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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문학> 2019, 겨울호 계간평
감동을 주는 작품을 쓰자
䨒溪 이도현
(국제펜한국본부 자문위원)
이번 겨울호엔 곱게 물들어가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삶의 다양한 주제를 담아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작품들이 많았다.
조선 중기 유학자 이율곡(李栗谷) 선생은 그의 저서 성학집요(聖學輯要) 서문에서 “道는 오묘해서 형상이 없기 때문에 文으로써 道를 형상화 하는 것이다.(道妙無形 文以形道)” 라 하였다.
곧 문학이란 사상의 형상화(形象化)로서 추상적 사상을 구체적 형태로 드러내는 것이요, 철학적 논리를 예술적 형태로 형상화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栗谷은 문학의 최고단계를 ‘선명(善鳴)’이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문학은 선한 울림 곧 좋은 감동을 주어야 제구실을 한다는 것이다. 독자에게 감동을 주는 공명공감(共鳴共感)하는 그런 선한 울림이 있는 문학이어야 함을 강조한다. 이 말은 공자의 사무사(思無邪)와도 상통하는 말이다.
가슴에 오래도록 번져가는 시조를 쓰자. 감동이 없는 문학작품은 빈 노작일 뿐이다.
뻐꾸기 울음 운다. 온 산이 흔들린다
그 울음 장대비로도 못 내리는 만근의 값
살다가 하-답답할 때면 뻐꾹뻐꾹 울고 싶다.
-김상선의 <울음이 부럽다>전문
얼마나 진솔한 자기고백인가. ‘울음이 부럽다 했다’ 정작 울고 싶어도 울지 못하는 각박한 세상이 되었다. 봄날 춘궁기 온 산을 흔들어대는 뻐꾸기 울음을 장대비로도 못 내리는 만근의 값이라 했다. 절창이다.
김상선 시인은 살다가 하-답답할 때면 뻐꾹뻐꾹 울고 싶단다. 꾸밈없는 서정의 진수를 여기서 본다. 어린이 같은 때 묻지 않은 천진무구(天眞無垢)의 세계요, 선명(善鳴) 그 울림이다.
작가 이문구는 <박용래 시인약전>에서 “그는 자주 울었다. 아름다운 모든 것들은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시래기 삶는 냄새, 막걸리 마시다 헤어질 때 그는 운다.”고 하였다. 박용래 시인처럼 눈물 많은 시인이 여기 또 있나보다.
울음은 희로애락 감정 중 가장 순수한 것이다.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야 울분이 풀리고 마음이 정화된다.
한 번쯤 사는 일에 어깃장을 놓고 싶어
몇 그루 과수나무, 몇 포기 꽃을 심고
이 핑계 구실 삼아서 도회지를 떠난다.
출렁인 햇살이랑 뻐꾹 울음 거름 삼아
한 뼘 두 뼘 크는 몸을 허공에 걸어 놓고
푸르른 바람붓으로 덧칠하는 나무들.
풋풋한 풀벌레 소리 조금 뜯어 보냈으니
사람과 사람 사이 허기진 날 있거들랑
여보게, 아껴 드시게 하늘 닮은 맛이네.
-김상선의 <하늘 닮은 맛>전문
김상선의 연시조 <하늘 닮은 맛> 전문이다. 막힘없이 술술 읽혀서 좋다.
잡다한 도회를 떠나 몇 그루 과수와 몇 포기 꽃을 심고, 출렁인 햇살, 뻐꾹 울음 거름 삼고 바람붓으로 나무를 덧칠한단다. 풋풋한 풀벌레소리 조금 뜯어 보내니 아껴 드시고 하늘 닮은 맛을 보란다.
소박한 전원생활 이야기를 편지형식으로 구성한 기법이 독특하다. 구사한 언어가 쉬우면서 은유한 솜씨가 멋과 맛을 자아내고 있다. 문장의 기호도 제자리에 꼭꼭 찍었다.
<하늘 닮은 맛>은 어떤 맛일까? 인위적인 맛이 아니요, 자연의 맛일 게다. 잡다한 속세의 맛이 아니요, 거룩한 하늘 세계의 맛일 게다. 마치 장자(莊子)가 속세를 초탈하여 유유자적하는 삶의 자세라 할까. 조용한 전원에서 살고자 하는 화자의 시심을 본다. 공감각이 어울어진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이다.
