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혹과 고혹의 차이
박미정
사람의 아름다움에는 여러 얼굴이 있다. 한눈에 마음을 빼앗는 아름다움이 있는가 하면, 돌아선 뒤에 더 오래 생각나는 아름다움이 있다. 전자를 매혹이라 부른다면 후자는 고혹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둘은 닮았지만 다르다. 매혹이 시선을 붙드는 힘이라면 고혹은 마음을 머물게 하는 힘이다.
검은 드레스에 금빛 장식이 은은하다.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우아하지만 쉽게 다가서기 어려운 기품이 있다. 검은 부채를 든 손끝에는 절제된 여유가 흐른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젊음이나 화려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오히려 세월이 지나온 자리에서 만들어진 깊이가 한 사람의 분위기를 완성한다.
매혹은 대체로 순간적이다. 아름다운 얼굴, 화려한 옷, 눈부신 색채, 매력적인 목소리처럼 감각을 통해 빠르게 다가온다. 우리는 이유를 설명하기도 전에 어떤 대상에게 끌린다. 그것은 본능에 가깝다. 첫눈에 반한다는 말도 매혹의 성질을 잘 보여준다. 생각보다 시선이 먼저 움직이고 판단보다 감정이 먼저 반응한다.
고혹은 조금 다르다. 한 번 보고 지나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매혹과 닮았지만, 그 끌림의 뿌리가 훨씬 깊다. 고혹적인 사람에게서는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느껴진다. 말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고, 웃음 뒤에 지나온 계절이 있으며, 침묵 속에도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래서 매혹에는 ‘보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고혹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젊은 날의 아름다움은 매혹에 가까울 때가 많다. 싱그러운 얼굴과 탄력 있는 걸음,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나아가는 자신감만으로도 눈부시다. 그것은 젊음이라는 계절이 인간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아름다움의 기준도 조금씩 달라진다. 얼굴에는 살아온 시간이 머물고 몸에는 계절의 흔적이 남는다. 우리는 흔히 그것을 늙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말 그것뿐일까.
세월은 젊음을 가져가는 대신 다른 것을 남긴다. 사람을 바라보는 눈, 기다릴 줄 아는 마음, 함부로 말하지 않는 절제, 상처 입은 사람의 침묵을 알아듣는 감각 같은 것들이다. 젊은 시절에는 갖기 어려웠던 아름다움이다. 그것들이 한 사람 안에 오래 쌓이면 어느 순간 분위기가 된다. 그 분위기가 고혹이다.
고혹은 꾸민다고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비싼 옷이나 보석만으로 완성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지나치게 드러내려 하면 사라지는 이상한 성질을 지녔다. 무엇인가를 보여주려 하지 않을 때 더 선명해지고, 자신을 과장하지 않을 때 더 깊어진다. 고혹적인 사람에게는 여백이 있다. 모든 이야기를 다 하지 않는다. 모든 감정을 설명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삶을 함부로 전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람에게서 아직 읽지 못한 한 권의 책을 느낀다. 첫 장을 넘겼는데 마지막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사람. 가까이 다가갈수록 새로운 문장이 발견되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는 외모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
매혹이 불꽃이라면 고혹은 숯불과 닮았다. 불꽃은 순간적으로 환하고 강렬하다. 누구나 바라본다. 그러나 숯불은 요란하지 않다. 안쪽에 붉은 온기를 오래 품는다. 가까이 다가가야 그 뜨거움을 알 수 있다. 사랑도 비슷하다. 젊은 날에는 매혹으로 사랑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눈빛 하나에 가슴이 뛰고 손끝이 스치는 것만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만나고 싶고, 소유하고 싶고, 상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진다. 사랑의 불꽃은 뜨겁고 아름답다.
그러나 오래된 사랑에는 다른 빛이 있다. 말없이 건네는 물 한 잔, 아픈 날 이불을 덮어주는 손, 늦은 귀가를 기다려주는 마음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것들이 사랑의 중심으로 들어온다. 뜨거움이 사라졌다기보다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간 것이다. 사랑 역시 매혹을 지나 고혹으로 향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자신도 모르게 많은 것을 벗는다. 타인의 시선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벗고,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는 욕망도 내려놓는다. 젊은 날에는 세상에게 자신을 증명하려 했다면 어느 순간부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을 원한다. 그때 사람에게 독특한 빛이 생긴다. ‘나는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평온이다.
나는 그것이 고혹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고혹적인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주름을 숨기는 데 삶의 모든 에너지를 쓰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아름다움을 포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을 알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침묵과 웃음을 안다.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대신 지금의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런 사람 앞에서는 나이를 묻는 일이 별 의미가 없다.
예순의 얼굴에는 스무 살이 가질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했던 시간, 떠나보낸 사람, 견뎌낸 계절, 실패와 용서, 다시 시작했던 날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그 모든 것이 눈빛 하나에 스며든다. 그래서 어떤 얼굴은 세월이 흐른 뒤 더 아름답다. 주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이야기가 있어서다.
나는 매혹보다 고혹이라는 말을 오래 바라보게 된다. 매혹은 타인의 시선에서 시작되지만 고혹은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되는 것 같아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보다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가 결국 한 사람의 분위기를 결정한다. 그렇다면 아름답게 늙는다는 말도 조금 달리 생각할 수 있다. 젊음을 오래 붙잡는 것이 아름답게 늙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세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사랑할 줄 알고 웃을 줄 알며 새로운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아름다운 나이 듦이 아닐까.
꽃에도 그런 아름다움이 있다. 활짝 핀 꽃은 매혹적이다. 그러나 꽃잎 몇 장을 내려놓은 뒤 씨앗을 품기 시작한 꽃에는 다른 깊이가 있다. 한 계절을 살아낸 존재만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젊은 날 매혹을 꿈꾸었다.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보이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으며 세상의 시선을 붙잡고 싶었다. 그것도 삶의 빛나는 한 시절이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다른 아름다움을 꿈꾸어도 좋겠다.
쉽게 읽히지 않는 사람. 말보다 삶이 먼저 보이는 사람.
화려함보다 품격이 오래 남는 사람. 세월이 얼굴을 바꾸어도 마음의 빛까지 가져가지는 못한다. 오히려 잘 살아낸 세월은 사람에게 젊음이 줄 수 없는 깊이를 선물한다. 결국 매혹은 사람을 돌아보게 하지만, 고혹은 돌아본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한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알게 된다. 눈부신 아름다움보다 깊은 아름다움이 오래간다는 것을. 매혹은 순간을 사로잡지만, 고혹은 세월을 품는다.
첫댓글 매혹과 고혹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매혹적인 선생님의 모습이 좋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게됩니다.
나는?
매혹적인가?
고혹적인가.
밍밍한~~~
샘 고맙습니다. 매혹이든 고혹이든
생각하게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혹적인 모습에 반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