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석상으로 가득찬 파리 노트레담 성당
파리의 상징 노트레담 성당, 찬란했던 유럽 기독교의 고딕건축양식을 대표하는 이 노트레담 성당에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악마의 석상이 교회건물 위에 붙어 성당에 들어오는 여행객들을 노려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도 하나 둘이 아니다. 건물을 자세히 뜯어보면 여기 저기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노려다 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교회 곳곳에 자리를 잡고 파리 전체를 위에서 내다 보고 있으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트레담에 있는 괴수들의 석상 가고일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 악마나 괴수의 석상이 건축물 위에 세워져 도시를 내다 보고 있음을 발견한다.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노트레담과 같이 유명한 교회는 어느 교회든 고딕양식이라면 건물에 이런 괴수의 석상이 있다는 사실이다. 여행객에게 잘 알려진 독일 쾰른 대성당을 가 보아도 이런 석상들이 도시를 내다보며 자리를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근데 노트레담의 괴수 석상은 미술사적으로 상당히 유명하다. 이런 노트레담의 괴수 석상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기독교문화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유럽 그리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성당에서 이런 악마의 석상을 보는 순간 여행객들은 당혹하지 않을 수 없는데 미술사적으로도 어떤 의미가 있다는 것에 또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럼 이런 문화적 충격을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고딕양식은 높이를 지향하며 상향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고딕시대 교회의 건물들은 대체적으로 높이가 상당한데 이런 건물들을 지을 때 비가 오고 난 후 물이 고이는 것을 막기 위해 특별히 지붕의 낙수홈을 특별히 만들어야 했다. 고딕시대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은 지붕의 낙수홈을 만들 때 괴수의 주둥이를 사용했으며 그러기 위해 괴수의 석상을 만들게 된다.
낙수홈은 건축 구조학적으로 당연히 교회 밖에 위치하게 된다. 당시 건축예술가들은 신의 은총이 가득한 신성한 교회 내부와 악의 세력이 자유롭게 활동하는 외부세계를 극단적으로 대비시키기 위해 낙수홈으로 악마의 석상을 사용했다. 즉 건축가들은 “교회 밖에는 악마가 항상 노려보고 있으니 신앙으로 무장”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던 것이다. 매 일요일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이런 괴수의 석상을 보고 공포에 휩싸이며 신앙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성서적으로 살기를 다짐한다. 고딕양식이 문화재로 가치가 있는 것은 이렇게 당시 유럽사람들의 생활까지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성당에 만들어진 대부분의 괴수의 석상들은 용을 비롯 6개의 몸을 가진 괴수 등 힘있고 강한 괴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독일말로는 이들을 총칭해 Beelzebub이라 하는데 귀신의 왕들을 말할 때 쓰는 단어다.
교회의 건물에 귀신의 왕을 둔 것은 다른 악귀가 접근치 못하도록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 강하고 힘있는 악귀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악신들은 어쩔 수 없이 귀신왕의 영지를 피해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즉 교회밖에 귀신왕의 석상을 둠으로써 악마의 세력을 몰아내고 교회와 수도원을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찌 보면 부적의 의미가 강하다.
최초로 괴수의 석상이 사용된 곳은 1220년 라옹 교회를 지을 때였다. 그 후 파리 노트레담 성당이 이를 모방해 짓기 시작했는데 노트레담 성당에서 괴수의 석상이 전 유럽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동물의 모양에서 사람의 모양으로 바뀌었는데 나중에는 의미가 변질되어 반유대주의 운동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게 고딕교회에 붙어 있는 괴수의 석상을 가고일이라 부른다. 가고일은 영어의 gargle에서 왔다. 교회 지붕 처마 밑에서 물을 입 밖으로 내보내기 때문에 괴수의 몸 안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는데 이 소리를 본 따 이름을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고딕시대 때 가고일은 새나 짐승의 모습을 뛴 괴수들로 주로 이루어졌으며 높은 건물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물을 멀리 내려 보내기 위해 상당히 밖으로 나와야 했다. 당시 건축가들은 이런 고딕양식의 건축학적 구조를 이용해 교회의 역할을 강조하며 예술성을 더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