초가집 담벼락에 화르르 깃을 털며
앙상한 나뭇가지 학이 와 앉았는지
춘 삼월 명지바람에 담을 넘네 허옇게.
-김은숙의 <목련>전문
김은숙 시인의 소시집 여러 편 중에서 맨 앞에 나와 있는 단수 <목련>이다. 춘삼월 하얗게 솟아 핀 목련꽃을 화르르 깃을 털며 앉은 학으로 환치하면서 명지바람에 담을 넘는다 하였다. 봄날, 목련꽃이 만개한 곱고 아름다운 정경이다. 보드랍고 화창한 명지바람이 담을 넘는 화사한 동영상이다.
여기서 더 욕심을 부린다면 이러한 단순한 서정, 단일한 분위기만으로는 감동을 주기엔 좀 아쉬운 느낌이다. 사랑과 미움, 공포와 연민, 기쁨과 슬픔, 고독과 충만 등의 감정이 갈등과 긴장 속에서 복합적으로 확대될 때에 효과는 배가 된다. 이러한 복합적인 구성이 시의 생명력을 절실한 감동으로 견인함을 알아야 한다.
참아야 된다 기다림아 약속 없이도 꿈이 되는
가난이 커가면서 겨우내 굵은 망울
지켜온 마음을 펴는 건너는 목련이다.
-권도중의 <건너는 목련> 전문
권도중 시인의 <건너는 목련>이다.
한두 번 읽어서는 선뜻 오지 않는 어법이다. 제목부터 <건너는 목련>이라 활유(活喩)시키고 있다. 그러나 읽고 또 읽으면 화자의 생각에 근접할 수 있다. 겨울 삼동을 참고 기다린 그래서 활짝 피어오른 목련꽃을 노래하고 있음이다.
기다림이 꿈이 되고, 가난이 커가면서 겨우내 굵은 꽃망울이 되는 인내, 지켜온 마음을 펼치고 얼어붙은 혹한을 건너 활짝 핀 화사한 목련꽃의 위대함을 예찬하고 있음이 아닐까?
발표한 여섯 편 작품들이 역설, 도치, 은유의 중층기법으로 구성되고 있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작품을 쉽게 써서 많은 독자와 공감하고 기쁨을 나누면 어떨까?
늘씬한 꼬리 펴고 반짝이는 깃털 세워
강남의 멋진 신사 사뿐히 날아올라
고개를 갸웃거리며 지지배배 말이 많다.
흥부네 박씨 같은 긍정을 물고 오는
처마 밑 일가를 이뤄 꿈의 미로 찾아가는
고운 말 엽서를 쓰는 지혜로운 신선 새.
-김기옥의 <제비>전문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둥지를 지을 곳을 찾아 조아린다. 마침 소설 속의 흥부네 박씨를 물고 와 처마 밑에 단란한 일가를 이루어 행복한 미래를 설계하는 제비의 꿈을 그리고 있다.
그러한 희망을 조잘대는 제비를 고운 말로 엽서를 쓰는 신선 새로 의인화 하여 미화한다. 동화를 읽는 듯 재미있는 서경(敍景) 한 폭이다.
가만히 그림자를 노을에 세워보면
지난 날 밑돌 받혀 돌다리 건너왔던
푸르던 두 어깨마저 가뭇없이 기울었다
가을 산 맑은 숲에 한발두발 들어서면
바람이 색색 물감 천지사방 뿌리다
참억새 하얀 붓 하나 내 손에 쥐어주고
펄럭인 옷깃 여며 안부 총총 전한 뒤
가뿐한 걸음으로 떡갈나무 뒤를 돌아
간다는 그 말 대신에 찬물 소리 거둬간다.
-김정수의 <시월에>전문
시월은 가을의 끝자락이다. 풍요로운 가을을 만끽할 여유도 없이 푸르던 두 어깨마저 가뭇없이 기울고 말았다. 색색 물감으로 가을 산을 물들이면 하얀 억새꽃 붓 하나 내 손에 쥐어주고, 어느새 총총걸음으로 떡갈나무 뒤를 돌아, 간다는 말도 없이 가을은 빠져 나간다.
오붓한 풍요의 계절 가을이 아니고, 언제 왔던가? 찬물 소리 거두면서 달아나는 쓸쓸한 가을, 시월이다.
