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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
누가복음 16:10-13
본문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 11절에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12절에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작은 것’에 충성하고,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고, ‘남의 것’에 충성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세 가지의 재물로 사람의 충성됨을 시험하신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충성의 양이 아니라 질이라는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큰 충성을 충성으로 여기고 작은 충성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충성’의 헬라 말은 ‘믿음’이나 ‘신실’로도 번역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자세는 믿음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사람을 보실 때에는 충성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을 믿으실 때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충성’은 구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충성해야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충성 없이 이미 받았습니다. 충성은 사명이요 은사입니다. 충성하면 복을 받습니다.
예수님과 십자가에 나란히 달린 강도는 마지막 순간에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강도는 충성해 본 일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강도에게 충성할 수 있는 사명을 맡긴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명이 주어진 일도 없습니다. 충성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충성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강도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갔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것이지 내가 충성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아서 은사로써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하면서 기쁨도 얻고 행복도 얻습니다. 나아가 더 큰 축복도 받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충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충성은 은사로 주신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와 사명을 내가 얼마나 신실한가, 얼마나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는가에 따라 더 큰 은사와 더 큰 사명을 주십니다. 이미 주어진 것을 신실하게 충성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크고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무릇 있는 자에게 더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적 진리입니다. 있는 자에게 더 주는 것이 충성에 대한 논리입니다. 이 논리는 달란트 비유에서 볼 수가 있습니다.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져온 사람에게서 그 한 달란트마저 빼앗아서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충성된 자에게 더 주고 더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를 더 주는 것입니다. 충성된 자에게는 건강도 있고 재주도 있고 돈도 있고 훌륭한 자녀들도 있습니다. 여러 모도 넉넉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거저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작은 것을 주셔서 우리가 그것을 잘 감당하면 더 주셔서 더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먼저 작은 일부터 맡깁니다. 그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그 다음 단계의 일을 맡기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면 또다시 좀 더 큰일을 맡겨주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큰 일을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처음부터 큰 일을 맡기지 않습니다. 내가 맡은 일이 작다고 불평이나 하면서 충성을 게을리 하는 것은 하나님의 논리에 맡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에서는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 논리를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빼앗기는 것은 작은 것에 충성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시간이며 건강이며 지식이며 지혜이며 물질이며 지위가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재물에 대하여 말씀을 하셨습니다. 충성의 척도를 물질에 대한 충성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됨을 알려면 그 사람에게 돈을 주어보면 안다고 합니다. 13절에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물질이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도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이 하나님의 위치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돈으로 사람의 인격을 시험할 수 있고 신앙도 시험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아무리 잘 믿는다 해도 돈에 대한 애착으로 제대로의 처신을 못했다면 바른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돈에 노예가 되면 올바른 신앙이 될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믿음이 병든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음을 쉽게 무너지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돈입니다.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은 원문으로 최상급의 가장 작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지극히 보잘 것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보기에 대수롭지 않은 것입니다. 관심을 둘만한 가치가 없는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충성입니다. 대수롭지 않은 작은 돈을 바로 쓰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격을 알 수가 있습니다. 작은 돈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큰 돈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길 줄 알 때에 충성된 자가 됩니다.
서울의 어느 교회에 모 장로님은 직장을 퇴근하면 반드시 교회를 둘러보고 집에 가신다고 합니다. 가끔은 끄지 않은 전등을 끄기도 하고 휴지를 줍기도 하고 화단을 둘러보고 가는 아주 작은 충성을 하므로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하셔서 큰 사업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작은 것에 충성할 때 하나님은 더 큰 것을 주십니다. 모든 일에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미미한 일에도 정성을 다하라는 말씀입니다. 대체로 보면 충성되지 못한 사람은 큰 일만 생각합니다. 큰 일이면 하겠다고 하며 작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큰 일이 맡겨주지도 않을뿐더러 맡겨도 감당을 못합니다. 작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라야 큰 일도 합니다.
