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이 책의 이름은 <설산비호>이고 설산비호는 바로 호비의 별명이다. 비호는 호비를 도치시킨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단연히 호비라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소설의 시작과 결말이 호비와 연관된다
시작 부분에서 보수화상이 도움을 청하며 상대하려 하던 자는 바로 설산비호 호비였다. 결말 부분에서 묘인봉과 호비는 일대 결전을 벌이게 되며 은혜와 원수를 갚고 청산하기 위해 생사의 갈림길에서 내리기 어려운 선택을 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들이 진지한 자세로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해 본다면 이 소설에서 호비를 주요 인물로 보기는 힘들며 유일한 주인공이라고는 더욱 할 수 없다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아주 중요한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 뿐이다.
김용 선생은 <비호외전>의 후기에서 <설산비호>의 주인공이 호비가 아니라 호일도라고 직접 밝히고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는 또 다시 호비의 일생을 다루는 <비호외전>을 쓰게 된 것이다. 따라서 호일도를 이 소설의 주인공이라고 하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설산비호>의 주인공을 엄밀히 따져 본다면 한 명이 아니라 호, 묘, 범, 전의 네 사람으로 보아야 한다. 여기에서의 호, 묘, 범, 전은 두가지 의미를 지닌다. 하나는 호, 묘, 범, 전 네 집안을 가리키는 말이요 또 다른 하나는 호, 묘, 범, 전이라는 이 네 집안의 네명의 후예들인 호일도, 묘인봉, 범방주, 전귀농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이 잠만 확실히 안다면 <설산비호>의 대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사물의 핵심을 파악하여 나머지 것들을 이에 따라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호, 묘, 범, 전 이 네 집안의 백여 년에 걸친 은혜와 원한 및 그 돌고 도는 복수의 역사가 바로 이 <설산비호>라는 소설의 진정한 중심 줄거리가 되며 백여 년 동안 형성되어 온 이 은원 관계에 얽힌 피눈물 나는 이야기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상에 젖고 깊은 생각에 빠지게 만드는 것이라 하겠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호, 묘, 범, 전 네 사람은 원래 틈왕의 신변을 지키던 위사의 신분이었다. 한명 한명이 전부 무예가 뛰어났으며 충성심이 강했고 거기에다가 이 네 사람은 형제처럼 흉허물 없이 가까웠으며 목숨을 걸고 틈왕을 지키던 사람들이었다.
틈왕 이자성이 구궁산에서 포위되었을 때 묘, 범, 전, 세 사람은 포위를 뚫고 구원병을 데리러 가기로 하고 무예가 뛰어나고 가장 능력이 많아서 사람들이 비천호리(하늘을 날아다니는 여우)라고 부르던 호씨가 혼자 남아 틈왕을 보호하게 되었다. 위급한 상황에서 호씨는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 감쪽같이 몸을 빼내어 도망가는 계책을 사용하여 틈왕을 구출해 내고 자신은 고민 끝에 가짜로 틈왕을 배신한 척하고서 가짜 틈왕의 시체를 가지고 청나라 군대에 투항하여 만청의 조정으로 하여금 틈왕의 죽음을 믿게 하는 한편 오삼계의 휘하에서 오삼계와 청나라 조정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묘, 범, 전 세 사람이 그 내막을 모르고 호위사를 살해하게 되었고 호 위사의 아들로부터 진상을 들은 뒤 이 세명의 위사는 후회와 한탄 끝에 그만 자살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로부터 호씨 집안과 묘,범, 전 세 집안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 배년 동안 끊이지 않고 그 원수 관계가 이어져 오게 된다.
틈왕을 모시며 청나라에 항거하던 친형제 같은 이 네 명의 위사가 오해로 인해 철천지 원수 사이로 뒤바뀌어 강호에서 끊임없이 복수하고 보복하니 참으로 한탄할 만한 일이라 할 수 있다.
대업을 이룩하고자 하던 친형제 같이 가까운 사이였던 이들 집안이 서로 원수 관계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저 진상을 몰랐기 때문에 계속 원수를 갚고 복수를 했던 것이라면 그만이지만 불초한 후예들은 뜻밖에도 진정한 원수라고 할 수 있는 청나라 왕조에 몸을 의탁하게 되어 이 평범한 강호의 복수가 조정의 이민족과 관련되어 얽히게 되고 만다. 진상을 몰랐기 때문에 생겨난 원한 관계가 의도적인 보복이 되었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한 복수가 재물과 명예와 권세를 탐하는 모함으로 바뀌게 된다. 이로인해 이 책의 주제 는 점점 심화되어 간다. 이 네 집안의 가족들이 복수하고 복수당하는 역사는 우리들에게 인성과 역사의 진정한 모습에 대해 수많은 것들을 깨우쳐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