김정수 시인은 시작 노트에서 “가을은 영영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나무에 가만히 속삭이면 알겠다는 듯 묵언 정진으로 동안거(冬安居)에 든다.”고 말한다.
그렇다 가을은 쓸쓸하게 그냥 가는 것이 아니고 봄을 향한 묵언 정진이요, 동안거에 든 깊은 수행(修行)이다.
내 나라 내 땅인데 돌아서 중국땅으로
일본산 승합차 타고 닿고 보니 장백산이라
백두산 그 이름마저 중화되어 갔는가
천지를 보려거든 삼대(三代)를 적선(積善)한다는데
유월도 저믄 하순 얼음 낀 천지를 보네
천지인 단군왕검이 구름사이 현신하다.
-김차복의 <천지(天池)를 보며>전문
김차복 시인은 지금 민족의 영산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天池)를 굽어보고 있다. 감개무량할 일이다. 이곳에 오르려면 중국을 거쳐 만주 땅을 밟아야 한다. 내 나라 내 땅을 지척에 두고 빙빙 돌아서 가야하니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백두산 정상에 올랐어도 변덕스런 날씨 때문에 천지를 보기가 힘든데 김 시인은 삼대(三代)를 적선(積善)한 모양이다. 천지를 보고 단군왕검을 현신(現身)하였으니 얼마나 영광인가? 그 감회가 한마디로 형언할 수 없었을 게다.
여기서 둘째 수 초장을 보자. ‘천지를 보려거든 삼대를 적선한다던데’를 ‘삼대를 적선해야 천지를 본다던데’로 어순(語順)을 바꾸어야 중장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바른 어법이 된다.
하늘나라 동네에도 예식장이 있나 봐요
꼬마 신랑 꼬마 신부 첫 결혼식 하나 봐요
하객이 뿌린 꽃가루 자꾸자꾸 내려 와요.
-백민의 <첫눈>전문
백민 시인의 <첫눈>전문이다. 모처럼 동시조(童時調) 한 수를 만난다.
하늘나라 동네에도 예식장이 있어 꼬마 신랑 신부가 결혼식을 거행한다.
하객이 뿌린 꽃가루가 자꾸자꾸 내린다. 첫눈 내리는 정경을 하객이 뿌린 꽃가루로 환치한다. 첫눈을 보는 동심(童心)의 세계를 꾸밈없이 묘사하고 있다.그 비유가 신선하다.
창밖에는
서럽도록
하얀 눈 내리는 소리
하루가
십년이듯
유목민처럼 살았던 당신
희끗한
머리 뒤로는
찬 어둠이 깔렸던가.
익명의
바람소리도
어디선가 들려오고
팔십 여년
세월 담아
간직한 밀서 한 장.
얼굴에
노을이 번져
하늘빛을 닮았네.
-이전안의 <밀서 한 장>전문
이전안 시인의 <밀서 한 장>전문이다. 밀서(密書)는 남몰래 보내는 편지나 문서를 말하는데 여기서는 시작 노트의 글로 보아 이시인의 선친께서 남겨 놓은 문서를 말하고 있다.
“원고지에 글을 쓰다보면 아버님의 생전모습이 가슴 뭉클 스친다. 대부분을 창작활동에 바친 아버님은 후진 양성과 학문에만 정진하시어 심오한 뜻이 담긴 시문을 많이 남기셨다.”고 술회한다.
팔십 여년 후진양성과 학문에만 정진해 오신 아버지의 유물, 밀서 한 장을 손에 쥐고 가슴 뭉클해 하는 시간이다. 하늘빛을 닮은 거룩한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는 절절한 그리움을 어찌하랴. 이 밀서 한 장이 이승과 저승사이 부녀간의 천륜의 다리를 다시 잇고 있음이다.
처진 들녘 쏘다니던 시릿한 마음들이
속정 깊은 아낙의 수더분한 손맛으로
초가집 기스락 끝에 웃음이 걸려 있다.
타오르는 화로에 꽃을 피운 석쇠향기
담백한 묵은지와 밥도둑 갈비찜에
기력이 되살아난 듯 술 한 잔 기울인다.
손이 큰 아주머니 구름길 토닥이며
하루해 품어주는 맛깔스런 저녁상이
고단한 시름을 삭혀 애환의 정 물들인다.
