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날들의 추억’이라 하면 지레 손사래부터 치는 사람도 있지만 장아찌의 그 곰삭은 맛에 맛들이기 시작하면 그 중독성은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예전에는 저장시설이 없으니 제철 음식을 먹고 남으면 장아찌나 젓갈, 김치 등으로 만들어 장기 보관할 수밖에 없었지요. 발효 반찬인 장아찌는 발효되는 데 시간은 다소 걸리지만 일단 곰삭기만 하면 반찬이 없을 때 언제든 꺼내 활용할 수 있어요. 장아찌 몇 종류만 있어도 반찬 걱정 없어 마음까지 든든해지죠.
깻잎, 가지, 오이, 애호박, 고추, 고춧잎 같은 채소들은 요즘 일 년 내내 볼 수 있지만 실은 여름이 제철이라 그때 제일 맛이 좋고 과육이 단단하지요. 더운 여름 기운을 받고 자라 실하게 맛이 든 여름 끝물 채소들을 구입해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갈무리를 해요.
장아찌나 절임을 만들고 남은 장은 버리자니 아깝고 활용하자니 냄새와 맛이 일반 장과는 조금 다르지요. 이럴 때는 체에 걸러 한 번 끓이거나 조린 뒤 냉장고에 두고 소스나 조미료로 활용하면 좋아요. 고추장아찌를 만들고 난 국물은 걸러서 고춧가루만 살짝 타면 만두나 부침개를 찍어 먹을 때 소스로 사용할 수 있고, 각종 육류를 곁들인 샐러드의 소스로도 쓸 수 있어요.”
김영빈 표 장아찌 담그기 노하우
단단하고 수분이 적은 채소를 고른다 발효식품에 쓰는 채소나 과일은 너무 크고 수분이 많은 것보다는 작고 단단하며 수분이 적은 것을 선택한다. 오이도 수분이 많고 크기가 큰 것보다는 길이가 짧고 단단하며 씨가 적은 것이 저장식으로 만들었을 때 훨씬 맛있다. 지나치게 시든 재료로 담그면 맛이 없다.
묵은 장으로 만든다 묵은 된장과 고추장은 수분이 적고 퍽퍽해서 찌개를 끓여도 맛이 없다. 그런데 신선한 채소와 어우러지면 제대로 된 발효식품이 된다. 특히 채소로 장아찌를 담가두면 서로 조화를 이뤄 좋다. 채소의 맛과 수분이 빠져나와 장이 더욱 부드럽고 맛있어진다.
간장으로 담글 때는 섞는다 간장과 조선간장, 간장과 소금 등 간장을 베이스로 한 발효식품은 두 가지를 섞어야 깔끔한 짠맛을 낼 수 있다. 간장만으로 간을 하면 간장 특유의 텁텁함이 뒷맛으로 남는다. 이럴 때 국 간장이나 소금을 살짝 섞어 쓰면 뒷맛이 깔끔하고 색도 맑은 장물이 만들어진다. 또 간장에 여러 가지 향신채소를 넣고 팔팔 끓인 다음 식혀 부으면 채소나 과일이 더욱 아삭해지고 잡내가 나지 않는다.
공기와의 접촉을 피한다 장아찌는 혐기성 식품이라 공기와 접촉하면 맛이 변한다. 보관할 때는 냉한 곳에서 최대한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 좋다. 절대로 물이 묻은 수저로는 떠내지 않아야 하며 보관 중이라도 랩이나 속 뚜껑을 덮어두고 장이나 장물 위로 재료가 떠오르지 않게 해야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