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작가 챨스디킨즈가 쓴 글귀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기억하는 것은 ’인생의 사소한 일이 때로 큰 것을 만든다” 이다. 어느날 제리님이 6기 산님이 정선 물매화 보러 간다고 공지 떴는데 같이 가세요’라는 메시지로 시작된 일일 여행이 9월에 시작해 11월 예천 기행으로 3번째가 되었다. 처음엔 산행 전문가의 출정에 나 같은 초보자가 행여 폐끼칠까 싶어 쉽게 예스를 할 수 없었는데 리더의 ok 싸인에 따라나섰지만 충주로 돌아올 때까지 긴장한 것은 사실이다. 그게 1차 정선 물매화 나들이의 시작이었다.
그 여리여리 피어낸 물매화라는 꽃은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렌즈 속으로 들어가고 화무십일홍이란 말처럼 그 청순한 아름다움이 얼마나 갔을지 모른다. 2차 청량산 산행도 멋지게 끝냈다. 그 아름다운 단풍들은 계속 생을 이어가 볼 수 있을 것이나 늙어가는 우리들의 삶이 아쉬운 것이다. 고로 부딪치는 그때그때를 소중하게 담아둬야 함이라. 여행이 3차쯤 되니 고정 멤버도 생기게 되고 문화와 숲 탐방이 어우러지고 거기에 고장의 맛집도 찾아가는 스타일이었다. 긴 나들이에서는 팀원의 의식이 어떠냐는 중요 요소의 하나이다. 내가 여행사 여행을 즐기지 않은 것도 그 이유의 하나였듯이... 2차에는 숲교육 두 선배와 같이 동승하게 됐는데 왠만한 곳에선 연장자가 되버린 나 이지만 이번엔 교육선배이면서 연장자(이경자 선배는 확실하진 않지만 ㅎ)들과 함께 해 웬지 편안했다. 이번 3차에도 새로운(내게만) 남자 선배와 우린 다시 동승을 하게 되었는데 드라이버의 편안한 운전과 road map 조수가 된 산님의 쉴새없는 교육열과 재롱에 차안에서의 시간도 나름 재미있었다.
그럼 슬슬 예천 여행을 떠나보자. 전날 비도 내리고 전국에 비소식이 있었지만 눈비가 와도 떠난다는 원칙이 있었고 새롭게 합류한 몇분이 있었다.
예천(醴泉)은 단물이 솟는다는 의미이다. 인간들이 생존하는 곳에서 물은 삶의 일부다. 나무들이 잘 자랄 것이고 도시 발전에도 좋았겠지... 이번에 우리는 예천 용문사의 보물들과 3개의 천연기념물과 두 곳의 명승지를 들러보고 금당실마을, 예천향교와 낙동강 700리 마지막 주막지인 삼강 주막 그리고 맛집으로 뜬 용강표 순대가 주메뉴인 박달재 식당 그리고 별 감동을 주지 못한 뿅뵹다리 등이었다.
먼저 도착한 곳이 석송령(石松靈)이니 천연기념물부터 볼까. 예천의 천연기념물은 3개가 모두 나무들이다. 석송령은 이름에 나타나듯 영험스런 소나무로 여겨져온 600여년 나이 먹은 소나무이다. 2세도 키우고 있고 그 소나무에 얽인 에피소드가 이것저것 있는데 마을의 수호樹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름 땅도 소유한 부자 나무이다.
두 번째 찾은 송림은 금당실마을에 위치한 천연기념물이다. 지정학적으로 겨울에 서풍이 부는 이곳을 해결하기 위해서 송림을 조성하지 않았나 하는 설도 있다. 나무들의 푸르름은 항상 생명을 느끼게 한다.
이 송림을 오른쪽에 두고 왼쪽으로 진행하면 금당실 마을이 들어온다. 십승지(十勝之地)의 하나로 여겨졌던 이곳은 옛 가옥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이 많고 마을 표지가 북촌1가, 2가가 있으며 청동기시대 유적으로 고인돌이 있어서인지 그 이름을 딴 거리도 있다. 갈길이 멀어 고인돌거리는 남겨두고 북촌길을 통해 나왔다.
근데 이 마을의 주택 구조의 특징은 모든 집이 돌담으로 낮게 되어 안을 들여다볼 있으며 더구나 가옥을 둘러싸고 마당이 넓게 둘러있는 것이었다. 젊은이들이 거의 없고 노인들에 의해 넓은 집이 지켜져가고 있는 것같다. 추운 바닥에서 콩을 키는 할머니는 우리들에게 들어와 차한잔 하고 가라는 인사말을 몇 번이나 하신다. 조금은 가슴아린 정이다. 노인들만 주로 남아있는 게 농촌현실이지만 어쨋거나 마을 전체가 편안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고택과 어우려져 있었다. 나오는 길에는 이발소가 떡하니 있다.