-강성희의 <다미솔 예찬>전문
강성희 시인의 <다미솔 예찬>전문이다. 전라도 무안에 있는 ‘다미솔’ 식당의 음식맛을 예찬한다. 어찌 남도 아낙의 수더분한 손맛을 당하랴? 예부터 팔도 음식 중 전라도 음식을 알아주는 법. 밥집 처마 끝엔 웃음이 걸려 있단다.
타오르는 화로에 석쇠향기 솟고, 담백한 묵은지와 밥도둑 갈비찜에 술 한 잔 기울이면 금상첨화라, 손이 큰 아주머니 구름길 토닥이며 하루해 품는 저녁상이 시름을 삭혀 애환의 정을 물들인다고 한다.
강 시인은 미식가인 듯싶다. 구수한 식단을 구성지게 묘사하고 있어 군침이 절로 돈다. 정으로 물들인 맛깔스런 저녁상 한상 받고 싶다.
든든한 다리 없어 홀로 서지 못하고
넝쿨을 뻗어내어 이웃을 휘어 감네
아픔이 뿌리 내리고 여름 숲을 헤매네.
나무의 목을 죄며 악쓰며 올라간다
한밤에 삼킨 눈물 줄기 타고 흐르면
서러운 보랏빛 꿈이 숲속에 피어나네
온산을 뒤덮고도 땅 한 뼘 소유 못해
커다란 잎사귀로 서러운 몸 가리고
아무도 반기지 않는 손님처럼 머무네
한겨울 숲속에서 농부가 칡을 캔다
한으로 뭉친 뿌리 인간의 약이 되네
뉘라서 너의 원죄에 돌을 던져 물으랴
-강에리의 <칡>전문
강에리 시인의 <칡>전문이다. 칡의 한생을 에덴동산 인간의 원죄에 비유하고 있다.
첫수와 둘째 수에선 칡의 성장을 말한다. 이웃을 휘어 감고, 나무의 목을 죄며 악쓰고 올라가는 저주스런 모습이다. 셋째 수에선 온산을 뒤덮고도 땅 한 뼘 소유 못하고 서럽게 아무도 반기지 않는 외톨이가 된다. 마지막 수에선 한으로 뭉친 뿌리가 인간의 약이 되어 한생을 마감하는 과정이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善惡果)를 뱀의 유혹으로 따먹는다. 하나님은 노하시어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다. 그때부터 인간은 원죄(原罪)속에 빠지게 된다.
뉘라서 칡의 원죄에 돌을 던질까? 남과 이웃을 저주하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은 너그러이 용서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으로 뭉친 뿌리가 인간에게 약이 된다’ 하였으니 이웃을 휘어 감고, 나무의 목을 죄며 악을 썼을 지라도 어찌 그에게 돌을 던져 죄를 물을까? 라고 반문한다. 아무도 칡에게 돌을 던질 사람이 없음을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다.
단청 없이 기록된 황금빛 네 칸 벽과
천 년 세월 녹아든 배흘림기둥에 기대서면
우리가 읽어야 할 것 빗살문에 새겨두고
붉게 물든 가을 햇살 지붕에 걸터앉고
수덕여관 빗장이 열리는 그 소리에
바위에 새겨두었던 글씨들도 깨어나고
몸 낮춰 들어서자 다가서는 백팔 번뇌
하늘을 높이 받친 석탑의 고요함이
선홍빛 늦가을 정취로 그려지는 수덕사.
-고경자의 <수덕사>전문
고경자 시인의 <수덕사(修德寺)> 전문이다. 수덕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 덕숭산에 있는 백제 위덕왕 때에 세워진 천년이 넘은 고찰이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되었다.
시인은 수덕사를 찾아 배흘림기둥-중간은 직경이 크고 위아래는 점차 줄여 만든 기둥-과 빗살문을 눈 여겨 보고, 대웅전 아래의 뜰, 백팔번뇌를 다스리며 하늘을 높이 받친 석탑의 고요를 묵상한다. 선홍빛 늦가을의 정취가 무르익은 수덕사의 진경을 그려내고 있다.
