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사태로 시끄러웠던 지난달 국정감사 현장에서는 한·일 관계에서 의미 있는 주제가 거론됐다. 지난달 31일 대통령실에 대한 국회 운영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김정권 국회의원이 한일해저터널의 타당성과 조사 실시 여부에 대한 의견을 질의했다. 이에 정정길 대통령 비서실장은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용의가 있고 적극 검토하겠다”는 답변을 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인터넷 토론방에서는 한일해저터널의 득실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전개됐다. 1980년대 초반 처음 제기된 후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찬반 양측의 주장은 여전히 팽팽하다. 한일해저터널을 둘러싼 논쟁은 무엇일까. 그리고 ‘바다 밑에 땅길 만들기 공사’는 가능한 걸까.
◆대륙 잇기 다양한 방법 연구중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있는 한일 양국. 두 나라는 이를 통해 대륙과 섬으로 운명이 갈려 있다. 두 나라를 잇는 바다·하늘길 외에 땅길을 놓는 것은 일본이 중심이 돼서 진행했다. 섬나라로서 일찍부터 대륙과 연계할 방법이 필요했기에 일찌감치 연구를 시작해 다양한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일본 측이 제시한 노선 구상안은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唐津)에서 출발해 이키(一岐)섬과 쓰시마섬을 거쳐 가는 3개 라인. 가라쓰~쓰시마 하도~경남 거제시(209㎞), 가라쓰~쓰시마 상도~경남 거제시(217㎞), 가라쓰~쓰시마~부산(231㎞) 등의 노선이다.
한국 쪽에서 가장 관심이 있는 부산시는 최근 부산과 일본의 후쿠오카(福岡)를 잇는 안을 제시했다. 부산발전연구원(부발연)의 최치국 선임연구원은 지난달 30일 오후 사단법인 한일터널연구회, 사단법인 일한터널연구회와 공동으로 연 ‘한일터널과 동북아 통합교통망 구축’ 주제 세미나에서 이와 같은 안을 발표했다. 그는 이날 발제문에서 “부산~후쿠오카 연결터널을 통해 500㎞ 권역 내의 도시는 자동차와 철도 노선을 이용, 동일 생활권 및 경제권 형성이 가능하다”면서 “육상 연결 교통망과의 연계 및 터미널 건설방안을 감안해 볼 때 부산 강서지역의 복합 터미널과 직결시킬 수 있어 부산~후쿠오카 노선안이 적합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1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영남권 신공항 사업 관련 동남권·대구경북권 5개 시·도 또한 한일해저터널의 직접 영향권이 될 것”이라는 점도 덧붙였다.
◆‘국제하이웨이 프로젝트’로 시작
한일해저터널 사업을 제안한 것은 문선명 통일교 총재다. 그는 1981년 서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전 세계를 하나로 잇는 국제평화고속도로를 제창했다.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으로 제안한 것이 한일해저터널 건설. 이는 일본에서 한국을 거쳐 유라시아 대륙을 지난 뒤 영국까지 2만여㎞를 자동차 도로로 연결하는 ‘국제하이웨이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그 이후 한일해저터널 연구는 일본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1983년 사사야스오(佐佐保雄) 홋카이도대 명예교수가 사단법인 일한터널연구회를 설립, 4개 전문위원회가 25년 동안 조사·연구를 진행해 ‘터널 건설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6년에부터는 터널 시발점으로 제시된 가라쓰에 탐사용 터널 건설공사를 시작했다. 이 조사용 사갱(斜坑·경사굴) 공사는 현재 400m가량 진행됐다.
반면 한국에서의 연구는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지난 2003년 건설교통부 발주로 한국교통연구원과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이 진행한 ‘한일해저터널 필요성 연구’ 결과 ‘타당성 없음’으로 나온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지난해 허남식 부산시장이 타당성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뒤 사정이 달라졌다. 이에 따라 부발연이 지난해 6월 ‘한일해저터널 태스크포스팀’을 결성했다. 지난 9월에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한국 측 재계인사와 일본의 주요 경제인이 참석한 회의에서 공동연구를 주장했다. 지난달 말 열린 세미나에서는 부산~후쿠오카 노선안이 제시됐다. 그리고 정정길 비서실장의 ‘예비타당성 조사 용의’ 답변이 나오면서 기대가 커진 상황이다. 부발연은 올 연말까지 1차 보고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난관은 ‘첩첩산중’
그러나 한일 양국을 육상 교통으로 잇기 위해서 넘어야 할 난관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 문제가 걸려 있다.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기사 댓글 중에는 ‘매국노’라는 표현이 많이 등장한다. 대륙 진출이 일본의 전통적인 추진 사업인데다 일본 측이 해저터널 발착점으로 지정한 가라쓰가 임진왜란 때 조선으로의 출병지였기 때문이다. 한일해저터널을 적극 지지하고 있는 허문도 전 통일부 장관은 “한일터널은 양국 국민 간 신뢰관계 구축 없이는 공사 자체를 엄두를 낼 수 없기 때문에 토목공학 이전에 마음의 문제이고 역사·문화의 문제”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형균 부발연 정책협력처장은 앞서 세미나에서 ▷부산의 경유지 전락 ▷건설효과의 일본 독점 ▷부산항의 위축 ▷신규로 건설되는 중간 인공섬에 의한 국경선 시비 우려 등을 터널 건설 시 극복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이런 식으로 여객이나 물류 주도권이 일본으로 넘어가면 ‘죽 쒀서 남 주는 꼴’이 돼 버린다. ‘한일해저터널 필요성 연구’(2003)의 ‘사업성 없음’ 결론도 하나의 근거이다. 연구 보고서에는 ‘3개 노선 모두 해저 화산지대를 지나고 있는 점’도 약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기술적인 면에서도 고민은 있다. 대한해협을 관통하는 토목공사가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해저터널 사업이기 때문이다. 우선 한일해저터널 길이가 만만찮다. 어느 안이든지 총연장 200㎞가 넘는데 이는 영국~프랑스를 잇는 유로터널(50.54㎞)의 4배 이상이다. 현재 세계 최장인 일본의 세이칸(靑函)터널(혼슈와 홋카이도를 잇는 해저터널)의 53㎞에 비해서도 훨씬 더 길다. 수심도 해저터널 공사를 어렵게 하는 요소. 제안 노선에서 최대 수심은 155~220m로 이 또한 세이칸터널의 140m에 비해 깊다.
이처럼 어려운 공사이다 보니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공사기간은 10년 내외, 투입되는 공사비용은 자그마치 160조~200조원에 이른다. 노선이나 운영방식, 공법에 따라 공사비가 100조원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천문학적인 규모의 공사비를 감당하기 위한 대책 마련도 쉽지만은 않다. 건설 당시 경제성이 있다고 예상했던 유로터널도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고심거리를 던져준다.
한일해저터널 건설이 양국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킬 만한 대규모 역사(役事)이고 그 필요성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하지만, 그 실현 여부는 양 국민 사이의 뿌리 깊은 감정의 골만큼이나 풀리기 힘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