세 번째 천연기념물 황목근(黃木根)은 금남리에 자리잡은 500여년 된 팽나무이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토지를 보유한 담세목(擔稅木)인데 노란색의 꽃을 피운다 하여 성은 황씨요 이름은 근본있는 나무라는 뜻의 목근으로 이름을 받은 팽나무로 줄기가지가 부챗살처럼 두 방향으로 뻗는다 한다. 열매를 하나 먹어보니 단호박 냄새가 났다. 피뢰침을 마치 절터 당간지주처럼 높게 해놓았고 당산제를 지내기 위한 제단도 있다.
멋진 팽나무를 뒤로 하고 보물을 많이 간직한 신라 천년 고찰 용문사로 간다. 사찰을 둘러싼 산에는 아직도 아름다운 단풍이 남아서 아쉬운 가을의 여운을 보여준다. 일주문을 지나 우린 오른쪽 주차장으로 올라갔지만 실은 오른쪽에 돌다리 다리를 지나 올라가야 사천왕들이 있는 회전문(廻轉門)을 만날 수 있다. 사천왕들이 있는 문이 회전문이라 명명돼 있는 곳은 개인적으로 처음이다. 이 문은 불교의 윤회사상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같다. 다른 곳은 그냥 지나치고 대장전으로 가니 현존 유일한 윤장대(輪藏臺)가 쌍으로 있고 三佛 뒤엔 목판탱화가 있는 것같은데 탱화 양쪽만 나무가 보이고 가운데를 중심으로 거의가 금으로 입혀져 있다. 둘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윤장대는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경을 넣어 돌려가며 읽게 해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현대에는 그것에 여러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같다. 그것을 돌리면 안에 들어있는 經을 읽는 것과 같다는 설도 있어 다른 곳에서 빙~~ 돌렸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현재는 무슨 이유인지 돌리지 못하게 해놓았다. 아마도 오랜된 것이 많은 사람들의 손길을 타면 보존이 힘들어질 것같아서가 아닐지...
승녀들이 전쟁에 대비에 회의를 했다는 자운루도 있다.
누각에서 내려다본 회전문
실은 시간의 여유를 두고 천천히 둘러봐야 할 귀한 자료들이 많이 있는 사찰인데 시간상 겉핥기 식으로 지나쳐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았다. 아름다운 사찰의 풍경을 마음에 담고 다음 코스인 초간정으로 향한다.
초간정 원림과 회룡포는 명승지이다.
식사 전 들른 곳은 초간정이다. 선조때 인물 권문해씨가 처음 지었다지만 소실과 붕괴를 거쳐 현존 것은 그 후손이 지었단다. 이곳은 주변 나무들과 바위들이 어우러져 멋진 경관을 만들어냈고 거기서 우리들은 떨어진 단풍잎으로 단풍비를 만드는 포토이벤트도 만들면서 잠시 웃음들을 지었다. 나올 때는 출렁다리를 이용했다. 나무들에 푸르름이 오르는 4~5월에 오면 참 아름다운 풍경을 볼 것같다.
자 이제 일단 점심을 먹어야하는 시간이 되었다. 굶주린 배를 채워야한다. 센스있는 조수 산님은 미리 차안에서 예약을 한다. 그런데 식당으로 가는 길이 왜 이리 먼거지...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조수는 벌써부터 소주 막걸리 맥주를 마셔야한다며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ㅎ 여유있는 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는 말씀도 하시며... 금당실마을이 구시가지라고 하면 박달식당으로 들어가는 길은 시내라고 해야 하나...
목적지 길로 들어서니 멀리 유일하게 큰 나무가 휘엉청 늘어져보인다. 회화나무란다. 선조들은 회화나무를 최고의 길상목으로 생각했고 주로 대궐이나 고결한 선비집이나 서원, 절간에 주로 심었다는데 뜬금없이 길 한쪽에 서있는 걸 보니 그곳에 선비집이라도 있었나?
과거는 어쨋거나 지금은 용궁표 순대의 거리가 된듯하다. 산님이 센스있는 조수라고 한 이유는 바로 식당에 들어가서이다. 차안에서 예약을 안했으면 허기진 배를 잡고 우리들은 대기 사람들 부류에 끼었을 테니... 아무리 맛있는 순대라도 내게는 그림의 떡이라 대신 비싼 오징어구이를 열심히 먹었다.
첫댓글 샘, 역시 멋진 글입니다. 숨겨놓은 재능을 팍팍 풀어 놓으셨군요.
즐거운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그림도 잘 그리시고 글도 잘 쓰고 새로운 신 신사임당 아니 곽사임당 인듯 합니다. ㅎㅎㅎ
ㅎ 글 수준이 전문가시군요~
제리님 더욱 분발하지 않으면 클나겠어요~
전 겸손하지 않아 칭찬은 그대로 받습니다.
담엔 필기도구는 안 챙김 ㅎㅎ
제리님 진짜 분발하셔야겠어요.ㅎ
너무 멋진 여행후기입니다. 다시보는 재미를 맛보게 해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