사족을 달면 산의 정상엔 정혜사(定慧寺)가 자리 잡고 있다. 날씨좋은 날 이곳에 오르면 서해바다가 가뭇하게 보인다. 작가 김일엽(金一葉) 스님이 머물러 참선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숲에 이는 바람 스산한 겨울밤에
완자창 아롱이는 무희 같은 달그림자
해풍은 또 다시 찾아와 문풍지를 울리는.
모든 곳을 내려놓은 뒤란의 먹감나무
잔가지 수화하는 우주와의 저 교신은
적막의 금선을 튕기며 탄주하고 있는가.
추어라 외진 세상 잠 못 든 이 한밤에
구천에 떠돌던 꿈, 눈발 되어 흩뿌리는
바람은 망토를 걸치고 지휘봉을 잡고 있다.
-김숙선의 <바람의 연주>전문
바람, 형체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바람! 그러면서 우리들 귓전을 스치기도 하고, 때로는 사나운 바람이 불어 세상을 어지럽게도 한다. 지구 한쪽 끝에서 나비의 날개가 바람을 일으키면 이역만리에 태풍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김숙선 시인은 대숲에 이는 바람 스산한 겨울밤에 해풍이 다시 찾아와 문풍지를 울리기도 하고, 뒤란 먹감나무 잔가지와 수화도 하며 가야금을 튕기며 연주도 한다.
잠 못 든 이 한밤에 춤도 추고 눈발 되어 흩뿌리다가 망토를 걸치고 지휘봉을 잡는다.
여기서 ‘바람’은 누구일까? 김숙선, 자신이 아닐까? 화자는 한 점 바람이 되어 금선을 튕기며 탄주도 하고 망토를 걸치고 지휘봉을 잡는다. 그래서 무한한 자유인이 되는 상상의 나래를 편다. 김숙선은 지금 한 점 바람이 되어 우주와 교신하면서 자유하고 있다.
칼 노래 불꽃 대결 심화된 국론 분열
항 꾼에 이룬 협치(協治) 혁신과 평화경제
황금빛 조국강산에 푸른 세상 새벽빛.
-김신덕의 <거버넌스(governance)>전문
김신덕 시인은 지금 나라를 위해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다. 지금 이 나라 안에는 보수와 진보, 가진 자와 갖지 못 한자,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 갈등과 대결, 이로 인한 국론 분열까지 그 상황은 극에 달하고 있다. 조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김 시인은 자유기고가요, 평화 운동가이다. 지면에 발표한 세 편 모두가 나라를 걱정하고 이 땅에 평화를 기원하는 내용의 작품들이다.
칼 노래, 불꽃 대결, 심화된 국론분열로 협치(協治)는 물 건너가고, 평화 경제마저 금이 간지 오래 되었다. 지금 화자는 황금빛 조국 강산에 푸른 세상 새벽빛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밝고 복된 나라, 다 같이 잘사는 나라가 오기를 기원한다.
가만히 못 있으니 쫓기듯이 떠나는 길
외롭게 숨어 있을 무겁고도 깊은 산골
벗하러 맨몸 그대로 딛는 발을 재빨리.
작은 별 떨어져서 꽃자리를 이룬 언덕
시린 샘 흘러가서 소용돌이 감기는 곳
잠 쫓은 멧새 하나쯤 기다리고 있겠지.
들려줄 이야기는 닦고 나니 맑은 구슬
차라리 줄에 꿰어 목걸이로 걸어 줄까
뭐든지 먼저 만나면 품을 열고 안으리.
-김재황의 <밤에 찾는 병지방리>전문
김재황 시인의 <밤에 찾는 병지방리>전문이다. 병지방리(兵之坊里)는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에 위치한 마을이다.
김시인은 지금 병무산(兵無山) 산자락 깊은 산골로 쫓기듯이 떠난다. 그것도 밤길이다. 그 곳은 작은 별이 떨어져서 꽃자리를 이룬 언덕이요, 시린 샘 흘러가서 소용돌이 감기는 곳, 멧새 하나쯤 기다리는 적막한 곳이다.
들려 줄 이야기는 맑은 구슬뿐 차라리 목걸이로 걸어주겠단다. 무엇이든 만나면 내 품으로 안겠다는 극도의 자연주의요 낙천주의다.
심산유곡의 깊은 적막 속에서 유유자적(悠悠自適)하는 은자의 삶을 본다.
