의 도움을 꽤 받았습니다. 두 분이 나이가 비슷했는데, 현실의 먹고사는 문제에 있어서 '평균케하는 원리'는 먼 얘기인 것 같습니다.
삼년 전부터 올린 사례금도 사실은 사모님이 조금씩 벌어 헌금하는 것으로 메꾸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다섯 가정 중 두 가정은 목사님 가정처럼 생존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교회의 남는 헌금은 모두 그곳으로 돌리고 있는 형편입니다. 600,000원의 생활비로 고등학생 둘을 가르치면서 생활해야 하는 목사님의 가정을 생각해 보면 그럼에도 목회를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감사가 나오기 보다는 답답한 마음뿐입니다.
또 하나 슬픈 사실은 지난 7년 동안 교회를 방문해주신 노회목사님들이 한 분 도 없다는 것입니다. 일년에 두 번 짧은 전화로 현황보고를 받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교회가, 바닥에 놓여있는 개교회가 노회에 어떤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사족으로 하나 덭붙이고 싶군요. 목사님들도 생활을 아셔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최저 생계비에 못미치는 목회자 생활비에 놀라시는 것을 보았는데, 우리 나라에서 최저의 생계비용이란 정말 상대적인 숫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등학생을 둘 가르치려면 최저 생계비용의 절 반 이상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교복, 등록금, 최소한의 참고서, 하루에 두 번 있는 식대들, 각종 학습비용, 여행비-학습효괴를 높인다는 이유로 3월에 수십만원의 경비가 드는 금강산, 제주도, 설악산 등을 돌아오는 수학여행, 단련비-을 포함해 계산해 보세요.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인터넷 비용과 전기사용료와 교제대는 들 것이고,
이런 것들이 모두 어려운 목회자의 최저이하의 생계비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언제나 궁금한 한 가지 사실은 우리 목사님은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사실을 정말 노회의 중견교회 목사님들이 제대로 알고나 계실까 하는 것이에요.
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 상황속에 있는 그분들이, 또 그것을 그냥 보고만 있는 우리들이, 화려함과 규모를 추구하는 대형교회들이 서로 겹치며 지나갑니다....
글과 답변 감사합니다. 먼저 감사를 표하고 생각해서 저도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무임 목회자가 오만을 넘어간다는 현실과 생계비에 못미치는 생활비를 공급하는 재정적으로 어려운 교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할수 있을찌요? 아직도 기관 목회자나 해외 선교사 양성이란 목표아래 오는 학생들이 있다고 정원을 늘려가는 신학교들이 적지 않는 현실에서 어떤 길이 있을까요?
이 글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은 과연 현재 목사후보생들은 이 글의 뜻을 이해나 할까 하는 생각이다. 앞으로의 앞날은 더 무시무시하다....ㅠㅠ
일단 무임목사 문제는 별도로 생각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실제로 많은 목사님들이 부업을 하고 있는 줄 압니다만.... 어려운 형편에 있는 분들이 아니고, 오히려 관록과 명성이 있는 분들이 더 많이 부업을 하고 있는.... 예를 들어서 부흥회 강사, 각종 신학교(총회의 신학대학이 아닌) 교수 내지는 강사, .... 그리고 각종 회의시 지급되는 여비(?)...... 결혼식, 개업식....등의 예배(?)를 인도하고 받는 봉투....
실제로는 신학교수들의 부업이 관록있는 목사들 보다 더 짭짤할겁니다. 각종 수련회 강사. 결혼식 주례, 책쓰고 맏는 인세, 고료, 각종 회의비, 설교하고 받는 봉투.... 보직수당 등등.... 그러니 고액연봉의 신학교수를 하고 싶은겁니다.
부흥회 강사비는 정말로 교회가 너무나 크게 잘못하고 있는 일입니다. 각종 심방비와 예배인도 사례도 그렇지만..하나님께서 죄지은대로 이 세상에서 보응하신다고 하면 징계대상 일순위일것입니다. 서민의 생활비를 훨씬 윗도는 급여를 보장받는 성공한(?)목사들일수록 더욱 여기저기 부흥회를 인도하며 사례받아 챙기고 그걸 주님의 축복이라고 그럽니다. 그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는 말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목회자가 물질을 공급받는 자체가 사업도 능력도 아니요,사례도 아닌 일하기 위한 생활보장이라는 의미는 온데간데 없고 성공과 축복으로 물질공궤를 말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놈의 세상이 참으로 미
치지 않았나 싶습니다. 복음팔아 장사하는 세상이니 말입니다.
지금 한창 뜨고 있는 Y목사님께서 수천명 집회 설교중에 한 말씀- 지방 모 교회 부흥회 강사 하였는데, 그 교회에서 사례금 3000만원을 수표로 주었다고 하였습니다만....(올 연초 모 기도원에서 한 말씀/ 그분은 그 돈을 도로 돌려주었다고 하였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