충성이란 무엇입니까? 작은 일에 신실한 것이 충성입니다. 작은 물질에 충성하면 큰 물질을 맡기십니다. 작은 일에 대하여 소중히 여기면 큰 일도 맡겨 주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큰 일에 충성하지 않을 것으로 하나님은 여기십니다. 충성의 질량은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같습니다. 작은 일, 큰 일이 따로가 아닙니다. 충성의 잣대는 작은 일이나 큰 일이나 같습니다. 그래서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큰 일에 불충했다고 벌을 받고 작은 일에 불충했다고 벌을 받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것을 보시면 큰 일에도 충성할 것으로 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작은 일에 불충하는 것을 보시면 큰 일에도 불충할 것으로 보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에게는 더 큰 일을 맡겨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큰 일을 맡겨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란 지극히 작은 재물(시간)을 바르지 않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은 별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아주 작은 것을 부정하게 관리하면 큰 것에도 부정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돈 몇 원을 속이는 것을 죄로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작은 시간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별것도 아닌 것 같은 아주 작은 것도 정직하게 관리하면 크고 더 많은 것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아주 작은 불과 몇 분, 몇 초를 지키지 않으므로 기차나 비행기를 타지 못하여 엄청난 것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예배시간에 조금 늦었다면 엄청난 것을 잃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 늦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복을 잃었다는 것을 모르는 참으로 큰 불행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하지만,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아주 작은 것이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아주 작은 선이나 아주 작은 악에 대해서 별것도 아닌 것처럼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주 작은 것에 충성된 자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실 뿐 지극히 작은 불의도 그냥 두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지금까지 지극히 작은 선이나 악에 대해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면 이제부터라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고, 지극히 작은 것에도 불의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불의한 재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11)는 이 말씀은 잘못하면 오해를 할 수 있습니다. ‘불의한 재물’을 악한 재물이나 바르지 못하게 취한 재물로 생각하므로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라는 말씀에 대한 오해를 하게 됩니다. 9절에도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 역시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의한 재물’과 ‘불의의 재물’의 원문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원문은 도덕적으로 불의한 재물이 아니라 ‘곧 없어질 재물’, ‘적당치 않은 재물’이요, ‘쓰이지 않는 재물’이라는 뜻입니다. 조금 있으면 없어질 세상의 재물이나 없어질 시간을 불의한 재물이라고 하였습니다. 잠깐 가지고 있는 세상의 것을 ‘불의한 재물’(11), ‘불의의 재물’(9)이라고 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재물이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부로 쓰고 사는 것을 ‘불의한 재물에 충성하지 아니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불의한 재물에 불충성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9절에 ‘불의의 재물’ 역시 청지기가 주인으로부터 ‘네 보던 일을 샘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는 말을 들었을 때 그에게 남은 마지막 시간에 빼앗기기 전에 마지막 남은 권리를 잘 이용했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지혜롭다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할 때는 자신에게 맡겨진 주인의 재산을 허비만 했습니다. 그러나 청지기직을 계속하지 못하리라고 했을 때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으므로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은 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도 언제나 내 것이 아닙니다. 잠깐입니다. 곧 떠나게 될 것입니다. 능력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남은 시간에 어떻게 할 것이냐? 남은 시간을 충성되이 써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이란 말씀은 청지기에 불과한 인간이 재물을 신실하게 올바로 사용하지 않았음을 의미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을 때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입니다. 영원히 누릴 축복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재물이나 시간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것은 올바르게 사용을 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충성하는 것은 재물이나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올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자에게는 참된 것을 맡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어진 재물이나 시간을 올바르게 사용하면 ‘참된 것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참된 것’은 하나님 나라의 보화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영원한 축복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재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서 ‘참된 것’,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남의 것에 대한 충성’입니다. 12절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남의 것에 충성은 남의 것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입니다. 남의 것에 대한 충성은 남의 인격을 소중이 여기는 것입니다. 남의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빌린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충성이라고 했습니다. 남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남의 것에 충성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남의 것에 대하여 성실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하면 ‘너희 것을 너희에게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의 것에 충성하면 너희 것을 너희에게 주리라’는 말씀은 ‘너희 것을 영원한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네 것을 네 것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아니하면 너희 것도 너희에게 주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준 것까지도 빼앗겠다는 말씀입니다.
남의 것에 대하여 충성을 다할 때에 정말로 내 것을 주십니다. 야곱은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양을 20년을 쳤습니다. 비로소 하나님은 야곱에게 아내들과 열두 아들들과 수많은 양떼와 소떼와 종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 올 수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집에 종으로서 충성을 하므로 애굽에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 아버지의 양을 지키는 일에 충성을 다 하므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합시다.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가 되지 맙시다.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합시다. 남의 것에도 충성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 된 것을 받읍시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누릴 수 있는 복을 받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