그 숱한 날을 두고 밤을 왜 우는지를
소쩍새 여름 하늘 이 산 저산 적신 걸음
세월을 비운 등짐에 가슴 나눌 삼동 달
지고 든 저녁달이 이른 아침 나를 깨워
혼 밥을 차린 상에 수저 한 벌 포갠 뜻은
오다 말 처마 별똥별 가슴에다 집을 지어.
-양원식의 <달을 본다>전문
양원식 시인의 <달을 본다>전문이다. 오랜만에 원로시인을 만난다. 시인이 숱한 날을 두고 밤을 왜 우는지를 알아야 한다.
인생의 황혼녘은 외롭고 쓸쓸하다. 노부부가 해로하다 한쪽이 먼저 훌쩍 떠나면 얼마나 더 허전하고 막막할까? 겨울 삼동 긴긴 밤이면 더욱 그러하겠다. ‘지고 든 저녁달이 이른 아침 나를 깨워/혼 밥을 차린 상에 수저 한 벌 포갠 뜻은’ 의 대목에서 눈시울이 시큰하다.
마지막 종장 ‘오다 말 처마 별동별 가슴에다 집을 지어’에서의 대목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혼자서 외롭고 쓸쓸하다는 관념어를 한 마디도 사용치 않고 이미지 처리, 은유의 기법을 통하여 외로움의 분위기를 한층 끌어 올린다. 노련한 기법, 원숙의 경지를 예서 본다.
백세 시대가 도래하였다. 희망을 잃으면 모두를 잃는 법, 독서로, 창작으로, 산책으로, 벗의 만남으로 하루하루를 기쁘게 건강하게 살 일이다.
떠날 때를 아는가 눈물도 모두 거둔
가지 끝에 걸려있는 쓰르라미 외투 한 벌
뜨거운 한 생이 지네, 바람속의 다비(茶毘).
-윤경희의 <백로(白露)>전문
윤경희 시인의 <백로>전문이다.
한 여름 서럽게 울어 주던 쓰르라미가 백로 때가 되면 허물을 벗는다. 그것을 외투 한 벌이라 했다. 번쩍인 은유다.
특히 종장에서 ‘뜨거운 한 생이 지네, 바람속의 다비’라 명사로 뚝 끊어 버렸다. 쓰르라미의 한 평생을 한 줄로 압축한다. 천 마디의 풀이보다 한 마디의 압축이 독자를 긴장시킨다. 이것이 시조만이 갖는 절제의 기법이요, 종장 처리의 미학이다.
윤경희는 짧은 단수(單首) 안에 고도의 절제와 번뜩이는 은유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다른 작품 ‘놋그릇’을 ‘세월의 손길 푸른 옷’이라 한 점, ‘동춘 서커스단의 곡예(曲藝)’를 한 생애의 ‘줄’로 환치한 솜씨가 그러하다.
토(兎)선생 농락사건 자승자박 별공(鼈公)나리
둥.둥.둥 비상소집 우왕좌왕 갈팡질팡
모리장(謀利場) 산호초 밀실 허겁지겁 긴급회의.
-윤상희의 <수궁 긴급회의>전문
윤상희 시인의 작품 <수궁 긴급회의>는 현재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건 현장의 이야기를 고대소설 ‘별주부전’ 일명 ‘토끼전’에 비유하면서 재미있게 구성하고 있는 작품이다.
토선생(토끼)을 마음대로 농락하고 자승자박하는 별공나리(거북)께서 관계자들을 비상소집하고 당황하여 우왕좌왕하면서 수궁 밀실 모의한 장소에서 허겁지겁 긴급회의를 개최하고 있는 긴장된 모습이다.
비상소집하는 의성어 ‘둥.둥.둥’과 ‘모리장(謀利場) 산호초 밀실’의 언어구사가 일품이다. 남을 농락하고 올라서려다 외려 자기 꾀에 자기가 당하는 사례를 우의적(寓意的)으로 풍자하고 있다.
풍성한 들녘에서
추수가 끝날 즈음
까마귀 예닐곱이
불현듯 날아드니
티 없이 맑은 하늘에
두려움이 감돈다.
검고 검은 날갯짓에
창공이 얼룩지니
우러러 보는 마음
자꾸만 시려 오는데
용서로 참아야 할지
하느님께 여쭌다.
-윤한익의 <마음이 시린 계절>전문
윤한익의 <마음이 시린 계절>전문이다. 이 작품에서 ‘까마귀 예닐곱’은 무엇을 상징할까? 불길하고 불안한 예감을 준다.
풍요로운 가을들녘, 추수가 끝날 무렵 티 없이 맑은 하늘에 우리를 불안하게 하는 까마귀는 과연 무엇일까?
국내적인 불안 상황? 아니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냉전 상황? 일까? 검은 날갯짓에 하늘이 얼룩지고 있음을 화자는 걱정한다. 이러한 걱정 속에서 용서하며 참아야 할지를 하느님께 여쭙고 기도한다.
세상엔 왜 왜 어른 집 들 뿐인가요
아파트 층층마다 불 켜진 밤이 되면
아무리 눈 닦고 봐도 아이들은 없네요.
-임석의 <아파트>전문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가정집에선 아기울음소리, 방망이 두들기는 소리, 책읽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 소리가 뚝 그쳤으니 금석지감(今昔之感)이 안타깝기만 하다. 가정의 보배는 아기울음 소리다.
임석 시인은 아파트는 늘어만 가는데 아이들은 없다고 걱정이다. 그렇다. 아기를 낳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니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누가 나라를 지키고, 누가 일해서 나라를 부유케 할까? 이러다가 배달겨레가 끊기면 이 나 라 아니 우리 조국은 어디로 갈까.
출산정책이 시급하다. 젊은이들을 배려하고,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맡기는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쌓고 쌓은 상자 같은 이삼십층 아파트가
몸집 크기 똑같은데 번호판만 다르구나
문 안에 웅크린 얘기 대하소설 쓰는 세상.
-최은희의 <지금 이 순간>전문
제목부터 우리를 긴장시키는 작품이다. 금시 무슨 일이 벌어질 듯한 어세(語勢)다. 앞의 작품 임석의 ‘아파트’에선 아이들이 없다고 걱정을 하는데 최은희의 이 작품에선 대하소설(大河小說)만 쓴다고 야단이다. 상자 같은 이삼십층 아파트, 몸집은 똑같은데 번호판만 다르구나.
하늘로만 치솟는 현대문명을 고발하고 야유한다. 위로 오르는 수직문화만 상승 비대하고, 이웃을 돌아보고, 사랑을 나누는 수평문화는 죽어가는 세상이다. 나 혼자만 있고 우리는 없다. 더불어 함께하는 세상, 문 안엔 사랑과 진실은 없고 대하소설 픽션만 있을 뿐이다. 라고
최은희 시인은 지금 이 순간 이 땅에 이웃을 복원하고 사랑을 심자고 긴급 호출신호를 보내고 있다.
다음엔 단시조 특집을 보자.
짧은 해 서녘 창에 삭풍을 몰고 와도
찾는 이 없다 한들 못 감출 흥이 나니
슬기둥 거문고 줄이 끊어지려 하도다.
-김영석의 <자락(自樂)>전문
김영석 시인의 <자락(自樂)>이다.
김영석 시인은 지금 거문고 줄을 타면서 혼자서 자락하고 있다. 짧은 해 서녘 창에 삭풍이 불어오는 황혼녘, 찾는 이가 없어도 혼자서 흥이 난다. 거문고 줄이 끊어질 듯 흥이 솟는 시간이다.
‘슬기둥’은 기타소리를 입으로 내는 구음(口音)이렸다. 흥이 솟으면 입으로도 소리를 절로 낸다. 종장 첫구에 딱 맞는 의음(擬音)이다. 자락치는 풍류다.
김시인은 삭풍이 몰려와도, 세상이 시끄러워도 아랑곳 하지 않고 거문고에 취해 있다. 자락하는 모습이 부럽다.
불을 끄고 누우면 천정이 바둑판이다.
까만 모서리에 별들이 돋아나고
이제야 하수 투성이 내 모습이 보인다.
-문태길의 <바둑사설>전문
문태길 시인은 지금 바둑을 멈추고 잠자리에 들었다. 천정이 온통 바둑판 뿐이다. 까만 바둑판 모서리에 별들이 돋아나고, 하수 투성이 인 자기모습을 발견한다. 화자는 바둑 초년생인가 보다.
아니다. 인생 만년에 비로소 자기 모습을 찾고, 인생 하수로 살아온 하수 투성이라고 겸손해 한다. 돌아보면 상수로만 살아 온 인생이 얼마나 될까? 역경을 극복하고 우리는 이만큼 역사를 쓴 장한 인생이라고, 인생은 한번 살아볼만한 것이라고 자부해보자.
단종의 왕위찬탈 노산군 강봉 되어
왕후가 궁을 떠나 불교에 귀의하여
불같은 그리운 심장 감추고서 살았다.
-장영규의 <동망봉>전문
장영규 시인의 <동망봉>전문이다. 비운의 역사 한 자락을 감상하자.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고 노산군으로 강봉, 영월로 추방한 다음 사약을 내린다.
동망봉(東望峰)은 서울시 성북구 보문동에 있는 산으로, 단종왕비 정순왕후 송씨가 단종을 위하여 조석으로 이곳에 와서 동쪽을 향하여 영월을 바라보며 단종의 명복을 빌었던 곳이다.
단종에 대한 ‘불같은 그리운 심장을 감추고서 살았다.’고 종장에서 결구한다. 얼마나 비장한 운명의 역사인가? 이것이 조선 오백년 우리 역사의 증거요, 살아있는 증언대다.
헛디딘 조각구름 강물로 곤두박질
엿보던 돌개바람 재빨리 낚아채어
한 입에 꿀꺽 삼키곤 시치미를 뚝 뗀다.
-전보규의 <능청>전문
전보규 시인의 <능청>전문이다.
조각구름 한 자락이 발을 헛디뎌 강물로 빠졌다. 옆에서 이 광경을 본 돌개바람이 이를 낚아채어 꿀꺽 삼키곤 시치미를 뚝 뗀다는 이야기다. 재미있는 구성이요, 재치가 넘치는 위트다.
시치미는 무엇인가? 옛날 매사냥을 많이 할 때 매의 발목에 달아놓은 주인 이름표를 말한다. 시치미를 떼어버리면 누구의 매인지 모른다. 여기서 ‘능청’이란 제목을 ‘시치미’가 받쳐서 작품을 성공적으로 완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엔 이런 유(類)의 사람들이 많다. 시치미를 뚝 떼고 능청을 떠는 돌개바람 족속이 많이 있다. 발을 헛디디면 돌개바람에 걸리기 십상이다. 재빨리 낚아채어 시치미를 떼고 능청을 떠는 무리에게 걸려들지 않도록 정신을 차리자.
이상 겨울호에 수록된 작품들을 살펴보았다. 자연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삶, 겨울 삼동을 이기면서 묵언 정진하는 수행록, 백두산 천지를 답사한 기행시조, 첫눈을 하객이 뿌린 꽃가루로 환치한 동시조, 아버지가 남겨놓은 밀서 한 장이 감동을 준다.
남도 아낙의 구수한 손맛, 칡의 일생을 인간원죄(原罪)에 은유하고, 화자가 한 점 바람이 되어 망토를 걸치고 지휘봉을 잡는 상상을 한다. 나라안팎의 불안 공포를 풍자, 고발도 하고, 고공으로 치닫는 현대문명을 비판한다. 역사의 한 자락을 상고하며 슬픈 역사를 조명한다.
참으로 다양한 소재, 다양한 주제들을 다룬 숙성한 작품들이 겨울호를 풍성하게 빛내고 있다.
나라안팎이 안정되지 못하고 불안하다. 이러한 때에 선명(善鳴)한 작품들이 많이 생산되어 우리 모두에게 감동을 주고, 밝고 명랑한 사회를 이룩함에 보탬이 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겨울호의 시조들과 야성님의 평론을 들으니
님들과 함께 문학을 나누는 느낌이 가득합니다
봄호부터 함께하는 저에게 큰 공부가 되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야성님~~~~~~
감사합니다.
청조 선생!
건승건필을 기원합니다.
한시협의 고문이신 야성 시인께서 시조문학의 계간평을 통하여 겨레시조의 빛을 보라하고 때를 닦아주시니 후학으로서 많은 가르침을 받습니다. 압축된 시조를 바르게 볼 수 있게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기다리고 늘 반갑게 읽겠습니다.
이사장님!
격려의 글 감사합니다.
짧고 무딘 글이라서 늘 독자가 부담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